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296
동봉
제26장 법신비상분-2
나는 스물한 살 되던 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포마드Pomade를 발랐습니다
고백할 사람이 있었거든요
마음먹고 꽃다발까지 마련했는데
그 친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세상을 작별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난 뒤였지요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고
그게 문제가 되어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부처님이 맺어주신 게 아니어서였을까
인연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녀에게 좀 더 멋있게 보이려고
머리에 포마드까지 바르고
밤새 다리미질로
바지에 주름까지 잡았는데
타고난 게 볼품이 없으니
후천적으로라도
멋있게 보이려는 인간의 본능
그게 어찌 나라고 비켜가겠습니까
포마드에는 두 가지가 있지요
유성 포마드
수성 포마드
4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포마드가 남성들에게는 유행했고
보통 '뽀마드'라 발음했습니다
요즘 포마드 얘기하면
그게 뭔지 잘 모르더라고요
무스Mousse의 원조라고 하면
그제야 "아하!"하곤 합니다
서가모니 부처님이 지니시고
전륜성왕도 지닌 삼십이상,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특징적 모습
이들 서른두 가지 모습에서
어떤 점들을 느끼고 계십니까
이들 서른두 가지 모습이
부처님과 중생
전륜성왕과 보통 사람들의
외형적 관계도 관계이겠지만
관상학의 시조Founder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관상을 보셨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이전부터 전해진
관상 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아시타 선인이 본 것은
사주가 아니라 관상이었습니다
사주가 간접적이라면
관상은 직접적입니다
사주가 태어난 시간에 국한된다면
관상은 그때까지 살아온
삶의 과정이 통째로 녹아든
그 어떤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사주는 사진 한 장 없어도 가능하지만
관상은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동과 정까지 포함하여
직접 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관상은 두 가지로 봅니다
상相과 호好입니다
피지오그노미칼physiognomical과
임프레션impression이지요
상이 피지오그노미칼이라면
호는 임프레션이 될 것입니다
상이 린니멘트lineament라면
호는 센티멘트sentiment입니다
불교경전에서 사주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안 나오는데
삼십이상 이야기는 줄기찹니다
아함경전류나
방등부 경전류만이 아니라
이 반야부 경전에서도
삼십이상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어떤 경전에서는
여든 가지 좋은 느낌까지 설명합니다
이들 상과 호를 묶어
'삼십이상 팔십종호'라 부르며
이들 이니셜을 따 '상호'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상을 뵈면서
"부처님 상호가 원만하십니다"
"상호가 참 좋으네요" 등으로 표현합니다
물론 이때 상호는
대부분 얼굴에 국한됩니다
이를테면 부처님 생식기가
음마장상陰馬長相이라든가 하는 경우
비록 불상이라 하더라도
성기를 노출시켜 조각하거나
주조하고 빚지 않으니까요
심지어 입상立像일 경우는
발바닥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얼굴 모습만 보고 원만상을 얘기합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셨을 때
아시타 선인이 와서
갓 태어난 부처님 모습을 보고
감탄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립니다
왜 그렇게 안타까워했는지는
부처님 전기에 기록이 나옵니다
여기서 얘기하려는 것은
관상학의 근본입니다
관상은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은 관상에 관심이 있습니다
수사자가 갈기를 다듬는 것도
영양이 뿔을 거창하게 지니는 것도
공작이 화려한 깃을 자랑하는 것도
사람이 매무새를 챙기는 것도
다 상대에게 잘 보이려는 본능입니다
모습相이 멋지고 깔끔해야 하고
느낌好에 끌림이 있어야 하거든요
절에 오래 다닌 분들조차
상호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상은 이미 잡혀 있는 모습이지만
호는 언제나 가변적이며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변합니다
서른두 가지 상은 정해진 상입니다만
여든 가지 느낌은 가변적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상보다 호에 점수를 많이 줍니다
생김새는 뛰어나지 않더라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웃음
뛰어난 재치와 말솜씨
믿음직한 행동
굵직한 표정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고
정진하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모습 등
지난 8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한국이 낳은 위대한 화가
천경자 선생의 작품들
꽃과 여인도를 보노라면
여인의 모습相도 중요하지만
뜻은 여인의 이미지好였습니다
따라서 관상을 볼 때는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담긴 눈동자에서
언어와 음성과 음색에서
건강이 담긴 피부 색깔에서
기침 숨소리 맥박에서
행동의 뿌리 손의 쓰임새와
걸음걸이를 봅니다
60분의 1초라는
짧은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 아닙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건강한 웃음 하나
화난 표정 하나
슬픔이 담기지 않고
힘들고 어려움이 담기지 않은
사진 한 장으로 관상을 본다고요
아시타 선인이 본 게
갓 태어난 부처님의 사진이었나요
아기의 표정에서
말하고 웃음 짓고 걷는 동작에서
아기 부처님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갓난 아기가
어떻게 이야기하고
오가고 서고 앉고 눕고
갖가지로 표정지을 수 있느냐고요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말씀하셨다고 하니까요
관상은 상을 봄과 동시에
살아있음의 이미지
곧 호를 보는 것입니다
모나리자에게서 느끼는 것은
단아한 상도 상이지만
함께 느껴지는 미소입니다
석굴암 불상에서
서산마애삼존상에서 느끼는 것은
그렇습니다
호에 해당하는 그윽한 미소입니다
-----♥-----♥-----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삿된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여
결코 여래는 볼 수 없으리니
보이는 모습 들리는 음성으로
여래를 판단하는 까닭이니라
나는 얘기합니다
법신은 질량을 지니지 않았기에
어떤 경우에도 물질이 아니라고요
중성미자中性微子가 있습니다
뉴트리노a neutrino입니다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면서
질량이 제로에 가까운
렙톤 소립자이기에
미자를 덧붙여 그렇게 이름한 것입니다
이 중성미자는 약력弱力과
중력重力에만 반응하며
다른 힘 이를테면
강력强力과 전자기력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통과해 버리는
놀라운 소립자지요
예를 들면 지구를 7억5천만 개쯤
일렬로 늘어놓더라도
그냥 바로 투과해 버립니다
그것도 빛의 속도로 말입니다
이 중성미자는 원자로에서
강력한 방사성 물질이 양산됨으로써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머리 아픈
물리 이야기를 늘어놓느냐고요
법신이 빛과 같이
질량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빛은 물질을 투과하지 못하는데
법신은 중성미자와 마찬가지로
물질을 투과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었느냐고요
그 점은 이제부터 과학자들이
풀어나가야 할 하나의 과제입니다
나는 가설을 제안할 뿐입니다
뉴트리노 즉 중성미자와
아울러 빛과 법신의 관계를
제대로 연구해 보면 어떻겠느냐고요
불교에서는 법신과 함께
보신과 화신을 얘기합니다
보신도 질량을 갖지 않은
순수 정신세계로서
추구의 결과로 나타나는
이른바 기도보답의 몸인 셈입니다
원만보신 노사나불
극락세계 아미타불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등
이들 불보살님들이 모두 보신인데
시공을 점유하며 머무셨던
서가모니 부처님처럼
응화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보화비진요망연報化非眞了妄緣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보신 화신은 참이 아니라
결국은 허망한 것
오직 법신만이 청정하고
드넓고 끝이 없네
물 있는 일천 강물
강물마다 다 달이요
구름 없는 만리 장천
만 리가 온통 하늘이어라
이는《금강경오가해》<여리실견분5>
쫑징宗鏡zongjing선사의 선시입니다
이 선시에서 쫑징선사께서는
보신과 화신을 묶어
도매금으로 처리해 버렸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대로라면 법신과 보신을 묶고
화신을 따로 노출시켜야만 됩니다
물론《금강경》말씀과
다소 어긋나는 점이
없잖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여기 내가 든 비유에서
빛과 중성미자가 중요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물질이지 정신세계는 아닙니다
중성미자가 물질이라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는데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람이
새롭게 밝혀낸 사실입니다
비록 보신과 화신이
망연이기 때문에
법신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역시 부처님의 몸이고
부처님의 생명이고
나아가 중생의 생명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중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고르라면
아마 화강암granite일 것입니다
어찌 다이아몬드는 아니냐고요
난 보편적인 물질을 든 것입니다
솔직히 아직 다이아몬드는
본 적도 없고 만져 본 적도 없습니다
이리 단단한 화강암도
원자 분석기 같은
첨단과학기재로 들여다본다면
탱크가 지나갈 정도로
텅텅 비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지구를 뉴트리노처럼
속이 비어 있지 않게 압축한다면
지구 부피가 축구공 크기가 될 것입니다
지구의 질량은 그대로인 채
그런 입장에서라면
색신으로서
음성으로서
여래를 보려고 하지 말라
사도를 걸어가는 자
여래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리라 하신
부처님 말씀이 비로소
조금 이해가 되지 않겠는지요
부처님 말씀
금강경의 가르침
아! 참으로 값지고 값지나이다
10/23/2015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