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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골프 투어 에세이<4> 웬트워스 | |
최고의 골프 라이터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버나드 다윈은 이미 100년 전 ‘골퍼에게 가장 적합하지 않은 기질은 시인적 기질’이라고 썼다. 수긍이 간다. 골프는 스포츠이며,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승자를 가리는 게임이다. 골프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하고 명예의 게임이라고도 하지만 감상에 젖고, 경쟁자를 동정하는 등의 기질은 골프에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버나드 다윈은 영국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4강에 올랐던 수준급 골퍼이며 무엇보다'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의 손자다. 할아버지의 유전자는 그가 좋아한 골프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을 끌어들였다. 런던 인근의 웬트워스 골프장엔 버나드 다윈의 분위기가 배어 있다. 비와 바람, 시와 감상, 클래식과 권위 같은 영국 전통 코스의 가치를 웬트워스는 따라가지 않는다. 웬트워스는 다른 명문 프라이빗 클럽처럼 회원이 되기가 어렵지 않다. 큰 결격 사유가 없으면 회원이 될 수 있다. 물론 비싼 돈을 내야 한다. 이른바 뉴스쿨이다. 사실상 수익사업인 해외 회원도 3000명이나 두고 있다. 웬트워스는 현대적인 성공을 원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웬트워스를 원한다. 중세의 성 모양인 웬트워스 클럽하우스 앞은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로 북적거린다. “성공의 상징, 최고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 웬트워스다.” 자칭 세계 최고의 클럽 매니저인 스메일씨의 말이다. 그는 한국에서 온 기자를 의식해서인지 클럽 하우스에 걸린 대형 삼성 TV를 가리키며 “이 클럽 하우스엔 삼성 TV처럼 최고의 제품만 있다”고도 했다. 그가 자랑을 할 때는 침이 좀 튀었다. 영국의 일반 골퍼들은 ‘웬트워스에서 라운드하는 것은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정벌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푸념한다. 웬트워스에서 가장 오래된 웨스트 코스의 성수기 비회원 그린피는 285파운드, 한국돈으로 56만원 정도다. “우린 그럴 가치가 있다”고 스메일씨는 말했다. 최고의 골퍼들이 이 코스에 발자취를 남겼다. 벤 호건부터 샘 스니드, 잭 니클로스, 타이거 우즈까지 이 코스에서 우승했다. “우리 클럽의 프로골퍼 회원이 누구냐면, 세계 랭킹 3위 어니 엘스하고 US오픈에서 두 번 우승한 레티프 구센 모르진 않겠지? 유러피언 투어 일곱 차례 상금왕인 콜린 몽고메리, 메이저 6승을 한 닉 팔도, 골프의 진정한 천재 세베 바예스트로스! 골프의 신화 개리 플레이어, 라이더컵 유럽 주장으로 역대 최고의 대승을 거둔 베른하르트 랑거, 타이거 우즈 사냥꾼인 토마스 비욘….” 스메일씨가 열을 올렸다. “프로골퍼 아닌 사람은 축구선수 솁첸코,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에 휴 그랜트, 런던 웨스트엔드의 대뮤지컬 제작자인…” 웬트워스에선 유명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유명하지 않은 것 같다. 타이거 우즈가 이곳에서 경기해 예선 탈락한 후 테니스를 했는데 아무도 그를 쳐다보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성공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평안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 같다. 스메일씨는 “아마 삼성 런던 지사장과 한국 대사도 여기 회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웬트워스는 코스가 생긴 지 2년 만인 1926년 국제 골프대회인 웬트워스컵을 열었다. 디 오픈 챔피언십에 출전한 영국과 미국 선수들 간의 팀 경기였는데 이게 라이더컵의 효시다. 그래서 유럽 선수들은 이 코스를 라이더컵의 고향으로 여긴다. 각종 라이더컵의 기념품들이 클럽 하우스에 전시되어 있다. 9·11사태로 연기된 2001년 라이더컵 유럽 멤버들이 이곳을 찾아 기념촬영을 할 정도다. 웬트워스가 클럽 개장부터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쳤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이 골프클럽은 이전의 클럽과는 패러다임이 다르다. 훌륭한 코스 옆에 저택을 지어 비싸게 파는, 이른바 분양을 위해 만든 코스다. 1926년 열린 웬트워스컵은 큰 흥행을 이뤘고 신흥 클럽의 명성은 높아졌다. 집도 비싼 값에 팔렸을 것이다. 이 사업 모델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나 LPGA 투어 긴 오픈 등을 여는 긴 그룹에서 아직도 유용하게 쓴다. 두바이에서도 타이거 우즈 등을 코스 디자이너로 영입,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골프장 부근은 영국 최고의 부촌 중 하나다. 집 한 채에 대략 50억원에서 2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영국 금융가의 큰손들과 스포츠·연예계의 유명 인사 상당수가 이곳에 산다. 이 코스는 2004년 2억6000만 달러에 주인이 바뀌었다. 이후 이곳에 사는 어니 엘스가 대대적으로 코스를 개조했다. 이곳에선 스포츠사상 가장 상금이 많은(우승상금 200만 달러) 월드매치플레이 챔피언십과 유럽의 메이저대회인 유러피언 PGA 챔피언십이 열린다. 성공한 사람들이 모이는 세련된 명품 클럽에서 기자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기자는 명품을 잘 모르고 익숙지도 않다. 가장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라운드하기 직전에 간 화장실의 변기 상표가 ‘Armitage Shanks’였다. 한동안 섕크로 고생했던 나에게 명품 클럽의 변기는 잊고 있던 고통을 상기시켜줬다. 변기 생각을 하면서 섕크가 나면 어떡할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그러자 섕크가 났다. 섕크로 고생해본 사람은 안다. 한 번 섕크가 나면 둑이 터진 듯 걷잡을 수 없다. 코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섕크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더 섕크가 난다. 섕크를 잊자고 다짐을 한 뒤 친 공이 다시 섕크가 나 숲 속으로 사라졌을 때 온갖 고통이 밀려왔다. 패배감과 절망감, 버나드 다윈이 말한 시인적인 고통이다. 다윈도 섕크로 고생을 해봤을까. 인생에는 승자보다 패자가 더 많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감상적이고 인생은 시적이다. 골프도 그렇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골프에서 인생을 본다. 웬트워스 클럽 하우스의 성곽은 매우 높아 보였다. |
첫댓글 “성공의 상징, 최고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 웬트워스다.”
영국의 일반 골퍼들은 ‘웬트워스에서 라운드하는 것은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정벌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푸념한다.
웬트워스는 코스가 생긴 지 2년 만인 1926년 국제 골프대회인 웬트워스컵을 열었다. 디 오픈 챔피언십에 출전한 영국과 미국 선수들 간의 팀 경기였는데 이게 라이더컵의 효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