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자훈련과 소명
서론 : 제자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성경적으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목회자는 이것 외의 다른 목회를 하기가 어렵게 된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섬기는 목회자라면 주님이 세우신 목회의 표준을 벗어나는 사역을 고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자도를 바르게 이해한 목회자가 제자삼는 사역으로 돌아서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세미나를 수료하고 수년이 지났는데도 제자훈련의 첫발을 떼지 못하는 교역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전통적인 교회에 굳어있는 상황 속에서 제자훈련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인 것이며 매우 어려운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아직도 제자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는 교역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경우에 제자훈련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교역자가 얼마나 말씀 앞에서 철저하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목회의 본질을 분명하게 이해할 때, 제자훈련은 지역교회 안에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제자도의 기본요소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성경을 검토하고 우리의 목회현장을 돌아보게 되면서 한 가지 분명해지는 것은 제자훈련 목회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는데서 교회의 갱신과 부흥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1. 제자도의 3가지 본질적인 요소 : 사복음서를 중심으로 검토 해보면,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내 안에 거하라든지, 내 말 안에 거하라든지, 너희가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라든지, 성령을 받으면 제자인줄 알고, 과실을 많이 맺으면 제자가 되는 등 여러 조건들이 나와 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거쳐야하는 본질적이고 꼭 있어야 하는 것 3가지(위탁자, 증인, 종)가 있다. 여러분이 그림을 한 번 그려보세요. 완전히 하나님에게 자기를 위탁한 사람, 그리고 어디를 가나 삶 전체가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증거하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처럼 섬기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이 3가지 조건을 구비한 사람의 초상화를 한 번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닮았습니까? 예수님을 닮았지요. 당신은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완전히 하나님께 위탁하며 사셨고, 복음 전하기 위해서 자기 생을 거셨고, 그리고 종으로 섬기는 삶을 모범으로 보여주셨다. 이 세 가지가 제자도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목사나 평신도나 우리가 이런 모습을 닮는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제자훈련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한 이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를 구비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보자 하는 노력과 씨름이 제자훈련이다.
⑴ 전적인 위탁자 :
① 위탁한다는 것 (룻 1:16-17) : 위탁이라고 하는 말이 영어로는 commitment 라는 말인데 이것을 좀 더 강조하는 말이 전적인 위탁, 즉 영어로는 Total commitment 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전적으로 자기를 그리스도에게 위탁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째 조건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예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이 전적인 위탁을 말하는 구절들이 여러 곳에 있는데, 우선 마태복음 10장 37절을 펴봅시다. 36절에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라고 하시면서 37절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라고 합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합당치 않다”는 말이 이 구절과 동행절인 누가복음 14:26절은 보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자기 처자나 부모형제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만큼 자기를 주님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이 위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십자가가 무거워도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는 각오로 사는 사람을 일컬어서 전적인 위탁자라고 할 수 있다.
마가복음 8:34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는 구절에서 여기 나오는 “부인하고”, “지고”라는 동사들은 단순 과거 동사로서 질질 끄는 것 또는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단 한 번의 포기로 끝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면 자기 자신부터 포기하고 짐을 져야 한다. 대가 지불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단번에 전제된 다음에 나를 따를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따를 것”이라는 말은 현재시제로 계속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제자가 되려면 위에서 말한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위탁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위탁 없이 따라갈 수는 없다.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가 룻기에 나오는 이야기 이다. 룻 1:16-17절에서 “어머니” 대신에 “예수님”을 넣어서 읽어보십시오. “룻이 가로되 나로 예수님을 떠나며 예수님을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예수님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예수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예수님을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간다는 말은 자기의 나라와 친척을 버리고 일생을 바치겠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늙은 할머니한테도 이와 같이 위탁을 하는데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에게 위탁하는 삶을 살지 못 한다면 부끄러운 이야기겠지요. 그런데 이런 위탁에 대한 설교를 하면 과격한 목사로 낙인을 찍는다. 그러나 이것은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포기를 하고 따르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포기를 하지 못해서 20년, 30년 신앙생활하면서도 미지근하게 겨우 구원을 얻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는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② 치러야할 대가 (눅 14:25-35) : 여기서 자연히 치러야할 대가가 뒤따른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싸움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너희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된다면 싸움을 해야 하고, 부모형제 처자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칼빈이 이런 말을 했다.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경외함을 돌리는 일이 사람의 애정으로 인해서 억압당하지 않는 조건 안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자. 만일 우리의 애정이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방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사랑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아마 현대인이라면 10명중 8~9명은 이 말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가 생겨서 우상이 되면 안 되게 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해 주는 것이 제자훈련이다. 또 다른 대가가 무엇인가? 선택의 희생이다. 선택을 해야 한다. 예수님이냐 세상이냐? 예수님이냐 나냐? 그 다음에 십자가 지는 것도 대가이다. 생명을 바치는 모험도 대가이다. 이런 모든 것이 다 대가 지불이다.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소위 위탁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요구는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베드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쫓은 제자도 있으며 삭개오처럼 자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자가 된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 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제자훈련 시키면서 어느 정도가 주님께 위탁하는 것인가 하는 선을 그어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우상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우상, 애정에 대한 우상, 자기 애착에 대한 우상, 세상향락에 대한 우상 등을 포기하면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것이 안 되면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③ 독특한 인격적 관계 : 전적인 위탁자가 되려면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절대적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예수님의 말씀도 그들을 붙잡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기사와 이적도 그들을 붙잡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었다. 제자훈련을 시키면서 위탁관계를 이야기 할 때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철저하게 맺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의 인격이 빠지면 예수님의 말씀이나 기적도 의미가 없어진다. 심지어는 성경말씀도 의미가 없어진다. 모든 것을 예수님, 그분의 인격에 초점을 맞추게 해 주어야 한다.
④ 제자훈련이 가장 어려운 교회 : 김효석 목사에 대해서 아시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그분은 오늘날의 성자라고 생각한다. 지금 중국에서 나환자들을 돌보며 목회를 하고 있는데, 그분이 독일에 유학할 때 보니까 유명한 대학의 신학과는 입학 경쟁률이 대단하답니다. 교회는 다 죽어 가는데 목사가 되기 위한 경쟁은 대단하다.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목사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부에서 봉급도 주고 목회지도 정해져 있으니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신학과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의학도 하고 다른 학과에 간다고 하였다.
미국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목회자 회의를 한 참 하는데 젊은 목사 하나가 짐을 챙겨 나가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집사람하고 약속이 있어서 간다는 것이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년초에 목사 하나가 컴퓨터를 한참 두들기더니 카피를 가지고 담임목사에게 가서 왜 이렇게 봉급이 작으냐고 따지더랍니다. 제자훈련은 자기 수준만큼만 훈련을 시킵니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어려운 제자훈련을 시킬 수 있겠어요?
⑤ 제자훈련 과정 : 제자훈련은 몇 과정이 있다. 처음에 몇 명이든 데리고 제자훈련을 시작하면 처음 2개월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정이 있고 고비가 있다. 이 2개월 동안 그 그룹이 어떻게 건강한 그룹으로 발전하느냐 혹은 병든 그룹으로 발전하느냐 하는데서 판가름이 난다. 2개월이 다 지나고 3개월이 되어 가는데도 잘 출석을 안 하고 계속 핑계대고 전화해야 마지못해 출석하고 찾아가야 출석하면, 이것은 매우 어려운 제자반이 된다. 그러나 2개월 안에 자기들끼리 정이 들고 오라 가라 하지 않아도 잘 참석하고, 시간 전에 출석하고 숙제도 잘 해 오고 눈빛이 반짝반짝하면 그것은 건강한 그룹이다. 이 고비를 잘 넘겨서 잘 되었다싶으면 또 한 번 고비가 온다. 예수님에게 자기 자신을 위탁시켜야 된다는 문제를 다룰 때이다. 제가 제자훈련을 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장로고 집사고 전도사고 사모고 따질 것 없이 너무너무 안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 헌신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 같은 데, 말씀 앞에서 몇 개월 씨름하면서 옷을 벗기 시작하니까 속은 하나도 안 익은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너무너무 고민들을 한다. 처자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요. 한번은 남자반인데 2개월이 지나도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모두 제로라 하는 사람들인데 너무 안 돼서 작정을 했다. 안 되는 것은 깨버려야 한다. 깨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극약처방을 하기로 했다. 교재에도 없는 마태복음 10장 37절을 내 놓았다.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가족이 원수니라” 등을 읽혔다. 그리고 느낌을 말하도록 했는데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신약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구절을 읽게 하니 유구무언이었다.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 참 있다가 한 사람이 말을 더듬으면서 “이런 성경 보면 기분이 나빠요” 했다. 이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래서 그 제자훈련 반은 해산하고 말았다. 제자훈련이 잘 되는 제자반에서도 위탁하는 과정을 어려워한다. 위탁문제가 해결 안 되면 제자훈련은 실패한다. 내 마음에 우상이 남아 있는 한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목회자 자신이 아직도 위탁하지 못한 것을 고백하기도 하면서 서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제자훈련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위탁이라는 문제는 평생을 씨름해도 끝이 나지 않는 부분이다. 목사는 얼마나 위탁되었느냐 하는데 답은 없다. 계속 씨름해야 하는 문제이다. 씨름을 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괜찮은 것이다. 대부분은 포기한다. 문제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은 포기하고 포기해도 괜찮은 것은 포기 안 한다. 한국교회가 제대로 되려면 우리 모두가 정신 차려야 한다. 위탁문제를 해결했는지 살펴보고 그 다음에 제자훈련 해야 한다. (5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