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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_진짜 감사를 되찾자!
신명기 20:10-18
10.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화평을 맺자고 외쳐라.
11.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기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안에 있는 백성을 모두 노무자로 삼아 부려라.
12.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을 생각이 없어서 싸움을 걸거든 너희는 그 성을 포위 공격하여라.
13.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부치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14.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원수들에게서 빼앗아주시는 전리품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15. 여기에 있는 민족들의 성읍이 아니고 아주 먼데 있는 성읍들에는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
16. 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들에서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17.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18. 살려두었다가는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해올리는 발칙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어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세계 개신교 대부분이 지키는 3대 명절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들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습니다. 성탄절과 부활절은 로마의 태양신 종교와 결합되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동지 이후 첫 번재 일요일로,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뜬 후 맞이하는 일요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동지나 춘분은 모두 태양신 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동지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인데 이제부터는 밤이 점점 짧아져 태양의 힘이 커져 가는 절기로,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로 이제부터는 낮이 길어지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미국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고 갖은 고생 끝에 살아남아 추수한 첫 수확물을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한 축제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즉 청교도들의 관습이었던 것이죠.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네 번째 목요일이며 관공서와 학교 등은 주말까지, 기업들 대부분도 금요일까지 연휴로 지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또한 대부분이 미국의 추수감사절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교회는 제단을 풍성한 과일과 꽃등으로 장식하고 교인들은 한해의 결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감사 헌금을 드리죠.
추수감사절이 되면 강단에서는 감사를 강조하는 설교가 울려 퍼지고 교인들은 억지로라도 감사한 일이나 조건을 찾게 됩니다.
사실 감사는 삶 속에서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는 마음가짐입니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행복한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절망을 이겨내고 성공을 가져다주는 힘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진정한 감사란 어떤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즉 좋은 일, 좋은 조건만이 아니라 나쁘고, 힘든 조건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고 그것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보상을 기대하거나 조건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감사라면 위선일 수도 있는 것이죠.
추수감사절을 탄생시킨 미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 정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주민을 살던 땅에서 쫓아내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1622년에서 1890년까지 거의 270년간 지속된 미국과 인디언들 사이의 전쟁은 원주민 학살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청교도들이 아메리키에 상륙하며 식민지 건립을 약정한 메이플라워 서약(1620. 11. 11) 이후 400년 동안 원주민의 95%가 멸종당했습니다. 청교도들의 이런 학살 전쟁이 가능했던 것은 신대륙능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주셨으니 더이상 원주민들의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1830년에 만들어진 인디언 이주법으로 남동부의 문명화 된 5부족(체로키족, 칙소족, 촉토족, 세미놀족, 크리크족)은 1000km 이상 떨어진 미시시피 서부 변경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해야 했습니다. 이 법으로 미국 대통령은 원주민들의 뜻과 상관없이 돈도 지불하지 않고 원주민들이 살던 비옥한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원주민들에게는 아무도 살지 않는 서부의 황량한 초원이 주어졌죠.
땅에서 쫓겨난 원주민들은 20여년 간에 걸친 이주 과정에서 굶주림, 추위, 질병, 사고 등으로 수천 명이 희생되었고, 그 이주의 길은 눈물의 길(Trail of Tears)로 불리었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남동부의 비옥한 땅은 노예들이 혹사당하는 거대한 목화 생산 단지가 되었죠.
2012년 기준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수는 250만 명 정도이며 이들 중 100만 명 정도가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라는 거대한 감옥을 만든 것도 모자라 팔레스틴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기 위해 대학살을 저지르고 있는데, 이런 일이 미국의 역사 속에서는 끝없이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관련된 내용으로 전쟁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명기 20장에서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먼저 전쟁에 임하는 이스라엘의 자세에 대해 말하죠. 그것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할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함으로 전쟁의 승패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려주죠. 그리고 싸움에 부적절한 자들, 즉, 병역 면제자들에 대한 규정을 전합니다.
그리고 나서 전쟁에 대한 두 가지 원칙을 선포하죠.
첫째는 가나안 땅에 속하지 않은 멀리 있는 성읍들과 전쟁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군사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항복할 기회를 주라는 것입니다. 항복하고 성문을 열면 그 성읍의 백성들을 노무자로 삼아 부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화평을 거부하고 전쟁을 하여 승리하게 되면 그 성읍의 남자들은 모두 칼로 죽이고,여자, 아이, 가축들과 그 밖에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는 겁니다. 이 원칙으로 본다면 전쟁을 통해서 탈취물을 얻고 쓰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10-15).
그런데 두 번째 원칙은 매우 다릅니다.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가나안 땅에 사는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숨 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 등 6부족은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헤렘, חֵרֶם)시켜야 한다는 것이죠(16-17).
살려두었다가는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하는 발칙한 일을 이스라엘이 배워 야훼께 죄를 짓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8). 당시 가나안 족속들은 그들의 종교적 관행으로 인한 도덕적 부패가 심했고, 자녀를 불태워 희생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를 예사로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근친상간, 동성애, 수간, 인신제사 등 가나안 족속들의 악한 풍습에 대해서는 레위기 18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7장 1-2절에는 6부족 외에 기르가스족이 포함되어 7부족이 되고, 그들을 전멸시킬 때 그들과 계약을 맺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가나안 정복 전쟁의 원칙은 여호수아에 의해서 구체화 됩니다.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시민들(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을 상대로 조직적 학살을 감행하는데,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가축들까지도 진멸(헤렘)합니다(수 6:21)."
한편 이스라엘 군대는 전력상 훨씬 우위에 있었음에도 산 위에 있는 조그만 성 아이(Ai)를 치다가 실패합니다. 그 실패의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께 '헤렘'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야훼의 진노로 여리고성의 탈취물을 빼돌린 아간은 그의 자녀, 그리고 심지어는 짐승들도 함께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두 번째 아이성 공격이 성공하고, 전체 인구 1만 2000명이 학살되는데, 도망가는 생존자들도 학살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수 8:24-25). 헤렘이 성취된 것이죠.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은 가나안의 모든 땅에 걸쳐서 진행됩니다. 여호수아 10장 41절은 여호수아가 ‘카데스바르네아에서 가자에 이르기까지, 또 기브온에 이르는 고센의 전지역을 정복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이스라엘 편에 서서 싸워주신 성전이었다고 말하죠(42절)
여호수아는 헤렘을 철저히 완수한 것으로 10장 40절은 증언합니다. “산악 지대와 네겝 지방과 야산 지대와 비탈진 지역과 거기에 사는 모든 왕들을 쳐서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았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숨 쉬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모조리 죽여버렸다”는 것이죠.
모세에 의해 명령되고 여호수아가 수행한 이 전쟁을 헤렘(חֵרֶם)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헤렘은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파문" 추방, 몰수, 억제 등을 뜻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또는 그에게 봉헌된 것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사용이나 접촉으로부터 구별된 지위”를 뜻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즉 성별(聖別)하는 것, 봉헌된 것, 저주받은 것 등을 뜻하는 것이죠.
수천 년 전 고대근동의 전쟁은 모두가 신들의 대리전인 성전(聖戰)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승리에 따르는 전리품과 포로는 당연히 신의 것이었죠. 때문에 고대근동의 장수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승리한다면 전리품과 포로를 모두 신에게 바치고 자신은 전혀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용어가 헤렘, 곧 ‘전멸’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큰 전쟁 중 모든 것을 전멸시키는 헤렘이 실행되었음을 확인하는 고고학적 결과나 문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신전이나 종교적 상징물을 파괴한 기록은 풍부하지만, 실제 전쟁으로 얻은 곡식과 가축과 포로를 깡그리 없애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물자와 인력이 많이 드는 일이고, 경제적 이득은 전쟁의 기본목적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헤렘(전멸)의 맹세’는 애초부터 전쟁의 결의를 다지거나 명분을 쌓는 목적이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 속에서 이 헤렘은 많은 오해와 잘못된 적용으로 십자군 전쟁 등 추악한 종교전쟁으로 비화 되기도 했습니다, 신의 명령이라 하면서 죄책감 없이 인종 대학살을 저지르는 겁니다. 지금도 신의 명령에 따른 거룩한 전쟁, 즉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세계 곳곳에서 살육이 정당화 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가자주민들에 대한 대학살도 이런 헤렘 사상에 경도되어 있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헤렘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 기독교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도 정당화 되었습니다. 아메리카가 하나님께서 청교도들에게 준 땅이라는 것이죠.
현대의 모든 분쟁과 갈등은 종교나 이데올로기적 헤렘을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냉전시대의 모든 전쟁이 그랬고 지금 신냉전시대에 벌어지는 전쟁들이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팔레스틴에서 벌어지는 전쟁, 미얀마와 시리아, 수단에서 벌어지는 내전, 아프카니스탄과 이란에서 벌어지는 자국민에 대한 탄압, 모든 독재 국가에서 자행되는 폭력들도 이런 기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국가와 법의 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구기독교와 친미·친일·반북 이데올로기 집단이 일으키는 광기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죠. 이들이 오늘 추수감사절에 어떤 감사를 하고 있을까요? 불의로 모은 재물에 대한 감사?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부모 찬스로 자녀들을 좋은 대학, 출세길로 달리게 한 감사? 남들 밟고 눌러서 성취한 성공에 대한 감사? 이런걸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괴로움을 깔고 사는 사회에서 진정한 감사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진짜 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감사는 단지 인간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까지 닿아야 합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 속에는 어떤 분리와 차별도, 미움과 혐오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더군다나 신의 이름으로 타인, 타민족을 살상하는 일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인디언 부족 중 ‘이뤄커이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침략하기 이전부터 문명화된 다섯개의 지부족(支部族)으로 이루어진 이로쿼이 연맹을 결성하고 있었으며 프랑스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모계 사회를 이루고 있었고 만물을 존중하는 태도로 살았습니다. 이들 연맹은 지금 시대에도 놀랄만한 세련된 민주적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의회가 있었고 모두에게 평등한 참정권도 주어졌습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 추장의 해임은 여성들의 모임에 결정권이 있었다고 하죠.
미국 뉴욕주와 케나다 퀘백주에 걸쳐 살았던 이들에게는 중요정책을 결정할 때 7세대 후손을 기준으로 삼는 7세대 원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세대를 30년으로 하면 210년 후를 생각하며 정책 결정을 한다는 것이죠. 이뤄커이 연맹의 법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심지어는 동식물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의 평등을 주창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상이 미국 헌법의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무계급 사회의 개념에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민주정치 모델도 미국 헌법에 견제와 균형 원리, 참정권에 영향을 주었다고 토머스 제퍼슨이 회고록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생각과 삶을 보여주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시이며 우리가 사는 이 어지러운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같이 생각해 보시죠.
<밤과 낮을 쉬지 않고 운항하는 어머니 대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른 별에는 없는 온갖 거름을 지닌 부드러운 흙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해를 향하고 서서 빛을 변화시키는 이파리들과,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뿌리를 지닌 식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 묵묵히 서서 작은 열매들을 매달고 물결처럼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하늘을 쏘는 칼새와 새벽의 말 없는 올빼미의 날개를 지탱해 주는 공기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노래의 호흡이 되어 주고 맑은 정신을 가져다주는 바람에게.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우리의 형제자매인 야생 동물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연의 비밀과 자유와 여러 길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젖을 우리에게 나눠줍니다. 그들은 스스로 완전하며 용감하고 늘 깨어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구름과 호수와 강과 얼음산에게도. 그들은 머물렀다가도 또 여행하면서 우리 모두의 몸을 지나 소금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눈부신 빛으로 나무 둥치들과 안개를 통과해 곰과 뱀들이 잠자는 동굴을 덥혀 주고,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태양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수억의 별들,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별들을 담고 모든 힘과 생각을 초월해 있으면서 우리 안에 있는 위대한 하늘, 할아버지인 우주 공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지난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6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 사망자가 어린이 5천명을 포함하여 최소 1만2천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습니다. 3천750명은 실종상태이며 부상자도 3만명 넘었는데 이들 중 3/4이 여성과 어린이들이라고 합니다. 이 학살이 멈추기를 기도합니다.
천하 만물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이들의 마음이 널리 퍼져 모든 분쟁과 혐오가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길 소망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감사의 마음과 삶이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