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열왕 4,8-11.14-16ㄴ; 로마 6,3-4.8-11; 마태 10,37-42
오늘은 교황 주일입니다. 한국 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인 6월 29일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내면서 교황님께서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가실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성 베드로 사도를 1대 교황으로 모시는 가톨릭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266대 교황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3년 취임하셔서 11년째 교황직무를 수행하고 계신데, 지난달 복부 탈장 수술을 받고 퇴원하신 후 회복 중에 직무 수행을 하고 계십니다. 8-9월에는 해외사목방문이 예정되어 있으신데, 특히 8월 31일부터는 몽골 교회를 방문할 예정이십니다.
지난 2013년 3월 19일, 교황님께서 취임 미사 중에 하신 강론 말씀을 읽고 저는 울었습니다. 이런 분이 교황님으로 계신 시대에 제가 사제로 살고 있음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교황님께서 취임 후 하고 계신 모든 일들은 이미 이 강론에 예고되어 있는데요, 전임 교황인 요셉 라칭거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영명 축일이기도 한 성요셉 대축일에 미사를 봉헌하시며 교황님은 우리 모두가 성 요셉처럼 보호자로 불리움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보호하고, 그 다음 부모가 자녀를 돌보며, 자녀들도 자기 부모를 보호하여야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우리의 보호에 맡겨져 있고 우리 모두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하느님 선물의 보호자가 됩시다!
인간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마다 우리가 피조물과 우리의 형제자매를 돌보지 못할 때마다 파괴의 길이 열리고 마음이 완고해집니다. 슬프게도 역사의 모든 시기마다 죽음의 음모를 획책하고, 파괴를 일삼고, 인간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헤로데”가 존재해왔습니다.
경제, 정치, 사회 생활에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간곡히 요청하고자 합니다. 피조물의 “보호자”, 자연 안에 새겨진 하느님 계획의 보호자, 인간의 보호자와 자연의 보호자가 되도록 합시다.”
‘보호자’로 번역된 말은 ‘수호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피조물의 수호자, 하느님 계획의 수호자, 인간의 수호자, 자연의 수호자. 교황님께서는 당신이 이를 위해 부르심 받았다고 하시며, 우리 모두가 수호자로 함께 부르심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비롯한 모든 문헌과 교황님의 행보와 말씀 하나하나에서 드러나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가 우리보다 약한 존재의 보호자,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독서의 말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하물며 우리가 교황님을 위해 바치는 기도와 협력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받아 주실까요? 우리도 하느님의 피조물과 인간의 수호자로 살아가며 교황님의 일에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신학교 입학 때에 무척이나 반대하시던 아버지 때문에 저는 이 말씀을 참 많이 묵상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부딪혔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들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그런데 마태오 복음 10장 전체는 열두 사도를 선발하신 후 사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복음을 전하러 떠나는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많은 교부들은 “사랑의 질서”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라틴어로는 ordo amoris 라고 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사랑의 질서가 잘 잡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엄마는 옆집 아이를 무척 사랑합니다. 내 아이보다. 그러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떤 아빠는 밖에서 너무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식구들에게는 그러지 않습니다. 이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더러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내 가족과 원수를 똑같이 사랑하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사랑에는 질서가 있고 우선순위가 있어야 합니다.
내 가족보다 남의 가족이 우위에 있으면 안 되듯, 내 가족보다 나의 위신이나 평판이 더 위에 있다면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입니다. 내 신념이 공동체 구성원보다 위에 있다, 우리는 그런 때 갈등하게 됩니다만, 그것이 신념이 아니라 고집이라면 문제는 커집니다. 내 사랑의 우선순위는 올바로 질서 잡혀 있습니까? 이 순위가 잘못되면, 아침 드라마의 주인공이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안 좋은 일은, 잘못된 사랑의 질서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선순위를 잘 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저녁기도 때에 애덕송을 바치며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이 우선순위의 1번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의 근원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다른 대상을 순위의 최정점에 놓는다면,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애착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자꾸만 최정점에 놓으려 하는 것은,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삼는 우선순위를 가장 경계하라 하십니다.
오늘 나의 사랑의 우선순위는 어떠한가요?
첫댓글 "사랑의 질서"
제가 가족과 이웃 안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주님 자녀로서 합당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