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성칠
희끗한 눈(雪) 머리 인 저 산마루
살랑대는 봄바람에
참았던 눈물 뚝뚝 떨구고
두텁게 감싼 늙은 소나무
온몸 타오르는 흥분에
낡은 옷 훌훌 벗어 던진다
햇살 밀려온 양지쪽엔
쑥과 냉이 말쑥한 손짓에
뭇 소녀들 얼굴 붉어지고
카디건*과 훌훌히 이별하고
사뿐히 매무새한 여인들
부푼 가슴 도드라진다
*카디건 cardigan: 털실로 짠 스웨터. 칼라없이 앞이 터여 단추로 채우는 겉옷
입춘방
이성칠
지난해 입춘방
국태민안* 가급인족*
입춘대길 건양다경 떼어내고
올해 입춘방
입춘대길 만사형통
건양다경을 붙인다
24절기 내내
아파트 출입문엔
양상군자마저 찬바람에 비껴갔건만
오호통제 이태원 한마당엔 바늘땀 마저
노트북에 진즉 붙였으면
여러 번 도전장 탈락 메시지
랜썸바이러스 안걸렸을 걸
휴대폰에 찍어 놨더니
보고픈 목소리 한 통 없지만
알아라 오라 달라 아직은 쓸만해
하여튼 멀쩡히 숨만 쉬면 됐네
올해는 세 장만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는 태평하고 국민은 편안하다.
*가급인족(家給人足):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들은 풍족하다.
송정(松亭)공원 산수유의 꿈
이성칠
앙상한 나뭇가지
찬 기운 여전한데
남촌 소식 먼저 알리려
노란 봄 오밀조밀 매달았다
봄봄 병아리떼
나리나리 개나리 숨어들듯
동동 참새떼 사랑찾아
노랑 꽃물에 취해 재잘거린다
벌 나비마저
봄 마중 채비 더딘데
동글동글 맺을 꿈에 젖어
헤집는 꽃샘바람에 안긴다
주말엔
이성칠
희망을 품은 청춘
나는 젊어 옴팡지게 보내요
지나간 날들 돌아보지 않아요
열심히 일한 당신
나를 핑계 삼아 쉬어 가세요
오늘은 참새도 방앗간은 들려요
사랑을 찾는 그대
나를 벗 삼아 함께 즐겨요
나의 시간은 고장나지 않아요
대나무 마디처럼
인생길 역마차 주막에 들리듯
나는 마침표 찍어가며 살아요
살구꽃 필 적엔
이성칠
이 마을 저 마을 연분홍빛 돛단배가 도깨비처럼 날아든다
하얀 장막 속에 기다림
하염없는 고향집은
늙은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처럼 안개에 갇힌다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옛길을 더듬는다
철철이 바뀌는 도깨비 장난질 삼월이 깊었구나
소꿉장난 소녀는 황소 따라 연분홍 치마 날리고
강 건너 시집살이 풋살구 신맛이 돌자
꽃샘바람에 점점이 흩날린 선홍빛처럼 보름달 품었다
논두렁 밭두렁 분간 못할 연한 자태지만
아름드리 고목이 준
보약 같은 살구 맛에 길들었기에
황소 같은 낭군은 흰 돛단배
무서리에 꽃비 떨구듯 연년이 꽃봉오리 끝내 맺지 못했다
반복되는 귀향길 연분홍 돛단배
도깨비처럼 날아들면 어김없는 가슴앓이 버릇되어
씨불알만 한 살구가 시큼해질 때까지
봄의 한가운데
이성칠
봄비가 오더니
천사들 내려와
온 세상 꽃잔치 널렸다
살며시 수줍음 담아
온몸으로 꽃향기에 취한다
아쉬움 떨칠 조바심에
봄앓이 시작되고
꿈꾸는 봄의 환희에 헤맨다
봄비야 내리지 말아라
바람아 살랑살랑 불어라
봄꽃마저 흘러가면
벌 나비 친구들은
언제쯤 날아오겠니
서우당 이성칠
경북 구미(1960), 경북대 행정학박사
월간 국보문학 시부문 신인상(2022.6)
한국국보문인협회 정회원
경북문학아카데미 회원
경상북도공무원문학회 회원
구미문화원 이사
지방부이사관(3급) 퇴직, 홍조근정훈장
국보문학 문학기행(2022), 다향축전(2022) 우수상
저서·논문: 맛있는 글 읽는 멋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