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거저 받은 것 거저 주는 연습
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일이 있다. 물론 여론조사, 물품 광고 같은 게 있어 무시해버리는 일이 보통이다. 그러나 가끔 오랜 제자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도 있어 010-일 때는 어쩌다 받고 상대방의 음성을 확인한다. 이번에는 하 씨라는 분으로부터 걸려 온 것인데 심상치 않은 부탁이었다. 내가 다니는 오정교회에 나온 미국 여선교사 중에 ‘부애도’라는 선교사가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 내 이름을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오정교회에서 나이가 많은 장로에게 물었더니 그분이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었다. 함부로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것이 아닌데 별 의심이 없고 진지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오정교회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교회 50년사를 쓰기도 해서 혹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전화한 이유는 자기가 대전에서 고아로 상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졸업 때 마지막 등록금을 내지 못해 졸업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동아일보 대전지사에 가서 안타까운 사정을 울며 호소했더니 그것이 1964년 12월 24일에 기사화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정교회의 한 여 선교사가 그 기사를 읽고 등록금을 대 주어 졸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80이 넘어 60년 전에 자기가 빚진 것을 생각하고 그분이 어디 사는지 수소문해서 자기가 죽기 전 평생 은혜를 갚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늦게 깨달음을 주어 지금에야 감사하고 싶은 생각이 불 일 듯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그런 분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오정교회에 출석한 여 선교사는 당시 외국인 학교 교사로 있었던 ‘헬렌 번드란트’ 뿐이었다. 우선 미국에 있는 내가 잘 아는 P 선교사에게 e-mail을 보내서 ‘헬렌’ 선교사의 연락처를 찾아 달라고 했더니 서울에 사는 남장로교 선교사를 수소문해서 ‘헬렌’의 주소와 이메일,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며 연락해왔다. ‘헬렌’은 몇 년 전부터 알츠하이머의 진단을 받고 본국에서 남편(James)의 간호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헬렌’ 전화로 그 남편에게 한국의 한 남자가 찾고 있는 분이 혹 당신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리고 또 ‘부애도’라는 이름을 가진 선교사를 들어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번드란트’라는 미국 이름은 한국에서 ‘부’씨라는 성을 가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하 씨에게도 편지로 써서 보냈다.
한 달쯤 지나서 나는 내가 한남대 시절부터 잘 알던 미국에 있는 G 선교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는 ‘번드란트’ 씨로부터 내 편지를 전달해 받았는데 ‘헬렌’의 남편은 자기는 1966년부터 외국인 학교의 교사로 근무는 했으나 오정교회에 나간 일이 없는데 혹 ‘부애도’라는 이름을 가진 선교사를 아느냐고 연락을 해 왔다는 것이다. 그 뒤 G 선교사는 자기 나름으로 장로교 선교본부에 연락하고 또 자기가 기억나는 사람과 편지 연락을 했던 사람들을 뒤져 고맙게도 그 당시 여섯 사람의 여 선교사 이름을 내게 보내 왔다. 그러나 그중 아무도 맞는 사람이 없었다. 하 씨의 감사한 마음이 시들기 전에 뭔가 해야 하는데 이제는 더 찾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감사는 꼭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찾아서 그분에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하 씨에게 편지했다. ‘부애도’씨는 당시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지도 않으며 또 보답을 받고 싶어 도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하 선생도 그 은혜에 감사하려면 하 씨 마을의 어려운 고등학생에게 대학 등록금을 주든지, 어떤 장학 재단에 감사의 뜻으로 돈을 좀 기증하든지, 아니면 어떤 난민 구호금으로 헌금을 하면 어떻냐는 내용이었다. 얼마 뒤에 또 하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헬렌’ 선교사가 1966년부터 외국인 학교에 있었다면 혹 그녀의 선임자는 누군지 알아봐 줄 수는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꽤 힘든 수고를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 씨가 먼 옛날이었지만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기특해서 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의 외고집은 당시 자기를 도와준 사람을 꼭 찾아서 은혜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받은 은혜를 빚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은혜를 빚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그가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나를 하나님을 배반한 죄에서 완전히 해방해 주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구원받은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지금은 천국 보좌에 앉아계신 주님께 무엇을 어떻게 해드려야 한다는 말인가? 찢기고 피 흘리신 주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신다. 다만 고집스럽게 닫고 있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우리 안에 모셔 들여 우리와 대화하며 먹고 마시기를 원하신다. 주님과 함께 살며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게 하시고 영원을 흠모하게 하시며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세상에 나가 주님처럼 살라고 하신다. 은혜의 강물을 세상에 흘려보내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나는 하 씨가 은혜는 은혜로 보답하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 세상의 법을 따르지 않고 하늘나라의 법을 따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원하지 않은 돈과 명예를 사랑하고 권력을 탐하고 없는 자를 무시하고 병자와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태도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으로 돌아오기를 소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일이다. 나는 더는 하 씨가 찾는 ‘부애도’ 찾기를 멈추기로 했다. 하 씨가 먼저 구원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