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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목사
오늘은 제가 평소에 잘 다루지 않는 이야기의 소재입니다만 교우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으로 생각되어 가정생활, 특히 부부생활의 치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치유라고 하면 이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사회적으로는 해방, 이것을 신앙적 용어로 표현하면 구원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같은 이야기이고 똑 같이 중요한 구원의 내용들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는 William Glasser의 『Staying Together』, 결혼의 기술, 우애령 역, 서울; 도서출판 하늘재, 1999)에 기대어 진행하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에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심되는 관계는 부부관계입니다. 글래서 박사는 배우자 상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서 말합니다. 어린아기가 욕구가 생길 때 웁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달려와서 그 욕구를 채워줍니다. 이때 아기의 마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상이 그려지게 됩니다. 이 어머니의 그림은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한 그림이고 어머니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게 합니다. 아기는 어머니는 나의 고통을 멈추게 하고 내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분 이라고 기억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 속에 좋은 어머니 상을 가진 아이는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는 가능한 존재라는 긍정적인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아이는 이 머머니의 상을 밑그림으로 해서 그 위에 자신의 경험과 삶을 통해 바라는 것들을 추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 친구, 귀한 소유물,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장소, 소중한 아이디어, 종교적 믿음 등을 더해가게 됩니다. 내가 바라는 이상형이라는 그림을 자신의 총체적 경험을 동원해서 그리게 되는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너무 이상화되어 있거나 너무 낭만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실제로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는 거의 닮은 데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혼에서 허니문, 신혼은 끝났다는 의미는 이상 속의 사람과 현실 속에서의 사람의 차이점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 차이를 발견하게 되지만 사람은 일생동안 꿈 꿔온 자신의 이상, 자신의 모든 삶이 농축된 꿈을 쉽게 무너뜨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기에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맹렬히 상대를 변화시키기에 들어갑니다.
저 사람은 내가 꿈꿔온 이상형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망상을 가지게 됩니다. 바로 이 망상 때문에 야기되는 불행처럼 비참한 것도 없다 고 글래서 박사는 말합니다. 모든 결혼의 최대 불행은 어느 한쪽이건
혹은 양쪽이건 간에 상대를 지배하려고 달려드는 것, 여기서 모든 비극이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왜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마다 자기 욕구를 만족시키는 유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성적인 욕구가 매우 강한데 비해 부인은 그렇지 않고, 남편은 자유롭고 변화를 즐기는 유형인데 부인은 매사에 아주 정형적이고 교과서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이 둘은 서로 자기 타입을 만들려고 전쟁에 들어갑니다. 그 전쟁에서 서로 한없는 상처를 남기고 결론은 저 인간은 안돼! 구제불능이야 라는 결론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사회는 이혼을 통해 해결하기도 하지만 우리같이 유교적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이혼이라는 낙인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사회적 비난과 멸시를 생각해서 그냥 그 틀 속에 안주하게 됩니다. 이것은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이 불행한 삶이 됩니다. 정 화합할 수 없다면 이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혼금지의 말씀은 그 당시 남성들이 이혼증서라는 합법적 이혼의 방법을 이용해서 아무런 책임없이 자신의 배우자를 마구 버리는 수단으로 삼는 데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혼이 법으로 금지된 사회도 있는데 여기서는 대신 살인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배우자가 죽기를 바라는 부부들이 많다고 하니 오히려 더 나쁜 것이지요.
부부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 아주 심대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바꿀 수 없다 는 것을 내가 깨닫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욕구를 충족하는 프로파일이 나하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를 나와 똑 같이 만드는 일은 아예 불가능한 것입니다. 유전자가 다르고 성장해온 환경이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부부간의 대화의 첫 출발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둘째, 상대와 나의 유형을 알아야합니다.
글래서 박사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 요소를 5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여러분이 각각의 단계에 자기 점수를 매겨 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그렇다면 5, 전혀 그런 마음 없다면 1, 보통이라면 3 으로 해서 1에서 5까지의 등급으로 점수를 매겨 보시기 바랍니다. 5는 그 방면의 욕구가 아주 강한 사람이고 1은 아주 욕구가 약한 사람입니다.
첫째는 생존의 욕구입니다.
인간이 유일하게 자살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생존의 욕구가 높아 자살하지 않습니다. 생존에 욕구에 해당하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돌보려고 하거나 균형잡힌 식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것, 돈이나 물건을 절약해서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는 것, 성적인 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자기 외모에 대해 관심이 많고 가꾸려고 노력하는 것 등이 해당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구입니다(주:저 자신은 이 논리에 대해서 썩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저축을 많이하는 사람은 성적인 욕망이 강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둘째는 사랑과 소속의 욕구입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친근감, 다른 사람의 아픔에 참여하는 일, 타인을 위한 일,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배우자나 타인이 내게 관심을 가져 주기를 좋아하는 것, 남에게 인정받는 욕구등을 말합니다. 성의 문제에 있어서 남자의 성은 생존의 욕구에 가깝습니다. 남성은 실제로 성의 호르몬 작용에 의해 본능적 성욕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성은 사랑과 소속의 욕구에 가깝습니다. 성자체로 즐긴다기 보다는 인간적인 따듯함, 자신을 긍정하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더욱 중요합니다. 우정의 절정에 있는 성을 원합니다.
이런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일반적 생리현상이지만 이것만을 진리로 알면 낭패합니다. 그렇다면 남성은 동물이나 기계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 남성의 성은 자판기 성이 됩니다. 남자도 인간이기에 인간적 따뜻함과 그럴만한 환경적 인간적 분위기는 여성 못지 않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따듯하고 섬세한 분위기를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하는 인간적 분위기, 아주 섬세한 말 한마디, 편안한 말, 몸의 청결상태, 변기에 물내리는 소리, 하품이나, 기침 소리까지라도 걸림돌이 되고 분위기를 깰 수 있습니다.
셋째는 힘과 성취의 욕구입니다.
이런 형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충고나 조언, 지시를 잘 하는가하면 어떤 집단에서든지 지도자가 되고 싶고, 탁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며 자신이 생각한 것을 꼭 이룩하고야 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굉장한 리더쉽과 성취도를 나타내는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일이 잘 안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부부관계에서도 훌륭한가, 꼭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꺾고 그들을 좌지우지 하려하기 쉽습니다. 이런 경향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어느 시점까지는 그 지도력이 먹히지만 그 임계점이 넘어가면 이런 사람이 나서면 성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오히려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미 그는 심한 견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대개 처녀 총각 때 이런 지도자형은 굉장한 매력을 갖습니다. 특히 힘의 욕구가 강한 남자는 여자가 보면 매우 사내답고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사내다운 것 좋아하다 낭패본 사람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남자 쪽도 마찬가지 지도력이 강한 여성을 좋아할 수 있는데 둘다 힘의 유형의 사람일 때 결혼의 결과는 비참합니다. 서로 지배하려듭니다. 이럴 때는 한쪽이 순종형이거나 많이 양보하는 형일 때만 이 궁합이 맞게됩니다. 그러나 힘의 욕구가 크더라도 사랑의 욕구가 크면 그 사람은 오히려 좋은 쪽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랑의 욕구는 약하고 힘의 욕구가 큰 남자는 어떻겠습니까? 가정에서 폭력행사를 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가장 비겁한 형입니다. 힘의 욕구는 큰데 주변어디서도 그 욕구를 세울 곳이 없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좌절감의 보상을 유일하게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 앞에서 오히려 폭력과 힘으로 답하고 과시함으로 나타내려는 아주 못난 형입니다. 누구나 사소한 감정을 조절 못해 간단한 폭력 정도를 쓸 수는 있으나 처음에 강하게 반발해야 합니다. 그까짓 것 가지고 왜 그러느냐?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정 폭력에 대해서는 초기에 강하게 반발해서 그런 방법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사람이 서먹서먹한 사이에 만나서 우리 이제부터 말트자 하고 반말을 하는 것처럼 잘못하면 폭력도 터서 일상화 시킬 수가 있습니다.
넷째는 자유의 욕구입니다.
사람들의 통제를 받기 싫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할 때 참기 어렵다. 남에게도 강요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고 배우자의 자유도 구속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항상 열린마음이다 이런 것은 자유의 욕구가 강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자유 뿐 만이 아니고 남의 자유가 구속받는 것도 참아내지 못합니다. 자유의 욕구가 강한 사람이 힘의 욕구가 강한 사람과 만나면 안 좋은 궁합입니다. 한 사람은 얽어매려고 하고 한 사람은 절대로 그런 태도를 용납치 않습니다.
과거의 독립투사들, 역사적 정황이 고려되야 하지만 자유의 욕구가 강하고 생존의 욕구가 낮은 사람입니다. 애를 낳았는데, 애가 자라는지 굶는지 잘 모릅니다. 어느날 몰래 들어가서 자는 아이 볼 한번 만져주고 새벽 동트기 전에 나와야 되는 기막힌 이야기들을 우리는 듣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닌데 아직까지 자기가 독립투사인 줄 알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에 취해 밤늦게 들어와 자는 아이 깨워서 괜히 볼 한번 만져주고 또 아침 일찍 나가는 사람! 일에 미쳐서 아무 것도 안보이고, 가정이건 부부건 안보이고 일에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다섯째는 즐거움의 욕구입니다.
유모어를 좋아하고 뭐든지 새로 유익한 것을 배우려고 합니다. 여행, 독서, 영화구경,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기, 생각해 보기를 즐기는 사람이고 창조적인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즐거움의 욕구가 높은 사람이 즐거움의 욕구가 낮은 사람과 만나면 사사건건 맞지 않고 재미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기껏 계획해서 재미있는 제안을 하면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멋있는 음악회를 함께 가자고 하면 오늘은 누워서 TV나 보겠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고싶은 것이 없고 별다른 의욕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궁합 중에는 가장 나쁜 궁합입니다. 즐거움의 욕구가 낮은 사람은 낮은 사람끼리 만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TV 맨, TV 우먼은 기껏해야 채널 싸움인데 부인 TV, 남편 TV 따로하면 되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가치판단을 해서 어떤 형은 안되고 어떤 형은 좋고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개인의 특성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의 화합과 조화라는 차원에서 그 화합의 폭이 넓은 사람과 좁은 사람의 문제지 어떤 성격은 좋다 나쁘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전부 개인의 특성일 뿐입니다.
판소리 흥부전에서 놀부부부는 생존과 힘의 욕구가 둘다 높은데 사랑과 즐거움의 욕구는 아주 낮습니다. 그런데 비해 흥부부부는 사랑과 즐거움의 욕구는 아주 강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얘를 몇 낳는지 잘 기억도 안될 만큼 주시는 대로 낳습니다. 내일모래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그런거 따질 사람들이 아닙니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그야 말로 못말리고 대책없는 부부입니다. 이 아주 대조적인 부부형이 형제간으로 대비되는 것이 흥부전의 재미입니다. 그런데 만약 놀부부인이 흥부와 흥부부인이 놀부와 결혼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네 사람이 다 괴로웠을 것입니다. 흥부전의 찢어지게 가난한 이야기 속에서 웃음을 터트리고 눈물을 흘려가며 신명나는 것은 이것이 굉장한 고통의 이야기이지만 해학적이고 즐거움을 주는 것은 두 부부가 서로 잘 맞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이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안맞을 경우 어떻게 하는가? 상호 맞추어 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쌍방에서 노력해야합니다. 한쪽에서만 시도하면 그렇지 않아도 그 동안 차이로 인해 상처받고 누적된 것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다른 욕망의 패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서로의 접근하려는 노력과 행동의 선택 -이것이 마음을 바꾸고 서로의 관계를 바꾼다는 것이 글래서 박사가 말하는 선택요법입니다. 새로운 행동을 선택함으로 그 마음의 조건들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몇가지 그런 행동들을 예시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자극적인 맞이함
2. 전화 걸 때 열정적 어조로 말하는 것
3. 상대방이 존재하고 잇는 것에 대한 기쁨을 하루에도 여러번 말하는 것
4.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우선적으로 부부의 시간, 창의적인 데이트를 즐긴다.
5. 상대를 칭찬하는 방법을 연구 적절한 칭찬을 꼭 한번씩
6.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로 본다
7. 함께 웃고 장난치고 즐거움을 나누면서 무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8. 원하는 것이 무엇이다는 것을 두려움 없이 정확히 말한다.
9. 비난하지 않고 불만을 말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10. 일상의 대화에서 예의를 갖춘다.
부부간에 좋은 게 좋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라며 불만이 있는 것을 표출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또 그것을 표현할 때라도 도와 예의가 있습니다. 부부간에 예의가 중요합니다. 가족간에 너무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모르는 남 보다 더 예의를 못 지키기 쉽습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상처받기가 쉬운 것입니다. 다음에 한 부부의 대화를 예시해 보겠습니다. 부부간 모처럼 외식 약속을 했는데, 남편이 늦었습니다.
당신 사람 불러 놓고 또 늦었어? 아니 왜 맨날 늦는 거야?
기분은 좀 상했겠지만 모처럼 분위기 잡으려 했는데 식사를 나눌 분위기가 되겠습니까? 이럴 때 분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해야합니다.
당신 오늘 바쁜 일이 있었나 보죠. 그런데 모처럼 마음먹고 외출했다가 우두커니 기다리려니 참 속상했어요.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제가 혼자 기다리지 않게 해주세요.
이런 말에는 자동적으로
아이 미안해요, 내가 이런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그만.... 대신 내가 오늘 특별히 당신 좋아하는 맛있는 요리를.... 이렇게 대화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배려하면서 이야기하는데도
아니, 내가 뭐 늦고 싶어서 늦었어? 내가 얼마나 죽을둥 살둥 하면서 나왔는데.....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대화들이 얼마나 예의가 없고 상스럽습니까? 왜 교양있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까? 상대의 의지와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말들, 폭력적인 언어들, 딱딱 상대방을 자르는 대화들, 여기서 마음이 한없이 떠나게 됩니다. 마음이 떠나면 그 다음 온갖 이유를 찾게 됩니다. 이런 대화를 하는 관계에서는 한쪽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묵묵히 참아내거나 아니면 비난을 맞 퍼붓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대화가 쌓이게 되면 이런 부부간에는 무슨 말도 안 믿고 서로 말꼬리 잡고, 서로 비난하는 관계로 굳어지게 됩니다. 남을 비난하는 것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 같고, 자기의 박식하고 예리한 두뇌능력을 드러내는 줄 착각하지만 세상에 미련한 사람입니다. 누가 그 비난 앞에 고분고분 순종할 사람이 있습니까? 남의 단점을 지적하고 싶을 때는 섬세한 도와 예의, 상당한 주의력 필요합니다. 글래서 박사는 건설적인 비난은 없다. 모든 비난은 파괴적이고 이것이 이성관계에서 일어나면 사랑은 급속히 식는다. 고 말합니다. 정말 무엇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면 매우 예의바르게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상대방이 감정 없이 나의 진심 어린 충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 말해야합니다. 그래야 아, 그것참 내가 잘못했구나 앞으로 이렇게 고쳐보지 하는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다짜고짜 비난하면 누구든지 잘했던 잘못했던 비난으로 응수하기가 쉽습니다.
가령 불충분한 애정- 이것이 결혼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요인인데 그럴 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당신이 애정이 있어? 내가 막대기하고 같이 살지!
이런 말에 대해 예 제가 막대기입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이런 대화에서는 그런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남아 있을 리도 없습니다. 이럴 때, 불만이 있는 파트너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나는 우리 사이에 친절한 말이나 포응 같은 애정이 충분하지 않은데 문제를 느껴요.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 삶에 애정이 되돌아 올 수 있는지 도와주기를 바래요. 여기서 당신이 이렇게 해달라는 요구가 아니고 내가 조금 더 발전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가정의 일상의
대화를 스케치 해보십시오. 그리고 그런 대화에서 애정이 생길 수 있는가를 잘 살펴보십시오.
부부이전에 좋은 친구가 되십시오.
마음에 있는 것을 거절당하거나 비난받을까봐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이 그림을 그려가며 미래의 설계를 하고, 무엇보다도 여건이 된다면 함께 있는 것을 추진하십시오. 좋은 친구는 상대의 주력하는 분야 -만약 배우자가 주부라면 가사와 가정 돌보기 등에서 상대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자에게 언제나 무엇이든지 다 말할 수 있는 것이 궁극적인 우정입니다. 세상에는 결혼한 채로 있으면서 서로 타인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글래서 박사는 혼외정사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그것이 더욱 애틋한 이유는 배우자와는 달리 자신의 욕구와 유사한 형을 찾기에 배우자와 잘 맞지 않았던 점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상대를 찾기 때문이며 그 다음은 서로의 관계가 마음에 강하게 남아야하고 또한 비밀이 상호 유지되어야 하기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서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서 더욱 애틋한 사랑을 만들어 간다면 그런 조건들이 왜 부부 사이에 되지 않겠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친구로서 존재한다면 반드시 새로운 허니문이 시작될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정이고 그 위에 성이 놓여지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전도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네가 하는 일을 좋게 보아주시니 너는 가서 즐거이 음식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언제나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치장도 하고 꾸미기도 하고 화장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너에게 주신 덧없는 모든 날에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라 (9절) 그것은 네가 사는 동안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다” 고 합니다.
또 전도서는 네가 들어갈 무덤 속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 우리가 추구하며 사는 그런 것들이 무덤 속에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서 함께 즐거이 지내라고 주신 부부관계를 정말 하나님의 상급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