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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散文과 詩의 관련양상
- 산문 <終始>와 시 <길>을 중심으로 -
류 양 선
<목차>
1. 머리말
2. 새로운 출발에 즈음하여 ; 산문 <終始>
3.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시 <길>
4. 맺음말
1. 머리말
윤동주는 모두 4편의 산문을 남겼다. <달을 쏘다>, <화원에 꽃이 핀다>, <종시>, <별똥 떨어진 데>가 그것이다. 이 산문들은 시인의 학창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씌어진 이 산문들은 당시의 시인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의 산문들은 이처럼 그 자체의 내용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의 산문들은 그의 시작품들과의 관련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시인의 산문은 때때로 그 시인의 시작품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도 하는데, 윤동주의 경우가 특히 그러한 것이다. 이 글은 윤동주의 산문과 시의 관련양상에 대한 일련의 연구 중의 하나이다. 윤동주의 산문을 상세히 검토하는 것은 그의 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다. 이 글에 앞서 필자는 윤동주의 산문 <달을 쏘다>와 시 <자화상>의 관계에 대해 검토한 바 있다. 류양선, 「윤동주의 <자화상> 재론」(『성심어문론집』, 2003. 2) 참조.
그의 시와 산문이 모두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데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고백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윤동주의 문학이 지니는 이러한 특성에 착안하여, 산문 <종시>와 시 <길>을 중심으로 그의 산문과 시의 관련양상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차차 밝혀지겠지만, 산문 <종시>와 시 <길>은 그 씌어진 시기가 거의 같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산문 <종시>가 산문 <終始>에 대한 연구로는 홍장학, 『정본 윤동주 전집 원전연구』(문학과 지성사, 2004), 지현배, 『영혼의 거울』(한국문화사, 2004) 등이 있다.
어떤 정황 속에서 씌어졌으며, 그리하여 시인의 어떤 생각과 고민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시 <길>이 시 <길>에 대한 상세한 분석으로는 김남조, 「윤동주 연구」(권영민 편, 『윤동주 연구』, 문학사상사, 1995), 김현자, 「대립의 초극과 화해의 시학」(위의 책), 최동호, 「윤동주 시의 의식현상」(위의 책) 등을 들 수 있다.
씌어지게 된 최초의 시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그러나 시와 관련된 산문을 검토함으로써 그 시작품 최초의 시상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시에 대한 해석이 완료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관련 산문을 검토하는 것은 그 시작품을 쓰게 된 첫 착상을 밝혀 그 시에 대한 오독을 방지하려는 것일 뿐, 관련 산문의 내용을 뛰어넘는 시의 깊은 의미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산문은 산문이고 시는 시인 것이다. 더욱이 윤동주의 시는 시어가 지닌 고도의 상징성으로 인해, 순도 높게 정화된 내면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더욱 깊은 차원의 기독교적 의미를 머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시 <길>이 지니고 있는, 산문 <종시>을 넘어서는 이러한 차원의 의미까지 밝혀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를 다시 생각하면, 윤동주의 시가 제아무리 순결한 내면과 깊은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아니 그럴수록 그것이 시인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실제로 겪었던 개인적 방황과 시대적 고민을 드러내고 있는 산문이 다시금 중요해진다. 말하자면 그가 처해 있던 현실상황에 대한 그만의 고유한 반응이 그의 시에 고도의 상징성을 부여하도록 했다고 할 수 있기에, 이번에는 그의 시에 대한 해석이 그의 산문으로 하여금 좀더 깊은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와 산문은 서로를 비추어 주며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니까 산문 읽기에서 시작해서 시의 해석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 읽기에서 시작하여 산문의 해석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단지 논의의 편의상, 산문 <종시>를 먼저 읽을 따름이다.
2. 새로운 출발에 즈음하여 ; 산문 <終始>
‘終始’란 무엇인가? ‘마치고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산문 <종시>는 시인이 지난 일을 끝맺고 뭔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 글에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고,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인생행로와 관련된 더욱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도 암시되어 있다.
그러면 산문 <종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인가? <종시>의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 먼저 이 산문에 담겨 있는 시인의 행로를 추적하면서 이 산문이 씌어진 시기를 추정하고, 다음에 이 산문이 시인의 전체 인생행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글인지 살펴보도록 한다. 산문 <종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終點이 始點이 된다. 다시 始點이 終點이 된다.
아츰, 저녁으로 이 자국을 밥게 되는데 이 자국을 밥게된 緣由가 있다. 일즉이 西山大師가 살아슬뜻한 욱어진 松林속, 게다가 덩그러시 살림집은 외따로 한채뿐이엿으나 食口로는 굉장한것이여서 한 집웅밑에서 八道사투리를 죄다 들을 만큼 뫃아놓은 미끈한 壯丁들만이 욱실욱실하엿다. 이곳에 法令은 없어스나 女人禁納區엿다.
(…중략…)
눈온날이 였다. 同宿하는 친구의 친구가 한時間 남짓한 門안들어가는 車時間까지를 浪費하기 爲하야 나의 친구를 찾어들어와서 하는 對話엿다.
“자네 여보게 이집 귀신이 되려나?”
“조용한게 공부하기 자키나 좋잔은가”
“그래 책장이나 뒤적뒤적하면 공부ㄴ줄 아나 電車간에서 내다볼 수 있는 光景 停車場에서 맛볼수있는 光景, 다시 汽車속에서 對할수있는 모든일들이 生活아닌것이 없거든, 生活때문에 싸우는 이 雰圍氣에 잠겨서, 보고, 생각하고, 分析하고, 이거야말로 眞正한 意味의 敎育이 아니겠는가 여보게! 자네 책장만 뒤지고 人生이 어드럿니 社會가 어드럿니 하는것은 十六世紀에서나 찾어볼일일세, 斷然 門안으로 나오도록 마음을 돌리게”
나안테하는 권고는 아니엿으나 이말에 귀틈뚤려 상푸둥 그러리라고 생각하엿다.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증보판)』(민음사, 2002) - 이하, 『사진판 전집』이라고만 한다 -, 127∼128면.
<종시>의 초두인 이 부분은 윤동주가 문안으로 들어가게 된 동기와 그리하여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같은 길을 다니게 된 연유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는 당시에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 있었는데, 친구의 친구가 하는 말을 듣고는 “공부도 生活化하여야 되리라 생각하고 불일내에 門안으로 들어가기를 內心으로 斷定해 버렷”던 『사진판 전집』, 128면.
것이다. 그리하여 “일찍이 西山大師가 살았을 듯한 우거진 松林 속”에 외따로 위치한 ‘女人禁納區’였던 기숙사에서 나와, 등하굣길에서나마 살아있는 현실을 접할 수 있는 문안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 결과 친구의 친구가 했던 말대로 “電車간에서 내다볼 수 있는 光景, 停車場에서 맛볼 수 있는 光景, 다시 汽車속에서 對할 수 있는 모든 일들” 즉 ‘生活’을 보게 되었고, “生活때문에 싸우는 이 雰圍氣에 잠겨서, 보고, 생각하고, 分析하”게 되었는데, 산문 <종시>는 이처럼 ‘생활’을 보고 생각하고 분석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요컨대 <終始>는 기숙사에 갇혀 있던 윤동주가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 밖으로 나와, 서울 거리에서 대하게 된 풍경을 기록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서술해 놓은 산문인 것이다.
이처럼 윤동주가 기숙사를 나와 문안으로 들어간 경위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 하숙집을 이리저리 옮겨다닌 경위에 대해, 그의 지기이자 연희전문학교 2년 후배였던 정병욱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자 일본의 혹독한 식량 정책이 더욱 악화되었다. 기숙사의 식탁은 날이 갈수록 조잡해졌다. 학생들은 맹렬히 항의를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당국의 감시가 철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동주가 4학년으로, 내가 2학년으로 진급하던 해 봄에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기숙사를 떠나기로 작정을 했다. 마침 나의 한 반 친구의 알선으로 누상동 마루터기에 조용하고 조촐한 하숙방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매우 명랑하고 유쾌한 하숙 생활을 한 달 동안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뒤 하숙집 형편으로 그 집을 떠나야 할 신세가 되었다. 참 좋은 하숙이었는데, 실망과 아쉬움에 가득 찬 마음으로 두 사람은 새 하숙을 구하려 그 집 대문을 나섰다. 누상동에서 옥인동 쪽으로 내려오는 길목 전신주에서 우연히 ‘하숙 있음’이라는 광고 쪽지를 발견했다. 누상동 9번지였다. 그 길로 우리는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집주인의 문패는 김송(金松)이라 씌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설마하고 대문을 두들겨 보았더니 과연 나타난 집주인은 소설가 김송 씨 바로 그분이었다.
1941년 5월 그믐께 우리는 소설가 김송 씨의 식구로 끼어들어 새로운 하숙 생활이 시작되었다.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형」, 『바람을 부비고 서 있는 말들』(집문당, 1980), 15∼16면.
이러한 우리의 빈틈없고 알찬 일상 생활에 난데없는 횡액이 닥쳐왔었다. 당시에 요시찰 인물로 되어 있었던 김송 씨가 함흥에서 서울로 옮겨온 지 몇 달이 지난 후인지라 일본의 고등계(지금의 정보과) 형사가 거의 저녁마다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숙집 주인이 요시찰 인물인 데다가 그 집에 묵고 있는 학생들이 연희전문학교 문과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눈초리는 날이 갈수록 날카로와졌다. 무시로 찾아와서는 서가에 꽂혀있는 책 이름을 적어 가고, 고리짝을 뒤지고 편지를 빼앗아가는 법석을 떨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에 올라와서 우리는 다시 이사짐을 꾸리고 이번에는 북아현동으로 하숙을 옮겼다. 7, 8명의 하숙생이 들끓는 전문적인 하숙집이었다. 오붓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뒤숭숭한 전문적인 하숙집으로 옮겨온 우리는 퍽 당황했었다. 어딘가 어설프고 번거롭고 뒤숭숭한 그런 분위기였다. 게다가 졸업반인 동주 형의 생활은 무척 바쁘게 돌아갔다. 진학에 대한 고민, 시국에 대한 불안, 가정에 대한 걱정, 이런 일들이 겹쳐서 동주 형은 이때 무척 괴로워하는 눈치였다. 위의 글, 18면.
정병욱의 이 회고에서 당시의 시국의 불안과 일제의 탄압의 정도를 엿볼 수 있거니와, 그와 동시에 윤동주가 개인적인 문제나 시대적인 문제로 어떤 고민을 안고 있었는지를 또한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이 회고에 의해, 연희전문학교 4학년 시절에 윤동주가 어떻게 거처를 옮겨다녔는지 밝혀진 것이다. 이것을 『윤동주 평전』의 저자 송우혜는 “누상동 마루터기 하숙집에서 한 달→누상동 9번지의 소설가 김송(金松) 씨 집으로 옮겨서 5월 그믐 때부터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북아현동 하숙 전문집으로 옮겨서 9월부터 12월 말의 4학년 졸업 때까지”라고 송우혜, 『윤동주 평전』(푸른역사, 2004), 288면.
요약하고 있다.
이상에서 드러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산문 <종시>를 다시 읽어보면, 윤동주가 <종시>를 쓴 개략적인 시기가 저절로 밝혀진다. 산문 <종시>의 내용이 누상동에서 신촌에 이르는 등굣길의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 산문이 씌어진 시기를 윤동주가 4학년 때인 1941년 5월경에서 9월경 사이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종시>가 씌어진 시기를 1941년경으로 보아 왔던 것을 송우혜, 앞의 책, 551면 및 『사진판 전집』의 연보 참고. 그런데 홍장학 편, 『정본 윤동주 전집』(문학과 지성사, 2004)에서는 산문 <종시>가 씌어진 시기를 1939년으로 잡고 있는데(161면 및 166면), 무슨 근거에서 그렇게 추정했는지 알 수 없다.
좀더 좁힌 것으로서, 시 <길>의 창작시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띤다. <길>의 창작일자가 작품 말미에 1941년 9월 31일로 적혀 있음을 감안할 때, 산문 <종시>가 씌어진 시기에 대한 이러한 추정은 이 시가 산문 <종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산문 <종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볼 계제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정병욱의 회고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앞의 인용에서 정병욱이 말한 바, 소설가 김송 씨의 집에서 하숙하던 당시 윤동주와 더불어 보낸 ‘빈틈없고 알찬 일상 생활’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하학 후에는 기차편을 이용했었고, 한국은행 앞까지 전차로 들어와 충무로 책방들을 순방하였다. 지성당(至誠堂), 일한서방(日韓書房), 마루젠(丸善), 군서당(群書堂) 등, 신간 서점과 고서점을 돌고 나면 ‘후유노야도’(多の宿)나 ‘남풍장’(南風莊)이란 음악 다방에 들러 음악을 즐기면서 우선 새로 산 책을 들춰보기도 했다. 오는 길에 명치좌(明治座)에 재미있는 프로가 있으면 영화를 보기도 했었다.
극장에 들르지 않으면 명동에서 도보로 을지로를 거쳐 청계천을 건너서 관훈동 헌 책방을 다시 순례한다. 거기서 또 걸어서 적선동 유길서점(有吉書店)에 들러 서가를 훑고 나면 거리에는 전기불이 켜져 있을 때가 된다. 이리하여 누상동 9번지로 돌아가면…… 정병욱, 앞의 글, 16∼17면.
정병욱이 윤동주와 함께 다녔던 하굣길을 적어놓은 대목이다. 두 사람은 신촌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전차로 갈아타고 명동에 있는 한국은행 앞까지 와서는, 그곳의 책방을 순방하고 음악다방이나 극장에 들르기도 하였다. 때로는 명동에서 도보로 관훈동까지 가서 그곳의 헌 책방을 다시 순례하다가 날이 어두워서야 그들의 거처인 소설가 김송 씨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하굣길을 뒤집으면, 바로 윤동주가 산문 <종시>에서 그려낸 등굣길이 된다. 다만 등교할 때는 누상동 김송 씨의 집에서 정류장까지 걸어나와 전차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서 기차로 갈아타고 신촌에 도착하여 학교에 가는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종점이 시점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고 하는 이 산문 첫 문장의 1차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어제 하굣길의 종점이었던 전차 정류장이 오늘 등굣길의 시점이 되고, 아침 등굣길의 시점은 다시 저녁 하굣길의 종점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산문 <종시>에는 윤동주 혼자서 등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등굣길의 전차 안에서 또 기차 안에서 내다본 풍경이 곧 산문 <종시>의 주된 내용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윤동주의 등굣길을 축자적으로 따라가 보자.
윤동주는 하숙집에서 나와 전차를 타고 창 밖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현대로써 캄푸라지한 옛 禁城” 『사진판 전집』, 130면.
(경복궁;인용자)의 성벽을 따라 달리다가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또 성벽이 끊어지는 곳에서부터 여러 건물들을 내다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기도 하다가 남대문을 지나치게 된다. 이윽고 그는 서울역에 도착하여 종점을 시점으로 바꾸면서 기차로 갈아탄다. “느릿느릿 가다 숨차면 假정거장에서도” 『사진판 전집』, 135면.
서는 기차 안에서도 그는 창 밖으로 사람들을 관찰한다. 기차가 터널을 벗어났을 때, 그는 복선공사에 분주한 노동자들을 보면서 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신촌에 도착할 즈음 “이제 나는 곧 종시를 박궈야 한다.”고 『사진판 전집』, 137면.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떤 최종적인 목적지를 향해 새롭게 출발하고 싶어 하면서 이 산문을 끝맺는다. 홍장학, 앞의 글에서는 “원고지 23장 분량의 수필 <종시>는, 연희전문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윤동주의 의도적이고 주기적인 나들이, 즉 ‘신촌역⇆남대문 성벽 부근’ 체험과 그에 부수된 상념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윤동주가 당시에 누상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던 사실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잘못이다. <종시>에 나타난 길은 신촌에서 남대문을 왕복한 길이 아니라, 앞서 살폈듯 누상동에서 시작하여 남대문과 서울역을 거쳐 신촌에 이르는 등굣길이다. 윤동주가 전차 안에서 내다본 건물들이 “總督府, 道廳, 무슨 參考舘, 遞信局, 新聞社, 消防組, 무슨 株式會社, 府廳”(『사진판 전집』, 130면) 등이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건물들은 당시 경복궁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길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면 윤동주가 등굣길의 차 안에서 내다본 풍경 또는 거리에서 마주친 풍경은 어떤 것들인가? 그리고 그는 그런 풍경을 대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되는가?
나만 일즉이 아츰거리의 새로운 感觸을 맛볼줄만 알엇더니 벌서 많은 사람들의 발자욱에 鋪道는 어수선할대로 어수선햇고 停留場에 머믈때마다 이많은 무리를 죄다 어디갓다 터트빌 心算인지 꾸역꾸역 작구 박아실는데 늙은이 젊은이 아이할것없이 손에 꾸럼이를 않든 사람은 없다. 이것이 그들 生活의 꾸럼이오, 同時에 倦怠의 꾸럼인지도 모르겠다.
이꾸럼이를 든 사람들의 얼골을 하나하나식 뜨더보기로 한다. 늙은이 얼골이란 너무오래 世波에 짜들어서 問題도 않되겟거니와 그젊은이들 낯짝이란 도무지 말슴이아니다 열이면 열이 다 憂愁 그것이오 百이면 百이 다 悲慘 그것이다. 이들에게 우슴이란 가믈에 콩싹이다. 必境 귀여우리라는 아이들의 얼골을 보는 수박게 없는데 아이들의 얼골이란 너무나 蒼白하다. 『사진판 전집』, 128∼129면.
나는 終點을 始點으로 박군다.
내가 나린곳이 나의 終點이오, 내가 타는 곳이 나의 始點이 되는 까닭이다. 이쩌른 瞬間 많은사람사이에 나를 묻는것인데 나는 이네들에게 너무나 皮相的이된다. 나의 휴맨니티를 이네들에게 發揮해낸다는 재조가 없다. 이네들의 깁븜과 슬픔과 앞은데를 나로서는 測量한다는수가 없는까닭이다. 너무 漠然하다. 사람이란 回數가 잦은데와 量이 많은데는 너무나 쉽게 皮相的이 되나보다. 그럴사록 自己 하나 看守하게에 奔忙하나보다. 『사진판 전집』, 134면.
이윽고 턴넬이 입을 버리고 기다리는데 거리 한가운데 地下鐵道도 않인 턴넬이 있다는것이 얼마나 슬픈일이냐, 이 턴넬이란 人類歷史의 暗黑時代요 人生行路의 苦悶相이다. 空然히 박휘소리만 요란하다. 구역날 惡質의 煙氣가 스며든다. 하나未久에 우리에게 光明의 天地가있다.
턴넬을 버서낫을때 요지음 複線工事에 奔走한 勞働者들을 볼수있다. 아츰 첫車에 나갓을때에도 일하고 저녁 늦車에 들어올때에도 그네들은 그대로 일하는데 언제 始作하야 언제 끝이는지 나로서는 헤아릴수없다. 이네들이야말로 建設의 使徒들이다. 땀과피를 애끼지않는다.(이하 2행 탈락)
그융중한 도락구를 밀면서도 마음만은 遙遠한데 있어 도락구 판장에다 서투른 글씨로 新京行이니 北京行이니 南京行이니 라고써서 타고다니는것이아니라 밀고다닌다. 그네들의 마음을 엿볼수있다. 그것이 苦力에 慰安이 않된다고 누가 主張하랴. 『사진판 전집』, 136∼137면.
여기 인용한 대목 중 첫 번째 것은 윤동주가 전차를 타고 내다본 풍경이고, 두 번째 것은 서울역에서 기차로 갈아타는 시간에 겪은 내용이며, 세 번째 것은 기차를 타고 내다본 광경이다. 여기 인용한 부분들은 윤동주가 문안으로 거처를 옮긴 뒤 등굣길에서 본 광경이 어떤 것인지 또 그러한 광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말하자면 기숙사에서 나와 공부를 생활화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부분인 것이다.
먼저 위의 인용 중 첫 번째 것을 보자. 윤동주는 전차 안에서 내다본 광경, 즉 정거장마다 손에 손에 꾸러미를 들고 서 있다가 꾸역꾸역 전차에 오르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말할 수 없는 비애감을 느낀다. 늙은이들의 얼굴은 세파에 찌들었고, 젊은이들의 얼굴은 우수와 비참 그것이며,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창백하다. 도무지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뜯어보다가, 그는 “내상도 필연코 그꼴일텐데 내눈으로 그꼴을 보지못하는것이 다행”이라고 『사진판 전집』, 129면.
생각한다. 여기까지 오면, 윤동주가 그 당시 민족의 가난한 현실과 자기 자신의 무력한 모습에 대해 거의 절망에 가까운 느낌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두 번째 인용에서는 전차에서 기차로 갈아타는 짧은 시간에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서술하고 있다. 윤동주는 그 많은 사람들과 자기 자신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에게는 사람들에게 다가설 방법이 없고,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할 길도 없다. 도무지 ‘휴머니티’를 ‘발휘’할 재주가 없다. ‘皮相的’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사정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민족의 현실과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이러한 좌절감은 위의 세 번째 인용에서 인류역사와 인생행로로 확장되어 역시 비관적으로 나타난다. 기차가 터널 속에 들어서자 윤동주는 인류역사와 인생행로를 터널 속의 어둠에 비유하고 있다. 즉 인류역사는 암흑시대에 처해 있으며, 인생행로는 고민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윤동주는 “未久에 우리에게 光明의 天地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기차가 터널을 벗어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터널을 벗어나자, 그는 복선공사에 분주한 노동자들을 목격하게 된다. 땀과 피를 아끼지 않는 그들을 ‘건설의 사도들’이라고 부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윤동주는 이 노동자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위의 세 번째 인용 중간에 2행 정도 탈락된 부분이 있는데, 홍장학은 그 앞뒤의 문맥을 검토하면서 이 탈락된 부분의 “내용 역시 ‘노동자 예찬’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앞의 책, 644면) 추정하고 있다.
어쨌든 윤동주는 노동자들이 밀고 다니는 ‘도락구 판장’에 서투른 글씨로 ‘新京行’, ‘北京行’, ‘南京行’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고는, 그 끝없는 ‘苦力’에 ‘慰安’을 삼으려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읽어낸다. 이것은 또한 자기 자신의 마음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시인은 4학년 졸업반 학생으로서 지니고 있는 자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나는 곧 終始를 박궈야한다. 하나 내車에도 新京行, 北京行, 南京行을 달고 싶다. 世界一週行이라고 달고 싶다. 아니 그보다 眞正한 내故鄕이 있다면 故鄕行을 달겟다 다음 到着하여아할 時代의 停車場이 있다면 더좋다. 『사진판 전집』, 137면.
시인은 “곧 終始를 바꿔야 한다.” 이제는 1938년에 시작했던 연희전문학교의 생활을 마치고(終),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해야(始) 한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들처럼 “新京行, 北京行, 南京行을 달고 싶다.” 세계일주라도 하고 싶다. 하여간 어디론가 떠나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시의 바꿈이 단순히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따위의 것만을 의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眞正한 내 故鄕’ 또는 ‘時代의 停車場’을 생각한다. 시인은 자신의 삶에 뭔가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뭔가 새로운 도약이 요구되는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또는 도약은 좀더 근원적인 것으로, 한편으로는 시대적 의미를 지니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시대적 의미를 그 안에 품는, 무엇보다 깊은 차원의 내면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현배는 산문 <종시>가 순환론적 사고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이에 따라 윤동주의 시 전체를 ‘순환적 반복’으로 설명하고 있다.(앞의 책, 157∼174면) 그러나 산문 <종시>는 순환론적 사고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시인 내면에서의 근원적인 변화를 암시하고 있는 글이다. 또 연희전문 졸업반 당시에 씌어진 이 산문을 북간도 시기, 연희전문 시기, 토쿄유학 시기에 씌어진 시들 전체에 두루 관련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이 점, 그의 시 <길>의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시 <길>
윤동주의 시적 편력은 대략 3시기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1) 용정 은진중학교→평양 숭실중학교→용정 광명학원 시절(1934∼1937) 2) 연희전문학교 시절(1938∼1941) 3) 동경 유학 시절(1942년 이후)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시기는 두 번째 연희전문학교 시절이니, 바로 이 시기에 우수한 작품들이 많이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연희전문 시절의 작품들을 잘 살펴보면, 그가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실로 눈에 띄게 시적 발전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연희전문 시절을 다시 3시기로 나눌 수 있으니, <새로운 길>(1938. 5. 10), <자화상>(1939. 9), <무서운 시간>(1941. 2. 7)이 각각 그 3시기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연희전문 시절에만 국한시킬 경우, <자화상>과 <무서운 시간>은 각각 제1기와 제2기, 제2기와 제3기를 가르는 분수령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 된다. <자화상>은 자신의 내면을 투명하게 살펴, 스스로 존재론적 근거를 확립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자화상>이 지닌 분수령적 의미에 대해서는 류양선, 앞의 글 참고.
<무서운 시간>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시인이 종교적 실존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길>은 <무서운 시간> 이후에 씌어진 작품이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하고 시작하여 “나를 부르지 마오.” 하고 끝나는 『사진판 전집』, 154면.
<무서운 시간>의 “‘무서운 시간’이란 죽음의 사자가 오는 시간이요, ‘나를 부르는 것’은 죽음의 사자다.” 김우종, 「암흑기 최후의 별」, 권영민 편, 앞의 책, 149면.
이 시는 시인의 죽음 체험, 즉 가장 깊은 의미의 근본체험을 토로하고 있다. 그리하여 “죽음의 면전에서 훌륭한 처분 가능성으로서의 자기를 의식하는 것이다.” 김남조, 앞의 글, 30면.
이 시에서 볼 수 있는 죽음에 마주친 몸부림 이후, 시인은 홀로 하느님 앞에 마주서는 단독자 즉 종교적 실존으로 변화해 가게 된다.
윤동주는 이 ‘무서운 시간’을 거친 이후인 1941년 5∼6월경에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1941. 5. 31), <새벽이 올 때까지>(1941. 5), <십자가>(1931. 5. 31), <눈 감고 간다>(1941. 5. 31), <돌아와 보는 밤>(1941. 6), <바람이 불어>(1941. 6. 2) 등의 기독교적 의미를 드러내는 시들을 쓰고, 1941년 9월에 이르러 <또 다른 고향>(1941. 9)과 <길>(1941. 9. 31)을 써서 그러한 종교적 의미를 심화시키게 된다. 그리고는 이어서 <별 헤는 밤>(1941. 11. 5), <서시>(1941. 11. 20), <간>(1941. 11. 29), <참회록>(1942. 1. 24)을 쓰면서 시적 성숙도를 더해가는 것이다.
이상에서 간단하게나마 윤동주의 시적 편력을 살펴보았거니와, 그렇게 한 것은 이 글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작품인 <길>(1941. 9. 31)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즉 <길>에 대한 상세한 분석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작품은 이 시인이 종교적 실존으로 성숙해 나아가는 도정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시 <길>을 읽어보자.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츰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츰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처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프름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길을 것는것은
담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사진판 전집』, 162면.
<길> 全文이다. 이 시는 그 제목에서부터 산문 <終始>와의 관련성을 짐작하게 한다. ‘길’이란 말은 ‘종시’란 말의 변형이다. ‘마치고 시작한다’는 것이 바로 ‘길’을 떠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둘을 연결시켜 보면, 지난 일을 끝맺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선다는 뜻이 된다.
산문 <종시>와 시 <길>의 관련성은 <종시>의 문장과 <길>의 시행을 서로 비교해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종시>의 다음 대목을 <길>의 3, 4, 5연과 비교해 보자.
나는 내 눈을 疑心하기로 하고 斷念하자!
차라리 城壁우에 펄친 하늘을 처다보는 편이 더 痛快하다. 눈은 하늘과 城壁境界線을 따라 작구 달리는 것인데 이 城壁이란 現代로써 캄푸라지한 넷 禁城이다. 이안에서 어떤일이 일우어저스며 어떤일이 行하여지고 있는지 城박에서 살아왓고 살고있는 우리들에게는 알바가 없다 이제 다만 한가닥 希望은 이 城壁이 끈어지는 곳이다. 『사진판 전집』, 129∼130면.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산문 <종시>와 시 <길>은 그 소재와 발상에서 서로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공통된 소재란 성벽과 돌담, 그 안과 밖, 성벽 또는 돌담 위에 펼쳐진 하늘 등이며, 공통된 발상이란 성벽 또는 돌담으로 성 안과 성 밖이 굳게 차단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위로 높이 펼쳐져 있는 하늘을 쳐다본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소재와 발상의 유사성은 시 <길>을 쓰게 된 최초의 착상이 산문 <종시>에서 유래하였음을 말해 준다. 그러면 이제, 이 최초의 시상이 시에서 어떻게 발전하여 산문을 넘어서는 더욱 깊은 차원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길’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 ‘길’이라는 단어처럼 다양한 의미층위를 지니는 말도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길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만든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뜻하는 것이면서, 또한 그 길을 가는 행위 자체인 노정이나 여정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길은 세월(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여곡절과 시련을 겪는 인생행로를 뜻하면서, 동시에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방법을 뜻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길은 진리를 찾아 나선 사람의 구도적 행각을 뜻하기도 하고, 그가 찾고 있는 진리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길이라는 말은, 땅 위에 난 일정한 너비의 공간이라는 길 최초의 의미를 제외하면, 모두가 상징이다. 요컨대 ‘길’이란 상징적 언어이며, 따라서 그 의미는 시시각각 변하면서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그 자유자재하고 무궁무진한 의미변용으로 인해, ‘길’이라는 어휘는 그 자체로 시적 함의를 갖는다. 그런 까닭에 ‘길’은 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상징적 시어가 되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 <길>에 나타난 ‘길’ 역시 이러한 상징적 언어로서, 그 의미의 폭이 상당히 큰 경우에 속한다. 여기서는 이러한 ‘길’의 의미변용에 유의하면서 이 시를 1∼2연, 3∼4연, 5연, 6∼7연의 4부분으로 나누어 읽어 보기로 한다.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1연; “잃어버렸습니다.” 하고 시작되는 이 시의 첫 행은 상실감을 다소 급박하게 토로하는 단정적 서술로 되어 있다. 이 급박하고도 단정적인 서술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함의를 지닌다. 그게 대체 무엇인지 어디다 잃었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쉽게 되찾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지만, 잃어버렸다는 느낌만은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간다. 여기에는 가장 본질적인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현재의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느낌, 김남조, 앞의 글에서는 이 1연에 “표백된 것은 바로 신앙의 지표를 잃은 때의 그 막막함이다.”라고 하였다.(46∼47면)
어떤 의미에서는 이승의 삶 자체가 잃어버린 데서 시작하여 그것을 찾아가는 행위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그러기에 길에 나아가 걸음을 옮기면서도 두 손은 주머니를 더듬는다. 김현자, 앞의 글에서는 여기서의 “주머니는 길에 비하여 작고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의 내면과 동일화될 수 있다.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행위는 곧 잃어버린 대상이 화자의 내면에 존재해 있던 상임을 추정케 한다.”고 하였다.(266∼267면)
주머니를 더듬는다는 것은 시인이 뭔가 깊은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더듬는 두 손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향해 뻗어 있는 촉수이다. 따라서 시인이 밖으로 나간 것 자체는 무목적의 산책길에 불과하다. 이 산책길의 발걸음은 두 손이 주머니 속을 더듬는 것을, 즉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돕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2연; 무목적의 산책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돌담길이다. “길은 돌담을 끼고” 간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이어진 돌담길이기에 길은 돌담에 따라 생겨났고 돌담을 의지해 계속된다. 본래적인 어떤 영원한 세상을 차단해 가리우고 있는 돌담, 그 돌담을 끼고 길이 나 있다. 담 너머 고궁 안은 바로 가까이 곁에 있지만, 그 안을 볼 수도 없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담 너머 고궁이 있기에 돌담이 있고, 돌담이 있기에 길도 있다. 이런 까닭에 돌담길은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을 수 없으나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찾아가야 하는 마음의 길이 된다. 1∼2연에 나타난 ‘길’은 실제 밖으로 나선 길이자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하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츰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츰으로 통했습니다.
3연; 끝없이 이어진 돌담길을 걷다가 마침내 고궁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이다. 잃어버린 무엇이 고궁 안에 있는데, 굳게 닫힌 쇠문에 막혀 들어가 찾을 수 없다. 게다가 담의 긴 그림자 또는 담이 던진 쇠문의 긴 그림자가 길 위를 덮고 있다. 이 긴 그림자는 어둠의 느낌과 함께 시간의 감각을 자극한다. 이제 해질녘이 가까워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의 공간 감각을 다음 연에서 시간 감각으로 바꾸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고궁의 안과 밖을 차단하고 있는 담과 쇠문은 시간의 벽이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 인간은 이 시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여기서 또한, 다음 연과 관련하여 시간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가 암시되기도 한다.
4연;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해 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아침에서 저녁까지 걸었는데, 이제 다시 저녁에서 아침까지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공간감각에 의지했던 길이 여기 와서 완전히 시간감각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의 공간(길)의 이동은 시간의 흐름이 그렇게 표현된 것일 따름이다. 아침이 저녁이 되고 저녁이 아침이 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길은 이어진다. 길은 시간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해 있는 길, 시점이 종점이 되고 다시 종점이 시점이 되는 길이다. 여기까지 와서, 이미 언급한 “종점이 시점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고 하는 산문 <종시>의 첫 문장의 2차적 의미를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저녁이 아침이 되고 아침이 다시 저녁이 된다는 것, 말하자면 인생 행로란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만 걸을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산문과 시의 관계를 살피면 산문의 의미도 깊어진다.
인간은 이 길을 단축시켜 살아갈 수 없기에, 담 저쪽(고궁 안)을 걸어 볼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만 걷을 수 있는 길, 끝없이 걸어도 끝나지 않는 길, 죽음에 이르러서야 끝나는 길, 이것이 바로 인생행로이다. 이처럼 3연에 나타난 공간의 길은 4연에 와서 시간의 길, 인생행로로 바뀌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처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프름니다.
5연; ‘길’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걸음이 멈추어졌기 때문이다. 내면세계를 더듬던 촉수가 그 바닥에 닿았기 때문이다. 이 전환점에서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6∼7연에서 볼 수 있는 영적인 길로의 의미변용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의 내면은 어떤 것인가? 담 이쪽의 삶임에도 담 저쪽을 향하는 그런 내면이다. 시인은 갈 수 없는 담 저쪽을 그리워하면서 주머니를 더듬던 손으로 돌담을,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더듬는다. 그러면서 눈물짓는다. 이 눈물은 담 이쪽, 현실세계에서의 삶에서 오는 슬픔의 표현이다. 본래적 자아를 떠나 비본래적 자아로 추락한 데서 오는 지극한 슬픔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는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이 시행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부끄러워집니다.”라고 바꾸어 읽을 수 있다. 이 시행은 후에 <서시>에서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변형된다.
쾌청한 하늘의 푸른 빛은 시인을 부끄럽게 하는데, 왜냐하면 시인의 내면이 거기 비추어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 부끄러움 속에는 시인의 여리디 여린 마음이 들어 있고, 그런 시인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엄정한 자기성찰이 깔려 있으며, 시인만이 지닌 깨끗하고 명징한 윤리적 감각이 녹아 있다. 최동호, 앞 글에서는 이 시에서의 “부끄러움은 자아와 세계가 상호 이해의 한계에 부딪힐 때 자아의 내면성을 보장해 주는 감정이며, 현실에서의 자아의 비합리성을 표현하는 도덕적 가치로서 윤동주에게 의식된 것”이라고 하였다.(492면)
가슴을 열어 보여주는 투명한 슬픔과 따뜻한 사랑, 이런 것들로 시인은 6∼7연에서 볼 수 있는 영적 여로를 준비한다. 전우주적 높이를 지닌 푸른 하늘은 시인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늘은 담 위에 높이 펼쳐져 담 이쪽과 담 저쪽을 두루 비추어 준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추락한 비본래적 자아는 하늘에 계신 님을 통해서만 본래적 자아와 연결된다.
풀 한포기 없는 이길을 것는것은
담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6연; 여기까지 와서, 신앙적 결단을 내릴 시간에 이르렀고, 시인은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결단을 내리려 한다. 이제 시인이 내리려 하는 결단은 자신의 삶의 이유와 근거를 찾았기에 가능한 그런 결단이다. 그러기에 여기서부터 ‘∼(하)는 것은’→‘∼까닭이고’ 하는 담담한 설명적 어조가 나타난다. 시인은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이지만, 그 길을 걷기로 하는 것이다. 하늘의 푸른 빛으로 자신의 내면을 맑게 씻어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담 저쪽에 남아 있는 본래적 자아, 푸른 하늘에 비추인 자신의 영혼을 보았기 때문이다. 풀 한포기 없는 길이란 말할것도없이 척박하기 짝이 없는 현실세계를 가리킨다. 여기서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은 산문 <종시>에서 보았던 윤동주의 등굣길을 연상시킨다. 등굣길에서 차창으로 내다본 창백한 얼굴들, 그런 풍경을 보고 느끼는 절망에 가까운 무력감 등은 어떤 방식의 합리적 해결도 불가능한 일제 말기 현실세계의 삶의 불모성 그 자체이다.
인간다운 본래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불모의 현실임에도 그 현실을 살아내겠다는 것은 본래적 자아, 즉 자신의 영혼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와서, ‘길’은 두 번째의 의미변용을 일으킨다. 본래적 자아로 돌아가는 길, 그것은 이 세상의 길을 넘어선 신앙의 길이다. 본래적 자아가 남아 있는 담 저쪽은 내가 떠나온 곳이자 돌아가야 할 곳이다. 그리하여 ‘길’은 이제 영적 여로가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본래의 내가 아니다. 하늘에 비추어 그 푸른 빛에 씻기운 나만이 본래적 자아이다.
7연; 이 마지막 연에서 조용한 신앙적 결단이 드러난다. “내가 사는 것”은 6연에서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과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시인이 불모의 현실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오직 “잃은 것은 찾는 까닭”이다. 시인이 ‘잃은 것’은 담 저쪽에 남아 있는 ‘나’이다. 그런데 이 담은 고궁의 돌담이라 할 수 있으므로,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이 잃어버린 ‘나’를 민족적 정체성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특히 이것을 <종시>에서 살핀 일제 말기의 삶의 불모성과 관련시켜 보면, 이 시에 그러한 민족적, 시대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가 이 시의 전체적 구도를 지배한다고 볼 수는 없다.
1연 첫 행에서 “잃어버렸습니다.” 하고 말했을 때의 그 ‘잃은 것’이란 지금까지 논의한 대로 본래적 자아이다. 이제부터 시인이 살아가는 것은 다만 본래적 자아를 다시 찾기 위해서, 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존재론적 갈망을 이루기 위해서일 뿐이다. 시인은 ‘다만’이라는 단어의 앞뒤에 쉼표를 두어, 오직 신앙으로만 가능성으로서의 인간 실존을 회복할 수 있음을 표나게 지적하였다. 오직 님을 향한 매순간의 결단을 통해서만, 나는 본래의 내가 된다. 이렇게 해서, 6~7연의 ‘길’은 인생행로이자 신앙의 길, 다시 말해 척박한 현실에서의 영적 여로가 된다. 이것은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하는,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명확한 서술로 뒷받침되어 있다. 김남조, 앞의 글에서는, “<길>은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신앙의 회의기에 씌어진 작품으로 <십자가>의 서원이 그 향방을 잃게 되는 자아 상실의 위기를 보여준다.”고(53면) 하였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적 편력에 따르면, <길>은 오히려 신앙의 성숙기에 씌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 할 때, 잃었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부여된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잃은 것’을 찾기 위해서만 살아간다고 하는 다짐이 중요한 것이다. 윤동주는 <무서운 시간> 이후, <십자가> <또 다른 고향> <길> <서시> 등에서 이러한 신앙적 다짐을 반복하고 있다.
지금까지 ‘길’의 의미변용에 유의하면서 시 <길>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리하여 이 시에 나타난 ‘길’은 땅 위에 난 돌담길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행로를 거쳐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영적 여로까지 멀리멀리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길은 푸른 하늘에 비추어 자신을 가다듬는 그런 길, 길 걸으며 님 그리고 님 그리며 길 걷는 그런 길이다. 시인은 이제 세상에 휩쓸려 가는 삶을 마치고, 오직 님을 향한 새로운 영적 여로를 시작하는 것이다. 시인에게는 오직 이 영적 여로만이 일제 말기 현실세계에서 삶의 불모성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이 시에 최초의 시상을 제공한 산문 <종시>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이미 앞에서, 시 <길>은 그 제목부터가 산문 <종시>의 변형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졌는가? <종시>의 ‘길’은 등굣길이자 생각의 길이었다. <길>의 ‘길’은 돌담길이자 마음의 길이다. <종시>의 ‘길’은 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 선택 등의 현실세계에서의 방향을 찾아 고민하는 길이었다. <길>의 ‘길’은 잃어버린 자아,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선 존재론적 갈망에 따른 길이다. 이처럼 시 <길>은 그 최초의 착상을 산문 <종시>에서 가져왔으나, 그것을 발전시켜 <종시>를 훨씬 뛰어넘는 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된 것은 시 <길>이 여러 상징시어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길’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변용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산문 <종시>가 시 <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시인은 <종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眞正한 내故鄕이 있다면 故鄕行을 달겟다.”고 써 놓지 않았던가? 여기서 ‘진정한 내 고향’이란 시 <길>에서 담 저쪽에 남아 있는 나, 즉 본래적 자아에 상응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길>과 같은 시기에 씌어진 <또 다른 고향>(1941. 9) 역시 산문 <종시>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또 다른 고향>을 미처 다루지 못하였다. 미리 말해 두자면, <길>에서의 잃어버린 ‘나’는 <또 다른 고향>에서의 ‘아름다운 혼’에 해당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시 <길>에 대한 지금까지의 분석이 다시금 산문 <종시>를 비추어 이 산문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까닭이다.
4. 맺음말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씌어진 윤동주의 산문들은 그의 학창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자료이면서, 동시에 그의 시작품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그의 시와 산문 모두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데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고백을 담고 있어, 그 소재와 발상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윤동주의 문학이 지니는 이러한 특성에 착안하여, 거의 같은 시기에 씌어진 산문 <終始>와 시 <길>의 관련양상을 논의해 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산문 <종시>에 대한 꼼꼼한 이해를 통해, 시 <길>이 창작된 그 최초의 시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찾아내려고 하였다. 또한 여기서 더 나아가 산문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만이 지닌 깊은 차원의 의미까지 밝혀보고자 하였다.
산문 <終始>가 씌어진 시기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4학년 때인 1941년 5월경에서 9월경 사이로 추정된다. 이때 윤동주는 누상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산문 <종시>는 그가 전차와 기차를 타고 누상동에서 신촌까지 등교하는 길에서 본 여러 광경을 기록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적은 것이다.
<終始>는 제목의 뜻 그대로 ‘마치고 시작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글에는 윤동주가 연전을 졸업하고 나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시인이 자신의 삶의 노정에서 어떤 질적인 변화와 새로운 도약의 필요성을 직감하고 있다는 사실도 읽어낼 수 있다. 그가 이 산문의 말미에서, ‘진정한 내 고향’ 또는 ‘시대의 정거장’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 이를 암시한다.
시 <길>은 그 제목에서부터 산문 <종시>를 이어받고 있다. ‘마치고 시작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길에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종시>와 <길>은 성벽과 돌담, 그 안과 밖,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하늘 등의 공통된 소재를 보여준다. 또 그 발상에 있어서도, 성벽 또는 돌담으로 그 안과 밖에 굳게 차단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을 쳐다본다는 것 등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공통된 소재와 발상은 <길>을 쓰게 된 최초의 시상이 <종시>에서 유래하였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길>은 <종시>의 내용을 이어받으면서 그것을 넘어서고 있으니, <길>의 ‘길’이 지닌 다층적 의미가 이를 말해 준다. 1연에서 7연에 이르기까지, 이 시에서 표현된 길의 의미는 ‘실제로 걸어가는 돌담길’→‘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는 길’→‘시간의 흐름을 통한 인생행로’→‘자신의 새로운 영적 여로’의 순서로 발전해 나아갔다. 시인은 여러 상징시어들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길’의 의미를 종교적(기독교적)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길>에 함축된 그런 의미로서의 ‘길’이야말로 시인 윤동주가 일제 말기라는 현실에서 삶의 불모성을 극복해 나아간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