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黃嗣永 1775~1801)은 경상도 창녕 사람으로 정약현(丁若鉉 정약용의 맏형)의 사위이다. 그는 처숙인 정약종(丁若鐘)의 인도로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의 백서(帛書)는 1801년(순조 1년)에 발생한 신유사옥(辛酉邪獄) 때 북경주교 탕사선(湯士選)에게 보내려 했던 밀서였다.
그것은 당시 조선왕조의 천주교도에 대한 입장과 혹독한 박해의 사실, 그리고 이에 대처하려 했던 천주교도에 대한 입장과 관계 인물 등에 대하여 소상히 밝혀져 있다. 황사영 백서는 가로 62cm, 세로 38cm의 흰 비단에 편지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백서가 완성되자 이것을 북경교구에 비밀히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년 10월(음력) 북경에 가는 동지사(冬至使)의 수행원 편에 황심과 평안도 출신 교우 옥천회로 하여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던 중, 동년 10월 중순경, 옥천회와 황심 및 황사영이 체포 됨으로써 이 사건은 또 하나의 사옥으로 비화되어 황사영과 옥천회 등은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이를 ‘황사영 백서 사건’이라 한다.
오늘날 전해지는 백서는 원본과 사본 두 종류로, 이것은 신유박해 후 약 100년 동안 포도청 의금부에 보관되어 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시 고문서를 정리하던 중 발견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현재 백서는 로마교황청 고문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백서의 모각영인본(模刻影印本)은 학계에 배포된 바 있다. 또한 홍콩에서 발행된 불어번역판도 있다.
김희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