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으로 내일동, 서로 부북면, 남으로 삼문동, 북으로 부북면에 접한 지역으로 그 연혁은 밀주지에 노상(路上), 송정(松亭)이 나오고 경상도읍지<1832년 규장각본>에 노상리, 노하리, 송정리가 나온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노상리, 노하리, 송정리가 곧 내이동의 전신임을 알 수 있다.
1914년에 행정구역의 폐합에 따라 노상리, 노하리, 송정리, 교리의 각 일부와 부북면의 운전리, 감천리, 용지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내이리라 했고, 1931년 4월1일 부로 밀양면이 밀양읍으로 승격되고, 1989년1월1일 밀양읍이 다시 밀양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내이동으로 호칭이 변경되었다.
그동안 운전리, 감천리, 용지리는 모두 부북면으로 돌려 주었고, 1991년말 현재로 6개통 85개반으로 행정 구역이 구분 조정되어 있는 총면적 3.04 ㎢ (답 1.61, 전 0.14, 임야 1.17, 대지 0.42, 기타 0.70)의 지역이다.
내이동의 지명의 변경 과정은 노상, 노하, 송정이 내이리로, 내이리가 다시 내이동으로 그 호칭이 변경되어 온 것이다. 내이동이라는 명칭은 부내면에서 둘째가는 동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 댓껄 밀양읍성에서 해천의 樓橋(柳橋)를 지나 사포 쪽으로 통하는 큰 길이었다고 한다.<윤상선씨 말>. 지금의 밀양고등학교의 앞마을과 영남농업시험장 입구의 사거리 부근을 속칭 댓껄이라고 한다. '댓껄'이라는 명칭은 이 길 주변에 옛날에는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큰거리' 곧 '대거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말도 있다.
■ 진장 옛날 밀양부 관아에 속한 별포군(別捕軍)의 주둔지가 현 밀양대학과 영남농업시험장 부근이라 한다<임인수씨 말>.
지금의 응천강은 제방을 축조하기 전에는 강물이 자유로이 나며 들며 하여 강변이 마치 넓은 운동장같이 되어 군사 훈련장으로는 안성마춤이었다고 한다<유상선씨 말>. 그러므로 별포군의 군사훈련장, 곧 '진을 치는 장소'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영남농업시험장 입구 사거리에서 남쪽, 제이 밀양교에서 북쪽 지역 일원이 진장에 해당되는데 이곳은 법정 구역으로는 삼문동에 속하는 번지를 가진 지역이고, 행정상으로는 내이동에 속하는 지역으로 되어 있다.
■ 송정(松亭) 밀주지에 송정리 앞들 길가에 노룡암(老龍岩)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 노룡암이 현 내이동 오통 사무실을 기준으로 해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약 300m) 사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동쪽으로 돌아가기 직전 민가의 담밑에 아주 큰 바위가 담장의 기초가 되어 묻혀 있다. 바로 이 바위가 소위 노룡암이다<임인수씨 말>.
송정은 곧 그 바위의 북쪽이 되고, 따라서 내이동 5통이 바로 송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이곳에서 만든 유기 그릇이 유명하였다고 한다.
송정이라는 명칭은 이 마을에 노송 몇 그루와 그 옆에 조그마한 정자가 있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송정 곧 내이동 오통은 밀양읍 성의 북문 밖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에는 밀양에서 서울(한양)로 가는 대로가 마을 중앙을 통해서 갔다고 하니 그 당시로 봐서는 이 마을이 번화한 거리였으리라 추정된다.
■ 뒤터실 동가리 신작로 중간 지점에서 서쪽 끝 부분까지 길 위 북쪽, 다시 말해서 현 제일병원 남쪽의 지역 일원을 뒤터실이라고 한다<장병익씨 말>.'뒤터실'이라는 명칭은 '뒤는 글자 그대로 뒤(後)의 뜻이고 '터'는 집터의 뜻이며 '실'은 골'谷'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뒤에 집터가 있는 골'이라는 뜻이 된다. 아마도 옛날에 이곳에 인가가 있었던 것이 허물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었던 관계로 '뒤터실'이라는 이름이 생겨서 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인가가 조밀하게 들어서 있고 현재 내이동 2통의 행정 구역에 속해 있다.
■ 해천껄 일명 '해채거리'라고도 한다. '한국 지영 유래 총람(韓國 地名 由來 總覽)'에는 '노예에 있는 길'이라 했다. 여기서 해채는 곧 해천(海川)을 말한다. 그러므로 해천교가 있는 부근의 거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현 내일동 우체국을 중심으로 해천 주변의 지역 일원이 해채껄에 해당되며 옛날에는 읍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고 한다<윤상선씨 말>.
이 지역에는 해천교와 해천, 그리고 유(柳)다리(누교 : 樓橋)가 있다. 해천교는 밀양내에 '밀양읍성 해자(垓字)에 놓인 다리로서 내일동과 내이동의 경계'라 기록되어 있다. 1923년도에 신축된 다리(연장 3.5,폭 5.9,높이 1,견간 1)로 무안 방면으로 가는 중요한 다리인 것이다.
해천은 밀양읍성, 곧 내일동과 내이동 사이의 해자에 흐르는 내를 말한다. 해자는 밀양읍성의 북문에서 (북성껄)남북 일직선으로 해서 유다리(누교)까지 연결되어 있는 성벽 밖에 있다.
이 해자가 해천이라는이름으로 변하여 내일동과 내이동을 경계 짓는 하수도로 변하여 밀양시의 모든 폐수가 이 해천으로 흘러 내려가고 있다. 해천이라는 명칭은 '해자에 흐르는 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유다리는 누교(樓橋) 속전 유교(柳橋)라 한다. 밀양읍성의 해천 하류를 건너는 석교(石橋)로서 지금의 밀양시 내일동과 내이동의 경계이다. 읍성의 남문인 공해루(控海樓) 앞에 있었다 하여 '누교'가 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유교'또는 '유다리'로 바뀌어 이름이 남아 있다.
구밀양지(舊密州誌)에 의하면 유다리가 남문 밖에 있었는데 청도, 영산, 양산 방면에서 부내에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이 다리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 당시로 봐서는 유일하고도 중요한 다리였음을 알 수 있다.
유교라는 명칭은 '버드나무로 만든 다리'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윤상선씨>. 지금의 남정빌딩 서편, 곧 구 시외버스 주차장이 있었던 골목길에서 서쪽으로 약 100m 정도 지점인 해천에 걸려 있는 다리가 곧 유다리이다.
■ 동가리 신작로 속칭 '벙어리 신작로', '버버리 신작로'라고도 한다. 내이동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한 도로인데 현 밀양대학교와 밀양고등학교 서편의 도랑이 지금은 복개가 되어 있어 길이 뚫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도로의 서편 끝 쪽이 뚫려져 있지 않아 도로가 동가리로 돼 있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동가리 신작로'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 송정교(松亭橋) 현 북성파출소 앞 내일동과 내이동 사이에 있는 다리로 1965년도에 신축된 다리(연장 6, 폭원8.15, 높이 2.5, 견간 1)로 밀양시에서 대구로 통하는 중요한 다리다.
■ 토끼바위 밀양시 내이동 신촌 부락 동남쪽에 있는 들 가운데 있는 바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밀양시에서 부북면으로 가는 도로와 밀양시의 우회도로와의 교차 지점의 북쪽에 외관상 자연암처럼 보이는 큰 바위로 옛날부터 '토끼바우', '뒤께바우'라는 속명으로 통하고 있다.
'토끼바위'라는 이름은 옛날에 바위 두 개가 토끼의 귀 모양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일본인이 부북행 신작로(도로)를 만들면서 두 개 바위 중 한 개는 깨어 없애 버리고 지금은 한 개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신하용씨 말>.
옛날부터 여러 사람들이 토끼바위에 불울 켜고 치성을 드리는 일이 있었으며, 지금도 새 차를 사서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는 일이 있다고 한다. 이 토끼바위가 있는 들을 '뒤께바우들'이라고 한다.
■ 남정원(南亭院)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남정원은 '재부서이리(在府西二里)'로 기록되어 있고, 밀주구지(密州舊誌)에는 '재부서삼리(在府西三里)'로 기록되어 있다. 또 밀주지(密州誌)에는 '구록재부서삼리운이미상하지(舊錄在府西三里云而未詳何地)'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미리벌의 얼'에도 '부의 서쪽 삼리에 있다. 지금의 밀양군 부북면 감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밀양지에도 '부의 서쪽 삼리 지점으로 지금의 부북면 감천리로 추정된다.'로 기록되어 있다.
밀주구지에 남정원은 '사성입부시부사연명처임진탕진잉폐남유남정연서유남정교로상유부사선정비(使星入府時府使延命處壬辰蕩盡仍廢南有南亭淵西有南亭橋路上有府使善政碑)'라 하였으니 곧 남정연이 남정원 남쪽에 있었고, 남정교가 남정원의 서쪽에 있었으며 길 윗쪽에 부사의 선정비가 있었다는 것이다.
■ 신촌(新村) 서북쪽에 위치한 지금의 내이동 육통을 말한다. 언제부터 생긴 마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후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풍수설에 의하면 이 마을은 '새우穴'이라 하여 새우는 숲이 있어야만 피할 수도 있고, 번창할 수도 있다고 해서 이 마을에 '장도랑'이 있는데 그 도랑 뚝에 숲을 조성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숲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신하용씨 말>.
신촌 내에는 큰각단, 중각단, 주막각단, 시내각단이라 하여 소단위 부락이 있는데 큰각단은 속칭 '건너각단'이라고 한다. 신촌 내에 있는 봇도랑 아래쪽의 마을이 큰각단이다. 처음에는 중각단보다 인구가 더 많고 더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중각단보다 인구수가 적고 규모도 작다.
중각단은 신촌의 중앙에 있는 마을을 말하는데 마을 봇도랑 위쪽과 도로의 아래쪽 지역 일원을 중각단이라 한다. 주막각단은 지금의 신촌 정미소가 있는 도로변의 양편 지역을 말하는데 이곳에는 주막이 있었던 관계로 해서 주막각단이라는 말이 붙게 된 것이다. 시내각단은 내이동 6통의 북쪽과 부북면의 경계 지점에 작은 도랑을 경계로 내이동 지역에 위치한 마을을 말한다<신하용씨 말>.
■ 노상, 노하(路上, 路下) 동가리 신작로를 중심으로 해서 길 위 북쪽을 노상이라 하고, 길 아래 남쪽이 노하이다<윤상선씨 말>라는 말과 현 해천교에서 우체국을 지나 무안 방면으로 가는 도로 위 북쪽을 노상이라 하고 도로 아래 남쪽이 노하다<손관식씨 말>라는 두 가지 말이 있다. 노하는 속칭 '노예'라고 한다. 지금도 BBS학원과 진주사 집 부근 일원을 노예라고 말하고 있다. 노상, 노하의 명칭은 글자 그대로 길 위, 길 아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각종 지명 유래 이외에 내이동 내에는 밀성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밀성중.고등학교, 밀양산업대학 등 각급 학교가 산재되어 있어 밀양 교육의 중심지가 되어 있고, 영남농업시험장, 한국통신공사 밀양전화국, 밀양우체국, 밀양산림조합, 밀양농지개량조합, 농림수산부 경상남도 농수산 통계사무소 밀양출장소, 영남병원 및 시외버스 주차장이 이곳 내이동에 집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시외버스 주차장 부근은 밀양시 승격과 더불어 택지 정비 작업으로 각종의 새로운 상가가 조성되고 있어 앞으로 밀양의 화려한 중심 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희망찬 지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