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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0: 18 스스로 버리노라.
요 10: 18 스스로 버리노라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그 권세를 가지고 계셨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르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권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1]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 이유가 그의 목숨 버리심과 다시 사심에 있다는 것을 주목한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성자(聖者)이시니 존재론적으로 영원토록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다.
* 요 5: 20 -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그러나 그가 인성(人性)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시는 때에 구속 사업의 사명을 받으셨으므로, 그의 사명에 순종하신(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 그 만큼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 방면도 있다.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곧 그가 목숨을 버리시는 것과 다시 사시는 것이 순연히 독자적인 의지(意志)로 순종하심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그 위의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 말씀이, 그 사실을 역설(力說)한다.
여기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님의 생명 버리심을 강요하시지 않는다는 뜻을 포함한다. 곧 하나님 아버지도 성자(聖子)의 생명을 빼앗을 처지에 계시지 않다는 말이다.
그는 순연히 자유 의지로써 단 마음으로 순종하신 것뿐이다.
2]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계명"이란 말은 하나님 앞에서 받으신 사명을 의미한다.
계명(엔톨렌)은 "명령, 계명, 권세"의 의미가 있으며 요한은 이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 요 15: 10, 12 –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요일 2: 3-4, 7-8 –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 요일 3: 23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 요일 4: 21 -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요이 1: 4-6 – 4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 계 14: 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요 12: 49 -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 계 12: 17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사탄은 진실한 성도들과 싸우려고 준비했다.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은 이미 죽은 자들과 순교자들을 제외하고 땅 위에 살아 있는 진실한 성도들은 들림(휴거) 받고, 들림 받지 못한 교인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입으로 주여, 주여! 하던 자들이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롭게 살지 못한 허울뿐인 성도로 본다.
'여자의 남은 자손'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킨다(Glasson).
Ⓑ 여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남은 자손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Walvoord).
Ⓒ 여자는 '팔레스틴의 교회'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남은 자손은 로마 제국 도처에 흩어져 있는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킨다(Mounce).
Ⓓ 여자는 성도들의 '신앙 공동체 전체'를 상징하는 반면 남은 자손은 신앙 공동체 중에서 사탄의 핍박으로 인해 '순교 당하는 개인 성도들'을 가리킨다(Swete, Caird, Kiddle).
네 가지 견해가 모두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해를 옷 입은 여자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 자체를 파멸시킬 수는 없으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는 성도 개개인들'은 핍박하고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성도 개개인을 향한 사탄의 공격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결코 사탄의 승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탄이 예수를 핍박하여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그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이 성도 개개인을 핍박하고 순교시킬 수는 있으나 그것은 결국 성도들에게 궁극적인 믿음의 승리를 안겨주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용이 여자를 핍박한다(계 12: 13-17). 남자아이를 삼키고자 했으나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려가므로 여자를 핍박하지만, 여자도 광야로 도망하여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게 된다. 용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한다. 용의 입김이 여자를 해하려 하지만 땅이 여자를 도와 입을 벌려 물을 삼키고 여자를 건진다.
용은 남자아이도 남자아이를 난 여자도 해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하므로 분내어 돌아가서 여자의 남은 자손을 해치게 된다.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고 예수의 증거도 있으나 들림 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 교회가 남아서(*) 용의 밥 – 화풀이의 대상 - 이 된다는 것이다.
* 마 7: 22-23, 26-27 –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마 24: 40-41 –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계 13장과 같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 우상에게 절하게 하여 영원히 멸망 받게 한다.
계시록 13장부터는 유대교인의 환난 기사는 없어지고 세계 만국 기독 성도의 핍박 받는 마지막 대 환난 기사가 기록되고 있다.
그 전에 유대인을 어떻게 하나님이 도우시고 구원하셨는가 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로 또한 기적의 힘으로 결국 승리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을12장에서 보여주셨으므로 낙심치 말고 승리하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1) 용의 분노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 용이 이루고자 했던 어떤 일도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였으므로
① 남자 아이를 해치지 못함 - 계 12: 5.
② 해 입은 여자를 해치지 못함- 계 12: 14.
③ 공중에서 쫓겨났으므로- 계 12: 12.
* 단 11: 36 - 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형통하기를 분노하심이 그칠 때까지 하리니 이는 그 작정된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이라.
(2)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공중 권세를 잡았던 용이 그 권세를 잃고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자에게 돌아감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부 된 자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피하고 들림받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같이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을 의미한다.
성전을 측량할 때 측량 받지 못한 뜰을 밟는 자들이다.
남은 자.
① 여러 견해.
ⓐ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다.
아처[G. L. Archer] : 유대인들의 모 교회와 구별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다. [존슨, 엑스포지터스 요한계시록, p.452]
마운스[R. H. Mounce] : 여자의 남은 자손은 제국 각처에 있는 이방인 성도다. [마운스, 요한계시록, pp.291,292]
ⓑ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다.
왈부르드[J. F. Walvoord] : 메시아와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미움이 급증할 것이다. 틀림없이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순교당 할 것이다. 그러나 7장 에서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왈부르드, 요한계시록 해석, p.290]
개벨라인[A. C. Gaebelein] : 이 여자가 도망간 나라들에 유리되어있는 자들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믿음을 지킨 자들이다. [비더울프, 종말과 재림, p.427]
ⓒ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르는 공동체의 개개인이다.
래드[G. E. Ladd] : 지상에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래드, 요한계시록, p.224]
렌스키[R. C. H. Lenski] : 사탄의 최초 노력은 모든 거룩한 것들을 물에 빠져 죽도록 한다. 그러나 이 일이 실패하므로 교회의 교인들 몇 사람에게 공격을 할 것이다. [렌스키, 성경주석 계시록, p.311]
② 저자의 견해
남은 자는 양면성이 있다. 여기서는 나쁜 의미의 남은 자로 본다.
ⓐ 좋은 의미의 남은 자.
* 왕상 19: 18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첫째, 원어적으로 입증된다.
스페르마토스[자손, σπερματο]는 뿌려진 것[that which is sown] 이란 의미이다. 해를 입은 여자가 참 교회의 모형이므로 그 여자로부터 뿌려진 씨앗도 좋은 의미의 남은 자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의 자세로 입증된다.
남은 자손의 신앙적인 자세를 보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묘사되어 있다.
셋째, 진노의 재앙에서 입증된다.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당한다(14: 10). 그러나 성도들은 보호받는다(14: 12). 따라서 남은 자손은 좋은 의미이다.
넷째, 짐승의 통치 기간에 순교로 입증된다.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이기게 된다(13: 5, 7). 성도들의 순교(13: 10)로 좋은 의미이다.
다섯째, 천년왕국의 내용으로 입증된다.
천년왕국에 들어간 성도들을 볼 때(20: 4) 좋은 의미이다.
ⓑ 나쁜 의미의 남은 자.
첫째, 적그리스도와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13: 2,7)
짐승에게 진다는 것은 결국 짐승을 경배하고 숭배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둘째, 성전의 척량으로 입증된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11: 2)는 것은 땅에 소망을 둔 자들이기 때문이다.
셋째, 바다 모래 위에 있기 때문이다.
12절에 땅과 바다는 화가 있다.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도 바다 모래 같은 무리가 나온다.(20: 8)
넷째, 성경의 예언으로부터 입증된다.
* 벧전 3: 20 -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벧후 3: 6-9 –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마 25: 1-13 - 열 처녀의 비유. -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렘 24: 5-7 –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 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잘 돌볼 것이라.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다섯째, 주님의 재림 때에회개하는 흔적을 볼 수 없다.
* 계 1: 7 -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계 9: 20-21 – 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 계 11: 13 -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 계 16: 21 -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 마 24: 30 -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③ 나쁜 의미의 남은 자로 보는 이유.
첫째, 해를 입은 여자들은보호받기때문이다.(12: 6,14).
둘째, 짐승의 통치 기간에는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13: 8, 15).
셋째, 주님의 약속이 입증한다.
* 요 17: 12 -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 마 25: 8-12 -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① 예비처에 들어가지 못한 교인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다.
* 계 11: 2 - 성전 밖 마당 -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계 13: 7-8 –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요일 5: 2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② 싸우려고
하늘 전쟁에서 패한 뒤, 땅으로 쫓겨난 사탄과 그의 사자들이 예비처로 보호받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교인들에 대하여 복수하려는 장면이다.
* 요 8: 44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 고전 2: 1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 벧전 5: 8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③ 모래 위에 섰더라.
서로 뭉쳐 바위를 이루지 못하는 오합지졸을 의미한다. 아무리 많은 숫자라 할지라도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므로 능력을 상실해버린 교인들을 의미한다.
용과 그의 사자들의 화풀이 대상이 된다.
* 창 22: 17-18 –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4) 아브라함의 영적 두 자녀.
① 하늘의 별.
* 계 1: 20 -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단 12: 3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② 바닷가의 모래.
* 사 10: 21-23 –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3] 선한 목자 (요 10: 11-18)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하셨다. 이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뿐이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증거하셔야 할 분이시기에 자기의 신분에 대하여 스스로 말씀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의 자격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진정한 목자는 “예수” 뿐이심을 천명하고 있다.
(1) 선한 목자의 자격
주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가 되시는 이유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다.
①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다.
양들은 하나님을 떠나있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죄로 스스로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죗값은 사망인데 이 죄 가운데서 구원해 줄자가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참하게 된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분이 양들의 참 목자이시다. 예수님은 그런 목자이다.
예수님은 그의 몸을 십자가에서 찢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목제물이 되셨다. 길을 잃은 우리에게 “새롭게 살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야말로 진실로 우리의 진정한 목자이시며 이 같은 양의 목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②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은 자기 양들을 위해서이다.
이 세상에는 주님의 양이 아닌 무리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일단의 유대인을 향하여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고 말씀하셨다(요10: 27).
예수님이 양들을 위한 제물이 되신 것은 자기 양들만을 위하신 제한 속죄 제물이심을 가리키고 있다.
(2)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
예수님은 자기 양들을 언급하시는 말씀 중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다”고 하셨다.
① 좁은 의미는 그곳에 있었던 제자들이나 그의 추종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 안에 들어가 있는 양들은 이미 신앙고백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양이 되어 그리스도안에 거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고 있다.
이 해석은 아직도 많은 양들이 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지 않으며 그 양 떼들도 역시 예수님의 소유로 그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할 다른 양들이다.
② 이 우리란 이스라엘을 상징한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란 특권이 주어진 민족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게서 나온다.
* 요 4: 22 -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른 양”이라고 표현하신 양은 이방인 중에 있는 주님의 양들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로는 유대인이나 유대교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양의 우리가 형성되므로 육적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된 특권은 이미 그 의의가 상실되어 버렸다.
복음은 역사에, 지역에, 종교에, 인종에, 국가에 매여 있을 수 없다.
(3) 삯꾼 목자
예수님은 12절에서 삯꾼 목자에 대하여 교훈해 주셨다. 여기서 삯꾼이라고 말씀하신 거짓 목자는 절도나 강도와는 다른 유에 속하는 거짓된 종들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우리 안에 자기 양들을 키우고 보살피시기 위해 양들을 돌보는 목자들을 세우셨다.
이 땅 위에 주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은 교회의 목자는 마땅히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올 닮아야 한다. 그런데 그 목자들 가운데는 바르게 양 떼들을 돌보지 않는 거짓 목자들이 있는데 주님은 그들을 삯꾼이라고 힐난하셨다.
① 품삯을 위해 일하는 목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양 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그들이 일하는 목적이 삯에 있기 때문이다.
② 삯꾼 목자는 양들을 돌보지 아니한다.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돌아본다는 말은 ‘멜레이’로 관심을 가지고 염려하며 근심 걱정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삯꾼에게는 이런 목자의 심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 이 같은 삯군 목자의 정체는 언제 나타나는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하셨다.
이리가 온다는 말씀은 자기 몸의 위험이나 교회에 오는 시련이나 양 무리가 당하는 환난을 의미한다. 이때 진실한 주님의 종들은 양 떼들을 위하여 자기 책임을 다하며 자기 생명을 바쳐 양들을 지킬 것이지만 삯꾼은 그러하지 못하고 달아난다고 하셨다.
목자는 자기 양을 알고 양은 또한 자기 목자를 안다고 하셨다. 우리는 다 주님의 양 무리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만을 듣고 그만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 주님은 선한 목자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되 더 풍성히 주신다. 우리가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만을 따를 때 이런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