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수 잔치는 끝나고 / 월암 이희정 >
물을 담고
하늘 높이 솟아 있어야 할
백록담은
오늘도 비어 있다
허리에는 흰 장삼 두르고
머리에는 파란 물결로
출렁이어야 할
그 곳이
토끼와 고라니 뛰노는
야생 목장이다
88 미수 늙은이도
오늘은
야생 고라니 되어
늙은 백록담을
가로 질러
천 년을 기도 한다
< 선(線) / 월암 이희정 >
수평선
하늘과 바다를 갈라 놓은 선
그 선을 따라 번지는
아침 햇빛
산모의 질구에서 아기가 나오듯
하늘과 바다가 만든 선을 뚫고
둥근 구멍을 빠져나오는
붉은 머리털
태초에 우주의 탄생도
유와 무의 선을 뚫고 저리 나왔을까
생(生)과 사(死)의 경계선 위에
뚫린 구멍을 향해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나
<국사봉의 일출 / 월암 이희정>
검은 밤을 넘어온 하늘이
옥동자를 분만하려고 합니다
구름 이불을 깔아 놓고
핑크색 커튼을 열며 안간힘을 씁니다
잔 머리털이다가 굵은 머리털이다가
옥동자의 붉은 이마가 나옵니다
수많은 산파들이
삼각대를 고정하고 초점을 맞춥니다
옥동자가 환한 얼굴을 내밀자
셔텨 터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아기는 하나, 그러나
산파가 안고 내려온 아기는 수백
아기마다
생김새가 모두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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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 잔치는 끝나고 외 2편 / 이희정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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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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