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나는 북극곰을 사람이라 부르고 사람을 북극곰이라 부르겠다 외 4편
솔미숙
무너져 내리는 빙하를 보고는
겁에 질려 달려가는 사람들
사람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후변화입니다
북극의 온난화는 세계평균보다
두 배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속적이고 갈수록 빨라지는
해빙에 따른 서식지 상실로
2008년 5월 미국멸종위기보호법에 의해
사람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50년에 사람은
완전히 사라질지 모릅니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은
북극곰들의 화석연료 사용과
북극곰들의 무분별한 산림벌목
북극곰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입니다
북극곰들은 플라스틱과
비닐 같은 석유제품 사용과
에너지 사용 비료 사용 등을
최대한 억제해야만합니다
2050년에 사람은 멸종할 수도 있습니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솔미숙
수십만 개의 푸른 부채가 진종일
날아라 날아라 날아라
마지막 백련 한 송이를 두고
바람을 일으켜 입을 닦고 있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다 저녁이 되어서야 드디어
푸드덕, 이쪽을 차고 오르는 소리
하얀 번뇌들, 깃털처럼 몇 떨구어 놓고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불교경전 천수경의 첫 부분으로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 외우는 일종의 주문.
챠강티메
솔미숙
나의 챠강티메는 어디에 있을까
흰빛이 섞인 붉은 모래 언덕
사람의 옷을 벗어던지고
오래 전 바람을 걸친 여인이
젖빛 낙타를 몰고 떠난 곳
나는 지금 시원을 찾아가고 있다
잠을 줄이고 허기를 즐기며
어제는 몸도 씻지 않았다
사막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어
수많은 저녁의 슬픔과 밤별과
오로지 눈물만이 마중물이 되어
바다의 기억을 꺼낼 수 있다
간절함이 더욱 태양을 달구지만
간절함마저 다 사라질 때
겨우 우리가 흘린 땀만큼
아프지 않은 아침이 올 것이다
툭하면 부서지는 모래더미 속에도
굳센 근육 하나 단단하게 품고 있어
끝내는 산을 지고 산을 넘는데
바람을 수영하는 푸른 하닥
멀리 사라진 우리의 곁이
맨 얼굴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아, 그리운 챠강티메는 어디로 갔을까
눈썹차양 아래 자신의 마른
그늘이라도 꼭꼭 씹어서
죽어가는 어린 것을 먹이고 있으려나
*챠강티메-몽골어로 하얀 낙타를 뜻하며 아주 귀하고 신성한 존재로 여김
*하닥-신에게만 바치는 푸른 천
꽃마리
솔미숙
동굴처럼 검은 쌀독에다 외롭게 가둬 키우던 짐승인가
그렇게 어둠만 먹여 키운 짐승인가
타닥 탁 탁 마른 콩깍지 타던 붉은 아궁이 속
활활 타는 불만 먹여 키운 짐승인가
무명 삼베적삼 시린 물에 빨아 널 때 팍 팍 방망이로 두드려
빈 밥그릇만 먹여 키운 짐승인가 밤새도록 흰 철쭉이 물어뜯는 것
가끔은 푸른 눈동자에 보랏빛 뿔이 유난히도 빛나던
어여쁜 엄마, 요즘 내 가슴이 왜 이리도 아프지?
내가 붙잡을 겨를도 없이 꽃길 사이로 사라진 건 분명
꼭 엄마만한 짐승이었어
이토록 질기고 뜨건 짐승을 눈물 울타리 단 한 번도 넘지 않게
어떻게 가슴 속에 품고 살았는가
열 개의 혓바닥으로 방바닥을 핥아대며
단추를 주워서는 싹싹 닦아 내 입에다 넣어주려 애쓰는 엄마
낡은 슬리퍼를 뜯어서는 고기라고 먹을 만하다고 어여 먹으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애가 타는 엄마
자신을 다 잃어버리고도 엄마는 왜 이다지도 엄마인거야
꽁꽁 싸맨 저 보따리들은 다 어디로 갈 준비인거지
걸음마조차 불안해져서 점점 네발이 익숙해져가는
엄마 왜 그래 엄마가 왜 그래
참고 있는 계절이 물러터지기 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은 풀꽃 꽃마리를 보러 가야지
방금 짐승을 다녀온 엄마가 벗어놓은 짐승이 내게 꼭 맞는 걸
씹을수록 쓰디쓴 할매를 뱉어봐 자두맛 나는 사탕을 줄게
멀리는 못가 푸른 별꽃이 피어있는 저곳 거기까지만 같이 가줄게
내게는 아직 당신을 담아 품을 자궁이 없는 걸
나는 지금 티벳에 있다
솔미숙
어느 사원 마당 큰 나무 아래
손수 엮은 크고 작은 바구니를 두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마시는
그들은 참으로 조용했다
큰 나무 아래 작은 나무 같았다
서로 가까이서 들고 내쉬는
숨으로 소통을 하는 것인지
너와 내가 하나인 듯 평온이 흘렀다
관광객들 끊임없이 들락거려도
어떤 커다란 짐승이 와서
수시로 볕을 헝클어 놓아도
타르쵸를 지나온 바람을 읽는 지
그들의 눈빛은 부처처럼 고요했다
색실을 섞어 땋아 내린 긴 머리와
예쁜 무늬 앞치마 옥빛귀걸이는
내게 또 하나 아름다운 경이었다
말없이 일어나 삼보일배 삼보일배
따라온 아이들도 말없이 삼보일배
모든 것이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듯
그곳이 나는 참 좋았다
두어 시간 나도 벙어리로 있다가
곁에서 그들과 숨을 섞다가
발길을 돌려 사원을 나오는 길
전생에 혹 내가 잃어버린 가사일까
딱 한 송이 피어있는 주홍빛 한련화
아쉬움에 오래오래 들여다 보았다
살짝 만져도 보았다 보드랍고 고운 그것
괜찮다 괜찮다 마음을 쓸어주는
티벳 대나무 피리소리 들으며
나는 지금 그곳에 있다
행여 삐끗하면 그곳을 놓칠까
햇살 아래 쪼그려 앉았던 그 자리
움직임도 죽이고 숨도 죽이고
파란 하늘 펄럭이는 룽다를 본다
마음에는 높고 찬 설산을 품고
땅인 듯 물인 듯 풀인 듯 꽃인 듯
평화로움으로 평화를 지키는
없는 듯 있는 그들을 느낀다
나는 지금 티벳에 있다
당선소감
솔미숙
긴 망설임 끝에 시를 보내놓고는 그냥 잊자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저의 졸시를 좋게 보아주시고 더욱 정진하라는 말씀과 함께 답신을 보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아름다운 시 한 편 쓰고 싶다는 소망을 다시 품게 해주신 반경환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고맙습니다. 무지개가 뜨면 사라지기전에 빨리 보라고 전화를 해주고 가장 크고 밝은 보름달도 몇 개씩이나 내가 먼저 가지라고 선물로 주며 같이 좋은 시를 쓰자고 말해준 친구가 있습니다.
내게 좋은 시를 쓸 자질이나 열정이 한참 부족하다는 걸 저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저의 한계에 절망하곤 합니다. 그래도 이런 나를 여기까지 놓지 않고 데려온 시라면 앞으로도 나를 완전히 배반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스스로에 대한 위로처럼 해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갔지만 떠오르는 고마운 분들이 계십니다. 이성선 시인의 시를 많이 읽어 볼 것을 권하며 분명 당신이 귀히 간직하고 계셨을 시집까지 보내주신 황금찬 선생님 그리고 일간지나 지역 문화지에 시를 실어주시며 마치 내가 시를 잘 쓴다는 착각을 하도록 하신 김양헌 선생님, 가다가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니 시에 힘을 좀 더 줘보라고 말씀해주신 박재열 교수님께 고맙습니다.
문득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아들과 말없이 응원해주는 딸에게도 고맙습니다.
작은 화분의 죽어가던 수국이, 꼭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청수국이 신기하게도 잎을 내고 잎새 속에 꽃봉오리도 품었습니다. 우도 바다색깔의 파란 꽃덩어리 볼 날을 기다리는 일이 즐겁습니다.
아름다운 문예지 <애지>의 무궁한 발전을 빌며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이름: 솔미숙(본명 박미숙)
* 이메일: blueskyow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