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했던 박물관이 갑작스럽게 임시 휴업을 하게 되어 오전 일정에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잠깐 당황했지만 격변하는 여행 생활에 이미 적응된 듯 바로 다음 일정을 의논해 갔다.
선생님은 고단하셔서 숙소에서 쉬는 것을 선택하셨다.
오후 일정을 오전으로 앞당겨 산악 바이크 체험장으로 이동했는데
아이들과 산악바이크를 같이 타고 코스를 돌고 싶었지만
미숙한 조종으로 언덕을 올라타 버렸다.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상황에서 사장님이 기회를 더 줄 수 없다고 하차를 권하자
아이들 보는 앞에서 잊지 못할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래도 산악바이크를 타고 돌아온 아이들이 나를 생각해서
바이크를 한번 더 타는 것보다 옆에 있는 승마 체험을 해보자고 권해줘서
허탈하진 않았다.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남은 오후 일정동안 해안가로 가서 이른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낚시를 원 없이 즐기거나, 다양한 해양생물들을 만져보거나,
사진을 찍는 등 각자 자기가 원하는 놀거리를 찾아서 했다.
피곤해서 평평한 갯바위에 누우려다가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누울새 없이 따라갔다.
버너와 냄비를 가져와서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먹었다.
바다 바람 맞으면서 끓여먹는 라면이라 아, 그래. 낭만있다.
그러다 라면사리를 바닥에 흘리면 아까워서 탄식하는데
갈매기가 쪼아먹게 냅두라고 아이들은 무심하게 말한다.
하지만 갈매기가 쪼아 먹는다는 말은 듣기 좋게 포장한 것일 뿐,
라면사리들을 여기저기 흩뿌리고 가면
남들에게 민폐 끼치는 거나 다름없다며 치우고 가기를 권했다.
라면사리는 다 먹고 국물만 남았는데 바다에 버리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국물을 마시는 것에 대해 모두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각자 마셔도 한입만 마시고 마는 정도였다. 결국 남은건 내가 다 마셨다.
얼큰한 국물을 들이면서 물로 배를 채운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실감했다.
숙소로 돌아갈 때쯤 해가 저물기 시작해 텐트 치는데 어두워서 애먹었다.
잘못 설치해서 시간을 더 잡아먹었다. 엉뚱한 폴대를 끼워 넣는다던가,
바닥에 팩을 먼저 박는다던가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결국 선생님의 도움으로 여차저차 설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화로대에 숯을 넣어 불은 붙인 후 고구마를 알루미늄으로 감싸서 익히는 동안
오징어와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불멍을 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서 신나는 노래 속에서 불멍을 하며 그 분위기에 취했다.
불이 다 꺼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다 추워질 즈음 자리를 정리했다.
남자들은 텐트 안에서 침낭을 쓰고 자기로 했는데 정 추우면 숙소 안으로 들어가 자도 됐지만
야외 취침도 즐기고 텐트 친 보람도 느낄겸 조금의 추위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혁수가 텐트 입구 쪽에서 일자로 눕는 바람에 출입하기가 힘들었다.
얘는 다른 곳에서도 자리가 있는데 왜 입구 쪽에서 자는지 모르겠다.
다들 자고 있어서 조용히 푸념하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