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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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06 21:11
34집 원고입니다.
정정지
조회 수 179 댓글 0
청보리밭
멀리서 오시는 손님
뭘 대접할까
꽁꽁싸서 깊이 넣어 두었던
찻잔을 꺼내
찻상위에 올렸다
찻잔이 환해서
찻상이 빛났다
내 마음을 대신 전해준 그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이
사람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그날 우리집 거실은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넘실거리는 청보리밭이었다
말 고르기
내일 그녀를 만나
건네 줄 말을 고르고 있다
곧 노을을 건너
어둠속으로 사라질 사람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오래 못 만나 가득 고인 말
이것이다 싶어 잡아보면
너무 무겁거나
알갱이가 잘다
속절없이 밤은 깊어가는데
세일러복에 갈래 머리 곱던
소녀를 생각하며
나는 아직도 말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화산* 짐꾼
자기 몸무게만한 짐을 메고
좁고 가파른 바위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정상까지는 세 시간 거리
무게만큼 돈이 되고
받은 돈 만큼 어깨를 누르는 무게
십년을 다녀도 익숙해지지 않고
지름길도 없는
때로는 복병이 나타나기도 하는 길
주저앉고 싶을땐
여덟살 아들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무거운 발걸음
한 땀 한 땀 수 놓으며
산 꼭대기에 이르면
푸른 하늘과 한 뼘 가까워지지만
짐을 내려놓으면
산을 내려와야 하는 그
내일도 두 번 세 번 산을 오를것이다
*화산 ; 중국에 있는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산
성묘
지난 봄 시집 와
가족이 된 질부가
아버지께 인사드리러 온다고 한다
수염 깎으세요
옷도 갈아 입으세요
채근해서
깔끔한 모습 보이고 싶지만
너무 먼 곳에 있는 아버지
이발하듯 봉분의 잔디를 손질하고
생전에 아버지 색깔을 닮은
조화를 양쪽에 꽂는다
내일 첫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기다리다가
천리길 달려 온 손주 며느리를
부드러운 바람되어 안아줄 아버지
오늘은 이슬비 되어
나를 적시고 있다
꺼져버린 거품
동네에 카스테라 가게가 문을 열었다
하루에 서너번
빵 나오는 시간을 써 붙여놓고
그 시간에만 빵을 팔았다
가게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대만에서 건너 온 카스테라
조명을 받은
앳된 주인 얼굴이 환했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청년은 계속 거품기를 돌렸지만
거품은 가라앉았다
요술 피리를 부는 사람이
사람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 가 버린걸까
가게엔 정적이 감돌았다
새로운 방이 붙었다
'카스테라 두개 사면
어린이 선 글라스를 드립니다'
두어달 후 글귀는
'가게 임대 안내'로 바뀌었고
전기불은 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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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집 원고입니다./ 정정지
꽃나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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