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사진 . 쿠테에서 몽블랑정상을 향해가는 산악인들. 사진. 이영준
서평
<등산, 도전의 역사>
산이 묻고 인간이 답하다
글 이영준 한국산악회 학술문헌이사
등산인구가 1천 몇백 만이라고 연일 언론과 업계에서 아우성을 치던 때가 벌써 십여 년이 다 되어간다. 자그마치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라던, 활동인구대비 밀도로만 보면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산악인’, 적어도 등산동호인인 나라가 우리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외형 급성장의 과정을 바라보아오며 산 다니는 한 사람으로서 늘 그 안에 섞여있더라도 마음 한쪽은 허전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밀물처럼 산으로 몰려들던 사람들의 군상에 빠져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러한 공허함의 원인을 등산이라는 행위의 토대가 되어야할 인문의 실종에서 본다. 건강을 위해, 사교를 위해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는 과거 이 길을 처음 걸었던 선구자의 발자취 따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밖에 없다. 오로지 색색의 패션들, 발 디딜 틈 없는 저잣거리 같은 정상과 산길 끝의 막걸리 한 잔만을 생각하며 우리는 정작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 채 오늘만의 말초적 쾌락을 산에 풀어놓았던 것은 아닌가.
하지만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몸의 본능 아닌 머리와 마음으로 기억하는 사유의 존재이며, 또한 집단의 기억을 모아 역사를 형성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산, 등산문화라는 사회활동과 현상 또한 분명한 역사가 존재한다.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역사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며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산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산역사의 연구란 우리의 산행을 진보적 방향으로 이끌려는 노력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등산 혼돈의 시대’에 이용대 선생이 써내려간 <등산, 도전의 역사>의 행간에 담긴 의미를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1786년 파카르와 발마가 악마와 용이 산다는 몽블랑을 오르며 시작된 현대적 개념의 등산과 황금, 은, 철의 시대로 나뉘어지는 헤시오도스 개념의 등산사 구분 같은 건 전체적 맥락에서 상식으로 넘겨 읽어도 충분할 뿐, 정작 중요한 건 그 안에 있지 않다. 바라보아야할 것은 산이 묻고 인간이 대답하며 이루어온 유장한 대화, 그 ‘도전’에 있다.
관광버스에 실려 무박산행을 떠나 데크와 계단으로 잘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줄지어 정상에 서는 산행만을 하다가 어느 날 배낭에 지도와 나침반을 넣고 ‘산길’로 접어드는 순간 그 산행은 전자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와 격을 지니게 된다. 스스로 설정한 곤란함과 이를 극복하는 도전이 곧 진짜 등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등산, 도전의 역사>라는 표제는 200여 년간 나침반을 들고 지도를 기록하며 미지의 산으로 향해 깨지고, 다치고, 때론 죽기도 했던 사람들이 쌓아올린 시간과 생명의 기록이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산물’이라던 그리스 역사학자의 말과 같이 매년 범람하는 위험 속에 발달한 문명의 지혜와 기술처럼, 지금 등산포화인구의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등산 인문학의 기초가 바로 이 책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10년 전 출간된 초판에서 볼 수 없던 내용들이 추가된 것도 이번 개정증보판에 담긴 소중한 의의다. 우리나라 근대등산의 태동과 서구 알피니즘의 유입 경로,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각급학교 산악부의 활동 배경, 몽블랑 한국 초등자인 박석윤의 친일 행적 등은 그동안 우리 산악계에서 밝혀지지 않았거나 말하기 부담스러웠던 사실들일 수밖에 없다. 10년간 계속된 연구와 발굴 속에서 필자는 등산역사가의 입장에서 이러한 사실들에 새로운 발언권을 부여하며 한국등산사를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등반사를 기술하면서도 19세기 제국주의 영토확장과 20세기 동서냉전시대 등산활동에 덧입혀진 이념, 신자본주의시대에 상업등반대를 따라 세계 최고봉을 줄지어 오르는 풍경 등 등산이라는 활동에 스며든 사회적 배경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해석한 것도 그전과는 다른 점들이다.
초판에 누락되었던 영웅적인 도전자들, 가브리엘 로페, 로레탕 에르하르트, 반다 루트키에비치, 볼프강 귈리히, 카트린느 데스티벨, 하그리브스 앨리스 등의 이야기가 덧붙여진 것도 책의 완성도를 높이며, 초판 출간 이후 10년간 세계를 놀라게 했던 2008년 토레 트래버스 알파인 스타일 초등과 2012년 데이비드 라마의 세로토레 자유등반, 2015년 엘캐피탄 돈월 자유등반 등의 기록이 수록된 점도 도전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는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초판과 달리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진들 외에는 전병구, 남선우, 정갑수, 변기태, 김창호, 이명희, 염동우, 오영훈과 같은 현역 산악인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 자료를 사용해 이 책이 필자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우리 산악계가 모두 참여한 기록으로 만들어냈다.
결국 10년 만에 새로 탄생한 <등산, 도전의 역사>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미래의 또 증보될 <등산, 도전의 역사>에 실릴 오늘의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훤히 바라보이는 서재에서 색색의 배낭 일렁이는 탐방로 상춘의 물결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허전함을 느낄 이용대 선생은 산이 던지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고민하고 있을까. 당신은 지금 무엇에 도전하고 있으며 왜 산에 오르느냐고.
첫댓글 앗!!!드디어!!!!좋은책 감사합니다~^^
서점에서 언제 구입 가능할까요
다음주쯤 출판된다고 하셨습니다~^^
기대합니다~^^*
좋은 책 기대됩니다. 산에 대한 책이 계속 나온다는 것은 도전이 실종된 현대사회에서 좋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