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어머니의 슬픔-끼사고따미의 경우
눈물로 얼룩진 한 여인이 사위성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녀는 포대기에 싸인 아이를 내보이며 사람들에게 애원하였다. “제 아이 좀 살려주세요.” 바싹 야윈 여인, 그녀는 끼사고따미(Kisagotami)였다. 가난한 친정집 탓에 시집오는 날부터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에게 천대를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는 남녀차별이 심하다. 여자의 권리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밴디트 퀸(Badit Queen)’이란 영화가 나왔겠는가. 그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풀란데비(Phoolan Devi)라는 가난한 천민출신인 한 여인이 시집에 쫓겨나 24명의 지주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 여인은 산적에게 납치되었다가 고생 끝에 산적 두목이 되어 나쁜 놈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줄거리이다. 그녀가 형기를 마치고 감옥을 나올 때 불법에 귀의하여 불자가 되었다. 이것은 여자의 권리가 보장받기 힘든 인도에서 그래도 불교만은 여인의 편에 서서 여인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간디와 함께 인도독립을 위해 몸 바쳤던 암베드카(Ambedkar,1893~1956)박사는 하리잔 계급(불가촉천민)의 완전한 철폐를 이루기를 바랐다. 간디는 독립부터 하고나서 카스트(Caste)의 평등을 해결하자고 했다. 자신이 하리잔 계급출신이었기에 계급차별의 비참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암베드카는 계급 평등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난 후에 독립해야 그 독립이 의미가 있지, 계급불평등이 그대로 유지된 채 달성한 독립이 천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의 질문은 현실로 드러났다. 인도는 영국식민지로 부터 독립을 성취했지만 계급차별은 아직도 존재한다. 그리고 여성차별도 존재한다. 부처님 당시 여성차별은 더 심했을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끼사고따미는 아마도 결혼지참금을 충분히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가집에서 무시와 천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금지옥엽 같은 아들을 낳았다. 손자를 얻은 시부모는 기뻐하며 며느리를 대접했을 것이다. 가부장제도에서 아들은 대를 이을 귀한 자손이기에 그 아들을 낳아준 어미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는다. 이것이 까사고따미에게는 행복으로 느껴졌다. 불행의 끝자락에서 맛보게 된 꿈같은 행복이었으리라. 그러나 세상에서 얻은 행복이라는 게 얼마나 덧없는가? 그렇게 소중하게 길렀던 아이가 병에 걸렸다. 불덩이처럼 열이 오르고 붉은 반점이 온몸에 돋았다. 백방으로 의원을 찾고 약을 쓰도 듣지 않았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후진국일수록 유아사망률이 높다. 결국 아이는 죽었다. 끼사고따미는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 보이는 심리적인 반응은 먼저 죽음을 부인한다. 그리고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끼사고따미는 아들의 죽음을 부인한다. 그리고 죽은 아이를 들고 사방으로 미친 듯이 달려간다. “누군가 내 아들 좀 살려주세요.” “내 아들 살려내라.” 절규한다. 통곡한다. 사람들은 수군댄다. “죽은 아이 때문에 미쳤나봐.” 한 할머니가 말했다. “딱한 여인이여, 아이를 살릴만한 약이 나에겐 없다오. 하지만 그 약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오.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가보우.” 끼사고따미는 기원정사로 달려가 부처님의 가사자락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말없이 여인을 바라보며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좋습니다. 여인이여,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을 찾아 그 집에서 겨자씨 한 줌을 얻어 오십시오. 그러면 당신 말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끼사고따미는 생각하기를 “그러면 그렇지. 위대한 부처님께서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비방이 있는 게야. 빨리 가서 겨자씨 한 줌을 얻어와야지.” 집집마다 돌면서 대문을 두드린다. “불쌍한 저를 위해서 겨자씨 한 줌을 주세요. 그러면 부처님께서 죽은 아이를 살려주신다고 했어요. 단 이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없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예끼, 이 사람아. 사람이 죽어나지 않은 집이 어디 있겠나.”
두 번째 집, 세 번째 집, 네 번째 집을 찾았다. 달은 점점 높이 떠올라 기원정사를 비춘다. 온몸에서 힘이 빠진 끼사고따미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때 편안한 얼굴을 한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그 여인은 자식을 낳아서 기르다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어머니였다. 여인은 천천히 다가와 까사고따미을 안았다.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얼마 전에 쌍둥이를 잃었답니다. 나도 당신처럼 너무도 비통하여 살 수 없을 것 같았답니다. 새댁, 이 세상에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은 집은 없답니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답니다.” 두 여인은 서로의 품안에 기대 소리 없이 울었다. 이것이 자식 잃은 어미를 위로하는 방식이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 슬픔을 공감해주고, 그 애통함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몸과 몸이 만나고, 가슴과 가슴이 만나면 정이 통하는 법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청와대 앞까지 몰려갔을 때, 인간미가 있는 대통령이라면 상심에 찬 부모들을 부여안고 같이 울면서 “그래, 얼마나 원통하시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시겠습니까?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제가 대통령 직분을 다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조금만 참고 수습할 기회를 주세요. 제가 책임지고 여러분 마음에 들도록 사후수습을 잘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부모들의 울분에 찬 가슴이 누그러져 마음을 열고 소통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으리라. 정치가 어렵고 세상사가 복잡한 것 같아도 지도자의 가슴에 정직함과 진실이 있다면 해결되지 않을 일은 없는 것이다. 정직은 최상의 방책이요, 진실은 정을 통하게 해준다.
고요한 사위성의 달빛을 밟고 끼사고따미는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품안의 아이를 가만히 내려놓고 부처님의 발아래에서 또 한참을 울었다.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 무렵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덧없이 흐르고 변한다는 것
한 집한, 한 마을, 한 나라만의 일 아니네,
목숨 가진 중생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반드시 꼭 겪어야만 하는 일
보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처님께서는 진리만을 너무도 투명하게 조금도 타협 없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만한 적절한 때를 아신다. 이 연약한 여인이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아이 잃은 어미가 상처받으면 어쩌나, 이 여인이 내 말을 듣고 실망하여 내게서 멀어지면 어쩌나. 이런 생각이 추호도 없다. 오직 진실에 충실할 뿐이다. 부처님, 당신은 진리의 화신입니다. 부처님, 타협 없는 당신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중생을 동정하지 말아주세요. 중생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입니다. 부처님, 진리가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를 아프게 찌르더라고 진리만을 보여주시고 말씀해주세요. 저를 위해 타협하거나, 듣기 좋게 꾸미거나, 수준을 낮춘 진리를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가련한 여인 끼사고따미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기름램프를 밝히고 있었다. 램프불이 펄럭거리듯 꺼지는 듯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중생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이 광경을 보시고 끼사고따미 앞에 나타나시어 모든 존재가 저 등불 같이 계속 변화하면서 태어났다가 죽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바, 이런 현상에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닙바나(열반)을 깨달으라고 격려하시었다.
죽음을 초월하는 길을 보르고 Yo ca vassasatam jve 요 짜 와싸사땅 지웨
백년을 사는 것보다 apassam amatam padam 아빠쌍 아마땅 빠당
단 하루라도 죽음을 초월하는 ekaham jivitam seyyo 아까항 지위땅 세이요
진리의 길을 알고 사는 것이 훨씬 낫다. passato amatam padam 빠싸또 아미땅 빠당
머잖아 그녀는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대중 앞에서 당당히 선언하였다.
“성스러운 팔정도를 닦고 불사(不死, 윤회를 끊음)에 이르는 길을 걸은 저는 평안을 얻고 진리의 거울을 보았습니다. 번뇌의 화살을 꺾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저는 이미 할 일을 마쳤습니다.”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님이 모두 끼사고따미와 같은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될 때 우리 국민의 의식이 청정해지고, 우리나라는 정토세계가 되리라.
첫댓글 세월호에서 고통받는 가족분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