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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를 찾아서
미리내 이연례
‘따르릉 따르릉’ 늦은 아침 울리는 벨소리가 긴장을 키운다.
‘어디만큼 오시나요?’
‘예? 내일인줄 알고 있는데요 ’
‘아플사 뭔가 잘못 되었구나’
바쁘게 외출을 서두른다. 옷만 바꿔 입고 차표 반환하고 송정역으로 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마침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출발했지만 마음은 걱정이 앞선다. 다행히 입석으로 차표를 끊고 차에 올라서야 한숨을 쉬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보았다. 2시간 여를 서서 가야했다.
벌써 들판에 모내기가 끝나 초록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편리해진 교통덕분에 시간은 약간 늦었지만 늦은 점심시간에 경복궁역에 도착하여 일행과 함께 만났다. 삼계탕으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기위한 줄이 건물을 빙 둘러서 있다. 중국인들도 많이 온다고 한다.
점심 후 창경궁으로 갔다. 일제 침략으로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격하되었던 비운의 궁궐, 가슴이 아프고 힘없는 국가의 서러움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창경궁은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어 3번째로 지어진 궁궐로 왕실 가족이 늘어나자 창덕궁이 좁아 성종이 왕실의 웃어른들을(대비, 대왕대비) 위하여 마련한 궁궐이라고 한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살았던 수강궁에 몇 개의 전각을 보태어 이루어진 궁궐이라고 한다. 자연형태 그대로 지형을 이용하여 만든 궁궐인지라 건물의 방향도 다르다고 한다.
창경궁의 정문은 홍화문이다. 홍화문을 들어서면 옥천교가 있다. 옥천에 놓인 다리로 옛날 궁궐에는 인공으로 개울을 만들었다고 한다. 금원이라고도 하는 옥천교 주변에는 앵두나무가 많이 심어져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명정전은 창경궁을 중건 할 때 지은 그대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정전으로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왕의 일상 업무를 보던 문정전과 독서나 국사를 논하던 숭문당이 있다. 다른 전각은 동향이 많으나 문정전은 남향을 하고 있는 전각으로 영조대왕이 동궁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던 곳이기도 한 슬픈 역사의 장소이다. 정조의 눈물이 베인 곳이라고 한다. 당쟁으로 인한 슬픈 역사라고나 할까 친정 아버지의 편에 서서 남편의 죽음을 묵인해야했던 혜경궁 홍씨의 사연이나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던 정조의 사연도 슬프다.
창경궁은 내전 중심의 궁궐이어서 내전들의 규모가 크다.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이고 뒤뜰에는 꽃계단이 있고 경관이 아름답다. 외출이 쉽지 않은 왕비나 비빈들을 위해 꽃들을 심고 화단을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갈등이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통명전을 중심으로 여러 처소가 연결되어 있는데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태어났고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곳이기도 하다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순조는 집복헌에서 태어났고 순조에 관한 여러 가지 행사가 이루어져 순조와 관계가 깊은 곳이란다.
정조가 혜경궁 홍씨를 위해 함춘원에 있는 경모궁이(사도세자의 능) 잘 보이는 언덕위에 자경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빈터에 나무만 무성하다.
춘당지는 활을 쏘던 춘당대 앞에 있는 작은 연못이었다.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는데 일제가 다 파헤쳐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나무가 울창하다. 물이 맑지 않은 것이 서운하다.
창경궁은 일제가 많은 건물들을 없애고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격하시킨 비운의 궁궐이다. 복원중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유리온실은 남아 현대 역사유물로 보관한다고 했던가...
창경궁은 창덕궁과 같이 후원을 사용했다. 바로 옆에 있는 궁궐이니까 함께 사용했을 것이다.
예약된 시간에 모여 해설사와 함께 창덕궁 후원에 들어갔다. 100여명이 함께 들어가서 옆에 따라가지 않으면 자세히 들을 수가 없어서 좀 아쉬웠다. 궁궐은 4만여평 후원은 10만여평의 넓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일반에게 공개하는 면적은 약 1/3이고 학자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2/3까지 공개한다고 한다. 울창한 숲속을 지나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골짜기마다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언덕을 내려가면 왕이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 주연을 베풀어 주었던 곳으로 정조는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고도 하는 부용정과 부용지 주합루와 영화당 등 아름다운 정자와 연못이 있다. 경치가 아름답고 정자가 섬세하며 연꽃을 뜻하는 큰 연못이 부용지이다. 주합루는 왕실의 도서관 역활을 하는 곳이었다. 효명세자가 독서를 즐겼던 의두합을 지나 애련지와 에련정으로 내려갔다. 숙종 때 세워진 연못과 정자라고 하며 연꽃이 피는 이 연못은 불로문을 지나 왼쪽에는 애련지가 있고 북쪽엔 애련정이 있다. 우거진 숲을 더 내려가면 연경당을 지나 관람지와 존덕지 존덕정을 만난다.
정자나 연못이 퍽 아름답다. 지붕의 구조가 독특하고 마루도 이중으로 지어졌으며 인조때 지어졌고 육모정이라고도 불렀다. 정자마루로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였고 천장도 화려하며 청룡과 황룡이 그려져 있고 단청이 화려하다.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 연회를 하거나 자리를 함께 했던 정자였을거라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정조 임금이 직접 쓴 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다른 쪽엔 부채를 펼친 것 같은 형식의 관람정과 관람지가 있었다. 옥류천은 임금의 우물이라고 한다. 임금과 신하가 술잔을 돌리며 술잔이 돌아가는 동안 시를 지었다는 소요암 취한정 등 나름 여유를 즐기는 모습도 알 수 있었다. 모를 심어 놓은 아주 조그만 논과 모가 있어 상징적으로 보였다. 옥류천 주변에 여러 개의 정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짓고 왕비는 양잠을 하고 왕과 왕비도 그 많은 궁궐 안 식구들 건사하고 나랏일 챙기고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의 하루 일정을 이야기할 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짜여진 일과대로 생활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넓고 잘 가꾸어진 후원을 구경하고 정작 창덕궁 궁궐은 시간이 부족하여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다.
저녁에는 남산타워에 올라가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아 오랫동안 기다려 올라갔다. 케이블카와 남산 타워 아래에서 야경을 구경하고 내려왔다. 휴일이어서 불을 안 켠 빌딩이 많아 평상시보다 조금 더 화려하지 못하다는 일행들의 설명이다. 내가 주요건물의 위치를 잘 몰라 알아보기 어려웠다. 멋진 야경을 보고 내려 와서 이튿날 경복궁역에서 만나기로하고 헤어졌다.
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일행을 만나 경복궁으로 갔다. 조선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경복궁은 1395년에 북악산을 기대어 터를 잡고 정도전이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하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정문은 광화문이고 정치와 경제의 중심거리인 육조거리를 만들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복원되었다. 당시 500여동의 웅장한 모습으로 복원되어 정무를 보던 외전과 관청, 왕족과 궁녀들의 생활공간인 내전,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나누어졌다. 일제 강점기 때 계획적인 일본인들의 훼손으로 90%이상이 제 모습을 잃었다. (의도적으로 물산 공진회를 수차례 열어 많은 궁전을 훼손시켰다고 한다. ) 지금도 복원작업이 진행중이다.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이다. 당당한 모습의 이층누각을 지나면 홍례문과 근정문이 있다. 근정문과 홍례문 사이 넓은 마당에서 수위대 교대식이 있었다. 화려한 복장의 파수꾼들 2팀이 서로 절차에 의해 교대식을 하는 것이다. 많은 외국인과 관광객들로 넓은 마당이 가득 찼다. 북소리와 지휘자의 구령에 의해 진행되는 교대식을 구경하고 드디어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갔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법전으로 왕의 즉위식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사신접견 등 중요한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건물의 위용이 대단하다.
근정전 마당에는 박석이 깔려 있고 양쪽으로 품계석이 늘어서 있다. 직위에 따라 품계석 앞에 선다고 한다. 서슬 퍼런 임금님의 호령에 문무백관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불이 자주 일어났던 궁전에 화재예방을 위해 드므를 설치해 놓았다. 요즘의 방화수 시설인 드므는 화마가 물에 비친 자기모습에 놀라 도망간다는 해설사의 설명이다.
근정전 내부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병풍과 임금님의 좌석이 있고 넓은 정전이 있다. 임금이 정무를 본 정전에는 일월오봉도가 있으며 일월오봉도는 임금을 상징한다고 한다. 근정전 내부는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1층으로 높고 시원한 천정이다. 천정에는 청룡과 황룡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을 설치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곳으로 궐내각사라고도 불렀다. 주변에 의약청 승정원 검시청등 왕을 직접 보필하는 관청들이 있었다고 한다. 근정전 뒤에는 왕의 집무실인 편전으로 사정전이 있다. 매일 업무 보고와 회의 경연등을 했다고 한다. 사정전 뒤로 임금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이 있다.
침전은 휴식과 일상생활 정무등을 보기도하고 왕비는 궁궐안의 살림을 관장한곳이라고 한다. 교태전 뒤에는 왕비의 후원인 계단식 인공화단인 아미산과 땅 밑으로 연기 길을 낸 굴뚝이 아주 아름답다. 뒤쪽에 후원으로 나와 경회루 쪽으로 나갔다. 커다란 인공 연못인 경회루는 정자에서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뱃놀이도 즐긴 곳이라고 한다. 참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 옛날 사람의 힘으로만 저 큰 연못을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까 생각하니 한편 가슴이 아팠다. 경회루를 파면서 나온 흙으로 교태전 후원 아미산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십장생 굴뚝이 아름다운 자경전을 돌아보고 후원으로 나와서 향원지라는 연못으로 갔다.
향원지에는 취향교라는 다리로 연결된 중앙에 향원정이라는 2층 정자가 있다. 향원지는 규모가 경회루보다 작지만 아담하고 멋스러운 정자와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수련이 가득 차 있고 하얀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봄에는 안 보이던 수련이 연못 가득 피어 있어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향원정 뒷편에는 고종이 대원군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지은 건청궁이 있다. 건청궁 안에는 임금의 처소인 장안당과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 서재인 관문각으로 이루어졌으며 곤녕합은 을미사변 때 명성왕후가 일본 자객들에게 시해당한 비극의 장소라고 한다.
남의 나라 궁궐에 들어와 못된 짓을 한 일본인들의 만행에 힘없는 나라의 비애를 생각해본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나라를 괴롭힐 연구만 하고 억지를 쓰는 일본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 500여동이 넘는 경복궁의 건물들이 일본의 계획적인 궁궐 훼손계획에 의해 뜯기고 나무들만 심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팠다.
자손만대 큰 복 누리라고
정성으로 터 닦고 지은 궁궐
나라의 기틀 다듬고
수많은 역사 이루어진 곳
나라의 흥망성쇠 따라
아픔을 간직하고 기쁨도 나누고
욕심 많은 이웃나라 야욕에
수난도 많고 눈물도 많은곳
불타고 뜯기우고 상처 많았어도
이제 다시 옛 영화 꿈꾸며
의젓하게 버티고 선 경복궁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리라
경복궁을 나와 덕수궁으로 옮겼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이중섭 100주년 전시회가 있어 이동한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소를 그린 생동감 넘치는 그림도 보고 가족을 향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편지와 그림들을 보며 가족에게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 전해지는 듯 했다. 전쟁과 가난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이랄까 시대의 아픔을 보는 것 같았다.
바쁘게 지나간 1박 2일의 고궁 나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화
풍선의 꿈
미리내 이연례
나는 할머니 보물 상자 속에 들어 있는 풍선입니다.
꼬마친구들이 우리가 들어있는 서랍을 보물 상자라 부른답니다.
보물 상자 속에는 친구들이 많아요. 여러 가지 색깔과 크기 모양이 다른 색종이와 종이상자 한지등도 들어있고 여러 가지 색깔의 크고 작은 예쁜 구슬도 많이 들어있어요.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풍선들도 많이 들어있어요.
할머니가 전에는 우리들을 자주 찾아주셨는데 요즘은 자주 찾지 않아 외출을 할 수 없어요. 아주 답답해요 꼬마친구들이 오면 외출할 수 있는데 그때가 언제일까요?
그렇게 기다리던 어느 날 띵동띵동 꼬마친구들이 오는 소리가 났어요.
오늘은 외출할 수가 있을까요? 드디어 기다리던 보물창고 문이 열렸어요.
“무얼 찾는데?”
“ 할머니, 오늘은 풍선을 가지고 놀고 싶어요. ”
“어떤 풍선?”
“음.... 오늘은 큰 풍선가지고 놀고 싶어요. ”
“그래? 네가 찾아봐.”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핑크색 큰 풍선이거든요.
나는 고개를 쏘옥 빼고 나를 집어주길 기다렸어요. 꼬마친구는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드디어 나를 집어 들었어요.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날 뻔했어요.
이제 밖으로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같이 있던 요술풍선이나 하트풍선 꼬리풍선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어요.
“바람 넣는 펌프가 어디 있지? ”
“할머니, 펌프 없이도 풍선 불 수 있어요. 이것 보세요.”
꼬마친구는 나를 입에 물고 불기 시작했어요. 나는 터질까봐 겁이 났지만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어요.
“와! 풍선 부는 힘이 세어졌구나.”
할머니는 칭찬해주셨어요. 내 몸이 빵빵해지자 나는 불안해졌어요.
“그만 불어요. 이러다 터지겠어요. ”
나는 큰소리로 외쳤어요.
“할머니 카운트다운 해 주세요.”
“그래, 셋 둘 하나 발사 ! ”
나는 큰 소리를 내며 거실을 한 바퀴 빙 돌고 스르르 떨어졌어요.
“와! 신난다. ”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높아졌어요.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신나게 돌아다니다 힘이 빠지자 바닥으로 뚝 떨어졌어요. 꼬마친구는 나를 다시 주워 불기 시작했어요. 내 몸은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어요. 탱탱하게 배가 부른 내 몸은 다시 날아올랐어요. 거실을 한 바퀴 돌고 열려있는 방으로 들어갔어요.
“언니, 우리 놀이터에서 놀면 재미있겠지? 할머니, 우리 놀이터 가서 놀아요.”
“이렇게 더운데?”
“괜찮아요. 놀이터에 가요. 네? 할머니~”
꼬마친구들이 조르자 마지못해 할머니도 따라 나섰지요.
나도 기분이 좋아졌어요. 할머니는 호주머니에 풍선 서너개와 실을 넣으셨어요.
우리는 놀이터에 나왔어요. 햇빛은 따가왔지만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꼬마 친구들은 풍선을 불어서 다시 로캣 놀이를 시작했어요. 밖에는 큰 건물이 보이고 자동차소리도 시끄러웠어요. 나는 하늘을 한 번 날아보고 싶었어요.
발꿈치를 들고 올려다봤지만 잘 보이지 않았어요. 한참 신나게 놀던 꼬마친구들이 새로운 놀이가 하고 싶은가 봐요.
“할머니 실 없어요?”
“그럴 줄 알았지”
할머니는 예쁜 색실을 주셨어요. 꼬마 친구들은 다시 나와 우리 친구들을 빵빵하게 불었어요. 얼굴이 빨개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어요. 나는 예쁜 색실에 묶여 조금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었어요. 달려 다니던 꼬마친구들은 화단 옆 좁은 길로 달려갔어요.
나는 높은 곳에 있는 나뭇가지 위를 올려다보았어요. 초록 나뭇잎도 보이고 파란 하늘도 보였어요. 파란 하늘을 한번 날아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꼬마친구들이 신나게 달려 다니다가 나는 그만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 실이 끊어지고 말았어요. 내 몸은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둥실 위로 떠올랐어요. 아래에선 꼬마친구들이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위로 위로 올라가 나무도 넘고 아파트도 넘어갔어요. 하늘에 구름도 보이고 광주천 물줄기도 보였어요. 멀리 무등산의 모습도 보였어요. 저기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날아가 보려고 마음먹었어요. 오늘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이루어서 참 기분이 좋아요. 바람타고 마음껏 여기저기 구경하고 내려 갈 거예요.
동화
아기사과의 비밀
미리내 이연례
나는 외할머니네 아파트 화단에 사는 아기사과 나무에요. 우리 아파트에는 나 말고도 아기사과 나무가 많답니다. 나는 봄에는 예쁜 꽃을 피워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화단 옆에는 놀이터가 있어요. 놀이터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이 놀아요. 할머니나 엄마 손잡고 나오는 유치원 친구들도 있고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있어요. 어떨 때는 중학교 다니는 언니나 오빠들도 와서 놀다 간답니다.
놀이터에 가끔 외갓집에 놀러오는 여정이와 유민이라는 꼬마친구가 있어요.
미끄럼도 타고 말도 타고 재미있게 놀아요. 언니와 동생이 아주 사이좋게 노는 모습을 보며 외할머니도 흐뭇해하신답니다.
할머니는 두 꼬마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싫증이 날 때쯤이면 손을 잡고 화단을 산책하신답니다. 할머니는 나무나 꽃 이름도 많이 가르쳐주시고 가끔은 꽃나무에 얽힌 전설도 들려주신대요.
동화책에서 읽은 이야기도 할머니가 해주시면 더 재미있어요.
그래서 여정이와 유민이는 할머니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지요.
봄에 파랗고 동글동글한 열매가 열렸던 아기사과 나무는 부지런히 열매를 키웠답니다.
초록색의 동글동글한 열매가 점점 단단해져 가고 커 갈수록 반짝반짝 윤이 나자 사과나무 잎은 기분이 좋아졌어요. 시간이 흐르면 아기사과는 커지면서 예쁜 열매가 익어가겠지요.
어느 가을날이었어요. 나뭇잎 뒤에 숨어 커가던 아기사과는 햇빛을 받아 빨갛게 익어갔어요. 굵은 체리만큼 큰 아기사과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빨간 얼굴로 꼬마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느 일요일 기다리던 꼬마 친구들이 놀러왔어요. 외할머니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면서 저쪽에서 다정하게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기사과나무는 떨리는 가슴으로 꼬마친구들을 바라보았어요.
“ 외할머니, 아기사과가 많이 컸어요. 빨갛게 익었어요.”
“ 그러네. 사과가 참 잘 익었네. 예쁘지?”
“ 할머니, 아기사과 맛있겠다. 하나 따 먹어보면 안 될까요?”
아기사과는 깜짝 놀랐어요.
‘내 열매를 따 먹겠다고? 큰일났네.’
아기사과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빨간 얼굴이 더 빨개졌어요.
“ 글쎄, 아기사과가 아플 것 같은데...”
“ 그래도 먹어보고 싶은데... 그럼 딱 한 개만 따서 가지고 놀면 안될까요?”
“ 한개만 따도 아기사과는 아플거야.”
“ 그렇지만 할머니 딱 한 개만 으응~ 가지고 놀기만 할게요. ”
“ 사과나무가 슬플거야. 유민이도 엄마랑 헤어지면 좋아?”
“ 싫어요. 할머니, 나 그래도 가지고 놀고 싶은데...”
마지못해 할머니는 아기사과 나뭇가지를 잡아 열매 두 개를 뚝 따서 두 꼬마친구들에게 주었어요.
“ 조심해서 만져 봐.”
“ 나도 만져 볼래요.”
두 꼬마친구들은 할머니가 따준 빨갛게 익은 아기사과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어요. 매끈매끈한 아기사과의 얼굴은 부끄러워서 더욱 빨개졌대요.
엄마나무를 떠나 온 아기사과는 눈물이 났지만 꾹 참고 혼자 오지 않아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 언니 우리 아기사과 열매로 학교놀이 하자.”
아기사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꼬마아가씨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을하늘 높이 퍼져 올랐어요.
스페인 여행
16.1,14~1,.28
미리내 이연례
새벽 세시 터미널에 모여 3시35분 출발 인천 공항행 고속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9명의 일행이 8박 10일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길에 올랐다.
눈이 무척 많이 내려 버스가 운행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나 같이 갈 34명의 일행과 만나고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었다. 11시15분 핀 에어 항공으로 헬싱키를 향하여 설램 반 기대 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는 기내에서 서비스도 좋았고 한국인 스튜어디스와 한국어 안내방송이 나와서 편안했다. 10시간 가까이 비행기에 앉아 있다가 헬싱키 공항에 도착하였다. 헬싱키 공항은 검색이 무척 까다로웠다.
중국인들과는 마찰도 있었다.
공항에서 1시간 반 가량 지난 후 다시 핀 에어 항공을 타고 4시간여의 비행 후 마드리드에 도착하였다. 하루 종일 비행기 안에서 보낸 것이다. 마드리드 공항에서는 검색없이 통과했다. 유럽전체를 하나의 국가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8시간의 시차가 난다. 마드리드 변두리에 있는 호텔에 투숙하였다.
이튿날 버스로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날씨가 흐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스페인 광장은 많은 관광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세르반테스와 돈키오테의 동상이 서 있었다. 세르반테스와 돈키오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주변의 건축물들이 고전적이다.
스페인은 건물을 리모델링을 주로 한다고 한다. 옛 건물의 외관을 살리고 내부만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주로 건물이 돌로 만들어져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이 나라의 정신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다시 이동하여 펠리페 3세가 1619년에 완성한 마요르 광장을 돌아보고 소올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시청이 있고 곰동상이 서 있다. 주변에 역사가 있는 건축물이 많다. 축제와 젊음의 광장으로 2층과 3층은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스페인의 도시 길에는 가게의 전통을 새겨놓은 동판들이 있는데 3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가게가 많다고 한다. 버스로 마드리드의 번화가인 그랑비아 거리를 지나갔다. 옛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하고 중심가답게 호텔이나 은행 등 주요기관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
스페인의 거리는 도로가 매끄럽고 좁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방통행의 길이 대부분이고 길도 좁고 차들도 소형차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도로변에 소형차 크기의 커다란 쓰레기통이 눈에 띈다. 담배를 피우며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점심식사 후 톨레도로 이동하였다. 톨레도 주변은 3면이 강으로 이 강은 리스본까지 흐른다고 한다. 천연요새인 바위산 위에 지어진 톨레도 성당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산위까지 여러 단계의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인상적이다. 과거에는 수도였고 역사의 도시라고 한다. 대성당과 수도원의 거대한 규모와 좁은 비탈길과 오래된 건축물들이 특색이다. 특히 프레스코 벽화와 스테인드 글라스 미켈란젤로 라파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종교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카톨릭 국가인 만큼 성당의 규모들도 크고 성당도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의 히터에 문제가 생겨 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차를 도중에 교환하여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3일째 호텔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살라망카로 향했다. 3시간 반이 넘는 버스를 타도 도로가 좋은지 운전기사 솜씨가 좋은지 커다란 움직임 없이 부드럽다. 800년 전통이라는 살라망까 대학의 외관을 보고 벽에 조개장식을 많이 해서 조개의 집으로 불리는 고딕 양식의 라 까사 데 라스콘차 건물을 보고 설명을 들었다. 오후에는 파티마로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하였다. 끝도 없이 넓은 들판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코르크나무라고 한다. 코르크나무와 올리브나무가 계속 평야지대를 차지하고 소와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주변에 산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안개 속으로 세 어린이 생가를 가 보았다. 나는 카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 차 속에서 영화는 봤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잘 알 수가 없었다. 호텔에서 쉬고 이튿날 새벽 파티마 대성당과 성모 발현지라고 갔지만 안개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정 때문에 그런다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티마 성당이 감동적이었다는데 이른 새벽 안개 보러 왔나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리스본 서쪽에 있는 유럽의 서극점 땅끝 마을 지진과 화산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아름다운 까보디로키 마을로 이동하였다. 경치가 아름다운 깎아지른 절벽위에 세워진 곳이다. 대서양에서 참치가 많이 잡히는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바람은 찼지만 주변에 선인장을 비롯한 이름 모를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대서양 바다와 어우러진 절벽을 바라보다 리스본 시내로 돌아왔다. 스페인은 군데군데 넓은 광장이 많이 있다. 로시우 광장을 구경하고 뽐빠리 후작거리와 동상도 보았다. 에드와르드 공원을 구경하고 벨렘탑을 구경하였다. 감옥으로 사용했던 이곳은 지하에 죄수를 두었는데 하루에 두 번씩 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스페인은 항해술이 발달했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해양국의 위치를 강화하였다.
4,25 다리를 건너다 양팔을 벌리고 서있는 커다란 예수상을 보았다. 규모가 엄청 컸다. 안개가 휘감은 산언덕 위로 잠깐씩 나타나는 모습은 크리스찬이 아니라도 감탄 할만하다.
제로니모스 성당은 원래는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바스코다가마의 묘가 있는 성당이다. 스페인 내전 3년간 공화파와 왕당파의 충돌로 많은 국민들이 희생되고 끝도 없이 넓은 국토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스페인의 거리는 깨끗하고 좁은 도로 오래된 건축물을 잘 보존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의 거리로 잘 가꾸고 있는 그 나라의 옛것에 대한 인식이 부러웠다.
6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이동하였다. 세비야의 횡금의 탑을 관광하였다. 황금의 탑으로 이름 붙여진 이유가 무역이 발달하고 큰 강을 끼고 있어 물산 왕래가 풍부했던 곳이며 신세계에서 가져온 황금을 이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현재는 해양 박물관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아침 식사 후 세비야 대성당을 관람하였다. 세비야 대성당은 유럽 3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성당이다. 크기면이나 내부 장식면이나 엄청난 규모이다. 성당 신자들에게는 감명스러운 장관일게다.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이 성당에는 콜럼버스의 묘가 있다. 신세계에서 가져온 1500kg의 황금을 이용하여 장식을 하고 48개의 황금제단이 있다고 한다. 성가대들이 성가를 부르는 제단도 구경하였다. 700년의 역사를 가진 세비야 성당은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세비야 성당에는 종탑이 있다. 이 종탑은 이슬람 양식과 기독교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종탑을 오르기 위한 길은 비스듬한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데 계단식이 아니어서 오히려 편했다. 히랄다 탑에 오르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종들이 있다. 사방의 시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규모의 이 성당을 다 보지 못하고 오랜 건축물이라는 점과 유적들이 오랜 역사를 지닌 점이라는 것이다. 한편 신대륙의 발견과 신대륙에서 가져온 많은 금이나 유물들도 그 당시 스페인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다.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도시마다 스페인광장이 있다. 규모는 다르지만 넓은 광장은 스페인 광장으로 이름 붙인다고 한다. 세계만국박람회 개최를 위해 만들어진 광장은 각 주 지도와 역사적 사실을 타일로 나타냈고 건물 복도 벽 등 모든 부분을 도자기 타일로 나타낸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광장이다. 잘 계획하고 조성해 놓은 덕분에 후손들이 덕을 본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모여든다. 주변에 물길과 아치형의 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말 마차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였다. 굉장히 넓은 정원이어서 겉모습만 보고 갈 뻔했는데 마차로 돌아보니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다양한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왕비의 이름을 따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라고 한다.
스페인은 가로수나 광장이나 왕궁 등에 오렌지 나무를 많이 심어놓았고 주렁주렁 열매가 열려있어 인상적이었다. 떨어져 있어도 누구 하나 손대는 사람이 없다. 가이드도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한다. 스페인광장은 여러 도시에 많이 있는데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한다. 분수도 아름답게 물을 내뿜고 있었다. 건물마다 장식과 동상들도 많이 있어 중세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버스로 다시 론다로 이동하였다. 투우의 고장에서 유명한 투우사의 동상 앞에서 설명을 들었다. 요즘은 투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물 보호론자들의 주장이 많아 투우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100m 높이의 절벽위에 형성된 도시로 갔다. 깎아지른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건물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백년초 선인장이 계곡 바위 사이에 가득하고 높은 절벽위에 놓인 누에보 다리를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도시는 가죽공예가 유명하여 가죽공예제품 상가들이 즐비하였다. 이 절벽 위 건축들은 보는 사람들은 아슬아슬한데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배경으로 유명한 론다 협곡과 누에보 다리 경치를 놀라워하며 감상하였다.
저녁에는 안달루시아 집시들이 열정적인 춤과 노래 플라멩고를 연구하는 극장에서 플라멩고 춤을 구경하였다. 세빌리아 이발사(카르멘) 한 부분을 꾸민 것이라고 한다.
이튿날 발렌시아 대성당을 구경하고 시청사와 시청광장을 구경하였다. 이슬람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상하수도와 수로시설이 잘 되었으며 균형과 절제미를 살린 것이 특색이라고 한다. 평지에는 우거진 식물과 활짝 핀 아몬드 꽃밭 오렌지나 올리브 농장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이나 소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석회암이 많은 산들은 다소 황폐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라나다에 있는 언덕위에 이슬람 왕조의 왕궁이자 요새인 알함브라 궁전을 관광하였다. 알함브라 궁전은 13~14세기 왕족의 여름별궁이라고 한다. 깨끗하게 가꾸어진 정원과 여러 종류의 허브 식물들이 많이 심어져있었다. 대사의 방과 왕들의 방 왕비를 위한 공간인 두 자매의 방은 섬세한 내부 장식이 놀라움을 갖게 한다. 커다란 왕궁의 규모를 보고 전체적으로 건축물이나 왕궁의 크기에 압도되었다.
알함브라 궁전내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왕의 여름별궁인 헤네랄레페로 갔다.
정원수가 단정하게 정지되어 있었다. 넓은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진 헤네랄레페 를 돌아보고 다시 발렌시아로 이동하였다. 바르셀로나나 발렌시아는 까따루니야라고 하며 별도로 까말란 언어와 문화역사가 있다고 한다.
아침식사 후 기암 괴석으로 이루어진 몬세라토로 이동하였다. 험준한 산길이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많이 보인다. 시에나리아 산맥에서 물을 끌어와 사용했다는 설명과 눈덮인 산맥이 보였다. 기술과학도시 그라나다는 길도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버스로 오르니 몬세라토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톱니바퀴 같은 산이라는 뜻이란다. 케이블카도 있었지만 안개 자욱한 산봉우리까지 버스로 올랐다. 암벽과 협곡으로 이루어진 수도원 입구까지 오니 안개가 그쳤다 가렸다 한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수도원 옆쪽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안개가 걷히니 어머어마한 규모의 바위산이다. 몬세라토 수도원 안에는 검은 성모상이 유명한데 성모님이 들고 있는 둥근 공을 만지며 기도하면 한가지의 소원은 들어 주신다고 한다. 사람에 밀려 올라갔다 내려오며 촛불이 많이 켜 있는 곳에 우리도 촛불을 켜놓고 왔다. 내려오면서 구름과 바위산 사이로 햇살이 갈라지는 신기한 모습이 오랫동안 계속되는 풍광을 버스 안에서 보면서 인상 깊고 멋지다고 생각되었다. 옛날에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종교적으로 생각하였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충분히 감동적인 모습이었을 것 같다.
바르셀로나로 이동하였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 할 때마다 서너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막히지 않고 부드럽게 다니는 것이 참 좋았다.
오후에 바르셀로나 몬주익 올림픽 스타디움에 들어갔다. 마라톤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딴 곳으로 유명하다. 돌로 조각상을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외국에서 국기와 우리글 우리나라 사람의 동상을 보니 반가왔다. 주변 공원도 산책하였다.
시내에서 카사바르묘와 카시말라를 구경하였다. 해초를 연상시키는 카사바르묘와 스타워즈 영화촬영에도 활용했다는 카사밀라 옥상의 조각들도 놀라움을 주었다. 돌들의 강이라고 부르는 람브라스거리는 바르셀로나의 명물거리답게 번화가이고 웅장한 건축물의 거리다. 고딕지구와 람브라스 거리 광장의 분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등 야간의 경치를 구경하였다. 생각한 것처럼 화려한 야경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는 이 고장 사람들의 역사의식이 부러웠다.
이튿날 가우디 작품으로 유명한 성가족교회(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관람하였다. 가우디 작품중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작품이 7개나 된다고 한다. 위대한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내부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시설들이 많이 있다. 가우디의 묘도 지하에 있다. 이 성당은 가우디가 처음 공사를 시작한 이래 현재는 일본의 건축가가 맡아서 계속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1882년에 시작한 공사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하늘을 향한 뾰족한 첨탑에 오밀조밀하게 해놓은 조각들 건축양식도 건축가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수많은 조각상과 새겨 논 글씨에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몇 백년에 걸쳐 몇 대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가족교회 외부의 섬세한 조각과 엄청난 규모가 놀랍다. 크리스찬 국가인 스페인은 거대한 규모의 성당들이 많다.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가우디가 계획하고 건축한 구엘 공원도 관람하였다. 넓은 운동장 주변에 타일 모자이크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인체공학을 고려하여 앉으면 편안하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86개의 기둥으로 받쳐진 곳은 시장으로 이용한 광장도 있었다. 넓은 공원에 아름답게 건축해 놓은 시설들을 보며 끝없는 가우디의 창작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스페인 광장에 콜럼버스 동상도 보고 시내의 유명 건축물도 둘러보고 바닷가로 이동하였다. 이 바다를 끝까지 나가면 대서양으로 간다고 한다. 부산의 영도 다리처럼 배가 지나갈 때는 다리가 들린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스페인 포르투칼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한국에는 오랜만에 폭설이 내려 날씨가 춥고 전국 교통이 마비되었다는 이야기다. 따뜻하고 맑은 날씨 속에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고추잠자리
미리내 이연례
팔랑팔랑 날갯짓 고추잠자리
계절의 파수꾼 불침번 선다
아직 찬바람 소식도 없는데
뺠갛게 익은 고추 하나 꼬리장식하고
얇은 망사 날개 팔랑대며
파래지는 하늘 향해 맴도는 고추잠자리
가을소식 전하려 부지런떨며
익어가는 곡식 과일 풍년소식
계절의 전령사 오늘도 혼자 바쁘다
오월의 어머니
미리내 이연례
가정의 달 오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찾아
가슴 미어지는 사랑이 있다
단 한번만이라도
그 얼굴 다시 볼 수 있다면
손 한번 잡아 볼 수 있다면
이룰 수 없는 꿈에
몸부림치는 어머니
푸른 오월이 원망스럽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
젊은 청춘을 앗아간 거대한 힘 앞에
죽음으로 항거한 수많은 넋에게
애도하는 지성이고 싶다
피멍 든 가슴에
따뜻한 위로의 눈물을
말없이 잡아주는 손으로
포근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뜨거운 공감의 눈물 속에
오월의 어머니
가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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