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행문 >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 태국 고대도시 치앙라이 (1)
란나왕국 수도였던 태국 북부 고대 도시
치앙라이(1)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태국사찰 구조
태국 사찰은 대개 우보솟, 위한, 살라, 불탑, 그리고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인 호 뜨라이와 종각 등이다.
‘우보솟ubosot' 혹은 줄여서 ’봇bot'이라 부르는 법당으로 한국 사찰의 대웅전에 해당한다. 봇의 모양은 직사각형의 텅 빈 홀로, 한쪽 끝에 불상이 놓여 있다. 봇은 절의 스님들이 모여 명상하고 설법하는 곳이며, 특히 승려의 수계식은 반드시 여기서 행해진다. 봇의 둘레에는 ‘바이 세마bai sema'라고 부르는 여덟 개의 지계석이 땅에 박혀 있다.
위한wihan'은 절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불당이다. 형태는 봇과 비슷하지만 크기는 약간 작다. 여기에는 절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사찰에는 또 ‘살라sala'라고 부르는 정자가 있다. 살라는 봇과 비슷한 직사각형의 건물로 기둥과 지붕만 있고, 벽이 없어 시원하다. 동네 주민이 수시로 와서 이곳에서 쉬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설법을 듣는다. 살라는 때로는 마을 주민이 모여 마을 축제 등과 같은 공동의 행사를 앞두고 회의를 하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태국 사찰은 또 ‘쩨디cedi’ 혹은 ‘쁘랑prang'라고 하는 불탑이 있다. 쩨디는 종의 꼭대기에 뽀족탑을 얹어 놓은 형태로 스리랑카가 그 기원이다. 쁘랑은 옥수수 속대와 같은 형태로 캄보디아로부터 수입되었다. ---이 상은 <태국, 불교와 국왕의 나라‘ 조흥국 지음>에서 뽑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다시 찾은 태국
2021년 11월 22일 인천공항에서오후에 출발하여 아시아나 비행기로 방콕에 저녁 10:30에 도착했다. 비행 시간이 5시간 30 분 걸린다. 뉴욕에서 서부 로스앤젤레스 가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다.
태국은 2017년 부터 2019년 까지 7-8 번 방문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라오스를 한번 더 방문하고 그 다음에는 미얀마 사찰 순례를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고 태국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다. 2019년 11 월 라오스 방문 이후 약 2 년 만에 오는 동남아 방문이다. 2018년 부터 태국부터 시작한 동남아 지역 사찰 순례 원고를 더 이상 쓸 수 없었는데 2021년 11월에 부터 태국이 문을 열어서 한국에서 20 일 체류한 후에 태국북부지역 사찰 방문하려고 11월 22일 방콕에 도착한 것이다.
출발지 인천 공항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썰렁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이다. 비행기 탑승객도 60명 미만이다. 전에는 거의 만석이었다. 그런데 승무원에 의하면 11월에는 뉴욕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다고 한다.
태국에 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태국에 입국 하려면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에 한해서 $50,000 짜리 의료보험을 요구한다. 이런 서류를 다 준비해서 태국 정부 싸이트에 접수를 시켜 통과 해야 한다. 내 경우는 이 의료보험을 구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여행사에 부탁해서 미국에서 $152 보험비 외에도 수수료 $25 합해서 $187 들여 준비한 서류가 거절되었다. 할 수 없이 태국에 사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100 정도 되는 보험을 사가지고 다시 신청해서 통과되었다. 인터넷에서 저렴한 보험을 파는 곳이 있다는 것을 여행을 직업처럼 다니는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기에 또 영문으로 된 PCR 검사 증명서를 서울동대문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만들었는데 15 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쓸데없이 영어를 마구 사용하는 한국에서 전에는 보건소에서 영어로 증명서를 발급하다가 이제는 한국어로만 발급을 하기 때문에 이 비용이 또 들어갔다.
방콕 스완나품 공항에 도착하니 여기도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서 인터뷰하고 나오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방콕 공항은 사람들이 항상 와글와글 했다. 하지만 그날은 한국에서 온 사람들 뿐이었다. 수속을 마치고 나가니 호텔에서 피켓을 들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도 처음이었다.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태우는 차는 운전석과 손님이 타는 좌석이 유리창으로 나누어져 있는 특수 차량이었다. 일반 택시는 안되고 그 차를 타야하기 때문에 호텔에서 보낸 것이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최우선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는데 이 검사 비용도 또 여행자가 내야 한다. 호텔에서 검사는 코 쑤시는 시간이 미국이나 한국보다 2 배 정도 길어서 매우 불편했다. 비행기 가격외에 이런 저런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태국이 문을 열었지만 태국 관광이 활성화 될지는 의문이었다.
이번 여행은 태국 북부 차앙라이와 푸치파, 치앙 쎈, 골든 트랑이 앵글등을 가 볼 계획이다.
태국 북부 고대 도시 치앙라이
태국 북부 도시 치앙마이는 한국에서 코로나 전에는 직행 항공 노선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다. 방콕이 태국 남부를 대표하는 도시라면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는 치앙마이이다. 이 도시는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유럽인, 미국인 등 전 세계에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았던 도시다. 치앙마이에서 차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치앙라이는 치앙마이와 더불어 고대 란나 왕국(Lanna Kingdom)의 중심을 이루었던 태국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중의 하나이다. 십년전에 인구가 약 칠만 정도였는데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기후도 좋아 코로나 전에는 중국인, 유럽인, 베트남 여행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많이 찾지는 않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치앙라이는 잘 알려져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도 서울식당을 비롯하여 한국 식당들이 몇 군데 있었다.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식당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고, 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들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치앙라이는 1262년에 멩라이 왕이 란나 왕국(Lanna Kingdom)의 중심으로 세운 도시다. 한 나라의 수도였던 만큼 도심에는 몇몇 볼거리가 있지만 실제 치앙라이가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인들에게는 고대사찰과 현대에 세워진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사찰인 백색사원인 ‘왕 렁쿤Wat Rong Khun'과 파란색 사원인 ’왓롱수아텐Wat Rong Sua Ten'이 있다. 기억에 남는 태국 사찰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가볼 만한 곳이다.
치앙라이는 방콕과는 785km 떨어진 곳으로 비행기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방콕에서 매일 여러 차례 비행기가 출발한다. 버스도 있지만 철도는 없다. 도시는 해발 416m의 ‘꼭 강(Kok River)’ 유역에 건설되었으며, 많은 사원들 뿐만 아니라 나이트 바자(야시장), 시계탑, 멩라이 왕 동상 등의 관광지로 유명하며 또한 이곳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푸치파(Phu Chi Fa)는 일출지로 유명하다. 치앙라이 나이트 바자는 치앙마이 나이트 바자보다 규모는 작지만, 고산족들이 만든 견직물이나 목공예 장식품이 비롯하여 각종 생활용품 등의 상품을 판매하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내가 방문하던 시기에는 코로나로 손님이 거의 없어서 이 야시장은 열리지 않았다. 치앙라이 관광객들이 꼭 보아야 한다는 그 유명한 시계탑도 고장이 나서 화려한 야간 시계탑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 시계탑은 ‘The White Temple’이라고도 불리는 치앙라이 대표적인 관광사찰인 ‘왓 롱쿤“을 만든 태국의 유명한 건축가이자 불교화가인 ‘찰롬차이 콧사삐삣’ 교수 작품이라고 한다.
태국에는 곳곳에 태국 역사에서 위대한 왕으로 평가 받는 동상들이 사찰과, 시내에 다른 동남아시아에 비행 유달리 많이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태국의 국왕과 민족 불교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태국은 국왕과 불교와 민족의 세 가지 제도 혹은 이념의 바탕 위에 서있는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태국의 적.백,청의 세 가지 색으로 된 타이 국기에서도 나타난다. 붉은 색과 흰 색과 파란색은 각각 민족, 불교, 국왕을 가리킨다.
불교는 타이 왕조사의 초기부터 왕실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믿는 보편적인 종교로서, 타이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 및 이념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전통 왕국 시대 태국의 통치자들은 권력을 정당화하고 백성에게 접근하고자 할 때 불교에 호소했다. 불교는 한 마디로 타이 사회를 결합시키는 하나의 문화적 접착제였던 것이다.
태국은 왕권의 정치적 역할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에 속한다. 태국의 역대 국왕들은 대부분 타이 사회에서 그리고 타이 민족의 역사에서 구심점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위상은 1932년 쿠데타를 통해 입헌 군주제가 도입되어 태국의 국왕이 실질적 권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태국. 불교와 국왕의 나라, 조흥국 지음’에서 옮김.
태국은 남북으로 긴 나라이다. 란나 왕국(1259-1558)은 태국 남부에 있었던 수코타이왕조에 비슷한 시기에 태국북부지역에 성립되어 20세기 초 태국에 완전히 합병될 때까지 약 600여 년간 실존했던 왕국이다. 정치적 연합체의 성격을 갖는데 치앙마이, 람푼, 람팡, 프래, 난, 파야오, 치앙라이, 치앙센 등이 여기에 속하며 치앙마이가 그 중심이었다. 란나왕국은 13세기에 ‘멩라이’(재위1259-1317)왕이 수립하였다. 치앙센에서 출생한 그는 1259년에 치앙센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는 1262년도에 자기이름을 딴 치앙라이(Chiang Rai)를 건설하여 수도를 이전하였고, 1281년에는 남부의 몬족국가인 하리푼차이(오늘날의 람푼)를 정복하고, 1292년에는 치앙마이와 람팡 및 파야오를 그의 영토에 포함시켰다. 1292년 치앙마이를 왕국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치앙라이는 도시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뤄져 있고, 북부 메콩강 유역에서 미얀마, 라오스의 국경과 맞닿아 있다. 란나왕조는 버마와 라오스 일부 지역까지도 포함한 영토와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독립국가였으며 태국 북부지역(치앙마이, 치앙라이)과 버마(미얀마), 라오스 일부 지역도 란나 왕조의 영토였다.
위에서 보듯이 멩라이 왕은 란나 왕국과 또 치앙라이와 매우 관계가 깊은 왕이다. 그래서 치앙라이 시내와, 사찰에도 동상이 있고, 멩라이 왕과 관련이 깊은 사찰도 있다. 태국 북부에서 멩라이 왕은 국민들의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시내 중심가에 있는 멩라이 동상은 수시로 사람들이 방문하여 동상 앞에 사찰처럼 꽃과 과일을 갖다 바치고 존경의 예를 표한다.
치앙라이 중심지는 도시 중간쯤에 남북으로 비스듬히 뻗은 타논 파호료틴(Thanon Phaholyothin)이 시내 중심이다. 나이트 바자와 식당, 은행 등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타논 쨋욧(Thanon Jet Yot)에는 게스트 하우스, 식당, 마사지 없소, 인터넷 카페 등이 밀집되어 있다. 시내 중심가 ‘왓 밍무앙’사찰 바로 옆에 전보대에는 밤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제비들이 앉아 있었다. 오랜 만에 제비를 볼 수 있었다.
치앙라이 시에서 가까운 관광지로는 마약으로 유명한 골든 트라이앵글(황금의 삼각지대)가 매우 유명하지만 이 지역에서 일출 장소로 유명한 국립공원인 푸치파(Phu Chi Fa)도 관광객사이에는 널리 알려져 있다.
약 1650미터 높이의 푸치파 햇돋이를 보려면 하루 전에 산 부근에서 자거나 치앙라이에서는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 나는 새벽도 되기 전 3 시에 출발하여 차로 약 2 시간을 가서 기다리다가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과 함께 여기에서 700 쯤 걸어서 산길을 올러 가야 한다. 컴컴한 산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손전등이 있어야 한다. 치앙라이에서 2 시간 가서 추운 산에서 1 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해돋이를 보았다. 일출지 부근에는 고산족들의 삶을 가까운 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고산족 마을이 있다.
시계탑 / 치앙라이 시내 밤에 전기줄에 앉은 제비 / 방콕 수완나품 공항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