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들은, 어느새 주님이 하신 일을 잊어버리고(13)......
그들을 위하여 그들과 맺으신 그 언약을 기억하셨으며,
주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뜻을 돌이키시어
[시편 106:13, 45]
하나님은 기억하시는데, 인간은 망각한다.
기억하는 일,
왜곡되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개인과 나라는 행복하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거나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개인과 나라는 불행하다.
불의한 권력은 기억하는 행위를 강제하고 왜곡된 기억을 강요한다.
하지만,
아픈 역사나 슬픈 역사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억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아픈 역사와 슬픔의 원인은 규명되고 치유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외상의 역사였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기억되거나 이야기 된 적 없이 그냥 덮어버리는 데 급급했다.
그리하여,
외상은 반복되고, 반복되는 외상은 히스테릭한 정서를 뿌리 깊게 내리게 하였다.
히스테릭한 증상의 한 예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
이데올로기의 양극화, 그로 인한 분열,
이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시편 106편은 이스라엘의 반역행위를 회상한다.
시인은 조상들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은헤를 저버리고 죄의 길을 걸었는지 회상한다(7~46).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을 잊고 거역과 배반을 일삼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다.
우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다.
이미 받은 은혜와 복과 사랑은 차고 넘치지만,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게다가 끊임없이 하나님게 요구하기만 한다.
그래서 그의 요구대로 받지만, 그 영혼은 파리하게 된다(15).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자기만족을 얻는 일에만 열중했을 때, 하나님은 다 주셨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반역의 길로 나아갔다.
불평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런 중에 그들은 스스로 무기력해졌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다 얻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올가미가 되었다(36).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했지만,
자기들이 원하던 것이 우상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36).
출애굽 사건은 끝없는 기억의 원천이자 이스라엘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잊었다.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셨다.
기억하는 일,
제대로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일은 아픔과 상처를 디딤돌로 만들어가는 거룩한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