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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방어 목적상 몇가지 이점 |
1.개전 이래 최초로 이루어진 전투 방어선 이며 2.서쪽 측면 낙동강은 강폭 400-800m으로 형성 되었고 기본 수심 2m-4m 강수면폭 200-400m 형성되어 천연의 방어선 구축 3.낙동강 방어선 안쪽은 거대한 보급창고인 부산으로 부터 대구.포항 영덕.밀양.창녕까지 병참선 발달로 보급과 병력 이동에 유리함 |
북한의 부산 점령하기 위한 전투 작전 개요 4가지 방안 |
1.남강과 낙동강 합류점(창녕 남지교)을 통해서 마산으로 통과하는 방안 2.낙동강 돌출부(박진교)를 통과하여 영산-밀양에서 철도와 도로를 이용하는 방안 3.경부본도와 5번국도를 따라 대구를 통과하는 방안 4.동해안 도로를 따라 남하하는 방안 |
애관지구 전적비
1950년 8월초 북한군 5개사단 병력을 왜관 ,다부동 전선에 집중 투하하여
8월 15일까지 대구를 침공할 기세로 총공격을 펴왔다.
이때 미제1기갑사단은 이곳 왜관과 그 남쪽일대에서 적의 거듭된 공세를 혈투끝에 분쇄 하였다.
왜관지구 전사 약사문에서...
기념관 바로 위에 자리하는 새로 만들어진 호국 평화 기념관
입장료 3천원
아무리 입장료가 비싸도 이곳은 들어가봐야 할듯해서
그동안 낙동강 전투지역을 찾아 다니느라 모두 가본 곳이지만
늘 새삼스럽다.
올해초에 워커라인 340km를 하고 나서 대간이며 정맥이며 돌아 다닌다고 잊고 지내던곳
위의 지도와 연결해서 읽으시고
지도 배경은 유학산 같은데
아래 자고산 전투 북한군 학살 만행과 이어서 보시면
자고산 전투 지역
정상의 미군 전몰 장병 추모비
카투사의 시초가된 글
다부동 전투 아군 1만명 중 3천 500명 전사
북한군 17,500명 중 5천 600명 전사
유학산 전투
유학산 정상 839고지 전투
55일간 주,야로 9회에 걸쳐 주인이 바뀜
낙동강 전투중 국군 1만명 전사
미군 3천명 전사
북한군 1만 7천명 전사
유학산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내용
다부동 전투 승전비
구국용사 충혼비
다부동 낙동강 전승비 앞에서
나라를 지킨 유학산의 다부동 전투
다부동 전투는 8월 1일 부터 9월 24일까지 55일간 이어져
치열한 고지 쟁탈전으로 피 아간에 9번이나 주인이 바뀌었고
아군(국군.미군) 3천 500명 전사, 북한군 5천 690명 전사
다친사람까지 포함하면 북한군 1만 7천5백명. 아군 1만여명
국군 1사단 하루 평균 600-700명 사상자 발생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난 837고지 전투
최대의 격전지로 평가되는 다부동 전투
볼링앨리 전투와 오계산 466고지 전투와 같은 맥락이다.
오계산 466고지 유해 발굴지역
볼링앨리 지역이라 많은 전사자가 생긴것으로 판단되는곳이다.
희생자는 늘어나고 신병들은 계곳 사라졌다.
분대장이 자신에게 배속된 분대원들의 얼굴도 모른체 전투에 나섰으며
간략한 이름만 화랑담배 껍질에 쓰여졌지만
분대장이 사망하고 나면 신병들의 죽음은 무명용사로 기록되어
어느곳에도 쓰여지지 않은채 사라진다.
군적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들.
오계산 466고지 전투
전투중 466 고지가 나의 무덤이라며 지켜낸곳
천평동 삼거리부터 좌,우측의 유학과 가산 오계산 사이 산에서 적인지 아군이지 피아간의 구분할수 없을정도로
병력이 뒤썩인곳이다.
가지고 간 실탄이 모두 소모되면 찌르고 때리는 백병전이 몇날몇일 계곳되었고
8.15일 기준으로 상황은 최고조에 달해
아군과 적군 사이가 너무 가까워 소총보다는 수류탄으로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서로가 전우의 시체를 방패삼아 싸우고 싸우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고
8월 중순의 날씨속에 전우의 시체 썩는 냄새로 숨 쉴수가 없었다고 전한다.
수암산 (숲데미산)
수암산 바로 옆 328고지 전투와 비슷한 전투를 한곳이다.
군군 1사단 11연대가 이곳을 방어 했으며
b29 비행기로 포탄 40톤 투하한 가산산성전투
북한군 14연대와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곳
노무자 분들을 두고 미군은 A특공대라 불렀다고 합니다.
영문 알파벳 A자와 지게가 닮아서
학도 의용군
한국전쟁 당시 학도 의용대로 편성된 16-18세의 학도병들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서 3주간 군사 훈련
소총과 담요 군복을 지급받고 군번도 없이 전방에 배치
1950년 6월27일 한강 방어전투를 시작으로 약 27만명 참전 그중 약 5만명이 직접전투에 참전, 7천명 전사
그동안 정부는 학도병들을 국가 유공자에 포함 시키지 않았다.
18세 미안 소년병 징집을 금지하는 국제법을 의식해서였다.
정부는 2002년 소년병이라는 이름으로 참전 유공자를 인정
학도병들이 가장 많이 전사한곳 포항지구 전투가 아닌가 생각하며
어린학도병 전사자들에게 자식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그들의 희생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습니다.
군복아니 운동화에 교복을 입고 펜대신 총을 메고
철모보다 中자 달린 학생모 쓰기를 더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평화롭기만 한 낙동강과 칠곡보 주변
강건너 지역은 융단폭격을 한곳이다.
포탄 투하장소
낙동강 서쪽의 약목면과 박정희 전대통령의 고향 구미사이
가로 5.6KM* 세로 12KM
1950년 8월 15일 미 8군 사령부에서 1사단CP로 연락이 왔다.
"8월 16일 정오에 모든 전선의 부대는 호를 깊게 파고 머리를 절대로 바깥으로 내밀지 말라"는 내용이였다.
16일 오전 1사단 15연대는 328고지를 탈환했고
12연대는 유학산 8부 능선까지 치고 올라 갔으며
11연대도 가산능선에 올라 적을 물리치고 천평동 도로 정면으로 버티고 있었다.
11시 58분 모든 소리가 멎는것 같았고
지축을 흔드는 듯한 소리와 거대한 폭음이 땅을 뒤덮었고
오키나와에서 출발한 B29폭격기 5개 편대 98대가 끊이없이 지상으로 포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폭격시간 26분 동안 3234발 총 중량 900톤에 이르는 폭탄이였다.
2차대전 이후 최대의 공중 지원 폭격
하지만 포탄이 어느정도의 실효성이 있었는가는 의문이 든다.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 아군과 교전중인곳이 많아...
입장료를 내면 이렇게...
당신은 나라를 사랑하는가?
낙동강 전투 그림
기념관 1층의 전투 체험장
기념관을 나와서 호국 평화탑을 배경으로
낙동강 전투 55일간의 열전을 뜻하는 55M의 초대형 태극기가 있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담지 못하고
충혼비
칠곡보
다리 건너 백두대간 용문산 기도원 분기점 흘러내린 기양지맥길 거리 약 45.8km의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대구 강정보까지 35km
지난밤에 비가 와서 그런지 자전거 타는분들도 없고
매점안이 썰렁하다.
호국의 다리
이 다리는 일제가 군용 단선 철도로 만들어 사용해 오다가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을 막기 위해서 미군 제 1기병 사단이 다리 경간 1개를 폭파시켜 북한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낙동강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북진의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국의 동산 뒤로 UN탑도 보이고
왜관을 지나면서 인근 식당에 들러 아침겸 점심으로 한끼 해결하고 다시 지루하고 지루한 길로 떠난다.
한여름 땡볕에 이길을 많이 뛰어 다녔는데
지루한길이지만
성주 대교 옆에 자리한 하목정
이 건물은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낙포 이종문 1604년도에 지은건물이다.
조선 인조임금이 내려준 화목당 편액 그뒤에는 하목정 편액이 보인다.
조선시대 일반 주택에는 서까래(처마) 위에 지붕을 모양나게 만드는 덧서까래인 부연(附椽),혹은 부연(婦椽아내부,서까래연)을 달지 않은 것이 관례 였으나 이곳은 인조의 명으로 부연 서까래를 달았다고 한다.
하회마을의 서애 대감댁에도 부연 서까래가 없었는데 대단했던 분이셨던것 같다.
婦椽 (부연) 이야기
옛날 손재주가 좋은 목수쟁이가 살았는데 어느날 임금의 명으로 웅장한 궁궐을 짓고 있었는데
목수는 서까래를 미리 다듬어 놓고 지붕을 올리기로 한날 사단이 난것이었다. 이때 참을 가지고 온 목수의 며느리
땅에 주저 앉아 실성한 사람처럼 울고 있는 시아버지를 본것이었다
"아버님 이 무슨일 입니까?
"얘 며눌아가 나는 이제 죽었구나 미리 다듬어 놓은 서까래가 하나 같이 모두 짧아 쓸모가 없구나"
이때 며느리는 현명한 답을 내 놓는다.
"서까래가 짧으면 다른 서까래 하나를 덧대면 될게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생긴게 부연(婦椽 며누리부.서까래연) 서까래 이야기 이다.
신라시대때 건축은 대부분 부연 서까래를 달았으나 조선시대때 나무를 아끼는 차원에서 일반사가에서는
국법으로 금지하였다.
하목정 뒤에 전양군 불천위 사당 앞에는 최소 400년 이상은 된듯한 배롱나무가 몇그루 서있다.
지난구간에 내려온 병산서원의 350년된 배롱나무 보다 더 굵고 크니 400년 이상 될거란 추측도 해보고
한여름 이글거리는 날씨에 배롱나무도 분홍빛의 꽃을 피우는데 겨울이라 앙상한 껍질도 없이
맨살에 내년을 기다리는듯
하목정을 뒤로 하고 성주대교 아래를 지난다.
여름이면 노점장사를 하시던 아주머니 한분이 이제는 새로산듯한 포터에 먹을것을 많이 준비해서 장사를 하시는데
국수라도 한그릇하고 싶었지만 오늘 갈길도 가까운편이 아니라서 그대로 지난다.
낙동강 건너 영암지맥길 날머리 부분이 보인다.
지겨운 구간은 지나고
멀리 대구 강정보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구시 취수장이 있는곳이라 철조망이 길게 쳐져 있는곳이라 한참 돌아가야 한다.
취수장 철조망
문산리 낙동식당 인근에 오니 자전거 타시는분들이 몇몇 보이기 시작하고
발목 통증이 심해져 진통제 몇알로 긴급 처방을 해본다.
강가의 나무 테크길
멀리 강정보가 지척이고
희미한 부분에서 왔던길이고
물은 여름에 비해서 깨끗하지만 그래도 너무 더럽고
한여름에는 그야말로 낙동강이 낙똥강이 되는 지점이다.
거대한 호수 같은 강정보
구미에서 왜관을 지나 이곳 강정보까지 50km 지나 왔으나
앞으로 남은 거리는 30키로쯤 해질녁이면 현풍에 도착할것 같다.
이러나 저러나 대구 인근이니 마음은 편안하다.
낙동강 건너 금호강 북쪽 마루금인 죽곡산
달성보 24키로 전
낙동정맥 가사봉에서 분기된 금호강 북쪽 마루금 끝자락 죽곡산이 좌측으로 지척이고
우측으로는 수년전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의 와룡산이 보인다.
와룡산은 낙동정맥 분기봉인 사룡산에서 이어지는 금호강 남쪽 마루금의 끝자락
두개의 지맥이 합수되는 금호강 남,북지맥길
그가운데 금호강(118km)과 낙동강이 만난다.
가을 코스모스 넘어로 사문진교와 화원 유원지가 보인다.
멀리 대구시 성서2차 단지 주변과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이다.
화원 유원지에 들러 국밥 한그릇 먹고 다시
자전거 길은 지루하고 낙동강 둑방길 위로
멀리 재석산 방향
둑방길에는 가을향이 가득하다.
해빠질 무렵
억새와 낙동강에 황금빛 태양이 내려 앉은 모습이 너무 좋다.
아름다운 낙동강 꼭 가봐야 할곳
1.태백 구문소 (천년기념물417호)
2.봉화 적막강산 (재산면 갈산리-명호면 합강3km 인위적인것은 아무것도 없는 구간)
3.청량산 선유교에서 본 병풍대 (신선이 놀다간듯한 모습)
4.안동 쏘두들에서본 외병대(고산정) (한폭의 그림같은곳)
5.안동 병산서원과 병산 (병산서원에서 본 병산)
6.안동 하회마을(부용대에서본 하회마을 풍경)
7.상주 경천대(정기룡 장군과 명마 이야기)
8.상주 중동면 우물리 수암바위(보현지맥 날머리 수암바위에서 본 낙동강)
9.칠곡 호국 평화공원
아직도 189km
국토종주 걸어서 하시는 25살의 젊은 친구
낙동강 하구-상주 상풍교(312km)- 문경 새재길(100km)-남한강길(136km)-아라길(21km)로 이어지는 인천까지 걸어서
569.6km 국토 종주
부산에서 출발 매일 60km씩 진행 하신다고 젊은 친구가 대단해서 한장 담고
산이건 강가건 이런 젊은 친구를 만나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젊다는건 좋은것이고
그것이 무모하던 그렇지 않던 분명 대한민국을 사랑하니 국토 종주길로 떠나는것 아니겠나
꼭 성공하란 말을 해주고 서로가 돌아서서 간다.
대구 -광주 고속도로
해만 빠지면 집으로 갈 생각을 하니
누가 가르쳐 주는것도 아닌데
그리운 집 생각만 간절하다.
달성보 인근에서
달성보를 지나며
해는 넘어가고 가로등 불빛이 반짝인다.
오늘 목적지 현풍의 박석진교
이곳에서 80km 마치고 현풍 버스터미널에서 대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아름다운 大河 4대강 탐사길은 여러분이 보내주신 후원금으로 걷고 있으며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구간은 나라를 지킨 낙동강 워커라인 창녕 남지교까지 진행 합니다.
보는내내 맴이 짠합니다
나라를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 이름모를 학도병들 잠깐이나마 묵념을 올려봅니다
한나라를 지키기위해 이토록 큰희생을 치러야 한다는걸 새삼 되새겨봅니다
국력이 힘이다라는 걸 깨닫고 느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보고갑니다
1월에 포항지역의 워커라인을 갈것 같습니다.
그때는 꼭 오시기 바라구요 많이 배우고 가는 시간이 되셧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달에 봐요
낙동강 두구간 끝나도 갈길이 구만리 계획에 걱정시러버요~
발목이 아프다면서 꼭하셔야 하는감유~~
엄동설한에 비박이라니...
포시럽게 살라는 팔자는 아닌갑소ㅋ
ㅋㅋ
포시럽게 걷는다면 누가 과연 믿고 따라오겠습니까
어딜가나 고생 바가지로 해야...
누님 보고 싶소
젊은 친구가 국토 종단을
멋진 친구도 만나시고
역사의 아푼곳을 들러 보시고
오늘도 발품 팔아서 올려 놓으신
멋진 사진에 머물다 갑니다.
젊을나이에 국토 종주하는 분을 만났을때
안아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런 친구들이 많을 수록 대한민국은 발전 하는것 아니겠나 생각을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