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함은 무능 범법은 능력 ◈
얼마 전 ‘착한 어린이’ 온라인 영상이 화제였어요
일고여덟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서있다가
얼른 뛰어 길을 건너지요
맞은편으로 건너간 아이는 뒤로 돌더니 배에 두 손을 올리고
90도 가까이 허리 굽혀 인사를 했어요
차를 세워 길을 건너게 해준 운전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지요
“누구 집 아이인지 잘 컸다” 같은 댓글이 달렸어요
그런데 아이는 서른 되고 마흔 되고 쉰 살 되어서도
이 ‘착한 심성’을 지켜낼수 있을까요?
최근 식사를 함께 한 정부 관료 A는 부하 직원 얘기를 하다가
“나는 착한 게 싫다”고 했어요
일 못하는 직원이 주로 착하다고 했지요
착함과 능력은 카테고리(범주)가 다른데도 ‘착함=무능’이라는
범주 오류를 확고히 믿고 있었어요
놀라운 일은 아니지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신화(神話)이지요
사소하고 궂은 일은 떠넘기고 주목받는 일 좇으며 성과 내는 게 능력이지요
아랫사람 윽박지르고 핍박해서 퍼포먼스 보이는 게 능력이지요
남들이 기피하는 일, 돋보이지 않는 일 묵묵히 하는 이들이 무능한 것이지요
건전한 시민의 덕성이 무능과 동일시되는 시대가 되었어요
이번 총선에서도 드러났지요
욕설과 막말과 범법이 만연한 사회
대학생 딸에게 11억 대출받게 해 강남 아파트 사는 게 능력이지요
잘못 인정한다면서도 “너나 깨끗해라” 조롱하는 게 능력이지요
표창장 위조해 딸 의전원 보내는 게 능력이지요
범죄 혐의에도 정치에 나서 제3당 만드는 게 능력이지요
자식 위한 일에 그깟 사소한 범법이 무슨 잘못이냐 여기는 게 능력이지요
단군이래 최악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검찰독재'를 주장하는것이 능력이지요
공직도 마찬가지이지요
선관위 경력직에 자식 꽂아넣는 게 능력이지요
위조문서 만들 여건이 되지 못한 이들,
할 수 있어도 차마 하지 못한 이들이야말로 무능한 것이지요
물론 평범한 시민인 필부(匹夫)의 도덕과 나라 구해야 할
정치인·공직자의 도덕은 때로 다를 수 있어요
2300년 전 맹자는 ‘형수의 비유’로 이 차이를 간명하게 설명했지요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을 잡아서만 아니라 머리채를 당겨서라도
끌어올려야 하지요
위급한 상황을 구제해야 할 때 사소한 도덕에 얽매여선 안 되지요
그러나 이 말이 평소 형수한테 함부로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요
요즘 우리사회는 착각하는 이가 적지 않아요
입으로는 정의(正義)를 외치면서 시민의 도덕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요
임진왜란 발발 전인 450년 전 사회에도 이런 자가 많았던 모양이지요
‘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은 일갈했어요
“요즘 배웠다는 사람들은 손으로는 물 뿌리고 비질하는 법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말하며 이름을 도둑질하고 남을 속인다.”
왜 비질하기 전 물을 뿌리는가?
먼지를 최소화해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착한 마음’이지요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큰 배움)’을 배우기 앞서
아이들 배우는 ‘소학(小學·작은 배움)’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작은 배움도 모르면서 큰 배움을 안다고 하는 이들이
지금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 희생과 존중 같은 가치가 조롱받는 사회는
건강하지도 않고 어느 수준 이상으로 발전할 수도 없지요
스타 플레이어가 제 몫 다 하고, 돋보이지 않더라도
팀원들이 제자리에서 서로 존중하며 단단한 팀워크를 짤 때
‘수퍼 A급’ 팀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욕설·막말·범법하는 이들이 스타가 되는 팀은 잠깐 반짝할 수 있을 뿐이지요
다시 모두(冒頭)의 횡단보도 아이를 생각하지요
아이는 서른·마흔·쉰 살이 되어서도 착한 심성을 지켜갈 수 있을까요?
건전한 시민의 덕성이 무능과 동일시되는 시대에 상처받거나
조롱당하지 않고 세상을 온전히 건너갈 수 있을까요?
너무도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회
자식을 위해서는 무슨짓을 해도 괜찮다고 관용하는 사회
착함은 조롱받고 온갖 범법자들이 활개치는 사회
어찌보면 착함은 무능이요 범법은 능력인 사회가 되었어요
이렇듯 우리사회가 썩어가고 있는 풍조를 보면서
한탄하기 보다는 눈물이 날 지경이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요양소에 있느니 차라리 범죄를 저지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