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과 물리학] 27. 물리적 진공과 아공
‘태초의 진공’‘오늘날 물리법칙’다르듯
‘我空’도 인간의 분별지 벗어난 자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다 함께 모든 물리현상은 그 현상을 관찰하는 관찰자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음은 이미 설명한 바다. 또한 일상적 경험의 세계에서는 실체로 보이는 물질이 본질적으로는 실체라고 할만한 알맹이가 따로 없다는 것도 설명한 바다. 그러니 ‘무색’이라면 ‘무수상행식’일 것이다.
수상행식의 정신작용에 대한 주체는 우리가 ‘아(我)’라고 부르는 것인데 ‘무수상행식’이라면 ‘아’도 없어야할 것이다. 실제로 불교에서는 ‘아공(我空)’이라고 하여 ‘아’를 부정하고 ‘법공(法空)’이라고 하여 분별지로 보는 모든 법칙과 현상을 부정하고 있다. 색에 국한시켜 말한다면 물리학도 법공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법칙이 없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법칙이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런데 ‘아공(我空)’이라는 말을 하는 물리학자는 하나도 없다. 이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아’는 물리학의 연구대상이 현재로선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현상과 법칙을 조사한 결과 무색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 있고 또한 색이라고 할만 것이 없거나 색의 실체라고 할만한 것이 따로 없다면 색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하나의 꿈과 같은 것이기에 무수상행식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아’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모든 것이 꿈과 같고 실체가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꿈을 꾸기에 ‘꿈’이 있는 것이 아닌가? 꿈꾸는 자를 ‘아’라 부르면 어떤가? ‘아’마저 꿈과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 ‘아’를 꿈이라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해보면 끝이 없다. 언제나 ‘나’를 생각하는 ‘나’라는 것이 생각밖에 존재하게 된다. 생각밖에 존재하는 ‘나’를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나’가 생각밖에 존재하게 된다. 생각만으로는 결코 ‘나’의 끝을 볼 수가 없다.
우리의 생각밖에 존재하는 ‘나’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는 ‘아공’을 말한다. 반야심경에서 설하는 ‘공’이 ‘아공’을 포함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경전은 언제나 ‘…무색 무수상행식…’하는 식으로 언제나 물질과 정신을 함께 얘기한다. ‘아공(我空)’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별지로 추론하기 전에 먼저 앞서 말한 ‘아’의 구조를 물질세계의 구조와 비교해 보기로 하자.
‘아’와 ‘아’를 생각하는 ‘나’도 끝없이 이어지는 ‘아’의 구조가 물질세계 에서 발견된 것은 20세기 중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울을 마주보도록 세워 놓고 가운데 촛불을 켜두면 거울에 비친 그림자의 그림자가 다른 거울에 생겨나서 무한 히 많은 촛불의 그림자가 생겨난다. 간단한 구조가 계속 반복하여 나타나면 전체 적으로는 굉장히 복잡하고 불규칙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구조를 쪽거리구조(Fractal Structure)라고 부른다.
눈송이는 간단한 기하학적 구조가 반복되어 전체적으로 육각형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구상에 떨어진 눈송이중 똑같이 생긴 것은 하나도 없다. 급하게 소용돌이치며 불규칙하게 흐르는 물결, 제멋대로 생긴 바위나 해안선도 간단한 기하학적 구조가 반복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뜻에서 ‘아’의 구조도 기하학적인 쪽거리 구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물리학이 ‘아공’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지만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로 이루어진 아의 구조구조를 물리적 진공과 비교할 수는 있다.
복잡하고 커다란 우주가 시공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탄생했듯이 생각하는 ‘나’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생각밖의 ‘아’에서 온것이라면 이 생각밖의 ‘아’를 ‘아공’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우주를 탄생시킨 태초의 물리적 진공이 오늘날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벗어나 있듯이 ‘아공’도 인간의 분별지를 벗어나 있다.
경전에서 말하는 ‘공’은 물리법칙에 벗어나 있고 분별지도 벗어난 그자리를 가리킨다. 그래서 오온개공이라고 선언하고 ‘…무색 무수상행식…’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교수.물리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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