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문화원 교수님 소개로 구입하여 읽는다. 최일화 시인은 1949년 생, 인천 남동고 영어교사 역임(어머니는 1924년생, 북에 계신듯, 「못다한 숙제」). 1991년 문학세계 신인상.
총 55편의 얇은 시집이다. 각 부의 제목으로 지은 시가 실려있다. 대표시로 보아 옮겨 본다. 이렇게 쓰면 되는데 난 왜 어려울까? 너무 치장하려 하는 것인가? 더 수련하고 내공을 가꾸어 시를 써보자. 발표보다 그 과정도 소중하니까. 연을 구분한 시와 구분 없는시도 있다. 사회적이슈의 시(코로나 나이테, 우크라이나 전쟁).'칼바람'단어 쓰지말랬는데 '너는 봄이다'에 '칼바람'이 나온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창과 꽃병/4연/ 짧지만 간명하게
창 앞에 꽃병
색색의 꽃들로 화사하다
꽃병을 치우자
빛깔과 향기가 우르르 따라간다
창 앞이 환하다
아무런 빛깔과 향기도 없다
창의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창
비로소 창은 창이 되었다.(전문)
제2부 시인안에 북적이는 찌꺼기들; 책 제목으로 사용한 표제시/7연 구성/ 진정한 시인인가 자문
우수마발이 다 시가 될 수 있지만
그냥 시가 되는 것은 아니고
한그루 모란의 뿌리가 봄을 만난 듯해야 비로소 시가된다.
우주에 우주 쓰레기가 가득하듯이
시인안에 북적이는 찌꺼기들
시가 될 수도 있었는데 끝내 되지 못하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들
시인은 언제 태어나
정처없이 우주를 떠도는 것인가
저렇게 집 한채씩 지어놓고
풀벌레처럼 들어앉아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천사인지 마귀인지 모를 날개를 달고
밤을 낮 삼아 떠들기도 하고
문둥이끼리 반갑듯이 시인들끼리는 서로 반갑다
알고 싶지도 않고 모르는 게 낫기도 한
마음이 많이 상한 사람들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꽃을 피우는 사람들
시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멋모르고 시인이 되고 싶어 시 하나 등불 삼아 살아왔으니
참 바보처럼 살았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구나
시인안에 시 아닌 것들 가득하고
추운 날 쓰레기 더미에서 시를 뒤적거리며(전문)
제3부 먼 것이 참 많다/6연 구성/비유표현/ 멀어서 이루기 어려운 일들
견우와 직녀 기다리는 칠월칠석처럼
여우가 따지 못한 포도처럼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콜카타 국제공항에서 택시로 하우라역
다시 기차를 타고 산티니케탄 타고르 박물관 가는 길처럼
줄끊어진 연을 따라
논두렁 밭두렁 눈덮인 벌판 달려갈 때처럼
30킬로미터 굽이굽이 전방부대 행군처럼 먼 것이 참 많다
아버지 대신 나를 길러준 할아버지는
손자가 다 크기도 전에 먼 길 떠나시고
그래, 네 나무의 열매는 잘 익었구나, 좋아하고 계실까
통일을 이루라고 열변을 토하던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 38회 졸업식에서 우리들은 통일의 노래를 불렀는데
교감선생님, 통일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사월 하늘에 아름다운 노랫소리
까마득히 높이 떠 봄날을 노래하던 종달새처럼
세상엔 먼 것이 너무 많다(전문)
제4부 못다 한 숙제/6연/어머니와의 추억
이제 아들도 노후에 들고
어머니의 고향에 어머니는 계시네
꿈속에서조차 뵙지 못한 이십칠 년
생존해 계신다면 올 연세 아흔아홉
지금 곁에 계시어도 좋은 1924년 갑자생
어렸을 적 나는 숙제를 하고
등잔불 아래 어머니 바느질 하시고
바느질감을 손에 든 채 깜박 잠이 들곤 하셨다.
나는 토끼와 닭을 키우고
어머니는 논농사 밭농사에 고단하셨다
버크셔가 새끼를 낳던 그해 봄
어머니와 나는 밤낮으로
돼지우리로 달려가 들여다보는 게 낙이었다
임인년도 어느덧 만추
등잔불 아래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시고
나는 옆에서 못다한 숙제를 하고 있다
작품해설/ 잘 빚어진 항아리/오민석 평론가
(후기)이틀에 걸쳐 다 읽었다. 정갈한 언어구성과 행연. 주제는 무엇인가? 시작활동 과정의 고뇌를 여러소재로 고백. 인생의 뒤안길을 관조하면서 재미있게 썻네. 나도 이런시를 써볼까? 타 서적에서 인물을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로테와 베르테르)인용하는 기법도 배울만 하다.
이승과 저승을 유유히 바라보는 모습.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인정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작고 소박한 풍경에서 의미를 찾는다. 수행자의 지혜다,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