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양의 해 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들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전년도 송년회를
많이 기다리셨죠? 금년도 신년회와 함께 빠른 시간내에 일정을 잡아 가족들과 함께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경주문화탐방에 대한 수필입니다. 형편없는 졸고인지라 부끄럽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나 식히며 읽어 보세요.
짧은 시간 긴 여운
어디로 떠날까?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직장 내에서 <문화탐방클럽>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어 매년 고민하는 문제다. 일정, 장소, 차량, 준비물 등 신경 써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통상, 교대A, 교대B, 교번 등 근무 형태가 다양해서 근무 일정은 물론 가족과 자녀들의 일정도 생각해야 한다. 가족 동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태백의 눈꽃축제와 폐광촌을 다녀왔다. 올해는 경주로 결정했다. 가까운 거리라 부담이 없다. 불국사, 석굴암, 천마총, 박물관 등 유적지에는 한두 번쯤 다녀왔을 것이다. 고민 끝에 전통유교문화체험을 하기로 했다. 회원 자녀들 대부분이 초등학생이라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해주고 싶다. 회원과 가족들의 반응이 뜨겁다. 경주향교에 예약했다. 생활예절체험, 국궁체험, 다도체험, 전통혼례체험, 제례체험, 유적답사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향교로 향하는 도중에 옥산서원에 들렀다. 조선 시대의 문신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는 사당이다. 작은 대문을 들어서자 추사가 썼다는 커다란 편액이 우리를 맞는다. 구인당, 민구재, 정료대 등에 대한 문화해설사의 해박하고 자세한 설명이 곁들어진다. 아이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바라보는 부모의 눈길이 흐뭇하다.
洗心臺(세심대)를 지나 5분 정도 걸어가니 솟을대문과 함께 이언적이 낙향하여 기거 했다는 독락당이 보인다. 별채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계정이다. 내 고향 예천의 초관정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 중 한곳이란다. 주변의 영귀대, 관어대, 탁영대와 오래된 고목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놓은 듯하다. 계정 앞에는 자계천이 흐른다. 이곳에서 바라보아야 계정의 진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단다. 흘러가는 물소리는 아름다운 거문고의 음률을 타는 듯 맑고 청아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온돌방과 대청마루가 흙돌담 앞으로 툭 튀어나와 불안정하게 서 있다. 초관정과는 또 다른 멋이 느껴진다. 튀어나온 대청마루를 힘겹게 떠받들고 있는 네 개의 작은 나무기둥에 눈길이 간다. 오랜 세월의 수고로움이 애처롭다. 수많은 문인, 묵객들이 저 대청마루에 앉아 학문을 논하고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거문고 삼아 막걸리 한 사발에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으리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잠시 양동마을에 들렀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잘 어우러져 있다. 마을 전체가 아름답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옛날로 되돌아온 것 같다.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단다. 관가정, 무첨당, 대성헌, 향단, 서백당 등에 대한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이 일행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천천히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같이 포근하고 아늑하다. 초가집과 가지런한 돌담길이 정겹기 그지없다.
향교에 도착했다. 곧바로 전통 복장으로 갈아입으란다. 남자들은 한복 바지와 하얀색 두루마기에 망건을 쓰고 여자들은 한복을 입는다. 아이들도 전통복장으로 바꿔 입었다. 전통복장을 입어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자꾸만 거울 앞으로 달려가 요리조리 옷맵시를 뽐내고 있다. 복장을 갖추고 명륜당에 올랐다. 대청마루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으니 제법 선비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들도 영락없는 학동이다. 체험이 시작되었다. 전통 인사법이다. 어느새 향교를 찾은 많은 관광객이 명륜당으로 몰려들었다. 구경하기 위함이다. 어른들은 물론, 천방지축 자유분방하던 아이들도 엄숙해진다. 웃어른에 하는 인사법, 동료 간의 인사법, 길거리에서의 인사법, 큰절하는 법, 반절하는 법 등 인사법도 다양하다.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까다롭다. 체험을 통해 느끼고 배운다. 외국인 관광객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신기한 모양이다. 많은 사람의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큰절하다가 넘어지는 등 자꾸만 실수한다.
이어서 국궁체험이다. 어디서 전통 활을 만져보겠는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처음인가 보다. 몇 번씩이나 쏴본다. 나는 중학교 때 화랑교육원에서 만져본 후 40년 만이다. 비록 145미터의 정규 사거리는 아니지만 사대에 올라서니 기분이 새롭다. 옛날 생각이 난다. 전통체험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관광객들이 우리를 졸졸 따라다닌다. 화살이 과녁에 명중할 때마다 손뼉도 쳐준다. 마지막으로 다도체험이다. 직접 차를 끓이고 다소곳이 찻잔에 따른다. 아이들 표정이 진지하고 엄숙하다. 두 손으로 고이 받쳐 든 찻잔에서 다도의 예가 묻어난다. 진한 향기가 방안 가득 코끝을 자극한다. 그윽한 차 한 잔을 음미하며 예정된 일정을 마쳤다. 회원 가족과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교육적인 효과도 상당하다. 체험 탓인가? 갑자기 모두의 행동이 의젓해진 것 같다. 이번 체험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이다. 전통혼례체험과 제례체험도 해보고 싶단다. 1박 2일 일정으로 한 번 더 오자며 은근히 압력을 넣는다. 왠지 싫지가 않다. 오히려 가슴이 뿌듯하다. 많은 사람에게 전통문화체험을 권하고 싶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관광자원으로 운영하면 우리나라를 알리는데 많은 기여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상이 자꾸만 서구화되어간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못내 아쉽다.
차창 밖으로 전등 불빛이 샛별 같이 반짝반짝 어둠을 밝히고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직까지 가슴가득 긴 여운이 남아있다.<원고지 14.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