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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감각 연구 /이장희
임곤택*
목 차
Ⅰ. 서론
Ⅱ. 질료와 감각-窓의 두 가지 재질과 감각
의 향방
Ⅲ. 대상과 감각
1) ‘움직이는 것’과 정지한 시선
2) ‘익숙한 것’과 ‘미적 자율성’의 확보
Ⅳ. 결론
【국문초록】
이 논문은 이장희의 시를 통해 1920년대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감각’의 양
상을 탐구하고, 이른바 ‘미적 자율성’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다.
먼저 감각 활동이 이루어지는 최초의 매개인 ‘매질(감각 기관과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을 통해 근대적 감각이 지닌 한 특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감각 주
체(혹은 기관)와 대상의 만남이라는 사태는 일반적으로 물질적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최치원의 「秋夜雨中」과 이장희의 「비오는 날」을 비교 분석
하여, ‘창호지’를 바른 창과 ‘유리’를 붙인 창의 차이에서 오는, 청각 중심과 시
각 중심의 감각적 경험이 초래한 상상력 전개와 정서적 진행을 추적하고, 근
대적 감각의 성립이 ‘물질’의 변화(근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다음으로 ‘대상’의 성격에 따라 감각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폈
다. 이장희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대상을 시의 소재로 선택한다. 새로운 도시의
풍경과 생활공간 속의 事象이 그것인데, 각각의 대상에 따라 전혀 다른 묘사
양상이 나타난다. 전자의 경우 ‘신작로’나 ‘전차’같이 근대 이후 새로 도래했거
나 정치ㆍ사회적 의미를 지닌 사물에 대해서는 불분명함을 나타내는 시어로
침울하게 묘사한다.
*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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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익숙한 대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밝은 이미지를 얻게 된다. 생활공
간 속의 사상은 오래전부터 경험해 온 것들로, 그것들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
함이 대상을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묘사하게 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대상에 따라 감각(적 재현)의 양상이 달라지는 사태는 결국 이장희가 이른
바 ‘미적 자율성’을 부분적으로 획득했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을 듯하다. 정치
ㆍ사회적 맥락과 연관된 사물과 그렇지 않은 사물에 대한 감각의 相異는, 이
장희의 감각이 그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장희는 한국 현대시의 감각이 ‘미적 자율성’의 획득으로 향하는 중간 지
점에 위치한다고 판단된다. 나아가 1920년대 한국 현대시는 근대의 ‘미적 자
율성’ 획득을 위한 중요한 체험의 시기였다는 점을 이장희를 통해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주제어 : 이장희, 1920년대, 모더니즘, 감각, 미적 자율성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01
Ⅰ. 서론
이 논문은 이장희의 시에 통하여 1920년대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근대적
‘감각’의 양상과 그 문학사적 의미를 탐구하려는 시도이다. 이 작업은 백철
이 新文學思潮史에서 이장희에 대해 “모더니즘에 가까운 感覺的인 시
를 발표한” 시인으로 평가하고 “모더니즘의 시의 특점을 감각 위에 둔다면
한국 新詩史上에 있어서 그 선구자는 김기림보다도 먼저 李章熙와 鄭芝
溶....”1) 이라고 언급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백철은 이어지는 서술에서 이장
희보다 정지용을 더 ‘감각’적인 시인으로 평가하지만, ‘모더니즘’의 특징을
‘감각’에 두고 이장희를 그 ‘선구자’의 하나로 평한 데서, 한국 현대시 초기
의 ‘감각’을 이장희를 분석해 해명할 여지를 발견하게 된다.
시에서의 ‘감각’2)에 대한 연구는 일차적으로 시어와 이미지에 대한 연구
이다. 시인이 무엇을 어떻게 느꼈던 간에 시에 묘사된 것을 통하지 않고는
살필 도리가 없으며, 그렇게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 ‘감각(했던 사실)’ 마저
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에 先在하는 주체의 경험으로 ‘감각’을 간주
하거나, 주체를 산출하는 ‘사건’으로 규정하거나 ‘감각’은 감각 기관과 대상
의 만남이라는 구체적인 사태를 통해 이루어지며, 시작품 안에서 이미지 등
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감각의 양상’을 문제 삼는 이 논문에서는
그 ‘만남’의 몇 가지 기본적인 요건을 구분하여 살피고자 한다.
첫째는 ‘감각’ 활동이 이루어지는 최초의 매개인 ‘매질’에 주목한다. 감각
1) 백철, 新文學思潮史, 신구문화사, 1968, 331면, 451면.
2) ‘감각(sensation)’은 감성이 빚어내는 내용 중 가장 초보적이고 즉자적인 것을 이른다.
특정한 감각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그것들을 모아 축적하고 선택하고 종합해가는 동
안에 우리는 ‘정서(감정)’이라는 정신적 형질을 얻게 된다. 감각은 순간적인 데 비해 정서
는 상당히 긴 시간을 계속해서 우리 속에 지속되는,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정신적 내용이
다. 따라서 감각은 주체가 느끼는 시간이 한시적이고 일과성에 그치는 반면, 정서는 상대
적으로 지속성을 그 속성으로 삼는다. (유성호, 「서정시의 제개념 : ‘감각’, ‘감정(정서)’,
‘정조’에 대하여」, 한국 현대시의 형상과 논리, 국학자료원, 1997, 483~4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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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혹은 감각 기관)와 대상의 만남이라는 사건은 일반적으로 물질적 매
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소리를 ‘듣는’ 일은 ‘공기’의 진동이라는
매개가 필요하고, 산골 아침의 맑은 공기와 산업 도시의 그것은 다를 것이
며, 결과적으로 무엇을 ‘듣는다’는 감각 인식의 내용이나 결과 역시 달라질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매질’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근대적 감각의 특성과
그 성립 조건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다음으로는 ‘대상’에 따른 ‘감각’의 양상을 추적할 것이다. 감각이라는 사
건이 발생하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의 하나는 대상의 현전이다. 대상 없이
이루어지는 ‘순수 감각’이 가능한지는 이 논문의 범위를 벗어나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대상’과 ‘감각 기관’ 어느 한쪽이 없다면, 일반적인 감
각 경험은 발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장희의 경우 묘사 대상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을 보인다. 이 논문에서는 대상에 따른 이장희의 감각을 추적하
여, 궁극적으로 그의 감각을 이른바 ‘미적 자율성’의 문제와 관련시켜 해석
해보고자 한다.
본론 Ⅲ장에서 더 언급하겠지만, 미적 자율성이 “다른 영역과 변별되는
자신을 명명하려는 자의식”3)이며 “문학의 미적 자율성은 문학이 미적인 존
재로서의 자기 지시적 독자성을 획득한 상태를 의미“4)한다면, 시문학의 경
우 자기 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는 자질의 하나로 ‘감각’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장희의 감각을 규명하는데 시대 상황을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참조한다. 하지만 그것을 중심으로 감각의 특성을 규명하려 할 때, ‘식민지
상황이 초래한 감각의 침울함’과 같은 사실상 분석이 필요하지 않은 결론으
로 환원될 우려가 있다. 이른바 ‘현실’의 영향을 참조하되, 감각이라는 사건
3) 이광호, 미적 근대성과 한국문학사, 민음사, 2001, 30면.
4) 윤의섭, 「근대시의 미적 자율성 형성 과정 연구」, 시학연구 , 한국시학회, 2012, 27
7~279면.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03
의 가장 기초적 조건들에 초점을 맞춰 이장희의 감각을 살피고자 한다.
이장희의 시들은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과 상징적 수법으로 자연과 사물
을 관조하고 감각의 미를 탐색’5)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감각’에 방점을 두
는 이러한 평가는 여러 논자들에게 공유된 것6)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
의 시들은 30년대 한국현대시가 모더니즘, 혹은 기교파라고 불리는 시운동
으로 가는 한 분수령7)으로서의 시사적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8) 이장희의
시를 분석함으로써 그의 개인적 특질뿐 아니라, 한국시문학사의 관점에서
1920년대 ‘감각’에 대한 이해의 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9)
Ⅱ. 窓의 두 가지 재질과 감각의 향방
窓은 근대에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전에도 창은 존재했으며 그
5) 최동호 외 엮음,『문학과지성 한국문학전집 -1900-2000, 시』, (주)문학과지성사,
2007, 82면.
6) 이러한 평가는, ‘양주동, 「落月哀想」, 조선일보, 1929, 11. 17~24.; 오상순, 「고월 이장
희군-自決七週期를 際하여」, 동아일보, 1935. 12.5.; 백기만,「상화와 고월의 회상」,
상화와 고월, 1951. 9.; 조연현, 한국현대문학사, 현대문학사, 1956.; 오탁번, 「고월시
의 양면」, 어문논집, 고려대 국어국문학연구회, 1973. 14,15집 합본.; 김인환,「주관의
명징성 -이장희론」, 문학사상, 1973. 7.; 김학동, 「사계의 감각과 그 회화성」, 한국근
대시인연구, 일조각, 1974.; 이기철, 「이장희 연구」, 인문연구 6호, 영남대학교 인문과
학연구소. 1984.; 한영옥, 「이장희의 시, 삶을 일으키는 상상력」, 한국현대시의 의식탐
구, 새미, 1999.; 이창민, 「낭만성과 환상성의 교차-이장희론」, 현대시와 판타지, 고려
대학교출판부, 2008.; 최호영, 「이장희 시에 나타난 ‘우울’의 미학과 모성적 정치성」, 한
국시학연구 32집, 한국시학회, 2011.
7) 오탁번, 위의 논문, 216면.
8) 이러한 평가는 앞서 언급한 백철에게서 시작된다. (백철, 앞의 책, 331면, 451면)
9) 기존의 연구들은 이장희의 출생ㆍ성장 배경과 관련한 전기적 분석이 주로 수행되었다.
(양주동, 앞의 논문 ; 백기만, 앞의 논문 ; 김재홍, 「이장희 평전」,『이장희』, 문학세계
사, 1982.; 김영진, 「시인 이장희군을 추억하여」 김재홍과 같은 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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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가진 속성, 즉 내부와 외부 세계의 단절이자 소통의 매개라는 자질은,
시기에 관계없이 여러 문학작품에서 그것을 모티프로 차용하게 하였다고
생각된다. 시가 쓰여지는 한 바탕이 자아와 세계, 내면과 외부와의 균열이
라는 점을 생각할 때, 열어주면서 가로막는 창의 속성은 외부에 대한 내면
의 자의식을 예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소재이자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장에서는 ‘창’의 재질과 ‘감각’의 상관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정 대상의 감각적 경험은 그 매질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예컨대 과
거의 창이 ‘창호지’ 등 종이를 붙인 것으로서 빛의 투과는 불투명했으며, 시
각보다는 청각에 의한 외부 경험에 더 익숙하게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반
면, 근대의 유리창은 좀 더 투명한 시야를 제공한다. 유리창도 소리를 전달
하지만 바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청각보다는 시각적 매개의 역할
을 한다. 청각을 통해 획득한 정보보다 직접 본 것을 더 신뢰하는 일은 상식
적이며, 창을 통해 들은(들린)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려는 상황 역시
흔하다.
창을 통해 ‘들은’ 세계와 ‘본’ 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나아가 각
각의 경험에서 촉발된 상상력의 전개와 정서 역시 일정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최치원의 「秋夜雨中」과 이장희의 「비오는 날」을 비교하여 이를 확인
하고자 한다.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구나.
창 밖엔 한밤중, 비가 내리고 등불 앞 내마음, 만리를 달리네.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秋夜雨中」 전문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05
쓸쓸한 情緖는
카-텐을 잡아 늘이며
窓넘어 비소리를 듣고 있더니
불현듯 도까비의 걸음걸이로
몽롱한 雨景에 비틀거리며
뜰에핀 鮮紅의 진달래꽃을
함부로 뜯어 입에 물고
다시 머-ㄴ 버드나무를 안고돌아라
-「비오는 날」 전문
최치원의 「秋夜雨中」은 이장희의 「비오는 날」과 최소한 1,000년 이상의
차이를 두고 창작된 것인데, 두 시의 정황은 매우 유사한다. 먼저 시의 착상
은 ‘바람과 빗소리’이며 그것은 ‘창’을 통해 전달된다. 창은 방안과 바깥의
청각적 매개이자, 특정 정서의 계기로 작용한다.
먼저 두 시에 드러나는 화자의 정서는 모두 ‘쓸쓸함’이다. 방에 혼자 있는
사람이 가을바람 소리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절로 쓸쓸
한 마음이 들 법하다. 그러나 이 쓸쓸함의 구체적인 내용과 시적 전개의 양
상은 전혀 다르다. 먼저 최치원의 경우는 ‘世路少知音’이란 표현을 통해 그
의 쓸쓸함이 공동체적 관계망에서 벗어나 있음에 기인하며, 友情을 거쳐
鄕愁로 향함으로써 쓸쓸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진행은 물론 전통 사회의 시문학이 지니고 있던 이른바 ‘思無邪’
의 시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시가 미적 향유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精神’이라고 표현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담지하여야
한다는 생각인데, 최치원의 작품뿐 아니라 근대 이전 문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진행을 ‘감각’이라는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여 본다면, ‘청
각’을 통한 지각이 「秋夜雨中」의 화자의 정서와 상상력의 전개를 어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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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한정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과거의 창은 대부분 ‘창호지’ 등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다. 창을 통해 ‘듣는’ 일은 가능했지만, 굳이 창을 열지 않으
면 대상을 직접 ‘보는’ 일은 어려웠던 것이다. 이는 대상의 경험 가능성을
‘청각’으로 한정시키고, 이 (감각적) 인식의 단편성은 감각 대상에의 다양한
접근과 관찰을 제한하여, 개별적 구체적 대상 인식이 아니라 관습화된 상상
력의 전개를 초래하는 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청각을 통해 감각한 대상을, 시각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상식적 상황에
대해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 상식적인 욕망이 창호지를 바른 창에서는 실
행되기 어렵고, 최치원의 경우 그가 독서 중이었다는 정황까지 겹치며 그의
내면은 보편적 관념으로 향해갔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이장희
에게서는 감각이 개인적 이고 폐쇄적인 상태로 수렴하는 상황을 볼 수 있
다. 이는 청각이 유리창을 통해 시각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일치한다.
「비오는 날」 역시 시가 착상되는 계기는 청각이다. “窓넘어 비소리를 듣
고 있”었다는 진술로 알 수 있는데, 이장희의 경우 최초의 감각(청각)이 끝
까지 관철되지 않는다. 그의 감각은 명백히 시각으로 전환하는데, 빗소리를
“듣고 있더니” 잠시 뒤 “뜰에핀 鮮紅의 진달래꽃”으로 화자의 감각이 향한
다. ‘듣는’ 일에서 ‘보는’ 일로 대상 파악과 시적 재현의 지평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일차적으로 화자가 마주한 창이 유리로 된 것이기에
가능했다고 판단된다. 「비오는 날」의 창이 ‘유리창’이라는 정황은 ‘카-텐’이
라는 시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빗소리에 쓸쓸함을 느낀 화자는 “몽롱한 雨景”에 비틀거리며 “뜰에 핀
鮮紅의 진달래꽃”으로 향해 간다. 그는 진달래꽃을 “함부로 뜯어 입에 문
다”고 진술하는데, 화자가 실제로 한 행동이기보다는 “몽롱”이라고 표현한
어떤 몽상의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 분명한 것은 화자의 (몽
상적) 행위가 “雨景”이라고 표현된 ‘시각적’ 배경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이다.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07
빗소리를 ‘듣는’ 일에서 ‘시각적 몽상’으로 전환하는 계기는 “카-텐을 잡
아 늘이며”에서 드러나는 대로 방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거나, 최소한 보았
던 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일이다. 이어지는 ‘머-ㄴ 버드나무를 안고’ 돈
다는 진술 역시 ‘몽롱’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머-ㄴ
버드나무”는 “뜰에 핀 鮮紅의 진달래꽃”과 함께 “雨景”을 이룬다는 점에서
대상을 시각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몽상적)
행위들은 “비소리를 듣고 있”던 상황에서 “카-텐을 잡아 늘이며” 바깥을
‘보거나 보았던 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일’로 전환하는 과정에 동반된다.
이장희의 화자는 무엇인가를 “안”으려 한다는 점에서 “쓸쓸한 情緖”로부
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현 가능성이나, 꼭 실
현해야 할 의지는 찾을 수 없다. 그는 ‘창’밖을 보거나, 본 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며, 쓸쓸함을 ‘몽롱’ 상태에서 해소한다. 정리하자면 「비오는 날」은
‘빗소리’를 듣는 청각적 포착에서 ‘雨景’의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되며, 단절
감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은 ‘몽롱’의 상태에서 폐쇄적이고 자위적인 방식으
로 해소되는 것이다.
이장희의 시에서는 ‘창, 빗소리’라는 물질적 요소와 ‘쓸쓸함’ 등의 관념적
요소가 최치원의 「秋夜雨中」과 유사하게 나타나지만, 그 정서적 지향은 지
극히 개인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점에서 최치원의 그것과 대비된다. 이 논문
에서 주목하는 것은, 최치원이 ‘청각’에서 그 감각 경험이 멈추었다면, 이장
희는 ‘청각’에서 ‘시각’으로 감각의 영역이 확대되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청각’에만 제한된 감각이 가진 대상 파악의 단편성과 ‘시각’을 통한
좀 더 구체적인 경험의 가능성은, 정서와 상상력 진행의 차이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최치원의 ‘감각’과 시적 전개가 ‘창’의 재질이 초래한 것으로만 생각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최치원 한 사람으로 근대 이전의 감각을 일반화하
는 일도 상당한 한계를 지닌다. 근대의 감각을 그 매질과의 영향 관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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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서 예각화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최치원의 시를 비교 분석하였는데,
이 논문이 주목한 것은 창의 재질의 상이로부터 각기 다른 감각이 촉발되
며, ‘시각 중심’이라는 근대 감각의 한 특성이 감각 경험의 매개(혹은 매질)
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창’의 재질은 외부 세계에 대한 감각
적 경험 양태의 차이를 결과할 수 있으며, 근대의 이른바 ‘시각 중심’ 경험
과 재현10)은 근대세계의 물질적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대상과 감각
‘감각’은 감각 주체와 대상 사이의 ‘매질’과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대상 자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근대 초기 낯선 事象의 등장은 기존의
감각적 인식 체계로는 적절히 경험하거나 묘사하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
다. “개인의 감각적 경험과 이를 통한 세계 인식이 당대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11)으며 “대상은 몸의 실존적 상황을
통해서 지각되는 것”12)이라면, 일정 기간 안정된(고정된) 사회ㆍ정치적 환
경에서 형성된 감각 체계(혹은 생육된 몸)는, 그것이 구성되는 동안 부재했
던 새로운 대상과의 접촉에 적절히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10) 근대성의 성립과 시각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으로 간주된다. ‘보는 것’과 ‘(눈으로) 읽
는 것’을 통해서 근대적인 인식과 주체가 구성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인데, 그 매개/
메커니즘의 한 이유는 보는 주체의/보는 행위의 ‘고립’적 특성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
다. 보여주고 보는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을 시각장이라고 할 때, 그것은 개인을 고립된
단자이자 시선의 주체로 만드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천정환, 「관음증과 재현의
윤리」, 사회와 역사 81집, 한국사회사학회, 2009, 38~40면)
11) 오세인, 「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도시 인식과 감각의 연구」, 고려대대학원 박사학위논
문, 2012, 5면.
12) 메를로 퐁티, 김화자 옮김,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책세상, 2005, 1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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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상과 그것이 경험하지 못한 기존의 감각 체계 사이, 나아가 그
대상의 詩化에는 어떤 균열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장희의 경우도, 익
숙한 대상과 새롭게 도래한 사물들에 대한 감각적 경험 양상이 각각 다르
게 나타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번 장에서는 대상에 따라 감각적 재현
양상이 다른 사실을 규명하고 그것을 ‘미적 자율성’과 연관하여 실펴보고자
한다.
1) ‘움직이는 것’과 정지한 시선
이장희의 도시 묘사에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는 ‘電車(혹은, 汽車)’이다.
‘기차만큼 매혹적으로, 동시에 위압적으로 근대문명을 증거하는 것은 없
다’13)고 평가될 만큼 전차는 개화와 근대를 대표하는 사물중 하나로 불릴
만하다. 그것은 단순히 ‘탈 것’이라는 실용적 의미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표
상이자, 그 도래를 체감하게 하는 문화적 기호였던 셈이다.
예를 들어 전차는 기존에 보았던 탈 것, 예컨대 말과 유사하지만 말은 이
미 자연의 일부이기도 했다. 馬車나 수레 역시 매우 익숙한 것이며, 특히
오랜 기간 존재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생활 세계의 일부로 여겨졌음에 틀림
없다. 이번 절에서는 전차가 모티프인 작품을 통해 이장희의 ‘감각’의 일단
을 살피고자 한다.
큰 거리는 저물은 연긔에 저저 動靜이 몽롱하고
녹설은 무쇠가튼 鈍重한 냄새가 잠겨 흐른다
그러나 가다가는 알는 소리 은은한 電車가 물오른 풀입가튼 뾰죽한 神經
을 들어내고
13) 권보드레, 한국근대소설의 기원, 소명출판, 2000, 292면. 電車와 汽車는 도시 내부의
것과 넓은 지역을 움직이는 것으로 서로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근대의 도래와 함
께 들어온 이른바 근대적 사물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파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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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안인 푸른꽃을 虛空에 날니기도한다
길바닥은 얼어서 죽은 구렁이가티 뻐드러젔고
그우를 새찬 바람이 돗을 달고 다르나면
야릇한 군소리가 눈물에 떨어 그윽히 들닌다
잘 지절대고 하이카라인 재비의 幽靈이
불눅한 검증 外套를 휘감고 비털거리는 사이에 잇서서
흐린 銀ㅅ결가티 희수름한 옷 그림자가 고요히 움즉인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넘으로 피ㅅ줄 선 눈알가티 붉으레함은
마즈막으로 넘어가는 날볏의 얼굴이 숨어 잇슴이라
이들 눈에 모든 것이 저마다 김을 뿜어서
그는 幻燈의 映寫幕이며 沈鬱한 떼ㅅ산을 보는듯하다
-「겨울의 暮景 -都會詩篇」 전문
‘都會詩篇’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어느 겨울 해질녘의 묘사로 이
루어져 있다. ‘겨울, 暮景, 都會’라는 제목과 부제가 어느 정도 예고하고 있
듯이, 도시화ㆍ자본주의화가 진행중인 경성의 풍경을 포착하고 있다. 여섯
개의 비교적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시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교차하며 ‘電車’가 다니는 ‘큰 거리’를 그린다. 이장희의 시에
도회가 배경으로 설정된 경우는 비교적 흔한데, 대구 출신인 그가 경성에
주로 거주했다는 전기적 사실 외에, 도회적 事象이 시창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였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큰 거리”는 단순히 ‘넓은 길’을 의미하지 않는다. 1910년경부터 일제가
건설ㆍ개수한 ‘新作路’라는 이름의 도로가 경성에 건설되14)었는데, 자동차
나 전차가 다닐 수 있는 규모의 ‘신작로’는 그 자체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느끼게 하는 낯선 풍물이었을 것이다. 큰 거리는 화
자가 그것을 따라 걷고 있다는 점에서 감각적 경험의 변화를 촉발하고 이
14) 손정목, 일제강점기 도시사회상연구, 일지사, 1996, 312~320면.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11
끄는 계기로 작동한다. 그는 일차적으로 전차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지만
그의 시선은 전차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전차에 대해서는 단지 ‘움직인다’
는 표면적 사실만을 읽을 뿐, 여타의 ‘움직이는’ 것들로 시선을 옮긴다.
큰거리와 전차에서 시작된 화자의 시선은 ‘바람, 재비, 날볏의 얼굴〔지
고 있는 해〕’ 등으로 옮겨가고, 그 묘사를 마무리하는 용언은 ‘흐른다, 다르
나면, 날리기도 한다, 움즉인다’ 등이다. 전차가 지닌 여러 형상과 속성 중에
화자에게 포착된 것은 유독 ‘움직인다’는 물리적 현상이고 이것을 매개로
여타의 ‘움직이는 대상들’에게로 화자의 시선이 이동하는 것이다. 화자는
전차를 더 관찰하거나 그것이 달리는(움직이는)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예전부터 보아왔던 익숙한 사물들을 ‘움직인다’는 동일성을
매개로 나열한다. ‘움직임’은 ‘전차’의 것이면서 동시에 ‘바람, 재비’ 등의 것
이고, ‘전차’라는 ‘낯선 것’에서 예전부터 보아왔던 ‘낯익은 것’으로의 시각
이동을 일으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의 시각은 새로 도래한 ‘낯선 것’에 오
래 머물지 않는다. ‘낯익은 것’으로의 이동을 통해, 다시 말해 ‘낯익은 것’을
중심으로 시를 완성시킨다.
그의 시선 변화는 ‘낯선 것→낯익은 것’이지만, 그 매개와 계기가 ‘움직인
다’는 사실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가 포착한 것은 유독 ‘움직인
다’는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시의
내용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단지 ‘과거부터 보아왔던 것, 낯익은 것’으로
화자의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이장희에게 전차는 공간이동의 지표이자 동시에 어떤 시간적 변화의 상징
으로 ‘감각’되었다는 사실을 추측하게 된다. 시간의 변화상에 대한 구체적
인 이해를 거부하는(혹은 하지 못하는) 화자의 새롭게 도래한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인상이나 의미를 파악하는 차원까지 나아가지 않고, 더 이상의 판
단을 중지한 것이다. 그에게 새로운 풍경이나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는 단지
‘어렴풋하게’ 감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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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또 하나의 눈에 띄는 특징은 묘사의 불투명함이다. 「겨울의
暮景 -都會詩篇」은 다양한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것들은 매우 불
투명하다. 분명한 상을 떠오르게 할 만큼 구체적이지 못한데다 시인의 모호
한 설명이 끼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몽롱, 둔중한, 은은한, 야릇한, 그윽히,
희수름한” 등 불확실한 상태를 나타내는 관념어들이 부가됨으로써 「겨울의
暮景 -都會詩篇」의 장면들은 모호하고 흐릿하다. 앞서 분석한 대로 대상
에 대한 분명한 이해나 그것이 놓인 맥락 속에서의 총체적 파악 없이 진행
되는 묘사는 분명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어렴풋이 설명하는 쪽이 된 것이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는 마지막 행의 “沈鬱”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
다. 도시에 등장한 새로운 사물은 이전의 것들과 함께, 나아가 화자와 함께
견고한 전체를 구성하지 못하고 ‘어렴풋하게’ 감각되며 그 ‘변화’로부터 물
러난 화자의 정서는 ‘침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차와 같은 근대적 사물
을 어렴풋이 감각하고 침울한 정서에 잠기는 경향은 다음 시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끔찍한 行列이로다
軍隊도아니오 旅商도아니오 코끼리도아니오
꿈같이솟구은피라밋트넘으로
기달은形象이움직이도다
아아어스름달아래
그는쓸쓸한光榮의물결이런가
물결은물결을쫓으며끝없이움직이도다
이全景에흐르는情調
야릇한情調에잠기게하여라
幻想의帆船을띄우게하여라
沙上의바람은끊이지않고
멀리로서海潮의울음소리들리어라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13
-「沙上」, 전문
이 시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전차를 모티프로 시작된 시선의 이동과 상상
력의 전개다. 전차에서 帆船으로 이어지는 「沙上」의 구성은 앞서 분석한
「겨울의 暮景 -都會詩篇」과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움직이는 것
에 대한 착목, 다양한 감각의 교차, 직접적인 감정 노출 등이 그것이다. 특
히 ‘꿈같이, 어스름, 야릇한, 환상의’ 등의 시어는 대상에 대한 불확실한 인
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沙上」을 「겨울의 暮景 -都會詩篇」와 함께 분석
할 여지를 준다.
“꿈같이” 세워진 피라미드 너머 길다랗게 움직이는 것은 “끔찍한行列”이
며 끝없는 물결이다. ‘行列’의 정체는 ‘길다란 형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묘사를 통해 일차적으로 ‘電車’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전차의 행렬을 보
고는 ‘끔찍하다’고 느낀다. ‘끔찍하다’는 ‘(사건이나 상황이) 참혹하거나 무
섭거나 싫거나 하여 진저리가 날 정도, 양이나 수가 크거나 많거나 하여 몹
시 놀라울 정도’15)를 나타내는 형용사다. 시어가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지
시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최소한 무언가 익숙한 한계를 넘어선 대상에 대
해 느끼는 감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화자가 왜 끔찍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서는 이후 세 번 반복되는 “-도아니오”와 두 번 반복되는 “움직이도다”로
확인할 수 있다.
목전의 대상들에 대해 화자는 ‘軍隊, 旅商, 코끼리’ 등 ‘行列’로 연상될
수 있는 몇 가지 사물들을 나열하고는 “-도아니오”라는 서술로 그것들을
모두 부정하고 “움직이도다”라는 영탄조의 토로를 반복한다. 그 ‘行列’은
화자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거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대면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알 수 없거나 알고 싶지 않은
15) 고려대한국어 대사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09, 106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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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끔찍한’ 느낌의 실체이며, 역설적으로 ‘전차’라는 대상을 향한 화자
의 난감함과 거부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길다랗게 움직이는 물건’은 ‘연속된 흐름’이라는 연쇄로 이어진다. 물결
은 물결을 이끌며 “끝없이 움직”인다. 그에게 끝없는 물결은 “쓸쓸한 光榮”
의 물결이다. 무엇인가 새롭게, 그것도 전차와 같이 놀라운 모습으로 도래
한 것은 ‘光榮’일 수 있지만, 그 새로움과 변화는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쓸쓸”한 것이다. 「겨울의 暮景 -都會詩篇」에서 보았던 ‘침울’이 「沙上」에
서는 ‘쓸쓸함’으로 나타난다.
이장희는 새로 도래한 것에 대해 주로 시각을 통한 어렴풋한 감각을 보
여준다. 그것들은 ‘움직임’이나 ‘변화’라는 인상만을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
다. 새로운 정치ㆍ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거기서 초래된 낯선 사물의 등장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그의 정서는 ‘침울, 쓸쓸함’이었다. 반면, 생활공
간에 가까이 있거나 오래 보아왔기에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묘사는 매우
구체적이다. 널리 알려진 「봄은 고양이로다」와 맑고 투명한 감각이 두드러
진 「夏日小景」의 경우가 그렇다. 다음 절에서는 가깝고 낯익은 것에서 확
보되는 감각의 구체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익숙한 대상과 ‘미적 자율성’의 확보
잘 알려진 대로, 예술의 근대화는 정치나 종교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해가
는 과정으로 이해되곤 한다. 근대의 핵심적인 특징은 “포괄적인 전체 사회
가 정치, 경제, 예술 등 수많은 개별 영역으로 분화하는 것”이며, 예술이 정
치나 종교의 하부가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독립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보편
성을 강력하게 내세우며 또한 세계를 예술적으로 통일하려”16)는 데 있다.
근대에 있어 예술이 여타 분야와 가지는 관계를 ‘미적 자율성’이라는 용
16) 최문규, 「근대의 예술과 종교, 그 가깝고도 먼 관계」, 유심, 2005년 겨울호.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15
어로 포괄할 때, 그것은 시의 경우 감각이 중시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
다. ‘미’가 정치나 종교, 여타 제도로부터 독자성을 획득하는 데, 언어가 거
머쥔 정신, 혹은 이데올로기적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감각’이 부각된다는
점에서이다. “현대에 있어서 또는 서구의 현대 문학에 의하여 자극된 문학
에서 감각적 현실은 문학의 출발점이요 기본이라고 할 수 있”17)고 그 ‘감각
적 현실’은 시에 있어서, 대상의 감각적 포착과 묘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
다.
「夏日小景」이나 「봄은 고양이로다」 등은 앞서 분석한 시들과 달리 설명
이나 관념이 개입되지 않거나 최소화되어 있다. 대상이 생활공간 가까이에
있으며 과거부터 익숙한 것이어서 그것을 ‘새롭게’ 파악해야 할 필요가 없
기 때문이다.
雲母가티 빗나는 서늘한 테-블.
부드러운 얼음, 설당, 牛乳
피보다 무르녹은 딸기를 담은 琉璃盞.
얇은 옷을 입은 저윽히 고달핀 새악시는
길음한 속눈썹을 까라매치며
간열핀 손에 들은 銀사실로
琉璃盞의 살찐 딸기를 뿌시노라면
淡紅色의 淸凉劑가 꼿물같이 흔들닌다.
銀사실에 옴기인 꼿물은
새악시의 고요한 입술을 앵도보다 곱게도 물들인다.
새악시는 달콤한 꿈을 마시는 듯
그얼골은 푸른 입사귀가티 빗나고
코ㅅ마루의 水銀가튼 땀은 발서 사라젓다.
그것은 밝은 한울을 비최인 적은 못가운대서
17) 김우창, 「감각, 이성, 정신」,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5,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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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가티 피여난 蓮꼿의 이슬을
휘염치는 白鳥가 삼키는듯하다.
-「夏日小景」 전문
이장희의 시에서 관념 노출이 보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선명한 묘사로 이
루어진 시들은 묘사 대상이 변화와는 무관한, 흔히 ‘현실’이라고 부르는 정
치ㆍ사회적이며 역사적인 맥락과 무관한 것들이다. 「夏日小景」의 경우 주
요 묘사 대상은 ‘테-블, 유리잔, 딸기’ 등 일상적인 생활공간 내에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고 선명한 것은 그것들이 익숙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夏日小景」은 여름날의 광경을 스케치하듯 묘사하고 있는데, 다양한 이
미지가 펼쳐지지만 중심은 ‘백색, 은색, 투명함’이다. “雲母 얼음, 설당, 牛
乳, 琉璃盞. 銀사실, 水銀, 이슬, 白鳥”와 같은 시어들이 모두 흰색, 은색이
거나 빛이 투과하는 것들이다. 딸기나 앵두 같은 붉은색 이미지가 끼어있지
만 그 역시 ‘淡紅色’으로 묘사되며 ‘淸凉劑’나 ‘유리잔’과 연결되고 있다.
‘새악시(의 얼굴)’를 중심으로 묘사되는 「夏日小景」은 테이블에 놓인 유
리잔에 딸기가 담겨 있고, 새악시가 그것을 부수어 먹는 짧은 과정을 포착
한 이 시는 어떠한 외부적 정황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단지 그 대상의 감각
적 형상화로 시 한 편 전체가 채워져 있는데, 이러한 외부적 ‘배경’으로부터
의 절연이 이 작품의 묘사를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된다.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봄은 고양이로다」도 유사하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17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봄은 고양이로다」 전문
「봄은 고양이로다」는 밝고 투명한 이미지들을 통한 구체적인 묘사가 중
심을 이루고 있다. 화자의 직접적인 감정 개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시의 풍경을 재현한 작품군과는 대조를 보인다. 이장희의 대표작으로 꼽
히는 이 작품은 대상을 설명하려는 노력 없이 목전의 事象을 ‘보이는 대로
(인 것처럼)’ 그리고 있을 뿐이다. ‘침울’이나 ‘쓸쓸함’의 정서도 들어 있지
않다.
이 작품은 고양이를 ‘고운 봄, 미친 봄, 포근한 봄, 푸른 봄’에 비겨 묘사하
는 데, ‘봄’과 ‘고양이’는 매우 익숙한 것이다. ‘부드러운, 고요히, 포근한, 날
카롭게’와 같이 모호해질 수 있는 표현들은 ‘꽃가루, 금방울’ 등의 비교적
구체적인 사물과, ‘털, 눈, 입술, 수염’ 등 친근한 신체와 직유로 연결되면서
선명한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 왜 이장희는 생활공간에 있는 事象
이나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선명한 이미지를 얻게 되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대상의 성격 문제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신작로, 전차’
등 일제 강점과 함께 새로 등장한, 정치ㆍ사회적 의미망 속에 놓여 있는 대
상에 대해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이성적 노력을 중지한 이장희의 화자는
불확실함을 나타내는 시어와 함께, 대상에의 소외에서 결과한 ‘침울’의 정
서를 노출하였다. 반면 생활공간에 있는 事象은 이장희에게 매우 익숙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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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편안함과 어떤 안정감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이성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학습되어 온, 따라서 안정된 감
각 체계 내에서 대상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상에 따라 감각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단지 감각적 재현의 문제
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그 대상이 가진 정치ㆍ사회적 성격, 혹은 그것이
놓인 현실의 맥락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이장희는 식민지 근대화라
는 상황에 대한 (무)의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미적 형상화 역시 그로
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의미로도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
예술의 근대화는 ‘미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과정이었으며, 한국 시문학에
있어서 ‘감각’을 한 지표로 삼을 수 있다면, 이장희의 경우는 ‘미적 자율성’
을 부분적으로 획득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부분적’이란 한정은 ‘묘
사 대상’의 정치ㆍ사회적 성격과 그것의 감각적 형상화가 밀접하게 관계 맺
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아가 1920년대의 한국 현대시의 ‘감각’이 ‘미적
자율성’을 완전한 확보하지 못했으며 그 완성을 향한 과정에 있었다는 부분
적인 증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Ⅳ. 결론
‘근대, 모더니즘, 감각’은 매우 익숙한 개념어들이며 한국 현대시 연구에
중요한 시각을 제공해왔다. 그것들이 한국 현대시사에 가지는 영향에 대해
서는 적잖은 연구가 축적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연구는 근대 초기, 모더니
즘의 선구자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이장희를 통해서 감각의 구체적인 양
상에 대해 살피고, 한국현대시사 전체 맥락에서 그때의 감각이 이른바 ‘미
적 자율성’ 확보 과정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살폈다.
이를 위해서 먼저 ‘감각’이 감각 대상과 주체(혹은 감각 기관)의 만남이라
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19
는 사태에 집중하여, 감각의 매질과 대상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기본적으
로 감각은 대상과 주체 사이의 매질에 영향 받는다는데 착안하여, ‘창’이 등
장하는 최치원과 이장희의 시를 비교 분석하였다. 근대 이전의 ‘창’은 창호
지 등을 붙인 것으로 시각보다는 청각에 의지한 감각을 촉발하였으며, 근대
이후 ‘유리창’이 일반화된 뒤로는 시각을 중심으로 한 감각이 ‘창’을 중심으
로 일으키는 상황을 살폈다. ‘감각’은 그 매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이루어진 물질적 변화(혹은 발전)이 근대 ‘감각’의
형성에 적지 않은 역할을 미쳤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대상에 따른 감각의 양상인데, 이장희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대상을 시의 소재로 선택했다. 도시의 풍경과 생활공간의 事象이 그것인데,
전자의 경우 수백 년 동안 관습적으로 유지되었던 감각 체계는 ‘신작로’나
‘전차’와 같이 새로 도래한 사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을 것이
다. 그는 목전의 대상을 불분명한 시어를 통해 침울하게 묘사하게 된다. 이
는 현실과 무관한 생활공간의 대상 묘사가 구체적이고 선명한 것과 대비된
다. 생활공간의 事象은 현실의 변화와 무관한 것들이었으며, 오랫동안 공
유되고 학습되어 온, 따라서 안정된 감각 체계 내에서 대상을 경험하고 재
현할 수 있었다. 이장희는 좀 더 밝은 태도로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에서 인용했던 대로 이장희는 한국현대시의 ‘모더니즘, 감각’의 선두
중 한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의 감각은 시각을 중심으로 한 묘사가 많
으며, 이른바 ‘현실’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에
각각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감각이 한국 모더니즘의 한 지표로서 ‘미적 자율
성’의 확보와 연결된다면, 이장희는 그것을 부분적으로만 획득했다고 판단
된다. 아울러 1920년대 한국 현대시는 근대의 ‘미적 자율성’ 획득을 위한 중
요한 체험의 시기였다는 점을 이장희를 통해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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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시의 감각 연구 521
A study on ‘sense’ in Korean modern poetries in 1920s
-through Lee Jang-hui’s poetry-
Lim, Kon-taek*
18)
This study is to survey whether and how Lee Jang-Hee and Korean poetry of 1920s
achieve the ‘aesthetic autonomy’, through the aspect of their ‘senation’. Firstly we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sensation according to medium which lied
between the sense organ and the objects, with analyzing Choi Chi-Won’s 「秋夜雨中」 and
Lee’s 「비오는 날」 and concluded the modern sense was related with the material of
sensation. It’s the difference from the material of the window.
the sensation is varied on the objects. Lee selected two kind of objects. the one was
that of modern city, and the other was that in living space. With the former Lee described
the objects unclearly and gloomly. But in case of the objects in living space he described
concretely and brightly. It’s because the sensational system of Lee was activated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objects, especially the politicalㆍsocial meaning of that objects.
Lee could be estimated that he achieved the ‘aesthetic autonomy’ partially. And we
conclude the korean poets in 1920s was a mediate step to ‘aesthetic autonomy’.
Key words : Lee Jang-hui, 1920s, modernism, sense, aesthetic autonomy
이 논문은 2012년 9월 10일 투고 완료되어
2012년 9월 1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를 하고
2012년 10월 24일까지 심사위원 및 편집위원 회의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