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32〉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인연
‘스승-제자’ 이어지며 법 전해 승가는 존속
스승-제자 관계는 ‘신뢰’ 줄로 맺어져
서로 염려하는 마음이 승가 근간이뤄
부처님의 10대제자 중 가장 상수 격에 해당하는 제자가 지혜제일인 사리불 존자이다. 북방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본불로 모실 경우, 가섭과 아난 존자를 좌우보처로 모시지만, 남방에서는 사리불과 목련 존자를 모신다. 그만큼 초기불교에서는 사리불과 목련을 위대한 선지식으로 여긴다.
라훌라가 출가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라훌라를 사리불과 목련에게 맡길 만큼 신뢰했던 제자들이다. 또한 사리불은 부처님을 대신해 대중에게 법을 설하기도 하였으며, 제바달다와 육군비구 등이 교단을 시끄럽게 할 때도 사리불이 나서서 해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을 부를 때 “나의 장자(長子)”라고 불렀다.
사리불은 부처님보다 대략 6개월 먼저 열반에 들었다. 이후 부처님은 왕사성에서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비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지금 이 대중 가운데 사리불과 목련 비구가 없으니 왠지 텅 빈 것 같구나. 예전에 사리불과 목련이 유행하고 있었다면 그 지역은 아마 행운이었을 것이다. 사리불과 목련은 외도들에게 항복받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노구의 스승이 먼저 떠난 제자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공자(孔子)는 제자인 안연(顔淵)이 죽었을 때,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라고 탄식하며, 여러 날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부모 자식 인연보다 신뢰라는 끈끈한 줄로 맺어진 것 같다. 남북조 시대 때의 도안(道安, 312~385)과 혜원(慧遠, 334∼416)도 사제관계이다.
도안은 인도 불교를 중국의 불교로 변환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바로 이 도안이 승려들의 법명 앞에 석(釋)씨 성(姓)을 쓸 것을 주장한 분이다. 도안에게는 수십여명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혜원도 그러하다. 당시 도안이 양양에 머물렀는데, 제자들을 여러 지역으로 흩어 보내었다. 이때 도안은 각 제자마다 그에 맞는 교훈을 주었는데, 혜원에게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혜원은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스님께서는 제게만 가르침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을 교화시킬 만큼 역량이 부족한가요?”
“혜원, 그대 같은 사람을 어찌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스승의 믿음대로 혜원은 여산(廬山)에 머물러 수행하였고, 그는 중국 불교의 금자탑을 세운 몇 승려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부처님 이래 현재까지 스승은 제자에게, 그 제자가 다시 스승되어 제자에게 마음으로 법을 전(傳)하고, 믿음으로 재산을 삼았기에 현 승가는 존속되었다.
얼마 전, 청도 운문사 50주년 동문회를 다녀왔다. 사찰도 흥망성쇠가 적지 않건만 교육도량으로 50여년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흔치 않은 일이요, 50회에 걸쳐 졸업생이 배출된 것은 명성회주스님의 원력이라고 본다. 스승은 반백년 동안 한 자리에 머물러 1000여 제자를 잊지 않고 늘 염려하건만 졸업한 제자는 냉정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운문도량, 그곳에는 노년의 스승(회주스님)이 있고, 스승 밑에 어른 스님이 스승을 보좌하고, 그 아래 젊은 강사스님이 바로 위 스승을 모시며, 학인들이 수학하여 대승가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마을 집으로 치면 4대.5대가 한 도량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할지라도 스승이 제자를 신뢰하고 염려하는 보석 같은 마음이 승가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요, 재산이다. 스승과 제자의 법연(法緣), 혈육의 정보다 더 아름다운 인연이기에 승보로 존중받을 수 있었다. 운문의 승가여! 면면히 흘러 영원하기를….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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