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이야기] 씨앗 끝에 뾰족한 갈고리 달려있어…
동물 털에 달라붙어 이동하죠
도깨비바늘
차윤정 산림생태학자
입력 2024.11.11. 00:35
가을 풀숲을 걷다 보면 종종 도깨비바늘을 만나게 됩니다. 산길을 걷다 온 후 팔이나 다리에 바늘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으면 도깨비바늘이 범인일 수 있어요. 옷에 달라붙어 있는 갈색의 뾰족한 바늘이 도깨비바늘이라는 식물의 씨앗이랍니다. 예전엔 들판에서 뛰어놀다 집으로 돌아오면 옷에 붙어있는 도깨비바늘을 터는 것이 일이었죠.
도깨비바늘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일년생 풀입니다. 무시무시한 씨앗도 예쁜 꽃에서 만들어지지요. 노랗게 피는 도깨비바늘의 꽃은 꽃부리가 짧게 갈라진 자잘한 통꽃들이 하나의 꽃줄기 위에 빽빽하게 모여 핍니다. 언뜻 보면 꽃잎이 떨어져 나간 국화꽃처럼 보입니다.
가을이 되면 노란 꽃은 사라지고 갈색의 딱딱한 씨앗들이 둥근 공처럼 펼쳐집니다. 폭 1㎜, 길이 12~18㎜의 긴 바늘 같은 씨앗 끝에는 도깨비 뿔처럼 생긴 돌기들이 여러 개씩 돋아 있습니다. 돌기 표면에는 뾰족한 가시들이 마치 낚싯바늘과 같이 아래쪽을 향해 굽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깨비바늘은 왜 이런 무시무시한 씨앗을 만들까요?
식물들은 평생 동안 이동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살아가죠.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분을 스스로 만들기 때문에 먹이를 찾아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식물에게도 일생에 딱 한 번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바로 씨앗 시기일 때랍니다. 부모에게서 떨어져 새로운 땅을 찾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때인 것입니다.
하지만 식물은 직접 씨앗을 운반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이나 곤충, 바람 등을 이용해 씨앗을 퍼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식물은 저마다 씨앗을 전파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죠. 도깨비바늘은 움직이는 동물의 몸에 씨앗을 슬쩍 붙여 퍼뜨리는 방법을 쓴답니다.
도깨비바늘의 씨앗 끝 가시는 동물의 털에 잘 달라붙습니다. 씨앗은 매우 가볍기 때문에 동물들은 씨앗이 몸에 달아붙어도 자신들이 이를 운반하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도깨비바늘은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다니는 산길, 목초지, 경작지 주변, 공원 풀숲 등에서 자란답니다.
다양한 식물들이 도깨비바늘과 같은 전략을 사용합니다. 도둑놈의갈고리, 짚신나물, 도꼬마리, 주름조개풀, 가막살이 등과 같은 식물의 씨앗들도 동물의 몸에 달라붙을 수 있는 돌기나 털, 고리, 끈적이는 물질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깨비바늘은 비록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독성이 없고 몸에 이로운 성분이 많아 예로부터 어린순을 나물로 먹었습니다. 잎을 비벼 냄새를 맡으면 쑥이나 국화꽃 향기가 나 기분이 좋아집니다.
도깨비바늘 가시가 한번 붙으면 털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가을에 공원을 산책할 때는 긴 바지를 입고, 풀숲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혹시 반려동물과 함께 풀숲을 걸었다면 집에 돌아온 뒤 꼭 털을 잘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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