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할링겐에 사는 번 휠라이트(79)는 내일모레가 팔순이지만 60세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에 각별히 신경 쓴다. 어유 정제와 비타민제 비오틴(biotin, 손톱 갈라짐을 방지하고 골량을 보존해준다고 알려졌다)을 복용하고, 과일과 채소를 주로 섭취하며, “고기는 약간만 먹는다”고 말했다. 하루 최소한 몇 분씩은 꼭 운동하고 입식 책상(standing desk, 앉지 않고 서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든 책상)을 사용한다. “사소한 일이지만 그 모두가 합쳐지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그는 말했다.
휠라이트는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어 한다. 다음 세대는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런 믿음이 터무니없지 않다고 말하는 건강 전문 연구자와 제약계 임원, 미래학자가 늘어간다. 유전자 편집(gene editing), 줄기세포 요법, 3D 바이오 프린팅 같은 핵심 기술이 현대 의학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중이다. 앞으론 대다수가 지금보다 훨씬 긴 수명, 최소 100년의 삶을 누릴 수도 있다. 생명공학회사 GE 헬스케어의 세포요법 기술책임자 필 바넥 박사는 “세포요법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초장수의 가능성은 아직 과학적 현실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널리 공감을 일으킨다. 미국의 저명한 유전학자 크레이그 벤터 박사(인간 유전체 해독법을 개발했다)는 수명 연장을 목표로 셀레라 제노믹스를 설립해 7000만 달러(약 77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글로벌 결제 서비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벤처투자자인 피터 티엘은 이미 120세까지 살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수명 120세 개념을 주제로 한 독자적인 페이지와 양생법이 올라 있다.
현재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약 79세다. 1970년생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약 70세, 2007년생은 약 78세다. 휠라이트는 “1950년대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50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120세 수명 연장이 쉬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문가는 2세대 안에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공학 회사 론자의 세포요법 연구책임자인 에이탄 에이브러햄 박사는 “수명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밀의학과 표적치료제
인류는 이전에도 장수의 원대한 야망을 품었다. 1990년대 중반 그 꿈이 영글 기미가 보이는 듯했다. 유전자변형 식품이 등장했고,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가 처음 분리됐으며,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났다. 그러나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윤리적 논란이 일거나 과학적 한계가 드러났다. 암의 완전퇴치나 유전공학적 무결함 자녀 출산의 꿈은 기술적인 현실과 윤리적 우려로 사그라졌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1990년대 중반 과학자들은 인간 유전체(genome) 지도를 만들려는 국제적인 노력에 박차를 가했지만 완성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2001년 인간 유전체 지도의 초안을 발표한 이래 이 분야가 급성장하면서 질병 치료에 유전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었다.
휠라이트는 76세에 아내와 함께 유전자 분석업체 23앤미를 통해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신이 혈전용해제 와파린에 과민반응을 보일 수 있고 부정맥이 올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는 자신에게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정보를 10년 전에 알았다면 내 삶이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세계적으로 매년 약 760만 명이 암으로 사망한다.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모든 암의 5~10%는 유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DNA를 고치거나 변형시키면 상당히 효과적인 암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바이오테크 프라이머의 생명공학 고문 에밀리 버크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의료기술 박람회 인터펙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일부 암의 경우 그 종양의 유전학이 밝혀졌고 그에 대한 표적요법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에 작용하는 신약 개발이 유전자 결함을 직접 편집하거나 교체하는 기법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회사 제넨테크는 HER2 유전자 과다에 기인한 유방암을 치료하는 허셉틴(Herception)이라는 정맥주사제를 시판한다. 이 약은 HER2 유전자의 수용체를 차단해 증식을 막는다.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폭스체이스 암센터 암유전체연구소는 환자 종양의 유전자 프로필을 분석해 맞춤형 치료가 가능한 변이를 찾아낸다. 다른 회사들은 암 환자의 종양 샘플을 생쥐에게 이식해 ‘아바타’를 만든 다음 안전하게 최적 항암제를 찾는다. 버크 고문은 “특정 암의 맞춤형 생쥐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요법과 유전자 편집
유전자 편집과 유전자요법은 유전자를 물리적으로 변형시켜 변이를 막거나 결함 부분을 교체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겸상 적혈구 빈혈증(sickle cell anemia) 환자는 결함 있는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2개 갖고 있다. 그 유전자가 적혈구의 정상적인 생성을 방해한다. 버크 고문은 “그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치료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이용이 그 방법 중 하나다. 바이러스로 세포를 감염시키는 과정에서 결함 없는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삽입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5~6년 전만 해도 신체를 감염시키지 않고 유전자를 이식할 수 있는 안전한 바이러스 매개체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2년 유럽연합(EU)은 ‘글리베라(Glybera)’로 불리는 바이러스 매개체를 승인했고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생명공학회사 셀라돈이 개발한 중증 심부전 치료제 마이디카(Mydicar)에 ‘획기적 치료제 지위(breakthrough status)’를 부여했다(올해 안에 승인이 떨어질 예정이다).
바이러스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대안은 아직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거나 일부는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ZFN(zinc-finger nucleases)이나 크리스퍼(Crispr) 같은 유전자 편집 도구가 대표적이다. 둘 다 DNA 가닥을 잘라 문제 있는 염기쌍을 제거하고 새로운 부분을 삽입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치먼드 소재 상가모 바이오사이언스는 현재 에이즈 바이러스(HIV)가 면역세포를 공격할 때 의존하는 단백질을 차단할 수 있는 방도로 ZFN을 연구하고 있다. 중국의 과학자들은 최근 크리스퍼를 사용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을 처음 시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발표했다(배아 86개 중 28개에서만 성공했다).
세포요법
최근 생명공학회사들은 세포요법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고 심장마비나 뇌졸중의 회복을 증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섰다. 유전자요법과 편집 기법은 DNA의 결함 부분을 표적으로 삼는 데 유용하지만 인체는 단순히 유전자의 총합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세포요법이 등장했다. 손상된 부분을 강화하고 사라진 부분을 채우기 위해 환자에게 살아 있는 인체 세포를 삽입한다. 수혈과 골수 이식도 세포요법에 포함된다.
호주 소재 생명공학회사 인베텍의 세포요법 담당 부사장 리처드 그랜트는 “세포요법이 의료 산업의 새 기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은 요실금 환자의 허벅지에서 세포를 추출해 실험실에서 증식 배양한 다음 다시 환자에게 삽입해 방광 조절력을 되찾도록 근육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GE 헬스케어의 바넥 박사는 새로운 세포요법이 유망하지만 업체들은 이런 치료제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임상학적으로 이런 약은 효과가 뛰어나다. 문제는 대량 제조와 유통이다.”
세포요법 중에서도 줄기세포가 다시 각광 받는다. 줄기세포는 인체에 필요한 모든 세포로 배양할 수 있다. 미국 바이오벤처기업 뉴럴스템은 현재 척수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루게릭병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해 FDA 승인에 필요한 3단계 임상시험 중 2단계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버크 고문은 앞으로 5년 안에 FDA가 승인한 줄기세포 요법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크며, 특히 심장세포와 신경세포 재건에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3D 바이오 프린팅
멋없는 하이힐과 밋밋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3D 프린팅 열풍을 두고 흉보는 사람도 있지만 의학 연구자들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3D 프린팅으로 세포에서 건강한 조직과 장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정확한 복용량을 담거나 특정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형 장치를 담은 약을 설계할 수 있다고 본다.
미시간대학 CS모트 어린이 병원의 의료진은 최근 선천성 ‘기관지연화’(기도 벽이 약해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라는 희귀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가 3D 프린팅으로 만든 기도 부목을 이식 받은 후 3년이 지난 지금 아주 건강하다고 발표했다(재생의학 전문 의료진이 아이의 기도를 디지털 이미지로 촬영한 후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작은 기도 부목을 만들었다). 의료진은 그 이후 다른 아기 2명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기도 부목을 이식했다. 그들도 1년 이상 지난 현재 증상이 서서히 완화되고 있다.
미시간대학에서 이 치료를 지휘한 글렌 그린 박사는 “지금까지 우리가 실시한 치료가 전부 환자의 삶을 증진시켜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3D 프린팅 의료 장치의 잠재력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치료를 보편화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
미시간대학 의료진은 기도 부목 프린팅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해 FDA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3D 프린팅을 인간의 생명연장에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미군 재생의학연구소는 전투에서 사망 원인의 10~30%를 차지하는 화상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는 피부를 만드는 3D 프린팅 기술을 개발 중이다.
버크 고문은 1~2년 안에 심장 판막, 요도, 혈관의 3D 프린팅이 실용화되리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장기 전체를 완벽하게 프린팅하려면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명과학 연구단체 메투셀라 재단은 마냥 기다릴 생각이 없다. 이 단체는 몸집 큰 동물의 이식 가능한 간을 가장 먼저 제작하는 팀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프린팅이 유망한 방법 중 하나다.
이 모든 기술이 실용화되려면 수십 년은 걸릴 듯하다. 따라서 제한된 과학 자원을 현재의 환자 건강 증진에 투자하기보다 미래의 수명 연장에 집중 투입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더구나 우리 생의 막바지는 아주 비참하다. 건강 악화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과 삶의 의미가 갈수록 사라지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해도, 예를 들어 치료책이 없는 알츠하이머병으로 환자를 오래 고생시킨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론자의 에이브러햄 박사는 “삶의 질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수명을 연장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인베텍의 그랜트 부사장은 120세까지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삶의 질이 보장될 경우에만 그렇다”고 말했다.
GE 헬스케어의 바넥 박사는 연구자들이 120세 장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런 목표를 공유함으로써 생명과학 연구에 초점을 맞춰 현재의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수는 급진적 혁신의 측면이 강하다. 거대하고 흥미진진한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진정한 이유는 삶의 질 개선이다. 장수를 목표로 연구하다가 실패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미국 텍사스주 할링겐에 사는 번 휠라이트(79)는 내일모레가 팔순이지만 60세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에 각별히 신경 쓴다. 어유 정제와 비타민제 비오틴(biotin, 손톱 갈라짐을 방지하고 골량을 보존해준다고 알려졌다)을 복용하고, 과일과 채소를 주로 섭취하며, “고기는 약간만 먹는다”고 말했다. 하루 최소한 몇 분씩은 꼭 운동하고 입식 책상(standing desk, 앉지 않고 서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든 책상)을 사용한다. “사소한 일이지만 그 모두가 합쳐지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그는 말했다.
휠라이트는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어 한다. 다음 세대는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런 믿음이 터무니없지 않다고 말하는 건강 전문 연구자와 제약계 임원, 미래학자가 늘어간다. 유전자 편집(gene editing), 줄기세포 요법, 3D 바이오 프린팅 같은 핵심 기술이 현대 의학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중이다. 앞으론 대다수가 지금보다 훨씬 긴 수명, 최소 100년의 삶을 누릴 수도 있다. 생명공학회사 GE 헬스케어의 세포요법 기술책임자 필 바넥 박사는 “세포요법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초장수의 가능성은 아직 과학적 현실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널리 공감을 일으킨다. 미국의 저명한 유전학자 크레이그 벤터 박사(인간 유전체 해독법을 개발했다)는 수명 연장을 목표로 셀레라 제노믹스를 설립해 7000만 달러(약 77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글로벌 결제 서비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벤처투자자인 피터 티엘은 이미 120세까지 살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수명 120세 개념을 주제로 한 독자적인 페이지와 양생법이 올라 있다.
현재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약 79세다. 1970년생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약 70세, 2007년생은 약 78세다. 휠라이트는 “1950년대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50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120세 수명 연장이 쉬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문가는 2세대 안에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공학 회사 론자의 세포요법 연구책임자인 에이탄 에이브러햄 박사는 “수명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밀의학과 표적치료제
인류는 이전에도 장수의 원대한 야망을 품었다. 1990년대 중반 그 꿈이 영글 기미가 보이는 듯했다. 유전자변형 식품이 등장했고,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가 처음 분리됐으며,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났다. 그러나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윤리적 논란이 일거나 과학적 한계가 드러났다. 암의 완전퇴치나 유전공학적 무결함 자녀 출산의 꿈은 기술적인 현실과 윤리적 우려로 사그라졌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1990년대 중반 과학자들은 인간 유전체(genome) 지도를 만들려는 국제적인 노력에 박차를 가했지만 완성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2001년 인간 유전체 지도의 초안을 발표한 이래 이 분야가 급성장하면서 질병 치료에 유전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었다.
휠라이트는 76세에 아내와 함께 유전자 분석업체 23앤미를 통해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자신이 혈전용해제 와파린에 과민반응을 보일 수 있고 부정맥이 올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는 자신에게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정보를 10년 전에 알았다면 내 삶이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세계적으로 매년 약 760만 명이 암으로 사망한다.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모든 암의 5~10%는 유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DNA를 고치거나 변형시키면 상당히 효과적인 암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바이오테크 프라이머의 생명공학 고문 에밀리 버크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의료기술 박람회 인터펙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일부 암의 경우 그 종양의 유전학이 밝혀졌고 그에 대한 표적요법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에 작용하는 신약 개발이 유전자 결함을 직접 편집하거나 교체하는 기법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회사 제넨테크는 HER2 유전자 과다에 기인한 유방암을 치료하는 허셉틴(Herception)이라는 정맥주사제를 시판한다. 이 약은 HER2 유전자의 수용체를 차단해 증식을 막는다.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폭스체이스 암센터 암유전체연구소는 환자 종양의 유전자 프로필을 분석해 맞춤형 치료가 가능한 변이를 찾아낸다. 다른 회사들은 암 환자의 종양 샘플을 생쥐에게 이식해 ‘아바타’를 만든 다음 안전하게 최적 항암제를 찾는다. 버크 고문은 “특정 암의 맞춤형 생쥐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요법과 유전자 편집
유전자 편집과 유전자요법은 유전자를 물리적으로 변형시켜 변이를 막거나 결함 부분을 교체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겸상 적혈구 빈혈증(sickle cell anemia) 환자는 결함 있는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2개 갖고 있다. 그 유전자가 적혈구의 정상적인 생성을 방해한다. 버크 고문은 “그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치료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이용이 그 방법 중 하나다. 바이러스로 세포를 감염시키는 과정에서 결함 없는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삽입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5~6년 전만 해도 신체를 감염시키지 않고 유전자를 이식할 수 있는 안전한 바이러스 매개체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2년 유럽연합(EU)은 ‘글리베라(Glybera)’로 불리는 바이러스 매개체를 승인했고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생명공학회사 셀라돈이 개발한 중증 심부전 치료제 마이디카(Mydicar)에 ‘획기적 치료제 지위(breakthrough status)’를 부여했다(올해 안에 승인이 떨어질 예정이다).
바이러스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대안은 아직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거나 일부는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ZFN(zinc-finger nucleases)이나 크리스퍼(Crispr) 같은 유전자 편집 도구가 대표적이다. 둘 다 DNA 가닥을 잘라 문제 있는 염기쌍을 제거하고 새로운 부분을 삽입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치먼드 소재 상가모 바이오사이언스는 현재 에이즈 바이러스(HIV)가 면역세포를 공격할 때 의존하는 단백질을 차단할 수 있는 방도로 ZFN을 연구하고 있다. 중국의 과학자들은 최근 크리스퍼를 사용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을 처음 시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발표했다(배아 86개 중 28개에서만 성공했다).
세포요법
최근 생명공학회사들은 세포요법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고 심장마비나 뇌졸중의 회복을 증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섰다. 유전자요법과 편집 기법은 DNA의 결함 부분을 표적으로 삼는 데 유용하지만 인체는 단순히 유전자의 총합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세포요법이 등장했다. 손상된 부분을 강화하고 사라진 부분을 채우기 위해 환자에게 살아 있는 인체 세포를 삽입한다. 수혈과 골수 이식도 세포요법에 포함된다.
호주 소재 생명공학회사 인베텍의 세포요법 담당 부사장 리처드 그랜트는 “세포요법이 의료 산업의 새 기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은 요실금 환자의 허벅지에서 세포를 추출해 실험실에서 증식 배양한 다음 다시 환자에게 삽입해 방광 조절력을 되찾도록 근육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GE 헬스케어의 바넥 박사는 새로운 세포요법이 유망하지만 업체들은 이런 치료제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임상학적으로 이런 약은 효과가 뛰어나다. 문제는 대량 제조와 유통이다.”
세포요법 중에서도 줄기세포가 다시 각광 받는다. 줄기세포는 인체에 필요한 모든 세포로 배양할 수 있다. 미국 바이오벤처기업 뉴럴스템은 현재 척수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루게릭병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해 FDA 승인에 필요한 3단계 임상시험 중 2단계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버크 고문은 앞으로 5년 안에 FDA가 승인한 줄기세포 요법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크며, 특히 심장세포와 신경세포 재건에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3D 바이오 프린팅
멋없는 하이힐과 밋밋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3D 프린팅 열풍을 두고 흉보는 사람도 있지만 의학 연구자들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3D 프린팅으로 세포에서 건강한 조직과 장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정확한 복용량을 담거나 특정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형 장치를 담은 약을 설계할 수 있다고 본다.
미시간대학 CS모트 어린이 병원의 의료진은 최근 선천성 ‘기관지연화’(기도 벽이 약해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라는 희귀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가 3D 프린팅으로 만든 기도 부목을 이식 받은 후 3년이 지난 지금 아주 건강하다고 발표했다(재생의학 전문 의료진이 아이의 기도를 디지털 이미지로 촬영한 후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작은 기도 부목을 만들었다). 의료진은 그 이후 다른 아기 2명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기도 부목을 이식했다. 그들도 1년 이상 지난 현재 증상이 서서히 완화되고 있다.
미시간대학에서 이 치료를 지휘한 글렌 그린 박사는 “지금까지 우리가 실시한 치료가 전부 환자의 삶을 증진시켜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3D 프린팅 의료 장치의 잠재력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치료를 보편화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
미시간대학 의료진은 기도 부목 프린팅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해 FDA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3D 프린팅을 인간의 생명연장에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미군 재생의학연구소는 전투에서 사망 원인의 10~30%를 차지하는 화상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는 피부를 만드는 3D 프린팅 기술을 개발 중이다.
버크 고문은 1~2년 안에 심장 판막, 요도, 혈관의 3D 프린팅이 실용화되리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장기 전체를 완벽하게 프린팅하려면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명과학 연구단체 메투셀라 재단은 마냥 기다릴 생각이 없다. 이 단체는 몸집 큰 동물의 이식 가능한 간을 가장 먼저 제작하는 팀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프린팅이 유망한 방법 중 하나다.
이 모든 기술이 실용화되려면 수십 년은 걸릴 듯하다. 따라서 제한된 과학 자원을 현재의 환자 건강 증진에 투자하기보다 미래의 수명 연장에 집중 투입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더구나 우리 생의 막바지는 아주 비참하다. 건강 악화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과 삶의 의미가 갈수록 사라지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해도, 예를 들어 치료책이 없는 알츠하이머병으로 환자를 오래 고생시킨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론자의 에이브러햄 박사는 “삶의 질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수명을 연장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인베텍의 그랜트 부사장은 120세까지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삶의 질이 보장될 경우에만 그렇다”고 말했다.
GE 헬스케어의 바넥 박사는 연구자들이 120세 장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런 목표를 공유함으로써 생명과학 연구에 초점을 맞춰 현재의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수는 급진적 혁신의 측면이 강하다. 거대하고 흥미진진한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진정한 이유는 삶의 질 개선이다. 장수를 목표로 연구하다가 실패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