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째날 - 3월 23일(금) 아버지의 아들의 영광
찬송 : 331장(통375)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본문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 (요17:1)
묵상
유교에서도 이야기 합니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立身揚名 以顯父母 孝之終也(입신양명 이현부모 효지종야).
세상에서는 성공하거나 승리하였을 때 영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해야 부모의 이름이 영광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서 학급이나 학교의 회장이 되면, 영광스럽다고 인사를 하지요.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 동네에 플랭카드가 붙고, 소를 잡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라도 되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입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되면, 최고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영광은 높이 올라가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꼭짓점에 서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요? 영광은 언제나 승리자의 몫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시대에 최고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당연히 로마의 황제입니다. 로마의 황제는 세계를 제패하여 세상의 모든 군왕들을 지배했습니다. 뭇나라와 민족이 다 그의 소유였지요? 황제는 인간의 자리를 넘어서 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은 다 황제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로마의 황제가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서서 하늘과 땅의 영광을 독점하고 있을 때, 복음서는 또 다른 영광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특별히 요한은 “말씀이 육체가 된 곳”에서 영광을 보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태초에 계시던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곳,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심으로 이루시는 영광입니다. 그러니 이 영광은 세상의 영광과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저 시저의 영광과 다릅니다. 말씀이 육체가 된 사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가장 낮은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전혀 영광이 아니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자리로 좌천당하면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잠언 25장 6-7절을 읽어드립니다.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잠25:6-7)
솔로몬의 세상적인 눈에서 그렇게 이야기 했다면, 예수님은 아예 낮은 자리로 가는 것이 영광이라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8-1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14:8-11)
그렇습니다. 성경은 흔히들 생각하듯 세상에서의 높아짐을 영광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내려와서 종이 되고, 십자가에까지 낮아진 분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때가 왔다”고 하십니다. 무슨 때입니까? 곧 체포되어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임당하시는 때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자리요, 치욕의 자리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가장 수치스럽게 고통스럽게 고난을 받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수치가 아닌 영광으로 받으려 하십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야 말로 수치스럽다 못해 저주받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영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그 자리야말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것이군요! 아버지의 뜻이 영광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세상 아버지의 뜻이 꼭짓점에 있기에 그것이 영광이라면, 하늘 아버지의 뜻은 저 십자가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께서 허락하시고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에 저 십자가가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헤롯의 왕좌를 생각해보십시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습니까? 그 왕좌를 지키기 위해 또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까? 모든 법을 어기며, 사람들을 죽이며, 선지자들을 목을 베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양심과 영혼을 팔아먹어 누린 그 헤롯의 왕자는 정말 부끄러운 자리입니다. 그래도 그는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 그 헤롯의 왕좌가 얼마나 부끄러운 자리였는지, 모든 세대에 고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헤롯을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되지요? 대통령이 되었던 장로님 한 분의 이야기가 계속 뉴스에 보도 됩니다. 하나님은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가서, 온갖 불의한 일을 하고, 하나님 지으신 아름다운 강줄기를 다 망가뜨리라고, 그것이 내 뜻이라고 말씀해 주셨을까요? 그분은 어느 분의 영광을 위해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수치스럽고 저주의 자리요, 사람들이 침뱉고 조롱하고 모욕을 주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영광의 자리로 받으셨습니다. 그런 그분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십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분을, 죽음에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사흘 만에 살리십니다. 그리고 하늘보좌 우편, 가장 높고 존귀한 자리에 그분을 올려주십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말석에 내려가 앉으신 예수님을, 아버지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하일교회 성도님들, 어느 것이 영광입니까?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 어떤 자녀가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과 다른 뜻을 자녀에게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생각하는, 내 자녀를 통해 누리고 싶은 영광과 하나님께서 저를 지으시고, 우리 가운데 보내주실 때 계획하신, 저를 통해 받고자 하시는 영광이 다르지 않냐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녀는 오늘도 헷갈려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영광이 참된 영광일까요?
마음껏 올라가 영광인 줄 알았는데 땅 바닥에 끌어내려지는 영광은 일장춘몽(一場春夢)입니다. 마음껏 내려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주시는 우리 하나님 주시는 바로 저 십자가의 영광을 저와 여러분 모두 함께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영광의 주님, 모든 영광이 다만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으로 헛된 영광을 추구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다만 십자가의 영광을 진정한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