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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4월 28일
“화선지에 스며오는 깊은 달을 가늠하면/한결같이 꽃이 피는 銀河속에 앉은 강물/살얼음 허울 풀어간/비닐 벗긴 東洋畵.//구름장은 不眠症에 헛기침만 주워 먹고/서린 살결 아름 채운 계절 돌린 바람결/저 들녘 홀로 지닌 삶/먹물 젖어 흩는다.//종일 바랜 無想을 묻고 떠난 가지끝/눈빛 속에 한 꺼풀의 四君子를 다둑이면/하늘곁 波紋을 건너온/“몇 마리의 학이 난다.” -이재창 시인의 「墨畵를 옆에 두고」 전문 (시조문학 1979년 여름호 2회 천료작)
*오늘은 충무공탄신일 1545(조선 인종1)년 오늘 충무공 이순신 태어남, 1969년 오늘 아산 현충사 중건
*오늘은 세계 산업안전보건의 날
*오늘은 산재노동자의 날
*원불교 대각개교절
B.C.57 신라 시조 박혁거세, 왕위에 오름
686 (신라 신문왕7)년원효대사 입적,
ㅡ경주 설씨와 순창 설씨의 중시조인 설총의 생부, 한국불교 최초의 깨달은 스님 『십문화쟁론』 『열반종요』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옳다 그르다/길다 짧다/깨끗하다 더럽다/많다 적다를/분별하면 차별이 생기고/차별하면 집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옳은 것도 놓아 버리고/그른 것도 놓아 버려라//긴 것도 놓아 버리고/짧은 것도 놓아 버려라//하얀 것도 놓아 버리고/검은 것도 놓아 버려라//바다는/천개의 강/만개의 하천을 다 받아들이고도/푸른 빛 그대로요/짠 맛 또한 그대로이다”-‘놓아 버리라’ “옷을 기울 때는 짧은 바늘이 필요하고, 긴 창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비를 피할 때는 작은 우산이 필요하고, 온 하늘을 덮는 것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작다고 가벼이 볼 것이 아니다. 그 근성을 따라서는 크고 작은 것이 다 보물이다.“ -『미륵상생경종요』
1082년 [음]문종(文宗) 36년, 나주목(羅州牧)에서 황금과 백은이 출토됨
1273년 [음]원종(元宗) 14년, 김방경과 힌두가 탐라에서 삼별초를 평정함
ㅡ김방경(金方慶)이 흔도(忻都, 힌두), 홍차구(洪茶丘)와 함께 전라도(全羅道)의 배 160척과 수군 및 육군 10,000여 인을 지휘하여 탐라(耽羅)에 도착하였고, 적과 싸워서 죽이거나 노획한 자가 매우 많아서 적의 무리가 크게 궤멸되었다. 김원윤(金元允) 등 6인을 참수하고 항복한 적군 1,300여 인을 여러 배에 나누어 태워서 육지로 옮겼으며, 원래 탐라에 거주하던 사람은 예전처럼 편하게 살도록 하였다. 이에 적이 완전히 평정되자 장군(將軍) 송보연(宋甫演) 등을 그대로 머물러 주둔하게 하고 귀환하였다.
1356년 [음]공민왕(恭愍王) 5년, 보우(普愚)와 왕이 사제의 예를 행함
1369년 [음]공민왕(恭愍王) 18년, 명 황제가 명의 건국을 선포하고 고려를 회유하는 친서를 보내옴
1402년 [음]태종 2년, 경승부를 설치함
1404년 [음]태종 4년, 명나라에 소 1,000마리를 보냄
1406년 (조선 태종6)지금의 창경궁 부근에 태조의 궁인 덕수궁 지음
1410년 [음]태종 10년, 경원부(慶源府)를 경성(鏡城)으로 옮김
1467년 (세조13)원각사 13층탑 준공
1474년 [음]성종 5년, 좌의정 최항(崔恒) 죽음
1545년 충무공 이순신 탄생
ㅡ이순신(李舜臣)은 1545년 음력 3월 8일 자시(子時)에 서울 건천동에서 이정(李貞)의 세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맏형은 희신(羲臣), 둘째 형은 요신(堯臣), 아우의 이름은 우신(禹臣)으로 그들 4형제의 이름은 모두 중국 전설상의 인물들인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따온 것이다. 이순신의 출생지인 건천동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1가의 중심부였다.
이순신(李舜臣)이 태어나고 자랄 무렵 그의 가세는 매우 궁핍했다. 갈수록 형편이 곤궁해지자 아버지 이정(李貞)은 식구들을 데리고 현재 현충사 자리인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의 처가로 낙향하게 되었다. 이순신은 이곳에서 32세에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보냈다
이순신은 그의 나이 20세 때에 보성군수(寶城郡守)를 지낸 방진(方震)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순신이 32세 때까지 청년기를 보낸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의 옛 집터에는 전국 각지에 있는 이순신의 사당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현충사(顯忠祠)가 있다. 현충사는 본래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지 108년이 지난 1706년에 이곳에 이순신의 사당을 세우고 그 이듬해에 숙종(肅宗)이 친필 액서 '현충사(顯忠祠)' 석 자를 내린 것이 최초였다. 그리고 200여년 간 추모의 향화가 이어졌으나 1910년 일제(日帝)가 대한제국을 병합한 뒤에는 이곳 땅이 모두 일본인에게 넘어가고 사당도 헐려 없어질 위기에 빠졌다. 이에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와 이충무공유적보존회(李忠武公遺蹟保存會)가 나서서 전국적인 모금운동을 벌여 1932년에 현충사를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45년 광복 이후 해마다 양력 4월 28일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에 제전을 올리고 있다. 그 뒤 1966년부터 1974년까지 대대적인 현충사 성역화작업을 벌여 사당을 중건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충사 경내에는 본전, 옛 집과 궁술장(弓術場),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의 묘, 충무정, 구본전과 유물관, 정려와 가묘 등이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이순신 장군의 두 자루 대장도(大長刀), 옥로와 허리띠, 난중일기(亂中日記) 및 교지와 비석 탁본 등 문헌, 거북선 모형과 각종 무기류, 한산해전도(閑山海戰圖) 등이 보관 전시되고 있다.
1548년 [음]명종 3년, 경상도에서 전염병으로 1,683명이 죽음
1575년 [음]선조 8년, 인순 왕후(仁順王后, 명종 비)를 강릉(康陵)에 장사 지냄
1606년 [음]선조 39년, 역대 실록을 강화·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게 함
1609년 [음]광해 1년, 평양성에 불이 남
1610년 [음]광해 2년, 봉자전(奉慈殿, 광해군의 생모를 모신 사당)을 영구히 옮기지 않는 사당으로 삼음
1668년 [음]현종 9년, 천연두와 홍역 등의 전염병으로 서울에서만 900여 명 사망
1686년 [음]숙종 12년,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간행함
1703년 [음]숙종 29년, 박세당(朴世堂) 죽음
1746년 [음]영조 22년, 경상도에 전염병으로 사망자 687명 발생
1794년 [음]정조 18년, 돈을 새로 주조함
1795년 [음]정조 19년, 함흥과 영흥 본궁(本宮)의 의식(儀式)이 완성됨
1817년 [음]순조 17년, 이조에서 충청도(忠淸道)를 공청도(公淸道)로 고칠 것을 청함
1822년 [음]순조 22년, 괴질로 도성 안팎에서 떠돌아다니는 백성을 구제하게 함
1831년 [음]순조 31년, 경희궁(慶熙宮)이 완공됨
1838년 [윤]헌종 4년, 춘추관에서 순조(純祖) 때의 사초를 세초함
1844년 [음]헌종 10년, 과거에서 부정을 저지른 자를 제주목(濟州牧)의 종으로 삼음
1868년 [음]강화도 영종 교동(永宗 喬桐)에 봉화대 설치, 외양선 침입 대비
1871년 대원군 전국 서원 철폐
1884년 한-영 수호통상조약 비준서 교환
1886년 [음]미국 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튼, 여성교육기관 설립(1986.10. 이화학당의 교명 하사받음)
1894년 동학군 전주 점령
1896년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출생
ㅡ경기도 수원에서 양반 관료의 딸로 태어났다. 국내 첫 여성 서양화가, 문필가, 페미니스트, 독립운동가 등 다양한 이력이 설명해 주듯 그는 한국 근대 여성사와 궤적을 함께 할 만큼 활동범위가 넓었다. 진명여학교를 평균 99점의 우등성적으로 졸업하고 1913년 동경여자 미술전문학교에 입학,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가 된 나혜석은 유학중 조선여자 친목회를 조직, ‘여자계’ 를 출간하는 등 활발한 문필활동을 했고, 페미니즘 운동에도 참여했다. 1918년에 열었던 국내 첫 서양화 개인전은 당시로서는 큰 화제가 됐다.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열린 이 전시에는 당시 5천명의 인파가 몰렸고 평균 월급이 20원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에 작품 ‘신춘’ 이 3백50원에 팔리는 등 성황을 이뤘다. 3·1운동에도 가담해 옥고를 치렀고, 의열단 사건에도 연루되는 등 그는 독립운동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문학분야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보여 1918년에 발표한 자전소설 ‘경희’ 는 국내 첫 페미니즘 문학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화가나 여성운동가로서의 족적보다는 자유연애와 이혼으로 이어지는 파란의 삶이었다. 후일 1920년 외교관이 된 김우영과 결혼해 유럽과 미국 등지를 여행했던 그는 파리에 체류하며 프랑스의 인상주의를 배우는 등 화풍의 변화를 겪었지만 최린과의 염문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1931년 35살의 나이로 이혼당한 나혜석은 1934년에 발표한 ‘이혼고백서’ 와 최린 상대의 제소장으로 사회적 이단아로 몰려 산사를 오가는 생활 끝에 1948년 12월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회의 냉대와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이 된 신경쇠약증세로 고생하다 서울의 한 시립병원 무연고자 병동서 52세 나이로 쓸쓸히 숨을 거둔 것이다.
1905년 군용 철도 경의선(용산-신의주) 시운전
1906년 광혜원서 최초로 창녀 검진
1914년 의병장 이석용(1878~1914), 대구에서 교수형 순국
1916년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20여년 구도고행 끝에 깨닫고 원불교 창시(대각개교절)
1920년 조선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 일 왕족 이방자 여사와 결혼
ㅡ조선조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英親王)이 일본 왕족 나시모토(梨宮)의 장녀 마사코(方子)와 일본 도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일제가 왕실규정을 고쳐가면서까지 둘의 결혼을 고집한 것은 양국간 잡혼(雜婚)을 통한 내선융합(內鮮融合) 정책 때문이었다.
고종과 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난 영친왕 이은(李垠)은 조선조 마지막 왕 순종의 이복동생이다. 1900년에 영왕(英王)으로 봉해지고 1907년에 황태자로 책봉됐으나 그해 말 이토(伊藤) 조선 통감에 의해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가 1910년 국권상실과 함께 왕세제로 격하됐다
마사코는 원래 일본 왕세자 히로히토(裕仁)의 비로 간택됐으나 임신불능 판정을 받아 조선 왕실의 절손(絶孫)을 노린 일제에 의해 조선 왕족의 세자비로 자리바꿈했다. 히로히토는 4년 뒤 마사코의 사촌인 나가코(良子)와 결혼한다.
영친왕이 결혼한 이날, 서울에서는 한 여인이 눈물짓고 있었다. 1904년에 영친왕의 비로 간택됐으나 일제의 회유와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1918년에 강제파혼당한 민갑완이라는 여인이었다. ‘왕세자의 약혼녀’로 정절을 지키던 민씨는 영친왕이 서거(1970년)한 뒤 못다 이룬 사랑의 한을 품고 1973년 쓸쓸히 생을 마쳤다.
1926년 독립운동가 송학선 의거, 제등(사이토) 조선총독 암살 미수
1936년 서울 성신여학교 설립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 광복군 전선 공작 인원 잠행 규칙〉 공포
1944년 총독부, 학도동원규정 공포 : 국민학교 4학년 이상 모든 학생의 강제 동원 체제 확립.
1947년 한국상품,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
1948년 유엔 한국위원회 선거감시 결정
1949년 유아 사망율 40%는 민생고·전염병 원인
1949년 농지개혁 실시
1950년 북한 비행사 이건순 귀순
1950년 국립 중앙극장 개편
1950년 풀브라이트 한국장학재단(한미교육위원단 KAEC) 창립
ㅡ한미간의 교육교류를 위한 풀브라이트 한국장학재단이 창립됐다. 1945년 `전쟁수익금으로 타 국가와 교육교류를 하자`는 법안을 제출한 미국 아칸소주 상원의원 윌리엄 풀브라이트의 이름을 딴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은 현재 전세계 1백30여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은 1950년 창립됐으나 한국전쟁의 발발로 1960년에서야 1기를 선발할 수 있었다. 풀브라이트는 1942년 초선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국제연합 창설의 모태가 된 국제평화유지기구의 창설을 제안하였으며, 1945년 상원에 진출해 1974년까지 상원의원을 지냈다. 1959년 이후 15년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미국의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1951년 〈뉴욕타임즈〉, 유엔의 미온적인 대한 정책 비판, 만주 폭격 주장
1952년 정전회담 본회담 재개(중립국감시단구성 합의)
1952년 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 사임.(5.15 클라크 대장 임명)
1956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상덕 작고
1960년 과도내각 성립(수반 허정). 5월1일 과도정부, 3ㆍ15선거 무효 확인
1960년 정부 여당지인 <서울신문> 자진 무기 휴간.
1960년 조용순 대법원장 사표.
1960년 이기붕 일가족 경무대서 자살
ㅡ새벽 5시40분경, 이승만 정권 시절 제2인자로 군림했던 이기붕 부통령이 가족과 함께 리벌버 38구경 6연발 권총으로 집단자살했다.
이날 경무대 제36호 관사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시신은 이기붕과 부인 박마리아,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장남 강석, 차남 강욱 등 일가족 네명이었다.
이기붕은 미국 유학 후 미군정에서 통역으로 근무하다 당시 군정청 민주의원 의장을 지내던 중 이승만의 신임을 받아 그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자신의 장남을 이승만에게 양자로 줄 정도로 이승만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자유당 정권의 제2인자로 군림했다. 1956년 자유당의 공천으로 부통령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하고 그 후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4ㆍ19혁명의 발발로 이기붕은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3ㆍ15 부정선거의 표적이 되었고 이기붕의 집앞은 연일 시위대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4월 25일 교수단 데모로 학생 시위가 재개된 후 시위대가 서대문 자택을 포위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기붕은 잠시 경기 포천의 한 군단으로 피신했다. 그러던 중 4월 26일 이승만의 하야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로부터 이틀 후. 4월 28일 경무대로 돌아와 당시 육군장교였던 장남 강석이 권총을 쏘아 전 가족이 자살했다. 피신 직전까지 그가 살던 서대문 집은 현재 4·19 혁명 기념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1960년 서울신문 자진 무기휴간
1961년 제2회 국세조사, 총인구 2,499만 4,117명, 과거 5년간 평균 인구 성장률 2.88%
1964년 ‘고아의 아버지’ 해리 홀트(1905~1964), 경기도 고양서 사망
1965년 라만 말레이시아 수상 내한
1969년 아산 현충사 중건 준공
1973년 최초의 군인 범죄자 -수도 경비 사령관 윤필용 소장 등이 '창군 이래 이유 없는 범죄자' 군법 회의 재판. 징역 15년 선고
1973년 IPU(국제의원연맹) 이사회 북한가입 결의
1974년 유진산 신민당총재 세상떠남
1976년 그레나다의 게이리 수상 내한
1976년 보건사회부, 임신중절을 합법화하는 모자보건법안 마련
1977년 경북 선산 도리사에서 진신사리함 발견
1978년 싱글러브 소장,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반대로 인책 퇴역
1978년 고흥 근해 간첩선 사건
1980년 동국대산악회 마나슬루(8,156m 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산,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의 산')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오름
1981년 한국평생교육기구 창립
1981년 국무회의, 노인-장애자 복지법안 결의
1982년 개각 단행. 내무 노태우, 체육 이원경, 서울시장 김성배
1984년 음주운전 징역보낸다-검찰,처벌기준 강화
1985년 부산 태광산업에 큰 불-전기누전 방직공장 1채 전소
1986년 서울대생 2명, `전방입소 결사반대'외치고 분신(김세진·이세호)
1987년 도서출판 세계 등 출판사 대표 5명,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1988년 대검찰청, 염보현 전 서울시장을 수의계약 대가 뇌물수수혐의로 구속
1988년 김종필 공화당 총재, 야3당 연합 제의
1989년 경남도경ㆍ부산시경 산하 경찰관 3400여명,경찰간부가 국회의원으로부터 뺨을 맞은데 항의, 집단사표
1989년 보사부, 장기체류·취업 외국인에게 AIDS검진을 의무화하는 AIDS예방법 시행령개정안 입법예고.
1990년 현대중공업 파업, 100여 명의 노조원,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20여 일 동안 고공 농성. 강제해산
1991년 남-북 IPU대표단 평양 만수대에서 만남
1992년 파키스탄 내전 종식-민족간 앙금 못풀어 - 과도정부 수립
1992년 헌법재판소,공무원의 노동운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 제66조 1항(단체행동금지)은 합헌이라고 결정.
1992년 한국은행,「3월중 국제수지 동향」 동남아 지역 수출 작년 3월보다 34.8% 늘어난 14억 5850만 달러
1993년 천상의 시인 천상병 별세
ㅡ`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떠돌이 괴짜 시인 천상병씨(63)가 1993년 4월 28일 오전11시 자신의 시처럼 하늘로 돌아갔다.
일본 관서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후 귀국, 마산중학을 거쳐 서울상대에 진학했던 전도양양한 젊은이였다. 뒤늦게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학업보다는 시쓰기에 골몰했고 4학년 2학기에는 대학을 중퇴해 버렸다.
줄담배와 폭음, 숱한 기행과 일화를 남기며 시를 쓰던 그는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베를린 유학생 친구와의 관계를 고백하라`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고 거기서 세차례나 모진 전기고문을 당했다. 6개월간 정보부에 갇혀있다 나오자 극심한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인해 거리를 헤매이는 행려병자가 되었다.
그런 세월이 이어지면서 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던 문단에서는 행려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판단. 1971년 말 유고시집 `새`를 발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의 초기 시는 우주의 근원과 죽음의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을 노래했으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수식없이 동화풍의 맑고 간결한 시들을 발표했다
1993년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해군 인사비리와 관련, 이제순 해병소장 등 5명을 구속.
1994년 불교 태고종 우백암 종정 입적
ㅡ불교 태고종 우백암 종정(78)이 1994년 4월 28일 오전 9시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64세인 우백암 종정은 13세 때인 1930년 대구 동화사에서 출가한 후 대구 관암사 주지와 태고종 경북 종무원장, 중앙총무원장을 거쳐 1993년 9월 태고종 14대 종정에 취임했다. 우백암 종정은 고요한 성품과 투철한 수행정신으로 종도들의 신망이 깊은 선지식으로 평가받았다.
태고종 발전을 위해 외형적인 노력도 아끼지 않아 경북 종무원장 시절 대구 시내에 태고종 불교회관을 사재를 털어 지은 뒤 헌납하고 총무원장 시절에는 서울 태고종 불교회관을 건립, 종단의 위상을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백암스님의 다비 결과 최고 직경 3㎝ 크기 등 사리 37과가 수습됐다. 이들 사리는 대구 팔공산 관음사에 옮겨져 봉안됐다.
1994년 15C 청화보상화당초문 접시 세계 도자기경매사상 최고가 308만$에 팔림
1995년 북한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체육·문화축전 개최
1995년 대구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 폭발 사망101명 부상202명
ㅡ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 국내 지하철공사 사상 최대 규모의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7시50분쯤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영남중고 앞 네거리 대구 지하철 1-2공구 부근에서 도시가스관이 폭발, 등교길 학생과 출근길 시민 등 총 1백1명이 숨지고 2백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차량통행을 위해 공사장 위에 임시 설치한 복공판 4백여m가 무너졌고, 차량 1백50대와 건물 3백46채가 무차별 폭탄공격을 받은 듯 파손됐다. 이로 인한 재산 피해액이 5백40억원에 다다랐다.
사고가 나자 경찰 소방대원 민방위대원 군인 등 3천3백여명이 투입돼 사체 발굴과 부상자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가스 대량 누출과 파열된 수도관에서 쏟아진 물로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고는 인부들이 굴착중 실수로 도시가스 배관을 파손하고서 방치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였다
1997년 한보사건 청문회 증인 전제일은행 朴錫台 상무 자살
1997년 청주국제공항이 개항
1998년 주양자 보건복지부 장관 부동산투기혐의 경질, 후임 김모임
1998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합법적인 정리해고를 완전 허용할 것을 요구
1998년 정부 실업자 의료보험대책 발표, 종전 직장의료보험 혜택기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 의료보험료 50%로 낮추어 분기별로 분할납부할 수 있게 됨
200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ㅡ제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2000년 4월 28일 개막됐다. 영화제는 12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5월 4일 막을 내렸다. 영화제는 당초 우려를 불식하고 기간 내내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으며 170편 상영작 중 80%가 매진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유료객석 9만4000석의 매표율도 85%에 달했다.
부산과 부천에 이어 국내에서 세번째로 개최된 국제영화제라는 핸디캡을 딛고, `대안영화`를 내세운 전주영화제의 전략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국제영화제가 3개나 열릴 필요가 있는가"하는 의문에 대해 전주는 잠재 관객을 `개발`해냄으로써 답을 던졌다. 하지만 영화제 운영에선 많은 시행착오들이 빚어져 다음해 행사의 과제로 남았다. 관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북새통을 이룬 매표창구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티켓발매업무 혼란으로 표를 사기 위해 1시간 넘도록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속출했고, 전산망이 수시로 다운되는 소동도 잦았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프린트 배달사고로 상영이 1시간 지체되는 등 상영사고도 적잖았다.
2002년 제4차 이산가족 상봉
ㅡ2002년 4월 28일 북한 금강산에서는 2001년 2월의 서울·평양에 이어 남과 북의 부모·자녀, 형제들이 부둥켜안고 반세기 이산의 한(恨)을 풀었다.
이산가족 상봉은 동년 4월 3일 임동원 특사 방북을 통해 이루어졌다. 장소가 협소해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상대측 가족들을 만났다. 남쪽 이산가족 100명이 먼저 금강산에 가서 2박3일 동안 북한의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북쪽 이산가족 100명을 만날 남한의 가족들이 다시 금강산으로 가서 상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오후 금강산여관에선 이틀전인 26일 숨진 어머니 어병선(93)씨 대신 상봉단에 포함된 이부자(62)씨를 비롯해 남측 이산가족 99명이 북한의 가족 183명과 단체상봉을 가졌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날 저녁 북한 적십자회 주최로 금강산여관에서 만찬을 가진 뒤 금강산에서의 첫 밤을 보낸 후 30일 오전 금강산여관에서 북측 가족·친척 183명과의 작별상봉을 끝으로 2박3일간의 짧은 상봉일정을 마치고, 장전항을 떠나 속초로 돌아왔다. 또 5월 1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북측 이산가족 100명을 만날 남측 가족·친척 468명이 금강산으로 떠났다가 3일 돌아왔다.
2003년 전두환 전 대통령, 법정에서 자신 명의 재산이 30여만원 정도라고 주장
2003년 한국ㆍ미국ㆍ프랑스 공동개발한 우주망원경 갤렉스 우주공간에 발사
ㅡ국내 연구진이 참여해 만든 최초의 우주망원경이 2003년 4월 28일 우주공간에 발사됐다. 연세대학교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단장 이영욱)은 미 항공우주국(NASA), 프랑스 우주천문연구소(LAS) 등과 함께 개발한 자외선 우주망원경 갤렉스(GALEX ·Galaxy Evolution Explorer)를 이날 오후 9시(한국시각)쯤 미국 플로리다의 케네디우주센터에서 페가수스 XL 로켓에 실어 발사했다고 밝혔다.
갤렉스는 당시 세계에서 유일한 자외선 우주망원경으로, 우주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갤렉스는 지구 대기권의 오존층의 방해를 받지 않아 70억~80억광년 이상 떨어진 고온의 별에서 나오는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시야도 허블 망원경 등 기존의 가시광선 우주망원경의 수백 배에 달한다.
갤렉스는 앞으로 28개월 동안 지구 상공 690km 궤도에서 지름 50cm의 반사경을 사용해 주로 먼 외부 은하의 별들을 관측할 예정이다. 관측 결과를 처리할 자료센터는 캘리포니아공대, 존스홉킨스대학, 연세대학교 등 세 곳에 설치된다. 자외선우주망원경연구단은 갤렉스의 관측자료를 국내 학계와 공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갤렉스 망원경은 1998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공대를 주축으로 미국·프랑스·한국 3개국 연구팀이 함께 참여해 제작했으며, 한국은 15명의 과학자가 개발에 참여했다.
2003년 박세리, 미국 LPGA투어 통산 20승
ㅡ‘연장 불패’. 무려 4차례나 연장전을 벌이는 대접전 끝에 박세리(26·CJ)가 통산 20승 고지에 올랐다.
박세리가 28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스톡브리지의 이글스랜딩CC(파72·6187야드)에서 벌어진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칙필A 채리티 챔피언십(총상금 135만달러) 마지막 라운드서 8언더파 64타를 쳐 합계 16언더파 200타로 샤니 와(호주)와 동타를 이룬 뒤 4차례 연장전을 벌인 끝에 올시즌 2승을 달성했다.
지난달 세이프웨이 핑에 이어 한달여만에 감격을 맛본 박세리는 20만2500달러의 상금을 보태며 51만1618달러로 올시즌 상금랭킹서도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제치고 단독 선두로 떠올랐다.
지난 98년 LPGA에 진출한 뒤 6시즌만에 20번째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은 박세리는 지금까지 벌어진 4차례의 플레이오프서 모두 승리하는 승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역전 우승도 이번이 9번째
2003년 남해 5개섬 잇는 ‘연륙연도교’ 개통
ㅡ육지와 큰 섬 사이 작은 섬을 중간다리 삼아 연결한 ‘연륙연도교’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경남 사천시(육지)와 남해군 창선도(큰 섬)를 잇는 총길이 3.4㎞의 ‘창선~삼천포간 다리’ 가 8년 공사 끝에 28일 개통식을 가졌다.
이 다리는 육지와 큰 섬 사이에 놓인 늑도·초양도·모개섬 등을 활용해 삼천포대교·초양교·늑도교·단항대교·엉개교 등 5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다리의 이름은 전국 공개 모집을 통해 결정할 예정.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다리 모두가 각각 다른 공법으로 만들어져 다리 제작 기술의 전시장과 같다.”며 “특히 삼천포대교는 순수 국내 기술로 처음 만든 사장교”라고 말했다.
경남 사천시 이정일 공보관은 “기존의 남해대교를 이용하면 창선도에서 사천까지 가는 데 2시간 정도 걸리던 것이 이 다리 덕분에 5분으로 단축됐다.”며 “한려해상국립공원인 이 지역이 관광 산업으로 인해 더욱 발전할 것”이라 기대했다
2004년 광주광역시 지하철1호선 개통
ㅡ광주광역시에 지하철 1호선이 착공 7년 8개월여 만에 부분(1구간) 개통돼 광주에도 본격적인 지하철시대의 막이 올랐다. 1구간은 차량기지 1개(용산)와 정거장 13개를 포함하고 있으며, 차량은 1편성에 4량씩 모두 13편성(52량)이 운행한다. 지난 1996년 8월 착공돼 1조 443억원을 들여 7년 4개월여 만인 지난 해 말 토목과 기전분야 공사가 마무리됐다.
광주 지하철은 쾌적한 지하환경을 위해 모든 역사에 냉방시설을 갖췄다. 또한 모든 역사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지하철 내에 화재 등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운전사령에게 통보되며, 환기설비가 제연모드로 자동 전환되도록 했다. 객실 내장재와 바닥재는 국제 수준의 난연성 내장재를 사용했다. 도청역과 금남로4가역에는 국내 처음으로 스크린도어를 설치, 고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소음과 열차풍·분진 등을 차단해 쾌적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광주 지하철 전동차는 (주)로템과 조달계약을 맺어 주요 핵심장치를 100% 국산화해 설계·제작했다. 이에 따라 고장 발생 때 신속한 대응과 조치가 가능하며, 외국의 기술과 고가의 부품에 의존해야 했던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또 전동차 차체를 국내 최초로 알루미늄합금으로 제작, 타도시의 기존 전동차보다 중량을 20% 가량 줄였다. 이에 따라 승차감과 소음차단 효과를 향상시키고 운행동력비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열차 사이에 문이 없는 ‘일체형 통로(Gangway)’는 방음·단열효과가 우수하며, 4량의 전동차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만약의 사태 발생 시 신속한 대응과 대피가 가능하다
2014년 노승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취리히 클래식 우승
2015년 검찰 박근혜 대통령 풍자전단 뿌린 팝아티스트 이하 씨 경범죄 기소, 비판전단 뿌린 박성수 씨 구속
2021년 서울특별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의 마도JC ~ 화성JC 구간이 개통
2022년 한미정상회담 5월 21일 개최
2022년 삼성전자 1분기 매출 77조7천억원, 역대 최대...반도체. 스마트폰 호조
32년 로마 제국 7대 황제 오토 출생
1192년 제3차 십자군원정 지도자 몬페라토의 코라도 작고
1686년 뉴턴 만유인력 발표
1758년 미국의 제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출생
1788년 메릴랜드주가 미국의 7번째 주가 됨
1758년 미국의 제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출생
1813년 나폴레옹 전쟁때 활약한 러시아 장군 미하일 쿠투조프 작고
1858년 독일의 생리학자 요하네스 페터 뮐러 작고
1888년 포르투갈의 정치인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출생
1903년 미국 이론물리학자·화학자 조사이어 윌러드 기브스 세상떠남(64세), 1902년에 ‘통계역학의 기본원리’ 논문 발표, 양자통계역학의 길을 염 “기브스는 미국이 이제까지 배출한 과학자중 가장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마음을 가졌으며,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아인슈타인
1906년 오스트리아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 출생
1916년 이탈리아의 기업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출생
1918년 사라예보 사건의 범인 가브릴로 프린치프 작고
1920년 러시아 과학자 클리멘트 티미랴제프 작고
1926년 미국의 작가 하퍼 리 출생 (~2016년)
1927년 중국공산당 초기지도자 리다자오 세상떠남(38세), 그의 첫번째 조교가 마오쩌둥
1930년 미국의 정치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 출생
1937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 출생
1945년 파시즘 주도한 이탈리아독재자 무솔리니 애인 클라라 페타치(33세)와 함께 총살됨(62세)
1952년 대일강화조약이 발효되어 연합국의 일본 점령이 끝나다.
1952년 미 극동군사령부 해체
1956년 프랑스군 베트남철수 완료
1969년 샤를 드골 프랑스대통령 국민투표패배로 사임
1981년 일본 북중부 후쿠이현 쓰루가 핵발전소 방사능누출 278명 방사능에 노출, 주변토양과 해역 심각하게 오염
1983년 중국 첫 징세제 도입 발표
2001년 백만장자 데니스 티토가 민간인 신분 세계 최초로 우주여행
2002년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로버트 가네 작고
2003년 애플의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가 출시
2004년 태국정부군 무슬림지역 빠따니 주민32명 학살
2004년 이라크 주둔 미군들이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인 포로들을 학대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미국 CBS방송을 통해 공개되어 파문
2007년 파키스탄서 자살폭탄테러 사망22명
2009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비스타 서비스팩 2가 발표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 인권변호사 아흐메드 알기지위의 구속과 관련된 항의 시위가 일어나자 시위 장소인 이집트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폐쇄
2016년 시리아 최대도시 알레포의 알쿠즈병원 공습당해 사망27명, 국경없는 의사회가 지원하는 시리아 내 병원 다수가 공습당함
2018년 미국의 신학자 제임스 H. 콘 작고
2018년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수 겸 배우 마야 쿨리예바 작고
2019년 미국의 영화감독 존 싱글턴 작고
2021년 미국의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 작고
2022년 미국의 만화가 닐 애덤스 작고
2022년 스페인의 영화배우 후안 디에고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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