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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소대 내에서 뭐가 부족하면 소대장부터 졸병까지 나에게 상담을 신청해 오곤 하였다.
내가 무슨 도씨 집안도 아니고 대학물까지 먹다가 군대에 갔거늘 어찌 신세가 그리 되어간단 말인가???
방독면 사건이 있고 난 후에 내가 도씨 집안 내력을 가진 일이 또 있었으니 그 흔해 빠진 식기도난 사건이었다.
군대 식기라는 것이 프라스틱에 움푹하게 밥통, 국통에 반찬통이 파여진 그 흔한 식판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
그게 낡고 모자라다 보니 밖에서 만든 사제도 나돌아서 공공연하게 섞여 있곤 했다.
그리고 군 물품이란 것이 어느 것이나 다 그렇지만 혹시나 언 놈이 쌔벼갈까봐 매직이나 인두로 크게 글자를 박아놓는 것이 예사였다.
예를들면 50-12(50연대 12중대란 뜻) 라든가, 12HQ(12중대본부라는 뜻)라든가, 아니면 빤쓰에는 (빤쓰도 언 놈이 훔쳐가니까) 오줌누는 그 구멍에다가 매직으로 '은'자를 확실하게 써넣든가...ㅎㅎㅎ....
여하튼 훔치는 것도 필사적이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가히 필사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적근산 OP시절에는 기껏해야 산 꼭대기에서 우리 중대만 살고 있었으니, 그것도 4개 소대 중 1개 소대는 중간소대로 내려가고 81mm 2개소대 약 20여명, 90mm무반동총 1개 소대 약 10여명. 다 해봐야 항상 적근산 OP에는 30-40명만이 살고 있을 뿐인지라 훔치고 자시고 할 일도 없고 기껏 훔쳐봐야 한 살림이라 금세 뽀록이 나기 마련...
결국 사건은 적근산 생활을 끝내고 대성산 밑 민촌에서 대대가 같이 생활 할 때 많이 일어나곤 했다.
그것도 산 중턱 넓은 개활지에 비록 간이 막사처럼 짓긴 했지만 깨끗한 막사였으니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풍족하였다.
또한 바로 옆 개울에 그 크고 웅장한 대성산의 계곡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으니 적근산 꼭대기에서 물에 허덕이던 우리는 더 부러울 것이 없었다.
거기다가 방독면 사건으로 양념바른 돼지고기에 경월 소주를 댓병으로 얻어 마시고 또 그 다음에도 몇 차례 더 인사를 받았으니 그야말로 민촌생활이 나에게는 고생 끝 행복시작인 셈이었다.
그나마 계급이 이미 상병 고참에 이르니 뭐 부대 내에서 중 어른은 되는 셈이고 또 격리된 좁은 대대 생활인지라 다른 중대 병들도 좀 알고 대구출신인 대대장 이하 각 중대장, 소대장(특히 ROTC출신)들도 어느 정도 면식을 트고 있었으니 군대 생활이지만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소대 식기를 담당하는 밑에 일병놈이 감히 나에게 면담을 신청해 왔다.
우리 소대 식기를 언 놈이 훔쳐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 했다.
원래 졸병들 고생시키기가 싫어서 달밤에 집합도 한 번 시킨 적이 없고 싫은 소리도 잘 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 날은 무척 화가 나서 싫은 소리를 좀 하였다.
원래 소대 살림은 일병들 손에서 다 끝난다. 청소니 뭐니 잡다구레한 일은 작대기 한 개인 이등병들의 일이고 좀 더 큰 일들, 밥을 타먹는 일, 물품관리하는 일, 훈련 때 실무적인 일 등은 작대기 두 개인 일등병들의 일, 큰 훈련이나 소대내에서 큰 살림등은 작대기 세개인 상등병의 일, 네개인 병장은 대개 뒷짐을 지고 노인 흉내를 내고 간섭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등병의 주된 임무인 '식'에 관한 일이 터졌으니 이는 백 번 죽어도 할 말이 없을 일이었다.
임마들이 뒤질라고 환장을 했나? 식기 다 잊어 먹으면 어디다 밥을 쳐먹을꺼야???
어쩌고 저쩌고...
평소 잔소리도 안 하고 젊잖기로 소문난(ㅋㅋ..) 내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으니 놈들은 거의 죽을 상이 되었다.
하기야 나한테 그런 고백을 할 때에는 놈들도 이미 죽을 작정을 하고 난 뒤였을 것이다.
참으로 큰 일인 것이 식기를 잊어먹고 나면 밥을 얻어 먹을 방도가 없지 않은가...
어쩄든 나도 빨리일을 수습해야 했다. 저 작대기 네 개 단 병장들(내가 꼴도 보기 싫어하던 서울내기 3명이 있었음)이 알기 전에 마무리를 해야 했다. 여차하면 또 나를 갉을지도 모르므로...
어쩌겠나? 군대 물건이란 것이 어차피 돌고도는 것이니 사실상 내것 네것이 없고 다 국가 재산이 아니던가...
그냥 잠시 우리가 맡고 있을 뿐인 것을... 누가 가지고 있으면 뭐 어떻단 말인가?
놈들에게 실컷 화풀이를 하고는, 나는 이번 딱 한 번만이라는 다짐을 받고는 할 수 없이 또 식기를 채워주기로 하였다.
그것도 팔자려니...
무엇을 잊어먹은 것은 언제나 극비사항이다.
소문이 나는 순간에 우리는 병신 쪼다가 되고 영원히 그것을 채워넣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남은 식기로 고참들 밥을 타다주게 하고 그것을 얼른 씻어서 졸병들이 밥을 타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 짓도 하루에 끝내야 할 일, 이틀 연장 그렇게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시간은 급하다. 밥이야 한 끼 한 끼가 다 소중하지 않은가...
그 날 밤에 하늘이 도우셨는지 대대에 영화가 하나 들어왔다.
적근산에서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지만 민촌에서는 대대병력이 같이 모여 살고 사람이 살만한 곳이다 보니 영화도 가끔 들어온다. 영화라고 해야 뭐 안 봐도 훤한 반공영화일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요즘으로치면 <19,금>쓰인, 가스나들이 홀딱 벗고 나와서 뭘 한다든가..이런 영화는 아에 한 편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 뭐 안 본다고 해서 크게 억울할 것도 없는 셈.
영화는 대개 대대병력들이 다 들어갈만한 식당에서 상영되곤 했다.
그 날 밤 나는 영화를 포기하고 졸병 한 놈을 데리고 9중대 옆 통신대로 잠입하였다.
거기 식기가 깨끗하다는 걸 통신대를 들락거리면서 보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신대는 우리보다는 식구가 많아서(외곽으로 삐삐선 설치하러 자주 나가고 영내 근무도 있고 해서 그런가...소총소대 정도 되었음) 식기는 약 40-50개는 된다.
놈들은 군기가 얼마나 센지 식기도 윤이 나서 반들반들하다.
우리 중대가 적근산 OP에 살 때 대대본부는 적근산 밑 대곡리 골짜기에 터를 잡고 있었는데 그 때 내가 통신대에서 약 한 달간 얹혀 산 적이 있었다.
그래서 통신대 사람들도 몇 사귀었고 그들 군기가 얼마나 센지 익히 알고 있었다.
소대장도 병들의 일에 간섭 하나 하지 못 할 정도였으니... 그 때 사귄 사람들이 주로 대구 경북 사람들인데 이상병, 김병장 등 몇 명은 되었다.
나는 통신대 식기 40-50개 중 양심상 그것을 싸그리 다 들고 오지는 못 하고 반 정도, 우리 식구들이 다 차지하고도 남는 갯수인 15개만 딱 들고 나왔다.
놈들은 매직으로 '통하라'라고 식기에다 써놓았다.
통신대 구호는 '통하라'인데 어디든 전화가 잘 통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돌아온 졸병들이 밤새 그 글씨를 조심스럽게 벗겨내고 그 자리에 인두로 12-1을 지져넣었다.
보란 듯이 큼직한 글씨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대대병력이 각 중대별로 아침 식사를 하러 줄을 지어서 옆구리에는 식판을 하나씩 끼고 어제 영화를 상영하였던 식당으로 전부 모여들고 있었는데...
자대니까 뭐 훈련소처럼 발을 짝짝 맞춘다든가 팔을 높이 든다든가, 군가를 한다든가 그렇게는 하지 않고 대충 줄을 맞추어서 가는 정도....
능구렁이가 된 고참들이 팔 흔들고 줄맞추며 누가 노래를 하겠는가??????
그것도 졸병 때 이야기지...
그런데 식당 앞에는 통신대의 나하고 친한 이상병과 졸병 한 놈이 식당 문 양쪽에 열중쉬어를 한 채 들어오는 사람들을 뚫어지게 관찰하고 있었다.
얼굴은 아마 뒤지게 얻어 터진듯, 벌겋게 부어 있었고 눈에는 심술과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체하고 말을 걸었다.
"야,,,이** 무슨 일이고? 왜 여기 파수를 서는데??? 뚜디리 맞았나?? 얼굴이 와 그런노??"
그 이상병은 나를 옆으로 끌고 나오더니 이렇게 하소연을 한다.
"씨팔...말도 마라 조짔다 조짔어."
"와? 또 와카는데??"
"어제 영화 보러 간 새 언놈이 우리 식판을 다 훔치갔다.
내 오늘 대대 식판 다 조사해가 이 개새끼덜 다 때리 직일끼다."
"머시라....식판을?? 그럼 고참들 밥은 우옜노?"
"밥이고 좆이고 내 뒤지게 얻어 터지가 지금 내 얼굴 함 바라., 말도 아이다..."
"그건 그런데 왜 니가 맞노?? 식기 담당하는 놈들 쫄따구들이 맞아야지.."
"그러이 내 더러버서...상병이 평소에 아아들 잘 못 다루고 살림 잘 안 챙기서 그렇다고 날 뚜디리 패는기라..씨팔 넘들이..."
"누가? 그 김병장이 그런나??"
"응..그 새끼가 평소 날 원수 대하듯 하자나. 그 새끼 제대할 땐 내 뒤도 안 돌아볼끼다..."
"응, 그 새끼 성질 더러븐거는 내도 잘 아는 기지만....
그건 그렇고 식판을 우얄라꼬? 이래 소문 내믄 안 될낀데????"
"안다. 무슨 방법 쫌 없겠나??"
"야, 니는 군대 생활 처음 하나? 자슥, 짠밥은 어데 옆구리로 먹었나 상병고참이나 돼가...??
일단 니는 이래 소문낸기 큰 잘못이다. 인제 대대서 너 식판 모자란다는걸 다 알았는데 우얄 작정이고??
으이그 자슥, 그람 나한테라도 일찍 이야길 할꺼 아이가...참 답답하네...
방법을 찾아야지 매일 식당 앞에서 파수꾼 노릇이나 할 수는 없을끼고... 우옛든 밥은 먹어야 안 되겄나??"
"씨팔...식판이 있어야 밥을 먹지..."
"가마이 있어바라. 우리한테 몇 개 남아 있는가 모르겠다. 우리는 저 박**가 관리하는데..."
나는 일부러 신경써주는 체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박**일병이란 놈을 불러내서 이**이 보는 앞에서 걱정을 해 주었죠.
"야,,박**야, 우리 소대 식판 남는기 및 개 있지?"
"예,,몇 개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마, 그거는 어른들 이야기니 알 거 없고 좀 있다 내려가면 몇 개나 있는지 좀 알아바라."
"예, 알겠습니다. 승리~~"
"이**, 그람 내 다문 몇 개라도 채워주까?? 우리 소대 마루바닥에 몇 개 굴러 다니는 거 같더라..."
"뭐시라?? 진짜가?? 너 그거 이디서 났는데??"
나는 놈의 입을 막으면서 주위를 살펴 본 다음에 나즈막히 일러주었다.
"실은...우리 적근산 빵카 공사할 때 삼청교육대가 올라왔잖아?"
"응, 그랬지.."
"그 때 그 사람들 밥을 우리 중대서 안 해먹였나? 그 때 그 사람들 식기가 A급이라서 내가 한 개씩 쌔빈기다.
이건 비밀이다. 진짜 이야기 하지 마라. 그 사람들은 그래도 민간인이잖아. 우린 국방부 소속이지만 그 사람들은 내무부 소속이다. 이게 들통나면 국방부하고 내무부하고 식판 싸움 난다. ㅋㅋㅋ..."
"하모, 내가 어데가서 이야길 한단 말이고? 나는 오늘 내로 못 채우면 오늘 밤에 또 뒤지게 터질낀데..."
"응..김병장 성질 더러버도 곧 나가잖아? 쪼매만 참고 견디라. 내 너무 괴롭히지 마라고 이야긴 함 하께..
우리 병장 세마리 니도 알제? 성질 더러븐 눔들...내도 참고 안 사나?? 자고로 참는자에게 복이 있다 안 카더나??
얻어터져가 얼굴은 씨구망탱이가 돼도 복은 니가 받는기다.
상태가 크게 좋진 않은데 일단 갯수를 맞추고 나중에 천천히 수습해라.
나참..니놈들 보믄 내가 속이 디비진다. 소문부터 이래 내마 우얀단 말이고?? 으이그..답답한 눔.."
"응 알았다. 카고 보이 니 말이 다 맞네..니 만나서 천만다행이다. 일단 갯수 맞추고 나중에 다시 깨끗한 놈으로 개비하지 머..."
"개비할 때 우리꺼는 손 대만 안 된다 너???"
"하모..양심이 있지 날 도와준 너꺼를 우예 손 대겠노??"
"양심이고 좆이고 군바리들은 못 믿으이 하는 소리 아이가?? 자슥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또 다시 남게 된 식기 옛날 쓰던 놈으로 일단 열 몇 갠가를 가져다 주었죠.
물론 접선을 한 것은 명당 자리인 그 개구멍 옆, 시각은 점호가 끝난 10시 좀 지나서....이번에도 양념바른 돼지고기에 경월소주(우리는 그것을 월경소주라고 불렀습니다) 댓병....
그런데 식기는 그리 고가품도 아니고 방독면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물건인지라 일차로 끝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놈들도 다시 어디서 깨끗한 걸로 채웠던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다시 우리의 영원한 호구 9중대걸 가져갔다는 소리도 있고 11중대걸 가져갔다는 소리없는 소문이 돌더군요.
그 놈과는 동향이어서 친하게 지냈는데 고참한데 뒤지게 두드려 맞은 모습 보니 참으로 안 됐기도 하고 술 얻어먹기가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라도 차마 내가 너희걸 훔쳤노라고 고백하지 못 하고(했다간 맞아 죽었을 것..) 그냥 지나왔는데 이제 처음으로 여기에 발설합니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죄많은 김상병을 용서하소서~~~~~~~~
첫댓글 꺼꿀로 신은 고무신 얘기는 없나?
수보가 네가 선수라카던데 자네가 함올려 보시게나
부마야~ 이게 무신소리고? 나같은 순딩이보고 선수라니.. 혹 은폐작전이가..ㅎㅎ
거... 참... 민촌이란 동네가 좀 문재가 있구마... 글중에 방독면 예기가 나와서 군생활이 비슷한 시기라.. 아랫글 대충 보고왔는데.. 흐흐.. 내가 그기 유격장엘 두번째로 하사 고참으로 참석을 했었다 그런데 없다던 화생방훈련이 있다 해서 삼거리 부대에서 방독면을 몽땅 가져와 포대장 막사에 보관을 했는데.... 내꺼포함 열몇개가 유격훈련 중에 사라졌다.. 포대장 막사에서 말이다... 난감한 포대장.. 내한테 직접 말하진 못하고 이사종계 시켜서 방독면을 다 채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억울한 이하사... 열받아서 유격훈련 안받았다... 전라도 뱃놈 꼬봉하나 데리고 산중턱으로 올라가 유격훈련 구경하면서 낮잠 잦다....
오전 오후 종일 땡땡이 치고 내려와 밥을 먹는데 포대장과 마주쳤다.. 포대장 시침을 뚝 떼고 모른체 하는데... 그 모습에 에혀... 방독면을 채워야겠구나... 마음 먹었다
하여간...
채웠다
내막은 앞으로 예기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비밀이다... 근데 이사종계가 보고 "으악... 이하삿님 이거 전투용.... 우린 이거 못쓰요 큰일 나요.." 하고 난감해 했다 "시꺼 임마 난 요기까지.. 다음은 니가 알아서해..." 했다 당시 방독면이 전투사단인 15사는 전투용이 였고 우리 27사는 전투용은 박스에 보관해두고 구형을 쓰고 있었다... 근데 전투용으로 채웠으니.... 흐흐.. 수단좋은 이사종계는 인근 15사 이사종계를 만나
전투용 방독면 개당 두개씩으로 바꿨대나 어쨌대나... 포대장한테 보고했고 "역시 이하사야.." 짧게 한마디 했다 더마... 이미 채워질줄 알았다는 뜻.... 오원의 파란만장한 군생활 예기는 천천히 기회오면 조금씩 하겠다... 흐흐
오원. 그 방독면은 내가 훔친거 아이다. 오해다. ㅋㅋㅋ...
믿는다........ 방법만 갈케조따 이말 이제.........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