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서툰 음이 온전한 곡이었다
이동아
보이지 않는 손이 생의 박자를 늦춘다
굽은 등 위로
무지개는 늦게 뜨고
낡은 궤짝은
제 안에서 먼저 열린다
꽃다발 틈
꺼지지 않는 잉어불 하나
기억은 물결로 번져
제 이름을 지운다
막이 오를 때
나는 이미 낡은 배역
찢긴 날들을 꿰매
무대에 선다
욕망의 능선
혀끝에 닿는 달콤한 독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채찍이
눈먼 걸음에 닿고
비명 끝에서야
손 하나 내려앉는다
헐고 세우는 동안
웃음 한 모금
한숨 몇 겹
먹구름 뒤
지휘봉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귀 열면 적막이 먼저 흐르고
눈 뜨면 비로소 빛이 보인다
미움의 강 건너
닿지 않던 입술 하나
밤이 내려앉을 즈음
순풍과 역풍이
같은 바늘이 되어
생의 천 위를 지난다
보이지 않는 악사여
나는 오늘도
서툰 음 하나로
끝나지 않는 악보에
숨을 얹는다
──────────────
서툰 음
지휘봉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서툰 음이, 노래였다
──────────────
이 시는 인생을 지휘자 없는 악보 위의 연주로 그린다.
우리는 흔히 삶에 정해진 지휘자가 있어 모든 박자와 화음을 조율해 준다고 믿는다. 무지개가 뜨는 시점도, 궤짝이 열리는 순서도 누군가 정확히 지휘하고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이 시는 그 기대를 조용히 흔든다. 지휘봉은 먹구름 뒤에서 끝내 드러나지 않으며, 굽은 등 위로 무지개는 늦게야 떠오르고, 낡은 궤짝은 누구의 손도 닿기 전에 제 안에서 먼저 열린다. 보이지 않는 손이 박자를 늦출 뿐, 그 손의 얼굴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잉어불과 물결, 찢긴 배역과 달콤한 독, 채찍과 비명—시는 이 이미지들을 무대 위 한 생애의 사슬로 엮어 고통과 은총이 뒤섞이는 과정을 압축해 놓는다.
결정적 장면은 채찍이 눈먼 걸음에 닿고 비명 끝에서야 손 하나가 내려앉는 자리에서 벌어진다. 헐고 세우는 그 시간 동안 웃음은 한 모금, 한숨은 몇 겹으로 쌓이고, 정작 지휘봉을 쥔 자는 끝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서 시는 역설을 선언한다. 귀를 열면 적막이 먼저 흐르고 눈을 뜨면 그제야 빛이 보인다는 것, 순풍과 역풍마저 밤이 내려앉을 즈음엔 같은 바늘이 되어 생의 천 위를 지나간다는 것. 지휘자는 보이지 않아도 곡은 끝내 완성되어 간다.
지휘봉은 끝내 보이지 않았고, 서툰 음 하나가 노래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지휘
이동아
보이지 않는 손이
생의 박자 늦춘다
굽은 등 위
늦게 뜬 무지개
낡은 궤짝이 안에서 먼저 열린다
꽃다발 틈
꺼지지 않던 잉어불
기억은 물결로 번져
제 이름 지운다
막이 오를 때
나는 이미 오래된 배역
찢긴 날들 꿰매
무대에 선다
욕망의 능선
혀끝에 닿는 달콤한 독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채찍이
눈먼 걸음에 닿고
비명 끝에서야
손 하나 내려앉는다
헐고 세우는 동안
웃음 한 모금
한숨 몇 겹
먹구름 뒤
지휘봉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귀 열면
적막이 먼저 흐르고
눈 뜨면
비로소 보이는 빛
미움의 강 건너
닿지 않던 입술 하나
밤이 내려앉을 즈음
순풍과 역풍이
같은 바늘이 되어
생의 천 위 지난다
보이지 않는 악사여
나는 오늘도
서툰 음 하나로
끝나지 않는 악보에
숨을 얹는다
.......................................
압축 자유시
보이지 않는 손이
늦춘다
비명 끝에서야
닿는 손
순풍과 역풍이
같은 바늘이 될 때
나는 안다
노래는
이미 불리고 있었다
..................................................
● 긴 공감(핵심 반전)
우리는 고통이 끝난 뒤에야
위로가 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시는 반대로 말한다
채찍과 손은
같은 손에서 왔고
순풍과 역풍은
같은 바늘이었다
그래서 인생은
상처 난 뒤 꿰매지는 것이 아니라
꿰매지는 동안
이미 사랑 안에 있었다
..................................................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손
이동아
보이지 않는 손이
생의 리듬 지휘한다
굽은 등 위로
늦게 뜬 무지개 하나
낡은 시간의 궤짝이 스스로 열린다
꽃다발 사이
꺼지지 않던 잉어불
숨죽인 기억들이 물결처럼 번진다
막이 오르는 순간
나는 이미 오래된 배우였고
찢긴 생 꿰매며 무대에 선다
욕망의 능선은 가파르고
쾌락은 달콤한 독잔으로 입 적신다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채찍이
눈먼 다리 찌르고
비명 끝에야
따스한 손 하나 얹힌다
헐고 세우는 긴 소동
웃음 한 모금, 한숨 서 말
먹구름 뒤에 숨은 지휘봉
귀를 열면 들리고
눈을 뜨면 비로소 보이는
눈부신 적막
미움의 강 건너
비로소 닿는 사랑의 입술
밤이 막 내릴 즈음
순풍과 역풍이
생의 옷감 위에
찬란한 자수 놓는다
보이지 않는 악사여
나는 서툰 배우일 뿐
오늘도
끝나지 않을 노래에
내 숨 얹는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손
굽은 등 위 무지개 찢긴 생 기워 서고
독잔 끝 쓴맛 속에 따스한 손 얹히네
보이지 않는 악사와 오늘도 숨을 섞는다
2)자수 놓이는 밤
고통은 결국
아름다움의 재료가 된다
굽은 등 위
늦은 빛 하나 스며들고
세월은 비밀처럼 열려
기억은 꽃이 아니라
타오르는 잉어불처럼
살 속 깊이 번진다
삶은 늘
막이 오르기 직전의 떨림
찢긴 자리마다
나는 나를 꿰매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가파른 욕망을 넘다가
달콤한 잔에 입을 대면
어김없이
보이지 않는 가시가
살을 찌른다
아픔은 길고
손은 늦게 오지만
결국
따뜻함은 정확한 자리에 내려앉는다
긴 소동 끝
웃음과 한숨이 뒤섞인 하늘
그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박자를 맞춘다
미움을 건너야
사랑은 입을 연다
별들이 웃을 때
순풍과 역풍은
생의 천 위에
찬란한 무늬로 남는다
고통의 무늬
가시 끝에 맺힌 밤 따스한 손 이어져
미움 건너 닿은 입 사랑으로 풀리고
순풍 역풍 얽혀서 생 위에 꽃을 놓네
3) 끝나지 않는 무대
삶은 막이 내려도
끝나지 않는 공연이다
굽은 하루 위로
빛 하나 늦게 도착하고
기억은 조용히 불을 밝힌다
나는
이미 오래된 배우
찢긴 장면을 이어 붙이며
다음 대사를 기다린다
욕망의 비탈에서
몇 번이고 미끄러지고
달콤함에 취할 때마다
어딘가에서
정확히 나를 멈추는 손
아픔 뒤에 오는
조용한 온기
긴 소란 끝에
들리는 단 하나의 박자
귀를 열지 않으면
결코 들리지 않는 음악
눈을 뜨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빛
미움을 건너
사랑이 입 맞출 때
밤은 웃으며
천천히 막을 내린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악사와
나는 여전히
다음 곡을 시작한다
다음 곡
막 내린 밤 뒤에도 노래는 이어지고
보이지 않는 손이 박자를 이끌어
서툰 나의 숨결로 다음 곡을 부른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손
이동아
보이지 않는 손이 생의 리듬을 지휘한다
굽은 등 위로
늦게 뜬 무지개 하나
낡은 시간의 궤짝이 스스로 열린다
꽃다발 사이
꺼지지 않던 잉어불
숨죽인 기억들이 물결처럼 번진다
막이 오르는 순간
나는 이미 오래된 배우였고
찢긴 생을 꿰매며 무대에 선다
욕망의 능선은 가파르고
쾌락은 달콤한 독잔으로 입을 적신다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채찍이
눈먼 다리를 찌르고
비명 끝에야
따스한 손 하나 얹힌다
헐고 세우는 긴 소동
웃음 한 모금, 한숨 서 말
먹구름 뒤에 숨은 지휘봉
귀를 열면 들리고
눈을 뜨면 비로소 보이는
눈부신 적막
미움의 강을 건너
비로소 닿는 사랑의 입술
밤이 막을 내릴 즈음
순풍과 역풍이
생의 옷감 위에
찬란한 자수를 놓는다
보이지 않는 악사여
나는 서툰 배우일 뿐
오늘도
끝나지 않을 노래에
내 숨을 얹는다
...............................................
숨의 합주
굽은 등 위 무지개 찢긴 생 기워 서고
독잔 끝 쓴맛 속에 따스한 손 얹히네
보이지 않는 악사와 오늘도 숨을 섞는다
생의 자수(刺繡)
이동아
굽은 등 위로 무지개가 뜨고
세월의 궤짝에서 추억 꺼내면
꽃다발 사이 잉어불 하나 타오른다
무대는 이제 막 막을 올린다
찢긴 생 기워가며
욕망의 가파른 능선 넘을 때
쾌락의 독잔에 혀 적시면
눈먼 장딴지 가시로 찌르시던 분
아픈 비명 끝에
따스한 약손 얹으신다
헐고 다시 세우는 긴긴 소동 속에
웃음 한 모금과 한숨 서 말 먹구름
뒤에 숨은 지휘봉 본다
귀 열어야 들리는 고요한 음성
눈 떠야 만나는 눈부신 적막
미움의 강 건너야 사랑의 입술이 닿고
별들이 히죽이며 밤의 막 내릴 때
순풍과 역풍은 생의 옷감 위에
가장 찬란한 자수가 된다
임은 보이지 않는 악사로
나는 서툰 몸짓의 배우로
오늘도 이 장엄한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을 노래 합주한다
보이지 않는 지휘봉
굽은 등 위 무지개와 가시 박힌 장딴지
순풍 역풍 다 엮어서 찬란한 자수 놓고
보이지 않는 악사와 끝없는 노랠 부르네
보이지 않는 악사(樂師)
이동아
굽은 등 위로 무지개가 뜨고
세월의 궤짝에서 추억 꺼내면
꽃다발 사이 잉어불 하나 타오른다
무대는 이제 막, 막 올린다
찢긴 생 기워가며
욕망의 가파른 능선 넘을 때
쾌락의 독잔에 혀 적시면
눈먼 장딴지 가시로 찌르시던 분
아픈 비명 끝에 따스한 약손 얹으신다
헐고 다시 세우는 긴긴 소동 속에
웃음 한 모금과 한숨 서 말 먹구름
뒤에 숨은 지휘봉 본다
귀 열어야 들리는 고요한 음성
눈 떠야 만나는 눈부신 적막
미움의 강 건너야 사랑의 입술이 닿고
별들이 히죽이며 밤의 막 내릴 때
순풍과 역풍은 생의 옷감 위에
가장 찬란한 자수(刺繡)가 된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악사로 나는
서툰 몸짓의 배우로
오늘도 이 장엄한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을 노래 합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