HJ 컴퍼니의 김선미 극본 김은영 오소린 작곡 김민정 연출의 파리넬리
공연명 파리넬리
공연단체 (주)HJ 컴퍼니
극본 김선미
작곡 김은영 오소린
연출 김민정
공연기간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관람일시 1월 24일 오후 3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주) HJ컴퍼니의 김선미 극본, 김은영 오소린 작곡, 김민정 연출의 <파리넬리>를 관람했다.
파리넬리(이탈리아어: Farinelli, 1705~1782)는 18세기에 유명했던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 혹은 소프라니스트이다.
원래 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이탈리아어: Carlo Maria Michelangelo Nicola Broschi)이다. 1705년 이탈리아의 나폴리 왕국 풀리아 주 안드리아에서 작곡가 살바토레 브로스키(이탈리아어: Salvatore Broschi, 1676~1717)와 나폴리사람이었던 카테리나 베레세 사이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이탈리아어: Riccardo Broschi, 1698~1756)도 아버지를 따라 작곡가가 되었다. 그가 12살 때 아버지에 의해 거세당했으며, 당시 유명한 작곡가였던 니콜라 포르포라의 제자가 된다. 그 후 놀라운 속도로 그의 노래 실력이 향상되었으며 이때 메타스타시오를 만나게 된다. 그 후 메타스타시오와 파리넬리는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으며, 그의 예명 '파리넬리'는 그의 후원자였던 '파리나' 형제의 성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1724년 파리넬리는 빈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된다. 그 후 나폴리 등 여러 곳을 다녔으며, 1726년 파르마와 밀라노를 방문했을 때 플루티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요한 요아킴 콴츠도 그에 대해 호의를 표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힘이 있었으며, 풍부한 기교와 유연한 장식음 등으로 많은 찬사를 얻었다고 한다.
1734년 포르포라와 같이 런던으로 왔던 파리넬리는 영국 런던에서 카스트라토 인 세네지노를 만나게 된다. 세네지노는 헨델과 공연을 하고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둘은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헨델과 파리넬리의 사이는 서로 좋지 않았다고 하며, 헨델은 파리넬리를 '노래하는 기계'라고 혹평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파리넬리는 형 리카르도와 작곡가 요한 아돌프 하세 와 같이 공연을 하였으며 어떤 부인이 파리넬리에게 “오! 신을 위하여 지켜져야 할 음성”이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세네지노와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하세의 오페라 아르타세르스에서 같이 공연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1737년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부인 엘리자베타에 의해 초청을 받는다. 엘리자베타는 펠리페 5세의 우울증 치료를 부탁하였으며 파리넬리는 펠리페 5세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는 10년 동안 4곡의 노래를 반복하여 불렀으며 펠리페 5세는 그의 노래를 듣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759년까지 스페인에 머물면서, 흥행사로서 권력을 행사했으며, 공적인 활동도 활발히 했다. 카를로스 3세와의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궁정의 직위를 잃었지만 이미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여생을 평온하게 보냈다. 은퇴 후에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찾아왔으며 모차르트 글루크 등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은퇴 후에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렸으며 가끔은 자신의 화려했던 전성기의 모습을 회상하고는 했다. 1782년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하인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로마교황령 볼로냐에 묻혔으나 나폴레옹 1세에 의해 무덤이 훼손되었다가 최근에 그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들은 볼로냐 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파리넬리는 18세기를 풍미했던 카스트라토였다. 풍부한 성량과 기교로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지만 그의 연기력은 풍부한 성량에 걸맞지 않게 좋지 않았다고 하며, 화려한 무대 의상과 장식으로 인해 세간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4년 영화 파리넬리가 제작되어 1995년 4월 8일 개봉을 한다. 보통 《Farinelli - Il Castrato》 라는 제목으로 쓰였으며, 이탈리아판으로는 《Farinelli - voce regina》 라는 제목으로 개봉이 되었다. 감독은 제라르 코르비오이며, 주인공 파리넬리 역은 스테파노 디오니시가 맡았고,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는 엔리코 로 베르소가 맡아 열연을 했다. 영화 '파리넬리'는 1995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고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영화나 뮤지컬 <파리넬리> 집필에 기초를 제공한 것은 파리넬리가 친구인 대본 작가 메타스타시오와 주고받은 편지다. 헨델과 파리넬리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나온 모차르트-살리에리의 갈등과 비슷하다. 역설적이지만 당시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카스트라토를 금지한 나라였다.문서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실제로 재현하기 위해 영화 ‘파리넬리’는 최신 음향기술을 총동원했다.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은 남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여성적이고 때로는 어린이 같은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저음부는 남자의 목소리로, 고음부는 여자의 목소리로 녹음했다. 음색이 비슷한 남녀 성악가를 2년간 찾아다닌 끝에 절묘한 미성을 지닌 미국 출신의 흑인 테너 데렉 리 래진과 폴란드 출신의 소프라노 에바 고들레프스카의 목소리를 합성한 다음 립싱크로 처리해 주인공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이들 가수는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메츠의 아르제날 콘서트홀에서 수십 차례 녹음했고 음악감독은 이를 3,000여 회 편집했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저음과 고음을 넘나들면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교차되는 부분으로 파리 현대음악음향연구소(IRCAM)에서 7개월 동안 정밀한 컴퓨터 처리로 미묘한 부분까지 하나의 음색으로 만들어 냈다.이 밖에 18세기 초의 오페라 소품과 의상, 당시의 심리 상태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완벽을 기했다. 파리넬리 목소리를 재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심오한 연구와 예술의 아름다움을 수호하려는 프랑스의 뿌리 깊은 전통 덕분이다.
뮤지컬 <파리넬리>의 무대는 객석을 향해 오목하게 들어간 반원형의 구름다리가 가로 설치되고, 구름다리 상단 왼쪽은 합창단과 연주자들의 좌석이 마련되었다. 구름다리 상단 오른쪽은 통로로 사용된다. 오른쪽 구름다리는 장면변화에 따라 무대 중앙으로 접혀져 이동되기도 한다. 천정에서 액자형태의 크고 작은 대형 조형물이 내려와 장면변화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작은 안락의자가 놓인 칸막이 조형물을 들여오고 다시 내가서 역시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의상...파리넬리를 비롯한 출연자들의 의상은 물론 앙상블의 의상까지 시대적 고증에 따라 화려하고 거의 완벽하게 재현된다. 합창단의 의상은 성가대임을 확인시킨다. 음악도 2백 년 전의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중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비롯해 리카르도·포르포라 등의 오페라 아리아에서부터 뮤지컬 음악에 이르기까지 관객을 감상의 세계로 인도하기에 충분하게 작곡 편곡되고, 주요배역 뿐 아니라, 앙상블은 물론, 아역에 이르기까지 열연과 열창, 그리고 율동은 관객을 매료시키고 본고장인 유럽에서의 공연 못지않은 고수준, 고품격의 공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뮤지컬의 도입에 소년 파리넬리의 등장을 시작으로 대단원에서의 소년 파리넬리의 모습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과 무대장치를 이동, 상승, 하강함으로써 장면변화의 대처가 연출력을 감지시키고, 출연자들의 열연과 열창은 그들의 고되고 열정적인 연습장면을 생각게 한다. 연주자들의 기량 또한 탁월함을 느끼도록 하는 뮤지컬이라 하겠다.
고유진, 루이스 초이, 안유진, 이준혁, 김호섭, 원중환, 지인규, 임하람, 김정겸, 김수영, 정민휘, 윤영석, 김재복, 박상언, 정지혜, 조민정, 황한나, 김선희, 조은숙, 조영아, 한아정, 안상은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창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한승원 김중석, 무대디자인 심재욱, 음향디자인 김주한, 조명디자인 김준범, 의상디자인 도 연, 분장디자인 백지영, 소품디자인 이소정, 무대감독 김유신 등 스텝 진의 노력이 뮤지컬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 (주) HJ컴퍼니의 김선미 극본, 김은영 오소린 작곡, 김민정 연출의 <파리넬리>를 2015년을 여는 걸작 뮤지컬로 탄생시켰다.
1월 24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