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궁지 역사탐방을 마치고나서 진달래를 찾아 혈구산으로 향했다. '진달래하면 고려산인데' 굳이 혈구산을 택한 이유는 고려산은 아직도 출입통제라서였다. 그런데 고려산 대신 혈구산에 오르는 일도 만치 않았다. 혈구산등산로에 이르자 공익요원들이 쫓아와서는 '주차할 수 없다'고 하면서 청련사에는 주차장이 있으니 거기로 가보시란다' 수법이 완전히 폭탄돌리기식인 것 같았다. 우리도 '적자생존'으로 청련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청련사쪽으로 이동 중에 정대장은 '청련사에서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팔라서 마님들이 오르기 어려울테니 차라리 백련사로 가자'고 하면서 달렸다. 그래서 백련사를 목적지로 정하고 산길을 따라서 상당히 올라가서 백련사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폭탄돌리기는 마찬가지로 공익요원들이 주차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누구는 강화민원실로 항의했으나 무위였다. 일행은 '백련사는 나중에 보자' 하면서 사찰은 들리지 않았다.
사찰의 돌담장 앞을 지나서 얼마나 올랐을 때 산에서 내려오는 세 여자를 만났다. 그들에게 진달래 사정을 물으니 '정말로 좋습니다. 어서 가보세요. 말이 필요 없어요'했다. 보아하니 풍을 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들을 뒤로 하고 걸어가는데 길이 좋아서 정대장 말씀(청련사에서 오르는것보다는 백련사에서 오르는 것이 쉽다)이 옳은 것으로 여겨졌다.
민밋한 산모퉁이를 두 번인가 돌고나니 오른쪽 산등성이에 진달래가 듬성듬성 나타났다. 그곳으로 눈을 팔고 있을 때 내려오는 사람들이 '전망대로 가면 진달래능선이 더 잘 보인다'고 했다. 나는 ‘거기는 나중이고 우선은 여기 아닌가...'하고는 사방의 진달래를 두리번 거리면서 길을 걸었다. 드디어 전망대에 이르니 김소월의 진달래시비가 앞산의 진달래를 노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진달래등선을 향하여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그들처럼 전망대에 오르니 붉은 진달래와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진 환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먼발치서 진달래 조망을 마치고 길을 더 오르자 이번에는 '진달래능선'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리듯 그 곳으로 이동해갔다. 우리도 따라서 내려갔는데 몇 계단도 못 갔을 때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길이 막혔다..그들을 피해 간다고 했으나 우리들도 몇 발짝 못가서 포토죤을 차지하고는 흐느러진 진달래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기에 바빴다.
누군가가 '들어갈수록 더 좋구마'하자 남자들은 서둘러서 앞장서 갔지만 마님들은 그대로 진달래와 노는지 나오질 않앗다. 그녀들을 남겨두고 능선을 따라가다보니 왼쪽과 오른쪽이 확연히 달랐다. 오른쪽으로는 만개한 진달래기 넘실대고 왼편으로는 철쭉이 꽃망울이 부풀리고 있었다..진달래가 지고나면 철쭉이 이어질테니 그 때는 진달래능선 이름이 철쭉능선으로 바뀔랑가 싶었다.
언덕진 곳을 조금 더 오르지 나무로 된 전망대가 나타났는데 그 규모가 엄청 컸었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었다. 그곳으로 내려가면 더 좋을성 싶었지만 사람들이 북적대서 일단 참았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파아란 하늘에는 흰구름 떠가고 앞구릉에는 붉은 진달래가 바람에 일렁였다. 뒤쪽으로 돌아서니 애초에 찾기로 했던 혈구산이 저만치 바라다보였다.
일행들은 쉴만한 곳을 찾아서 진달래숲을 헤치고 더 나아갔다. 어디쯤 왔을 때는 아마튜어 사진작가로 보이는 사람이 남녀가 뒤섞인 일행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우리도 비위짱 좋은 친구가 부탁하여 진달래를 배경으로 인증삿을 남겼다. 이어서 반송 같은 소나무와 진달래가 한데 어우러진 곳에 자리를 집았다. 꽃그늘 아래서 꿀맛같은 김밥이랑 곡차를 한잔씩 들이키니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돌아가는 길을 놓고 의논했다. 청련사로 가는 길은 마나님들께는 아무래도 무리가 될테니까 백련사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마나님들만 보내면 안된다'는 낭군들의 여론이 있어서 정대장과 힘센 누구가 캄보이를 하기로 했다. 남정네들은 '나름 잘 되었다' 생각하고는 산고개를 넘어서 청련사로 가기로 했다. 일단은 함께 출발해서 잔달래능선의 아래계단으로 내려가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를 노래했다
여기서 백련사팀은 더 놀기로 하고 청련사팀은 서둘러서 출발했다. 어디쯤 왔을 땨 조그만 연못이 있었고 五蓮池 안내문이 있어서 읽어보았다. 옛날 옛적(고구려)고려산에 절터를 찾던 고승께서 이 연못에 피어있던 5색연꽃을 따서 바람결에 날려서 절터를 정했단다. 흰연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白蓮寺를 짓고 파란연꽃이 떨어진 지리에는 靑蓮寺를 짓고 검정연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黑蓮寺를 지었단다.
의좋은 오형제는 청련사를 찾아가는데 이정표가 안보여서 막막했지만 지나는 사람들께 길을 물었다. 어느 착한 사람이 '고려산진달래가 그려진 홍보사진에서 오른쪽으로 가시라'고 했다. 거기로 가니 청련사길보다는 세 여자가 눈에 띄였다. 여자 셋은 고려산 진달래사진을 배경으로 발랄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매너 좋고 말 잘하는 변사또가 그녀들께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말을 걸지마지 기다렸다는 듯이 낭낭한 화답이 왔다. 그래서 그녀들의 기념사진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단체사진도 찍어받았다.
이내 하찮은 봉사가 발복했는지 청련사로 가는 길이 사진 왼편으로 눈에 뛰었다. 그 길로 들어서서 가는 동안에는 진달래는 거의 안보이고 소나무숲이 쭈욱 이어졌다. 정대장 말대로 조금은 가팔랐지만 별일은 없었다. 한 시간 쯤 걸어서 청권사에 도착했는데 법당이름이며 법문이 한글로 적혀있었다 우리끼리 단체사진을 찍을 때 혼자 온 어떤 여사님이 '대법당 앞 계단에서 찍으면 멋지다'고 하면서 그렇게 해주었다.
진달래능선에서 헤어져 백련사로 내려간 일행들이 궁금해서 정대장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에서 만날 것인지를 물었다. 정대장왈 '아직 백련사경내를 구경하고 있으니 청련사 초입길로 걸어서 내려오시라'고 했다. 일행들에게 그렇게 전달했더니 금슬좋은 某회장은 자기 ‘마나님이 청련사를 꼭 보아야한다’면서 정대장께 차를 끌고 청련사로 오라고 했다.
연락병이 정대장께 그렇게 다시 전언했다. 그로부터 오래지않아 정대장과 백련사팀들이 올라왔다. 마나님들을 기다리던 낭군들이 반갑게 영접하고는 이어서 꽃잎이 간간히 흩날리는 벚꽂나무 아래서 부부끼리 결혼 몇 십주년 증명사진을 남겼다. 외톨이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