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독립 투쟁 전개 | 만주 | * 만보산 사건 : 1931년중국 지린성 창춘현 만보산 지역에서 일제 의 술책으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이 벌인 유혈사태. * 만보산 사건(1931. 일제가 한민족과 중국인을 이간시킴) → 일제는 만주의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만주사변(1931)을 일으킴 → 일제의 만주 침략에 맞서, 독립군은 중국군과 협력하여 일본군과 싸움(1932~33) → 윤봉길 의사의 의거(1932)로 중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오해가 다소 풀림 → 지청천의 한국독립군(한국독립당 소속의 군대)은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물리침 * 양세봉의 조선혁명군(조선혁명당 소속의 군대)은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전투, 홍경성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물리침 ⇒ 그러나 일제는 만주 땅을 차지하고, 만주국(일본이 1932∼1945년 사이 중국 만주 지방에 세웠던 가짜 정부)을 세우자, 한· 중 연합군은 만주에서 독립 활동이 점차 어려워 짐 ⇒ 그래도 일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군들이 중국 공산당과 연합하여 항일 유격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함. |
중국 내륙 | * 조선의용대 결성(김원봉) → 김원봉 1938년 중국의 임시수도 한커우[한구]에서 창설한 한국 독립무장부대가 조선의용대이다 → 중국 국민당군과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 조선의용군 결성(김원봉) → 조선의용대의 일부가 화베이(화북)으로 이동하여 조선의용군을 조직하고, 중국 공산당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움 → 그 후, 조선의용군 일부(김원봉)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여, 한국광복군으로 편입되었다 → 나머지 일부는 화북으로 이동하여, 사회주의 계열인 조선독립동맹 아래의 조선의용군으로 전환함 * 김원봉은 일제 강점기 때 가장 큰 현상금이 걸렸던 독립운동가라고 함 |
특징 | * 1930년대 무장항일투쟁의 특징(핵심)은, 한· 중 연합 작전의 전개이다. → 독립군이 중국군과 협력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다. * 한국독립군 + 중국 호로군 ↔ 일본군 * 조선혁명군 + 중국 의용군 ↔ 일본군 * 조선의용대 + 중국 국민당군 ↔ 일본군 * 조선의용군 + 중국 공산당군 ↔ 일본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