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배후엔 김무성·유승민? 朴 “촉새 女의원의 음해였다” [박근혜 회고록 14 - 정윤회 문건 사태 (하)]
공무원들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를 포함해 주요 공무원들의 감찰을 맡고 있다. 그런 만큼 유능하고 책임감 있다고 평가받는 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추천된다. 그런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이것(‘정윤회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세계일보의 ‘정윤회 리스트’가 터지기 몇 달 전 정윤회 실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기는 했다. 2014년 3월 주간지 시사저널에 이른바 ‘정윤회의 박지만 미행설’이 보도됐을 때다. 정 실장의 사주를 받은 남양주의 한 카페 운영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내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을 주기적으로 미행 감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이상하다고 느껴 이 얘기의 진상을 철저히 파헤쳤으면 몇 달 뒤 나라를 뒤흔드는 큰 소동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음해와 모함을 워낙 많이 겪다 보니 당시만 해도 ‘어디선가 또 누군가 괴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구나’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012년 8월 15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동생 박지만씨(왼쪽)가 참석했다. 중앙포토
마흔이 넘어 결혼한 박지만 회장은 아들 넷을 두어 가족들을 기쁘게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많은 사람이 박 회장 부부를 주목했다. 권력을 좇는 사람들이 부적절하게 꼬여 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전 대통령들이 친인척 문제로 어려움에 부닥쳤던 것을 여러 번 봤던 나는 임기 중 이들 부부를 한 번도 청와대에 부르지 않았다. 동생을 위해서도 그러는 편이 나았다. 젊었을 때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박 회장은 이제 사업가로서 자리 잡고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정치와 관계없이 살게 해주는 게 오히려 동생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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