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부채와 마스크
우리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부채를 애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채의 유래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 되었지만 쥘부채, 즉 접고 펴서 쓸 수 있는 부채는 고려시대부터 발달해 조선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합죽선合竹扇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쥘부채는 신분에 따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종류가 달랐는데, 왕가에서 사용되던 부채는 살이 50개(五十竹白斑貼扇), 사대부는 살이 40개, 그 이하의 계급은 40살 이하의 부채를 사용했다.
부채는 당시 중요한 액세서리였는데, 더운 여름에만 아니라 겨울에도 가지고 다녔던 필수품이었다. 사실 부채는 바람을 부치는 용도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용도가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을 때는 눈만 남기고 가렸고,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지 않거나 간접적으로 거절하기 위해서 얼굴을 가리기도 한, 말하자면 그 시절의 ‘익명성 아이템’이었다.
부채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요즘 우리는 오프라인 익명성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온라인 익명성의 장단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쓰고 있는 마스크를 보며 다시금 오프라인 익명성을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익명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은행에 마스크를 쓰고 출입을 할 수도 없었다. 미국의 경우 마스크는 은행강도 등 강력범죄자의 복면으로 여겨지곤 한다. 미국인 중 지독한 팬데믹 하에서도 절대 마스크를 못 쓰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마 이런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그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을 받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보건이 이유지만 우리는 불식간에 마스크로 인해 익명성도 보장받고 있다. 수업 시간에 하는 편한 하품, 불편한 사람을 만났을 때 눈 바로 밑까지 치켜 쓰며 느끼는 안도감도 덤으로 누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의무착용이 끝나도 마스크를 벗어 던지지 않고 팬데믹 이후 상당 기간 여러 이유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익명성 자체는 개인의 영역을 확대시켜 주는 것이라 좋은 것이지만, 부작용이 계속 생긴다면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좋으냐는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것이다. 보건과 익명성의 부작용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갈 것인지 잘 지켜볼 일이다. <빼앗긴고향 창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