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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총림 범어사 화엄전 주변을 함께 거니는 한국불교의 강백을 상징하는 무비스님과 지안스님. |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1700년 역사를 지닌 한국불교도 새로운 해를 시작했다. 민초들과 고락(苦樂)을 같이한 한국불교는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원력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시기를 맞았다. 우리 시대의 대강백으로 존경받는 무비스님(전 조계종 교육원장)과 지안스님(조계종 고시위원장)이 ‘한국불교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두 스님은 “감동을 주는 불교, 시대와 호흡하는 불교가 돼야 한다”며 수행정신 회복과 희망을 주는 한국불교라는 좌표를 제시했다. 지난 12월18일 오후3시부터 2시간 넘게 금정총림 범어사 화엄전에서 진행된 무비스님과 지안스님의 대화를 요약했다.
道 이루기 위해 밥 먹는데 왜 찬이 화려하나
무비스님=응병여약(應病與藥). 병에 따라 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부처님도 중생을 위해 헌신하고 가르침을 전했다. 불교는 사회 현실과 시대 사조(思潮)를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 그래야 중생의 아픔과 실상을 제대로 알고, 대처할 수 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치료할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불교는 시대에 뒤떨어져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불교는 사회 현상을 직시하고, 거기에 맞는 부처님 방편을 적절하게 쓸 줄 알아야한다. 그런데 한다고는 하지만,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 한국불교 특히 대표 종단인 조계종의 변화가 더디고, 구태의연하다. 건강한 생각을 갖고 정진하는 수행자들이 많음에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안스님=공감한다. 불교는 우리나라 종교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됐지만,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부분에서는 미미하다. 불교 위상에 걸맞게 능동적이고 다각적으로 활동 분야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불교 위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불교가 사회 활동을 원만히 하고, 이 시대 사람들의 생활공간에 불교가 들어가야 한다.
한국불교는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요즘은 반야(般若)도 ‘반야방편(般若方便)’이라고 할 만큼 한국불교는 방편을 잘 써야 한다. <벽암록>에 나오는 ‘간풍사범(看風使帆)’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바람을 보고 돛을 조종해야 배가 제대로 갈 수 있다는 의미로 방편을 적절하게 사용하라는 말이다. 지금의 한국불교가 귀담아 들을 내용이다. 한국불교는 현실을 직시하는 ‘각성의 눈’을 가져야 한다. 무비스님 말씀처럼 약을 주지는 못해도, 약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가르쳐 줘야 하지 않겠는가.
출가자들이 절집에 들어와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무비=40~50년 전에 비해 지금의 한국불교는 차이가 많다. 사회도 변했고, 불교집안 분위기도 바뀌었다.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이 많다. 예전에 절 생활이 어려웠지만, 오히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수행도 잘 했다. 지금보다 양심적이었다. 주지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중이 주지를 뽑으면, 다음날 주지가 도망가는 일이 많았다. 수좌들은 선방에 방부를 들이면서 ‘공양주를 시켜주면 이 절에 살고, 안 시켜주면 다른 절로 가겠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일인가. 지금의 스님과 불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가치관이 변했다. 요즘도 그런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겠지만, 수행에 대한 가치가 바뀐 게 현실이다. 수행의 원력을 세우고 절집에 들어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지안=맞다. 70년대만 해도 수행풍토가 그랬다. 그때는 살림이 어려워 학인들이 고생하면서 공부했다. 먹을 게 부족해 밭에서 무를 뽑아 계곡물에 씻어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수행과 공부만큼은 철저하게 했다. 지금의 한국불교는 수행 정신이 쇠퇴했다. 오늘날 불교뿐 아니라 종교가 너무 세속적으로 흘러가고 있어 걱정이다.
부처님 법은 출세간(出世間) 법이다. 불법(佛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본분이다. 예전에는 서로 주지를 안 하려고 도망까지 갔는데, 요즘은 서로 하려고 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승가는 큰 나무의 줄기이고
재가는 가지와 열매와 같다
승가 개인수행도 중요하지만
재가를 위하고 사회와 민중에게
눈을 돌려 부응하는 역할
무비=나도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차이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수행의 관점에서 한국불교를 보면, 그 정신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안=앞으로 한국불교가 시대를 바로 보고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개신교나 가톨릭 등 다른 종교의 내부는 잘 모르지만, 불교계 안을 살펴보면 수행 정신이 가장 많이 퇴보했다.
출가한 스님들은 수행자로 부처님 법에 의지해 평생 살아야 하는데, 안타까운 모습이 자꾸 나타나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공업(共業)으로 돌려 말하기도 하는데, 그에 앞서 개인이 각성해야 한다.
무비=이런 이야기들을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감히 못한다. 상고시대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수행을 빼고 한국불교를 진단할 수 있겠는가. 수행의 틀과 정신을 계승하면 세상의 모범이 되고, 세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텐데, 지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됐다.
사실 불교인의 범위를 보면 승가는 극히 작은 부분이고, 재가의 비중이 더 크다. 그럼에도 승가를 우선 말하는 것은 숫자는 적지만 불교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승가는 큰 나무의 줄기이고, 재가는 가지와 열매에 해당한다. 승가가 불교 중심에 있으니, 숫자는 적어도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줄기가 반듯하게 서고, 건강해야 가지에서 열매도 맺고 꽃도 피우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승가가 잘 하도록 짚어야 한다. 승가는 개인 수행도 중요하지만, 재가를 위하고 사회와 민중에게 눈을 돌려 부응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재난구호나 이웃돕기 등
구호활동을 통해 감동을 줘야 한다
불교계가 연탄을 다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면 세상이 감동할 것이다
‘살아 있는 관음보살’이 돼 보자
공명심 집착심 업적주의는 바른 불교 아니다
지안=부처님 법(法) 자체를 놓고 볼 때 문제는 없다. 그러나 경전에도 나오는 것처럼, 말법(末法)이라는 말은 중생의 근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수행에 임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지 불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인류사회의 빛이 되는 탁월한 교법(敎法)이다. 한국불교의 승가나 재가가 침체 현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계도하고,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것은 부처님 법이다.그런 면에서 불교에 의지해 새롭게 분발심을 일으켜야 한다.
종단이나 한국불교의 표면에 나타나는 문제를 보고 ‘불교가 왜 그러느냐’고 비판 받는데, 부처님 법 자체는 이상이 없다. 비록 지금의 한국불교가 진통을 겪고 비판을 받지만, 이럴수록 불교인은 항상 부처님 법에 의지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승가교육도 전통체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다. 과거의 승가교육 전통 정신을 계승하면서, 승가교육의 현대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종단에서 교육과 역경(譯經)을 중요한 사업으로 삼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재가자들의 지적 수준도 높아진 만큼, 재가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도 있다.
무비=승려교육의 현대화 필요성에 대해 수차 들었다. 승가교육의 전통은 강원(講院)에서 한문 원전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요즘은 일반인들이 원전을 더 공부한다. 불전 강의에 스님보다 일반인의 참여가 높다. 만약 나에게 체계를 세우라고 하면 스님들은 한문 중심의 경전을 공부하고, 다수의 신도들은 번역 중심의 교육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원교육은 전통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지안=종단의 승가교육 개편은 강원에 입학한 초심자들이나 사미과 학인들의 학습 효과를 돋구기 위해 개론서로 공부한 후에 한문경전을 익혀야 한다는 취지에서 대두됐다. 스님들의 기본교육기관 커리큘럼 문제였다. 그런데 이걸 내세우다 보니, 강원이 옛날식 과목을 폐지하고, 새로운 개론서를 공부하는 게 능사라는 오해가 생겨 혼란스럽다.
예전에는 서로 주지 안 하려고
도망까지 갔는데, 요즘은 다르다
한국불교가 진통을 겪고 있지만
항상 부처님 법에 의지해
바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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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은 시종 힘차고 진지했다. ‘무슨 생각일까’ 지안스님의 말씀을 듣는 무비스님의 표정이 시선을 더 집중시켰다. |
무비=강원(승가대학) 1학년에서는 원전을 3분의 1로 하고, 차츰 늘려 끝내 원전 중심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스님이 사찰 주련(柱聯)조차 읽고 해석하지 못하면 어찌 되는가. 신도들의 수준이 높아져 주련을 새기고 토론하는 상황이다. 문제 아닌가. 교육은 스님이든 재가자든 야무지게 해야 한다.
은해사승가대학원은 일요일에도 강의를 했다. 음력설은 빼고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공부하는 사람이 휴일을 찾아야 되는가. 불교의 공부는 무엇을 알려고 하는 게 아니고, 수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진단해 본다.
근래 사찰음식과 산사음악회가 대유행을 하는데, 뒷방 노장 입장에서 보면 재고해야 한다. 지금의 사찰음식은 궁중요리일 뿐이다. 조선시대 궁궐에 살던 상궁들이 절에 오면 따라온 시종들이 음식을 만들었다. 그것이 전해와 사찰음식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찰음식은 1식3찬이 원칙이다.
옛날 절집 부엌에는 금연(禁煙)이라고 붙여 놓았다. 조실이나 주지도 공양시간에 놓치면 공양할 수 없었다. 왜나면 물 한 그릇 데우려고 해도 나무를 때야 하는 번잡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 아닌 때에 불을 때지 말라고 부엌에 ‘금연’이라고 붙여 놓았다.
이처럼 불교의 식생활 전통은 엄격했다.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는 ‘불비시식(不非時食)’이 계율에 있다. 수행자는 도(道)를 이루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다. 그런데 화려한 사찰음식을 선보여 세인들도 깜짝 놀랄 정도이다. 산사음악회도 그렇다. 사미십계(沙彌十戒)에 ‘불가무창기불왕관청(不歌舞倡伎不往觀廳)’ 즉 ‘노래하고 춤추는 데 가서 구경하거나 듣지 말라’고 했다. 계율이 이러한데 공개적으로 산사음악회를 여는 것은 맞지 않다. 불법에 어긋나게 절에 무대를 차려놓고 산사음악회를 하는 것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지안=불교에서 행사를 이벤트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벤트에 관심을 기울이면 천박한 자본주의에 편승하는 세속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불교의 모든 행사는 여법(如法)하게, 즉 부처님 법도에 맞게 해야 한다. 너무 세속적으로 행사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산사음악회에 대해서는 무비스님이 지적한 대로 다른 스님들도 많이 느끼고 있다.
사람 평할 때
인간성 순수하다는 것을 칭찬하는데
종교도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
순수한 모습이 진짜 전통이다
무비=최근 불교계에서 이웃돕기를 많이 한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정부나 사회단체와 다른 종교에서 하는 복지와는 달라야 한다. 불교 정신을 담아야 한다. 물론 봉사는 그 자체도 고마운 일이지만, 지상의 최고급 종교인 불교가 다른 데와 똑같이 하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
지안=사람을 평할 때 인간성이 순수하다는 것을 칭찬하는데, 종교도 종교 자체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다. 부처님 가르침이 순수한 불교 그 자체의 모습이다. 불교가 너무 세속적인 방편을 쓰면 문제다. 주최 측에서는 이유가 있겠지만, 비불교적 모습을 드러내면 불교의 순수성이 흐려지고 상실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사회든, 그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맞춰 순수한 모습을 유지 보존하는 것이 진짜 전통이다.
무비=오늘의 주제를 ‘순수불교, 전통불교 회복’이라고 하고 싶다. 시류에 편승해서 하는 것은 서툴기만 할 뿐이다.
지안=대승에서 보살은 이타원력(利他願力)을 세웠고,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실천했다. 그 가운데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네 번째는 ‘버릴 사’자이다. 종교인들은 공명심(功名心)을 버려야 한다. 집착과 공명심을 갖는 것은 진정한 사무량심이 아니다. 불교만큼 집착을 버리라고 강조하는 종교가 어디 있는가. 집착심, 공명심, 업적주의는 비불교적이다. 또한 중도(中道)를 이야기하는 불교가, 사회에 갈등이나 대립이 발생했을 때 한편만 들면 안 된다.
무비=물론 포교에 대한 고민 때문에 산사음악회를 시도한다는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입장보다 순수불교를 회복하는 방향이 진정한 포교이고, 불교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짜 포교이다.
지안=순수한 불심(佛心)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허망하고 헛된 생각, 마음에 바람이 들게 하는 것은 포교와 거리가 있다.
무비=이 시대의 이상적인 불교 모습은 대만불교라고 생각한다. 대만 스님들은 봉사하고 헌신하며 솔선수범한다. 재난이 일어나면 그 어떤 단체나 기관보다 앞장서 구호한다. 승복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나서는 모습에 세상 사람들은 놀라고 감동한다. 대만 사찰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관청이나 국민들이 아무 조건 없이 나서 돕는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습이다. 감동을 주고 마음을 돌려놓아야 포교가 된다. 말만 번드르하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불청 대불련 활동이 미미하다
젊은층이 소멸할 수도 있다
각 교구본사에서 불교학생회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안=대사회적 기능을 능동적으로 활발하게 포교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포교의 효과가 나타나야 포교다. 학교에 다닌다고 다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포교를 해야 한다. 포교를 빙자해 사법(邪法)이나 비불교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일반인들이 감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포장을 잘 하여도 본질이 어긋나면 안 된다. 불교는 출세간법으로서 세간법을 다스리는 것이다. 세속의 본을 받는다는 생각 자체가 고루한 것이다.
무비=재난 구호나 이웃돕기 등 구호 활동을 통해 감동을 줘야 한다. 말만 갖고는 안 된다. 그렇다고 사람만 많이 모으는 것이 포교는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지금 어둡고 힘들고. 손이 안 미치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경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연탄을 때는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불교계에서 연탄을 다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면 세상은 감동할 것이다.
대만의 ‘살아 있는 관음보살’로 불리는 자제공덕회의 증엄스님이 있다. 그 스님은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대만과 본토에 병원을 세웠다. 불교의 가르침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감동을 주는 종교라는 인식이 생겼고, 지금은 자원봉사자가 700만 명이 등록돼 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이처럼 어찌 보면 포교는 간단하다. 감동이다. 이에 비해 한국불교는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무슨 포교가 되겠는가.
지안=다종교사회에서 불교나 기독교 등 종교도 일반사람들을 대상으로 경쟁 한다. 그런데 불교는 젊은 층이 소멸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대불청이나 대불련의 활동이 미미하다. 각 교구본사에서 대학의 불교학생회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전국 사찰에서 청년회나 대학생회 육성 예산을 책정해 능동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이 또한 감동을 주는 일이다. 박영병 부산교수불자연합회장은 불교학생회 활성화를 위해 사비(私費)를 들여 2명의 학생과 중국불교성지를 순례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하면 박수를 받고, 결국에는 좋은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진정성과 감동은 공덕과 복덕을 불러온다.
무비=요즘 달라이라마 방한모임이 각 지역을 다니며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교황과 달라이라마의 인품이나 살아온 경력을 비교할 때 누가 더 훌륭한가. 교황은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단체가 거대할 뿐이다. 이에 비해 달라이라마는 일찍이 성인(聖人)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그런데 만약 달라이라마가 한국에 왔을 때 교황에 비해 10분의 1의 대접을 받겠는가. 솔직히 살펴야 한다. 어림도 없다. 과연 10분의 1이나 모이겠는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왜 하는가. 나는 반대한다.
지안=외부로 드러내는 행사보다 안으로 정신적인 감화를 미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스트레스가 많다. 마음과 마음이 소통이 안 되고 있다. 서로 밝은 마음으로 대범하게, 넘어가고 털어버려야 한다. <화엄경>에 보면 “보살(菩薩)은 자심광명(自心光明)을 쓴다”고 한다. 자기 마음부터 밝게 갖고, 세상을 밝힐 필요가 있다.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것을 대하는 자세는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비=불교신문도 불교다워야 하고, 불자도 불자다워야 한다. 불교 전체가 불교다워야 한다. 경전에 보면 ‘불재심중(佛在心中) 불재구중(佛在口中) 불재생활중(佛在生活中)’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부처님은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가 불교이고, 부처님이다. 불재구중은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부처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의미다. 결국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인데, 우리 몸으로 생활하는데 불교가 있고, 불교신문이 있고, 불자가 있고, 부처님이 있다. 불자들은 부처님이 자기 자신에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지안=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을 중심으로 수행하고 정진해야 한다. 또한 진정성과 감동을 주는 한국불교가 돼야 한다. 을미년 새해에도 무비스님이 더욱 건강하고, 법시(法施)를 더 많이 베풀어 한국불교의 등대가 되어주길 바란다. 무비스님은 우리 종단의 보배이다.
무비=한국불교는 순수불교와 전통불교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한국불교가 돼야 한다. 반야학술상을 제정해 학자들을 지원하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지안스님이 현역에 있으니 한국불교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환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조계종 교육원장, 은해사승가대학원장, 범어사 강주를 역임하며 승가교육을 통한 후학양성과 전법에 매진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문수선원 화엄경 강의를 제외하고 외부 법문과 언론 인터뷰를 일체 접었다. ‘화엄경 강설’ 집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전법에 대한 무비스님의 원력은 소문 나 있다. 인터넷 다음 카페 ‘염화실’ 회원이 2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각종 경전 등 불교서적을 무료로 배포하는 법공양을 실천하고 있다.
벽안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은해사승가대학원장과 통도사 강주 등을 역임했다. 서울불학승가대학원장, 직지사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조계종고시위원장 소임을 보고 있다.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을 만들어 불교학자들을 지원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전달한다. 서울과 직지사에서 강의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안스님은 “새벽에 눈을 뜨면 불을 켜기 전까지 반야암인지, 서울인지, 직지사인지 잘 모르겠다”고 특유의 유머로 일상을 전했다.
[불교신문3070호/2014년12월27일자]
첫댓글 고맙습니다._()()()_
불자는 불자다워야 한다는 말씀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강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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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새해 이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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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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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한국불교가 되어야 한다 '는 말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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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게, 언제나 명심하고 너력하겠습니다. 어른스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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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어디로 가야하나 하는 문제점 공감 합니다
두분 큰스님이 걱정 해주시니 점차 개선 되리라 믿씀니다
불자 답게 살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성불 하십시요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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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불교계 최고의 정확한 네비게이션. 완전한 부처님 제자이자 온전한 부처님이신 어른스님 계셔서
너무 다행스럽고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두분 큰스님께서 새해 벽두에 불교를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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