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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증언]70년만에 골암수다.
'3.1의 기억, 3.1의 현장'
기자명 변상희 기자 입력 2017.03.31 16:0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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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도화선 관덕정 3.1절 참극의 기억
70년만 첫 증언 "지금도 이해가 안 가"
. 송 씨는 1936년생으로 3.1절 관덕정 발포 사건 당시 12살이었다. 그날 관덕정 근처 은행 울타리에서 구경하던 송 씨의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이 쏜 총탄에 숨졌다. 송 씨의 70년만의 증언이 31일 처음 역사의 수면위로 떠올랐다. @변상희 기자
제주4.3의 도화선이 됐던 1947년 3월 1일 관덕정 마당의 참극이 70년이 지나서야 '현장의 기억'으로 떠올랐다. 어린아이까지 경찰의 조준사격에 희생당한 이날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하는 희생자들의 증언이 31일 처음 공개됐다.
제주4.3연구소가 열여섯번째로 마련한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이 이날 오후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렸다. 2002년 첫 본풀이를 시작한 제주4.3연구소는 1947년 3월 1일 기념대회의 발포사건을 이날 처음 희생자들의 '증언'으로 담아냈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은 1948년 제주4.3사건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경찰의 발포로 어린아이를 포함해 6명이 숨졌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날 증언 본풀이에 나선 송영호씨(82세)의 아버지가 당시 총을 맞아 숨진 '송덕윤(이명 송덕수)'이다.
송 씨는 1936년생으로 사건 당시 12살이었다. '3.1절 기념대회'에 송 씨의 아버지는 관덕정 근처 식산은행 울타리에서 구경중이었고 송 씨는 남초등학교 4학년생으로 시가행진을 했다. 그러다 '탕탕' 들어보지 못했던 총소리가 관덕정 일대를 울렸다.
송 씨는 "총소리가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귀에 아버지 사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송덕수 총 맞았다!'" 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12살 어린 나이,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하루였다.
송 씨는 "경찰이 발포한 총이 아버지 팔로 해서 배를 관통한 것 같았습니다. 도립병원에 실려간 아버지는 '물을 다오.. 물을 다오...' 그렇게 물을 찾으셨어요."라며 지금도 생생하게 그 순간을 떠올렸다. 송 씨의 아버지는 결국 그날 숨졌다.
"우리가 기뻐하고 만세를 불러야 하는 날에 그런 불상사가 있었다는 게 전 지금도 이해가 안 갑니다."
송 씨는, 70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떠올렸다. 3.1사건의 현장에서 송 씨와 송 씨의 아버지는 단지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야 되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 되니까"
농부의 아들로 살던 송 씨는 그 날 이후 홀어머니와 형제들과 얻어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집 머슬살이도, 미군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지내며 살기도 했다. 한 날 허망하게 경찰의 총탄에 숨진 아버지에 대한 억울하고 충격적인 기억은 잊어야 살 수 있던 때였다.
3.1절 발포사건 희생자의 첫 증언은 70년만이다. 송 씨는 살다보니 살았지만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었다고 그날의 기억을 증언에서 풀어냈다.
송 씨는 "어느 날 4.3평화공원에 갔더니 3.1 사건때 희생된 분들의 명단에 아버지 이름을 찾았지만 오기(誤記) 됐었고, 이후에 다시 찾았을 땐 사라지고 없었다"며 "세월이 가고 용서는 하되, 조상이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셨단 사실은 후손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바라는 것은, 1947년 3월 1일 희생된 사람이라는 기록은 어느 한 켠에라도 남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증언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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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 (비회원) 2017-03-31 23:23:20 IP (98.109.X.X)
삭제
4.3사건 당시 서귀포에 한라산 공산 폭도들이 습격할 당시 가옥들을 불태우고 무차별로 총격을 가할때 우리어머니는 내동생과 나를 엎고 안고 보따리를 멘체로 도망하여 숨을 곳을 찾아 동네 이웃들과 더불어 논 두덕에 기대어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때 총알이 나를 피하여 내 왼 쪽에 서있던 청년의 팔을 관통하였다. 너무나 생생한 기억을 어찌 잊으랴. 아무리 역사를 픽션처럼 재구성하고 다시 쓰려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그대로 엄연하다. 내가 그 공산당 폭도의 총알에 희생당하지 않고 증언 할수 있게 해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감사 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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