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짓날
동짓날에 절에서는 팥죽을 쑤어 대웅전이며 나한전에 공양을 올리고 온 대중이 팥죽으로 공양을 하며 한 해의 묵은 때를 벗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하사라는 절의 공양주 보살은 그만 동짓날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공양주 보살! 아니 오늘이 무슨 날인데 잠만 자고 있습니까? 빨리 일어나요" 스님의 호령 소리에 겨우 기지개를 펴고 나오던 공양주 보살은, "아이쿠! 오늘이 바로 동짓날인데! 빨리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지." 하며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갔지만, 늦잠을 잔 덕분에 아궁이의 불씨마저 꺼져버려 회색 재만 남아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라이터나 성냥이 없었기 때문에 불씨가 다 사그라들고 없어져 버리면 불씨를 다시 얻어 오기 전에는 부엌일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니 공양주 보살은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해 질 수 밖에요.
부처님께 죄송한 마음은 둘째치고 당장 주지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아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결국 생각다 못해 공양주 보살은 절 아래 동네의 김서방네 집에 가서 불씨를 얻어 오려고 부리나케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날따라 찬 바람이 쌩쌩 불고 눈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니 김서방네 집에 가는 길은 천리만리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겨우 김서방네 집에 도착한 공양주 보살은 큰 소리로 김서방을 불러 자초지종 사정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김서방은, "아까 행자님이 오셔서 불씨를 얻어 갔는데 불이 또 꺼졌나요?" 하며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행자님이라니요? 우리 절에는 행자님이 없는데요?" "그래요? 하지만 조금 전에 어떤 행자님이 와서 배가 고프다고 하시면서 팥죽까지 한 그릇 드시고 불씨도 얻어 가셨는데요."
마하사에는 행자 스님이라곤 없었으니, 공양주 보살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급한 마음에 불씨를 빌려 가까스로 절에 도착했는데 부엌에서 더욱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부엌의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양주 보살은 급히 서둘러 팥죽을 쑤어 먼저 법당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곧 나한전으로 팥죽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나한님께 팥죽을 올리던 공양주 보살은 그만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공양주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계시는 나한님의 입가에 붉은 팥죽이 묻어 있는 게 아닙니까.
"아이고, 나한님. 잘못했습니다."
공양주 보살은 그대로 엎드려 용서를 빌며 크게 절을 올렸습니다. 김서방네 집에서 팥죽을 얻어 드시고 불씨를 얻어다가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핀 행자는 바로 그 나한님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절에나 나한전에 모신 나한님은 모두가 미소를 머금고 계시고 그 입술은 한결같이 붉은 색인데, 이는 바로 동짓날 드신 그 팥죽이 묻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편으로 동지에는 동지팥죽과 더불어 책력(冊曆)을 선물하던 풍속이 전해옵니다. 책력은 요즘 말로 달력이지요. 이러한 연유로 우리 절집에서도 신심 깊은 신도님의 시주를 받아서 달력을 찍어 두었다가 동지를 전후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드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동지 전날 밤을 '동야(冬夜)'라 하여, 연말연시를 맞아 젊은 스님들이 은사 스님이나 스승님을 찾아뵙고, 일년 동안의 가르침에 감사하는 인사를 올렸습니다. 또 동짓날이면 동지 법회를 열고 팥죽 공양을 하였지요. 이 동지 법회는 지난 한 해의 잘못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가다듬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서양의 크리스마스이브도 바로 이 동지의 전야 풍습에서 전해진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불교에서 동지의 전야를 이렇게 중요시한 것은 연말연시를 맞아 젊은 스님들이 은사스님이나 스승님을 찾아뵙고, 일년 동안의 가르침에 감사함으로 회향하는 뜻에서 인사를 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동짓날인데 여러분들은 무엇 하러 절에 왔나요?
동지 팥죽 먹으러 왔나요. 아니면 지난날 시달림을 줬던 액운을 떨쳐 버리려 왔나요. 아니면 무엇을 달라고 왔나요.
내가 보니까 우리 보살님들은 몇 사람 빼고는 모두 달라고 오신 분들 같습니다. 부처님은 한 분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꺼번에 오셔서 한 가지도 아니고 몇 가지씩 달라고 하면 부처님이 달라는 대로 다 주실까요.
동지는 사실상 불가의 경사일이나 기념일이 아니라 우리 민속 명절입니다. 동짓날은 일년 24절기 중 맨 마지막에 들어있는 절기로 옛날부터 지나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며 보내려는 송년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해에 다하지 못한 일들과 또한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나쁜 기억으로 생각되는 일들은 하루빨리 잊어버리고 좋았던 기억과 돌아오는 새 절기에 맞추어 새로운 각오와 생활을 설계하고자 하는 의미이고 지난날의 나빴다고 생각하는 것을 액운이라 하여 이 액운이 새 절기에 연결되지 않도록 귀신이 가장 싫어한다는 붉은색 팥으로 팥죽을 쑤어 먹고 곳곳에 뿌림으로써 역귀를 몰아내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럼 액운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바로 우리의 한마음이 어두워서 생긴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난 것이 삶의 시작이요. 한 생각 사라지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하는 것이 액운을 소멸하는 지름길입니다.
좋은 일은 할수록 더욱 좋아지고 나쁜 일은 행할수록 더욱더 나빠지기 마련입니다. 불법(佛法)이란 딴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 가는 바로 이 삶의 법(法)입니다.
불법을 닦고 수행(修行)하는 게 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영위하고 있는 이 삶에서 옳은 것은 더욱 더 아름답게 가꾸며 지켜나가는 것이요, 그른 것은 과감히 몰아내고 끊어내어 버릴 줄 아는 지혜를 기르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그래서 마하반야(摩訶般若) 금강반야(金剛般若)가 바로 제물(諸佛)의 출생처(出生處)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야(般若)는 지혜(智慧)를 뜻하고 마하반야는 큰 지혜를 말하는 것이고, 금강반야는 견고한 지혜를 말합니다.
이 크다는 것은 더 이상 비교하여 견줄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요, 견고하다는 것은 모든 삿된 것을 능히 부술 수 있지만 다른 어떤 것도 이를 부술 수 없는 지혜를 말합니다.
부처님이 원해서 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부처님을 간곡히 부르니까 부처님이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여러분을 위해 공양을 불평하지 않으시고 아주 맛있게 잡수시고 여러분과 더불어 자리하신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우리의 미풍양속은 개인과 가정, 사회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는 작고 소박한 기도요. 바램으로써, 우리의 조상들이 행해 오던 아름다운 풍속을 잘 지키고 발전시켜 이웃과 더불어 서로 함께 나누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동지에 팥죽을 쑤어서 역귀(疫鬼)를 쫓을 수 있다는 믿음도,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이 일도 모두가 지혜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이러한 믿음이나 미풍양속을 부정합니다. 급물살을 만난 사람이 멍하니 강가에 앉아서 강물만 바라보면서 한탄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이 꼭 건너야 할 강이라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그 강을 건널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 내어 뗏목을 만드는 지혜도 생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을 믿는 이유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 공양하는 까닭이며, 동지에 팥죽을 쑤어 부처님에게 불공을 올리는 까닭이기도 한 것이며, 더욱 이 땅에 불법을 전파하여 더 많은 이웃들이 우리와 같은 불자가 되게 발원해야 하는 소임인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또한 그러한 권리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나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생길 수 있고 또 불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과 불만은 스스로 자기 삶을 개선할 수 있을때에만 바람직하지 그렇지 못하면 더욱 더 자기를 불행하게 만들고 맙니다.
왜 나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가? 왜 나는 스스로 그러한 믿음을 내려고 하지 않는가? 라고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의문을 차츰차츰 해소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잘 난 사람은 백보이고 못난 사람은 오십보입니다. 오십보, 백보 안에서 견주어 보고, 달아보고, 재어 보아도 별 신통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집착하는 바에 따라서 그것이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할 뿐이지 작은 것도 큰 것도,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긴 것도 짧은 것도 모두 똑같은 중생의 모습일 뿐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중생의 잣대를 버리면 부처님의 진리가 보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진리를 보고 실천 수행하여 변하지 않는 영원한 행복을 깨닫기 위하여 삼보에 귀의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잣대는 더욱 많이 커지고 모든 것을 자신의 알량한 알음알이를 가지고 마주 재어보고 비평 하려 합니다. 이번 동지에는 세속의 행복과 불행을 재는 중생의 잣대를 버리고 삼보의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이 스스로 지은 행위의 결과임을 바로 알고 복을 바라지 말고 복을 짓도록 노력 합시다.
『선남자 선여인들이여, 무서워 말고 두려워 말라. 그대들은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의 명호를 눌러라. 이 보살이 능히 중생들의 고액을 없애 주리니, 그대들이 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이 사바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체의 지혜를 성취케 하느니라.』
오늘 동짓날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공양구가 정성으로 부처님께 올려지듯이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골고루 나누어 먹는 공양구가 되어서 여러분이 이르는 곳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함께 하기를 발원합니다.
“동지(冬至)는 명일(名日)이라 일양(一陽)이 생(生) 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隣里)과 즐기리라
새 책력(冊曆) 반포(領布)하니 내년(來年) 절후(侯) 어떠한고!
해 짧아 덧없고 밤 길어 지루도다.“
원컨대, 이 인연의 공덕이 널리 일체에 미쳐 나와 모든 중생이 마땅히 극락정토에 나서 무량수 부처님 뵙고 다 같이 성불하게 하소서!.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