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여는 아침[토요일 - 샬롬 가톨릭] 주교회의 배봉한 부장님과! 빨라야 좋은 것들도 있지만 느려도 좋은 것들도 있죠. 짧은 가을도 그렇구요, 이분과 함께 하는 시간도 그렇죠. <행복을 여는 아침>의 대체불가~ 낭만담당이시죠? 우리들의 봉부장님! 한국 주교회의 배봉한 부장님과 함께한 샬롬 가톨릭입니다! * 한 주 간의 행복가족들의 사진과 행복 첫 방송! 그...www.facebook.com
[토요일 - 샬롬 가톨릭] 주교회의 배봉한 부장님과!
빨라야 좋은 것들도 있지만
느려도 좋은 것들도 있죠.
짧은 가을도 그렇구요, 이분과 함께 하는 시간도 그렇죠.
<행복을 여는 아침>의 대체불가~ 낭만담당이시죠?
우리들의 봉부장님! 한국 주교회의 배봉한 부장님과 함께한 샬롬 가톨릭입니다!
* 한 주 간의 행복가족들의 사진과 행복 첫 방송! 그 어색한 순간도 즐겨주세요 ㅎㅎㅎ
샬롬, 가톨릭 2018.10.27.(47회)
우리가 함께 행복한 아침을 연 지 만 5년, 부장님도 2013년 10월 21일 첫 방송부터 함께하셨으니 감회가 더욱 남다르실 듯합니다.
▶ 네. 2016년과 2017년 두 해를 거르고 만 3년을 같이했는데요. 5년 전 10월 21일 매주 월요일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생방송을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건강을 주신 하느님과 가족들의 기도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소리 없이 뒷받침하시는 여러 스텝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정년퇴직을 하신 행복호 선장 박승배 피디님의 선한 웃음도 그리워지는군요.
어느새 묵주기도 성월이자 전교의 달 10월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이번 전교주일에 부산으로 경향잡지 홍보활동을 다녀오시느라 무척 힘드셨죠?
▶ 네. 그리스말로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하는데요. 크로노스가 흔히 말하는 인간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하느님의 영원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영원한 도시를 뜻한다고 하죠. 1박 2일 짧은 여행처럼 부산에 갔지만, 영원한 시간 속으로 들어간 듯 과거의 추억으로 돌아가 벅찬 감동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잡지 정기구독 신청도 300부 이상 받았고요.
대단하군요. 서대신본당에 신학교에서 한솥밥을 먹은 선배 신부님이 주임으로 계시다더니, 그야말로 영육간에 많이 도와주셔서 더욱 감동이 컸나 봅니다.
▶ 네.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먹으며 4년 이상을 함께 지냈는데, 선배는 문예부장을 저는 총무부장을 맡았습니다. 제가 3학년 때 성소의 길에서 회의가 들어 방황하며 괴로워할 때, 선배가 외삼촌 신부님이 10대 시절 소신학교 다닐 때 쓰셨다는 일기장을 보여 주어 큰 힘이 된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일기장이라면 내밀한 것인데 일기장 주인이 어떤 신부님이셨는지 궁금하네요?
▶ 네. 그 신부님은 해외 유학을 가셨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사제서품식이나 수도서원식 때 또는 봉헌예절 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하는 가톨릭성가 218번을 작곡하신 이종철 신부님의 형님 신부님이셨습니다. 이종철 신부님 여동생은 이 성가의 작사자인 이분매 수녀님이시죠. 작사 작곡을 한 남매의 애틋한 사연을 아시는 분들이 많죠.
동생인 이분매 수녀님이 휴지통에 버린 일기 쪽지를 오빠인 이종철 신부님이 발견해 즉석에서 작곡을 해서 동생의 종신서원 때 불러드렸다고 하죠.
▶ 맞습니다. 이종철 신부님의 조카가 바로 제 선배인 신요안 신부님입니다. 이종철 신부님 큰누나가 신 신부님 어머니시고요. 그분은 수녀원에 들어갈 날짜까지 잡아두었는데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수녀원에 가지 못하고 결혼을 해서 교사로 살며, 신요안 신부님과 그 동생을 낳아 둘 다 사제로 봉헌하셨습니다. 그러고 당신도 가르멜 재속회 종신서원을 하셨는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옛날에 수녀원에 입회하려던 날짜였더랍니다.
정말 신비하고 놀랍군요. 세상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할지 몰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라는 말을 당장 떠올리게 되는군요.
▶ 그렇습니다. 선배는 제가 사제의 길을 가지 않고 평생을 교회 기관에서 일하며 한국교회에 도움이 된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며 감사하던데요. 졸업 후 처음으로 선배와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보다 주님께서 인도하신 새 길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벅차,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셨군요. 올해 전교주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저는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것은, 자신의 소명을 찾고 발견하고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하고 힘주어 말씀하셨지요.
▶ 네. 저의 젊은 날을 돌아보며 교황님의 담화를 읽어보니, 이런 구절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는 젊음의 빛과 그림자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젊은 시절과 가족을 돌이켜 볼 때 저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열렬한 희망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의 선택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고 우리를 존재하게 만든 계획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교황님은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성찰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하나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이웃과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가진 선교사라는 말씀인데요. 그러기에는 나는 부족하고 하잘것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 네. 저도 저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도종환 시인이 보내는 엽서에 보면, “성벽의 맨 밑에 있는 돌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성곽이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능력이 부족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일이 당신 생애에 자부심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라는 글이 있더군요. “그대 거기서 늘 시작하세요.”라는 엽서의 글이 다시금 위로로 다가와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게 됩니다.
저도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는 글이네요. 조직에 있다 보면 성곽의 맨 밑에 있는 돌처럼 짓눌려 지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요. 행복을 여는 아침 애청자들의 기도와 응원으로 날마다 힘을 내서 오늘도 마이크 앞에 앉습니다.
▶ 네.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거나 외롭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도종환 시인의 엽서 글을 전하고 싶습니다.
“힘겨움을 이기지 않고 아름답게 거듭나는 것은 없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도 땡볕과 어둠과 비바람을 똑같이 견딥니다. 마을 어귀의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견디는 비와 바람을 채송화도 분꽃도 똑같이 겪으며 꽃을 피웁니다.”
“그대 늘 거기서 시작하세요. 그대는 크고 거대한 것의 시작입니다.”
고맙습니다. 며칠 후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하는 유행가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겠죠. 교회는 또다시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성월을 맞이할 텐데요. 청취자 여러분 모두, 10월의 마지막 날까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노래하듯 즐거운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 우리 주교회의 사무실에서도 며칠 전부터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다음 주 수요일까지 오후 3시 30분 스트레칭 시간에 음악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현관 로비에 나와 10분간 연주와 노래를 하는데요. 첫날은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라는 노래와 연주로 멋진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을 노래죠.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노랫말이 참 따스하죠?
흐리고 스산한 날이 이어지는데요.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하는 구절에서 부장님은 누굴 떠올리십니까?
▶ 신부가 되었으면 예수님이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신랑이 되어 살아가는 지금 시골집에서 아침마다 배추벌레를 잡고 콩타작도 하고 가을볕 아래 바삐 움직일 아내가 먼저 떠오릅니다. 토요일 아침마다 라디오를 켜시고 제 방송을 듣다가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오면 성모상 앞에서 화살기도를 드리시는 어머니, 예술가와 작가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들과 딸, 애청자인 누님도 생각나고요. 평생 술은 자기가 사겠다는 죽마고우와 평생을 함께할 친구로 늙어가자는 여자 사람 친구 등등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얼굴들이 많습니다.
그러시군요. 시골은 농번기라 도시의 자식들 생각에 일손을 바쁘게 놀리고 계실 어르신들과 농어촌 이주 노동자들의 고달픈 얼굴도 스쳐가네요.
▶ 지디도 사제가 되었으면 참 자상하고 인기 있는 사목자가 되었을 텐데요.
정진규 시인이 쓴 시 중에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이런 산문시가 있습니다.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다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날 농사꾼 아우가 무심코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이 당키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좀 긴데 더 읽어볼까요?
도시에서 하얀 피부가 햇볕에 그을릴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약이 될 시 같은데요. 오늘은 책읽는 지디처럼 엽서 글을 읽어 주시더니 긴 산문시까지 읊으시는군요. 나머지도 마저 들려주시죠.
▶ “모든 게 다 쓸모가 있다 버릴 것이 없다.
아, 그러나 나는 버린다는 말씀을 비워낸다는 말씀을 겁도 없이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다 욕심도 쓸모가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보면 쓸모가 있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내어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내거라.
놀고 있는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에만 몰려 살다보니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는 말을 갈수록 더 실감할 듯합니다.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의 햇살을 모르고 산다면 교회도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적어져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죠. 이문재 시인의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이란 시에 보면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우울증도 그늘에서 나와 하느님의 은총의 햇살을 담뿍 쬐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3년 10월의 첫방송 원고를 찾아보니 교회의 모든 활동은 선교를 지향한다며, 양냄새 나는 목자가 되기 위해 거리로 나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당부를 일깨운 내용이 있더군요.
신앙의 일광욕을 위해 올가을에는 자주 햇빛 쏟아지는 거리로 나가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