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로 태어난 전통 민화
서양화가 박신애 씨의 그림보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
민속이란 주제를 시작으로 끝없는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현재를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 민화 속 자연을 현대적 느낌으로 재구성해 현대미술로 탈바꿈시키는 박신애 씨의 작품은 신선한 감동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회화를 통한 역사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한 때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던 박 작가는 현재 광양미술협회 사무국장 업무를 보며 아이들에게 수채화와 데생을 가르치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를 통한 현대의 재발견을 작품을 통해 이뤄가고 있는 느낌이 있는 아티스트. 박신애 씨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삶의 이야기 속으로 동행한다.
그림을 사랑하게 한 고향 풍경
광양의 하포마을 작은 바닷가, 파도소리를 들으며 꿈을 꾸던 소녀는 철마다 변해가는 아름다운 바다색을 볼 줄 알았다. 유난히 손재주가 많은 딸 부잣집 막내로 자란 박신애 씨는 바닷가 모래사장이며 작은 돌멩이들에게서 제각각 다른 색을 보기 시작했고 파도소리에서도 점점 짙어가는 삶의 소리를 만나면서 그림에 대한 꿈을 키웠다. 중학교 미술선생님을 따라 나선 그림대회들에서 수차례 수상을 하며 자연스럽게 그림의 길로 접어든 박신애 씨는 어느새 저녁노을 빛을 따라 삶을 색칠하는 화가가 되어 지금도 고향의 품에서 광양 사랑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나무’ -공시적 도피
그가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다르다.
“모든 사물은 사적인 환경 속에서 사적인 미의 영역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박 작가의 나무 이야기는 매우 인간적이다. 또 “모든 사물은 소유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과의 상징적 중개 대상이 되고 때로는 일상성의 도피가 된다.”고 말하는 그는 여행을 통해 얻은 자연의 이미지로 숲을 만들기도 한다. 그 숲에서 온통 나무가 되기도 하고 물이 되고 산이 된다. 때론 철저함 속에 숨어서 먼 산을 보며 작가만의 오름길을 만들고 그 길에서 만난 풍경들과 삶을 색칠한다.
그 길 끝에는 언제나 안주하고 싶은 동화속 집이 있고 잎이 모두 떨어진 나무의 한결같은 모습은 자신의 색을 찾아 방황하던 젊은 날의 향기가 나무에 그대로 묻어 있다. 산보다 더 크게 자리 잡은 나무는 언제나 맨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 봄이 되면 잎이 자라 그늘이 되어줄 나무와의 이야기에 그의 사랑이 전해지고 어느새 잎 하나 꿈틀거리며 작품 속에서 웃고 있다.
“시간에 철저하고 계절에 철저한 도피는 합리적인 해독을 이끌어준다.”는 그의 합리적인 자연 해독방법이 눈길을 끈다. “단순하고 조금은 명료하게 접근하고자 했다.”는 그의 고백에서 아집과 독선을 벗어 놓고 자유로움을 통해 내려앉은 그의 작품을 만났다. 반복되는 나무의 이미지는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기쁨을 대신했고 낯선 풍경에서도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결코 혼자가 아님을 나무를 통해 느끼며 외로움까지도 사랑하게 된 공시적 도피가 바로 그가 말하는 ’나무- 그것을 보는 것과 그것이 보여주는 것’의 의미다.
민속화 연구에서 만난 서양화 작업
나무 이미지 작업을 하면서 함께 했던 민속 소재의 작품은 대학원 논문 ‘일러스트- 민속화 연구’의 영향이 컸다. 졸업 작품 ‘일러스트- 인간의 이중성’은 디자인(시각일러스트)을 전공한 그에게 서양화 작업을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고상함과 신선함’, ‘깊은 맛과 새로운 맛’,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느낌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옛 것과 새 것의 조화를 적절히 내포하고 있는 작업에 몰두하게 했다.
주재료는 아크릴이지만 이것에 먹물과 메니큐어를 함께 사용하기도 하는데 메니큐어는 그의 작업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게 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특히 “전통 민화(십장생도, 책거리도, 풍속화 등)에 나오는 소재들은 무한한 작품 소재를 안겨준다.”는 말에서 전통민화를 통한 그 만의 시각예술로 재구성을 발견하게 한다.
어변성룡(魚變成龍) 시리즈가 전하는 말
박 작가가 지난 해 부터 작업하고 있는 ‘어변성룡(魚變成龍)’시리즈는 민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기원·소망’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해 작품을 만들고 있는 그는 한마디로 전통을 현대적으로 탈바꿈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변성룡’이란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말로 ‘일 년 열두 달 눈을 뜨고 생활하는 물고기처럼 부지런을 다해 면학에 정진하면 큰사람(龍)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박 작가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최근 완성한 그의 작품 속에서는 그 동안의 정돈된 나무 이미지와는 달리 산이 내려와 누워 있는가 하면 물줄기도 한 길을 따라 흐르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져 날리는 듯한 비대칭을 발견할 수 있다. 줄줄이 누워 자란 버드나무와 더 푸른 계절을 꿈꾸는 소나무들까지 제각각 다른 구도의 형상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민화 속에 나오는 ‘기원·소망’의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화려한 색채와 재료로 민화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는 바람이 그림 속 풍경으로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로 경쟁력 있는 미협으로 발전했으면
광양미협 활동이 15년째인 그는 친정집 같은 존재라며 광양미협에 고마움을 전했다. 덕분에 꾸준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며 “세상을 향한 나의 따뜻한 시선을 만들어 준 고마운 인연들도 작품을 통해 만난다.”고 덧붙였다. 광양미협 사무국장으로서 미협의 발전방향을 묻는 질문에 “현재 미협은 1년에 몇 번하는 단체·교류전만 매년 반복하고 있어 식상한 작가들은 점차 참여도가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큰 메리트도 없고, 그렇다고 의미 있는 기획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돌아보면 내 자신도 발전을 막고 있었던 사람 중에 한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도 많이 든다.”며 속내를 말하기도 했다. 현 집행부가 준비하고 있는 ‘자연과의 만남 설치전’은 백운산 휴양림에서 8월초부터 한 달간 열리게 되는데 자연이 모티브가 되는 시간과 공간전으로 미협이 결성된 이후 가장 큰 기획전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박 작가는 또 “광양의 르네상스를 열어가겠다고 공약한 광양시장의 시정 방침에 힘입어 안정적이고 내부적으로 경쟁력 있는 미협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희경 기자
박신애 프로필
조선대 대학원 졸업
개인전 3회
단체전 140여회
순천청암대학, 예원예술대학교 강사 역임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
광주ㆍ전남여성작가회
한국일러스트협회 회원
광양백운초등학교, 광양시여성문화센터, 동광양농협문화센터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