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 시인과 김포의 봄
보리피리 그 울림 귓가에 아련히 스치는 어떤 날
남녘으로 날아갔던 파랑새
푸른 날개를 가졌던 그가 봄의 처마로 날아왔다
겨우내 몽둥이 같던 마음 거느린 봄볕
낱장 영혼의 내장까지 사무쳐 내게로 다가오는
먼 하늘, 삐리리 삐리리리 소리
한 생生은 같아도 같지 않은, 살다 살아온 삶의 마디마다
서럽지도 않은 것이 하염없이 더 서러운
시운을 읊으신 인간사 구름이라 하시던 그가,
고통은 구름인 듯 바람인 듯 속절없이 취하는 장단인 듯
슬픔 저민 황톳길 돌고 도는 유랑의 시간
임 닮은 고독, 푸르게 익어가는 평화 1번지
꽃잎 굽이쳐 평화의 땅 구석구석 온통 수줍기만 한데
애기봉 너머 조강을 건너갈 외딴 꽃잎 하나
그가 머문 푸석한 언덕 위에 봄, 색색 물들이고 남은 우리 곁
천형天刑의 아픔을 서정의 세계로 승화시킨 그 애절한 삶의
행간에 숨어있는 슬픔의 노래
애수로 쌓아 올린 눈물의 섬, 절절이 가쁜 숨 내쉴 때
봄볕이 거둬간 지문은 아직 파릇파릇 살아
청보리 길 사이 폴폴, 날리며 비유로 재단되는 언어와 언어
저 언덕 사이 고운 소리의 안부를 묻고 싶은 한 움큼의 시간
김포 장릉 공원묘지, 그의 상석에 막걸리 한 순배 나눠가며
“전라도 길-소록도로 가는 길”시에 취해
황톳길 따라 걷던 당신이 기억하는 어떤 봄을 다시 읊는다
봄날, 붉은 꽃말로 두런거리는 장릉산 꽃 진 자리
푸른 노래 부르며 꽃같이 서러운 삶 살다 가신 그, 그곳에
서러움 벽 넘어, 푸른 하늘 날아올라 능히 파랑새 되었다면
넋이라도 파랑새여! 푸르른 나래 활짝 오월 하늘에 깃 세우기를,
장릉 지나 문수산 넘어 진달래 능선 따라, 조강 건너
더 넓은 초원 날아, 함초롬 기다리는 그대 첫사랑 들꽃에게 안부 전해주소서
요행히 환생할 수만 있다면
살아생전 쓴 가슴 절절하게 애끓었던 시들 보다 더
애틋하고 더 많은, 시를 쓰고 싶소. 난 시인 한하운이오
홀연. 봄으로 환생한 그대
괜스레 마음에 복사꽃물 하염없이 드는데
지천에 하롱하롱 꽃, 시 한 줄만 하겠소
어찌하여 구름이 되었나
고향 그리다 김포에서 잠이 드셨네, 꿈결에서도
당신의 무덤가에도 봄꽃 후드득 피었으니
곱다 곱다 그 한걸음 곱다 남긴 고운 꽃씨들
우리, 마음 텃밭에 조용히 움 틔워
색색 싱그럽게 눈웃음 만발하는 생명의 봄으로 환생했으니
아! 이제 그는 그 만이 갈 수 있는 바다 위의 섬,
한 점 소록도에 시비詩碑만 남겨 두고 갔지만 못 다 부른 노래
그가 부른 소절과 소절이 봄의 악장에 되돌이표로 맴도는 어떤 날
길마다 떨어진 파편들 가슴에서 꽃으로 눈물로 방울방울
하늘 가득 그리움으로 번지는 장릉으로 이어져
푸른 울음 우는 파랑새의 보금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사잇길 나비 되어 불원청산不遠靑山 훨훨 남해를 날아와
황톳길 두근두근 설렘이 기다리는 곳
당신 혼이 머무는 김포 땅 단물 적시는 촉촉한 빗줄기
김포 들녘 5천 년 흩뿌려진 알곡 봄볕을 일구고
발가락 하나 뼈마디 진토 굿 노래 부르며 가난의 보릿고개 넘어온 지금
둑방에 아이들 보리피리 이 너머 저 너머 포근하게 울리는 한강 끝자락
봄바람 되어, 걸어 걸어 전라도길 황톳길 걸어
홍도평 보리피리 청명한 소리 머무른 장릉에 오늘도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
떨어져 나가는 손가락 움켜쥐고 꼭꼭 눌러쓴 시 구절
떨어져 나가는 발가락 움켜쥐고 황톳길 넘어오셨던 그 길을
오늘, 나도야 보리피리 불며 이 능선을 그와 함께 넘을 때
먼 어떤 날, 청산에 하나로 운 보리피리 서럽게 불며 넘던 춘궁기
긴긴 하루같이 주린 배 참 월척越尺은 없어도 붉어지는 황토색
화사하게 웃음 짓던 사람들, 동무들의 실루엣이 오버랩된다
오월의 전라도 길 보리밭 냄새 염하 건너 고향으로 회귀하고
진물 난 다리 장릉에 풀고 어머니 품 그리다 잠든 그가
썩지 않은 영혼으로 되살아난 그가, 슬프지도 못할 시를 썼을 것이다
그 가련한 절규가 꽃눈 날리듯 세월을 보내고, 다시 오고
남도 들녘에서 김포 들녘까지 들려오는 당신 잠든 무덤 앞,
처연하고 따듯한 보리피릴 입술에 물고 노래 부르는 지금
가현산 진달래가 피를 토하던 엊그제
종종걸음으로 다녀간 봄비, 당신이 보내는 안부인 듯 푸른 풍경에 묻어
보리 터럭 자그락자그락 들에 여무는 오월의 아침
그대! 슬픈 넋처럼 붉디붉은 황톳길
가신 자국마다 패여 있는 순응하지 못할 아픔
인제 그만, 이 봄 파랑새 되어 깃 펴고 날아오소서
떨어진 손가락을 주워 들고 전라도 길을 가시던 당신
숱한 수난과 고난의 구비를 넘고 넘어 봄바람타고
평화의 도시 김포의 꽃으로 피어나소서
소리는 사라졌지만 오월마다 꽃으로 환생하는 피리소리
피 토하도록 통곡했던 슬픈 자화상 그 서러움이 활짝 필 때 마다
새처럼 허공을 날고 싶던 당신의 꿈 봉오리
소록도 중앙공원, 보리피리로 당신을 알았고
반평생 고향 떠나 세계를 주유하다 키만 높아진 장년
돌아와 이제 앉은 자리,못 다 키운 넋 기리며 바치는 떨기 꽃
붉은 황톳길 천형의 몸은 갔어도 당신의 보리피리
피-ㄹ닐니리~~~ 부활의 소리 다시 한 번 이곳
김포한강신도시 온 누리의 환한 봄이 그대를 불러봅니다
오늘, 당신은 오시어서 홍도평야 청 보리밭에 굴뚝청어로, 이슬풀꽃 우리가슴에
그렁그렁 별자리 띄우시고, 숨겼던 치렛깃 세워 애기봉 푸른 봉에 먼 활갯짓,
평화의 종소리 울리시느라, 해진 적삼 여미시며 낮 달로, 낮 달로
둥둥 영원히 떠있는 또
오늘
-연작 시 참여하신 김포문인협회 회원 명단
김부회/박소미/송병호/채련/윤옥여/김정자/권혁남/박미림/김순희/박정인/김박정민/
민서현/김성민/유동환/장정희/신혜순/안기필/민진홍/권영진/이준섭/장후용/김동규/
윤수례/유영신/이여진/김복희/신금숙/박채순/박완규/심상숙(3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