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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조사는 도천사지 전체를 조사한 정밀발굴조사(精密發掘調査, 자세할 정·빽빽할 밀·필 발·파낼 굴·고를 조·살필 사: 유적을 자세히 파서 확인하는 조사)가 아니라, 석탑 3기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제한적인 시굴조사(試掘調査, 시험할 시·파낼 굴·고를 조·살필 사: 일부만 파서 유적의 존재를 확인하는 조사)였습니다.
2. 도천사지의 역사와 입지 도천사지의 위치
도천사지는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웅창마을의 금천 서쪽 구릉에 있습니다.
보고서는 이곳을 금천변의 전형적인 천변사찰(川邊寺刹, 내 천·가 변·절 사·절 찰: 강가에 자리한 절)로 설명합니다.
도천사의 연혁
도천사는 문헌에 다음과 같은 여러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절의 창건시기와 폐사시기를 직접 알려주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보고서가 확인한 주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3. 도천사지의 가장 중요한 특징 ① 석탑 3기가 한 줄로 나란히 배치되었다
도천사지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단층기단(單層基壇, 하나 단·층 층·터 기·단 단: 한 층으로 된 탑의 받침대)을 가진 석탑 3기가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놓였다는 점입니다.
세 탑의 중심축은 정확히 일직선이 아니라 약간 어긋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탑 사이의 거리는 약 15m였습니다.
보고서는 이러한 배치를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가람배치라고 평가합니다.
② 세 탑 모두 동남쪽 금천을 향하였다
세 탑은 구릉 동쪽 사면에 세워졌으며, 탑의 주된 방향은 동남쪽 금천 방향이었습니다.
통상적인 단탑식 사찰에서는 금당과 석탑이 하나의 중심축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도천사지의 탑 3기는 금당과의 관계보다 강과 넓은 평야를 향한 나란한 배치를 보입니다.
따라서 도천사지의 석탑 배치는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매우 이례적입니다.
③ 경주지역 통일신라 후기 석탑과 유사하다
탑지에서 출토된 선문계 기와편과 탑의 기초 조성방식은 경주지역 통일신라 후기 석탑과 유사합니다.
보고서는 도천사지의 세 탑이 통일신라 후기, 대체로 9세기 무렵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다만 이것은 탑의 양식과 출토 기와를 바탕으로 한 추정이며, 정확한 절대연대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4. 탑지 조사 결과 1호 탑지
1호 탑지는 세 탑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습니다.
탑지에서 확인된 주요 유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히 운모편 3점이 탑의 적심석 주변과 내부에서 나왔습니다. 보고서는 이를 탑을 조성할 때 사용된 진단구(鎭壇具, 누를 진·터 단·갖출 구: 건물이나 탑의 터를 조성하며 묻는 의례용 물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으로 보았지만,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2호 탑지
2호 탑지는 1호와 3호 탑지 사이에 있습니다.
2호 탑지는 가운데에 놓인 탑으로, 1호·3호 탑과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규모와 축조방식은 정밀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2호 탑지 북서쪽에서는 탑지와 바로 맞붙은 듯한 두 줄의 부석시설(敷石施設, 펼 부·돌 석·베풀 시·세울 설: 바닥에 돌을 깐 시설)도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범위가 좁아 이 시설의 성격과 탑과의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3호 탑지
3호 탑지는 가장 북쪽에 있습니다.
탑구(塔區, 탑 탑·지경 구: 탑의 범위를 구획한 시설)는 한 변 길이 약 1.2m, 폭 약 30cm, 높이 약 20cm입니다.
보고서는 1974년 석탑을 직지사로 옮기는 과정이나 이후 묘역 조성 등으로 탑구가 원래 자리에서 약간 움직였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또한 3호 탑지는 1·2호 탑지와 배치축이 조금 다르고, 탑구의 너비와 지정방식도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보고서는 다음 두 가능성을 모두 열어 두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어느 쪽인지 확정할 수 없으며, 정밀발굴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입니다.
5. 세 탑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는가?
보고서는 세 석탑의 원래 자리가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탑지 3곳이라고 판단합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따라서 “현재 직지사에 있는 도천사지 석탑 3기가 처음부터 다른 곳에 있었다”거나 “여러 곳에서 가져와 한곳에 모은 것”으로 볼 근거는 이 보고서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6. 적심시설과 적심건물지
적심(積心, 쌓을 적·가운데 심: 기둥 아래의 지반을 단단하게 하려고 돌을 채운 시설)은 건물의 기둥을 받치기 위한 기초시설입니다.
도천사지에서는 1호 탑지 북쪽, 즉 2·3호 탑지의 동쪽 가까운 곳에서 적심 4기가 일렬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시설은 기둥을 받쳤던 건물지의 일부로 보이지만, 시굴조사에서는 전체 건물 규모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적심열과 연결되는 추가 적심이나 기단시설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의 규모·성격·용도는 알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7. 금당지는 확인되었는가?
여기가 친구야께서 가장 궁금해하시는 대목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보고서에서는 금당지가 발굴되거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적심 4기가 발견되었지만, 보고서는 이를 곧바로 금당지라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술자문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① 적심건물지가 탑과 너무 가깝다
적심건물지는 2·3호 탑과 평면상 너무 가까워서, 만약 탑과 건물이 동시에 존재했다면 지붕이 서로 겹치거나 간섭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② 건물이 탑의 정면을 가린다
적심열을 기초로 건물을 복원하면, 그 건물은 세 탑이 바라보는 동남쪽 금천 방향을 가리게 됩니다.
보고서의 학술자문 결과는 다음과 같이 판단합니다.
적심건물지는 석탑 3기와 동시에 사용된 건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즉, 이 건물은 다음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인지 이 조사로는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보고서가 요구한 후속조사
보고서는 도천사지의 금당지를 찾기 위해 정밀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명시했습니다.
확인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8. 도천사지를 ‘3탑 1금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보고서만을 근거로 하면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천사지에서는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석탑 3기의 탑지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금당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3탑 1금당’ 가람배치로 단정할 수 없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천사지는 ‘삼탑식(三塔式, 석 삼·탑 탑·법 식: 세 탑을 둔 형식)’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삼탑일금당식(三塔一金堂式, 세 탑과 하나의 금당으로 이루어진 형식)’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9. 이 보고서의 중요한 한계
이 조사는 5일 동안 실시된 시굴조사이며, 대부분 사유지여서 조사범위가 매우 제한되었습니다.
따라서 보고서가 확인한 것은 주로 다음 두 가지입니다.
반면 다음 사항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도천사지 연구의 결론이라기보다, 도천사지의 실체를 처음 고고학적으로 확인한 출발점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요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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