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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 대 성회
삼상 7:1-17
요약
본문은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으고 회개의 대 성회를 열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국권을 회복한 내용이다. 여기서 사단을 물리치는 원리가 나타난다.
1. 성도의 영적인 현주소를 깨닫는 것이다.
1절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 "산에 사는" 이란 우리 영적 주소가 높으신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나는 주 안에서 승리했다는 확신에 서야 한다.
2. 하나님께서 나의 중심에서 다스리시게 해야 한다.
2절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 백성들이 법궤를 중앙성소로 모셔오지 못함을 통탄하게 여겼듯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때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신다(마12:29, 합2:20, 계3:21).
3. 그러기 위해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4절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 이처럼 이방 신은 물론이요 세속적인 욕심이나 죄와 자아 등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겨야 한다.
4. 참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9절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 사단은 속지 않으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심령을 가져야 한다.
5. 충실한 기도생활이 좋은 비결이다.
9절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예수님의 교훈처럼 근신하여 깨여 기도해야 한다.
6. 강하고 담대하게 대적함이 필요하다.
10절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 하늘 우뢰와 함께 원수를 대적함 같이 강하고 담대하게 물리치는 대적이 필요하다(약4:7).
7. 끝까지 안전하려면 그 신앙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13절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한 사단의 세력은 침입하지 못하며, 또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순회하며 다스린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결코 사단의 다스림을 받지 않게 된다.
강해
오늘은 '미스바 대 성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으고 회개의 대 성회를 열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국권을 회복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은 우리에게 원수 사단을 물리치는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단은 참으로 악하고 교활하고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들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대단히 심각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하고 반드시 물리쳐야 할 존재입니다. 사단을 물리치려면 사단은 위치를 떠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바른 위치에 서서 추방할 때 떠나게 됩니다. 그럼 본문이 가르쳐 주는 구체적인 처리법은 무엇일까요?
1. 우리의 영적인 현주소를 깨닫는 것입니다.
1절에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했습니다.
여기 아비나답의 집은 법궤의 제 일의 안치소로서 이 곳이 바로 우리의 영적 현주소인 하늘성소의 우리 주 예수 안을 상징합니다. 즉 이곳이 유다지파의 성읍으로 이는 그 위치가 영적권세의 자리임을 상징합니다. 또 '산에 사는'이란 '산 위에'란 뜻으로 우리 영적 주소가 높으신 우리 주 그리스도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또 아버지 아비나답은 '아버지는 고상하시다'로 하나님 아버지를, 아들 엘리아살은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뜻으로 도우시는 대제사장이신 아들 예수님을 각각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의 현주소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임을 보여줍니다. 또 엘리아살이 아론의 후예가 아니요 유다지파에 거주하는 레위인이라는 점에서 예수님이 아론의 반차가 아닌 유다지파에서 나오셔서 우리를 사단에서 건지신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또 오래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께서 승리의 보좌에 원수를 발등상 아래 놓일 때까지 지금도 역사하시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적주소가 승리하시어 높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 보좌의 그리스도 안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믿고 그 믿음에 굳게 서서 나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미 승리했다고 확신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승리했다. 나는 구원 받았다는 확신에 설 때 사단은 우리 앞에서 패배당하고 맙니다.
2. 나의 중심에 하나님의 위치를 찾아 드려야 합니다.
2절에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사모하다'란 '애석히 여기다, 크게 울다, 부르짖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백성들이 법궤를 중앙성소로 모셔오지 못함을 통탄하게 여김과 아울러 이러한 신앙이 생기기까지 사무엘의 헌신적인 노력이 깊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왜 그들은 법궤가 돌아왔음에도 통탄하게 여기고만 있었을까요? 그것은 기럇여아림이 아직까지 불레셋의 통치가 미쳐지는 곳이었기 때문에 불레셋을 자극하는 일이 될까봐 감히 옮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나의 중심에 하나님의 위치를 찾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애타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리하여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때 사단의 세력은 일망타진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장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12:29) 하셨습니다.
또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 잠잠할지니라"(합2:20)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중심에 계실 때 사단을 온전히 다스려 주십니다. 또 계3:21에 예수님을 내 중심에 모실 때에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내 중심에 모실 때 사단 앞에서의 승리는 더욱 실재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단을 이기는 길은 우리가 본 위치를 찾아가고 또한 하나님의 본 위치를 찾아드리는 것입니다.
3. 그러기 위해 진실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3-4절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했습니다.
이 구절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제했듯 우리들도 이방 신은 물론이요 세속적인 욕심이나 죄와 자아 등을 깨끗이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온 백성이 모였듯 마음을 다하고, 물을 길어 부었듯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으면서 기도하고, 금식했듯 그 죄들을 온전히 회개하여 그 죄악의 잔재를 없애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에 찾아오시는 길입니다.
4. 더 나아가 천국의 어린양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7-9절 내용인데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인 소식을 듣고 블레셋이 침공할 때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부르짖어 여호와께 응답을 받는 내용입니다.
여기 사무엘이 기도했는데 그런데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니라 어린양으로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젖먹는 어린양은 율법에 따라 7일을 넘긴 어린양으로 순수하고 진실로 회개된 심령을 가리킵니다.
사단에게는 가짜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단과의 전쟁은 참된 신앙을 쌓는 최고의 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말씀 안에서 변화되어 어린양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의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진리의 허리띠 즉 참됨이 첫째로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첫째로 열거된 이유는 참되지 않고서는 사단과 싸울 자격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역사가 요세퍼스에 의하면 예수님의 무덤은 로마군과 함께 천여명의 유대인들에 의해 겹겹이 지켜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그들은 놀라서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쳤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그 승리의 복음에 설 뿐 아니라 내가 십자가에서 죽어지고 다시 살아나 어린이와 같은 심령으로 나타날 때 사단의 세력은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인간의 방법으로 싸워 법궤까지 빼앗겼던 이스라엘이었지만 이제 사무엘의 말을 듣고 동일한 장소에서 신앙의 방법으로 싸웠을 때 통쾌한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5. 충실한 기도생활이 시험을 이기는 좋은 비결입니다.
5, 8, 9절의 내용인데 백성들이 회개하며 사무엘이 온전한 번제를 드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하늘 우뢰로 치사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원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기도가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근신하여 깨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생활을 잘 해야 시험도 예방이 되고 온 시험도 물러갑니다. 그래서 사단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신앙의 훈련소에 입소시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단이 시험을 주어도 결국은 성도들 신앙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제는 되었다고 점수를 주어 훈련을 마치게 하실 때까지 철두철미한 신앙생활을 구현해 나가야 합니다.
6. 강하고 담대하게 물리치는 대적이 필요합니다.
10-11절에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하늘 우뢰로 블레셋에게 발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기를 내어 블레셋을 쳐서 이겼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 그래서 약4:7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했습니다. 이렇게 신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사단에게 저항하는 신앙의 항체가 있어야 합니다. 저항할 때 사단의 세력은 패합니다. 그러므로 안들은 것만 못하는 무슨 공포스런 말을 해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이루어지지 않을 다 헛말이므로 조금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7. 영원한 안전을 위하여 그 신앙을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13-17절인데 먼저,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블레셋이 침공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한 사단의 세력은 침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블레셋의 침공이 없었다는 뜻이지 블레셋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도 이스라엘에 블레셋의 총독과 수비대가 상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언제나 근신하는 신앙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 사무엘이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다스린 것처럼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결코 사단의 다스림을 받지 않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의 다스림이란 강제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복하며 살아야 함을 암시합니다. 그 정권에 순복하여 지배를 받음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해마다 다스리기 위해서 순회한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와 라마라는 장소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으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제단을 쌓던 곳으로 교회생활을 잘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 길갈은 이스라엘이 할례를 받고 가나안을 정복하던 이스라엘 본부였듯이 날마다 죄를 씻고 십자가에 자신을 철저히 넘기는 생활을 잘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 미스바는 '망대'라는 뜻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생활에 충실히 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라마는 '높은 곳'이란 뜻으로 저 천국을 바라 보면 전도와 봉사생활을 자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자기 고향 라마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도 천국갈 때까지 이 신앙대로 살면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은 이긴 자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참된 복음과 믿음과 확신에 서서 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십시다. 그래서 참된 평안과 안전이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