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사회 진출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가 되는 방법과, 평생을 초야에서 공부에만 전념하다가
山林으로서 특채되는 경우이다
과거는 크게 小科와 大科로 분류 된다 생원 진사 시험이 小科로 불리는 자격
문과 시험은 大科로서 여기에 합격해야 비로서 관직에 나갈 수 있다.
小科,大科의 경로를 밟지 않고 특채되는 산림은 학파=정파의 구도로 전개된
조선 왕조 정치의 특수한 산물이었다.
조선시대 학문적, 정치적 상황에서는 한 학파의 영수가 한 정파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학파이기도 한 한 어떤 정파가 새롭게 집권을 하면 자기네 정파, 혹은
학파의 정치적 이념을 국정에 구현하기 위해 자기네 정파 혹은 학파의 인물을
널리 등용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 통속적인 과거의 길을 접고 평생을 학문에
종사하다가 정계에 등장한 이들이 있으니 특채산림이다
관료를 지향하는 조선 선비의 진로에는 음직(蔭職)도 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덕으로 얻는 벼슬을 음직이라고 한다 덕망 높은 인사가 죽은
뒤에 혹은 반정 등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 과거 정권에서 핍박받아 죽은
인사의 후사를 묻다가 그 자손이 초야에 초야에 묻혀 있다고 하면 그 조상에
그 자손일 거라 하여 벼슬을 내리는 것이다
조선 선비의 실천은 학행 일치로 시작한다 .배운것은 행동으로 옮길때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아무리 거룩한 말을 해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비판하고 매도했다.배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교묘한 말과 좋은
얼굴색을 지어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짓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매도한 것이 학행일치의 조선 선비 사회였다.
조선 왕조는 수많은 청백리를 배출하였다. 우리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시대로서 사회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평가되는 世宗代는 청백리
가 많이 배출된 시기로도 유명하다.
첫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