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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Symphony Orchestra
런던 심포니는 1904년 설립된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영국이 자랑하는, 영국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다. 1982년 바비컨 센터가
준공되면서 이 홀의 상주 악단으로 많은 연주를 바비컨 센터에서 하고 있고 영화 음악 녹음과 딥 퍼플, 엘튼 등 다양한
팝 아티스트들과도 협연했으며 게임 녹음까지 하는 등 클래식 연주회에 치중하지 않고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프레빈 사임 후 아바도가 이 악단을 맡아 1979년에서 1987년까지 흐트러져 있던 앙상블을 그의 스타일로 개조하고
(현 파트를 무게 있고 힘 있는 소리로 목관을 이 악단의 관습적인 스타일에서 변형에 실패하지만 밝고 화려하기만 했던
금관 파트는 그의 조련으로 깊이 있는 소리와 클래식칼한 무게를 더해 시카고 심포니의 금관에 대적할 파트로 성장한다)
음악적인 부분에 치중해 악단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미 재정적인 면에서 고민을 벗어난 런던 심포니는 아바도의 출중한
지도로 세계 최상급 오케스트라 반열에 들어간다. 아바도 역시 에너지 면으로나 음악적인 면으로 가장 화려한 시절에 이
악단을 맡아 동반 성장을 이루고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에 초대받아 객원 지휘를 통해 전성기를 쌓아 나간다.
1987년 아바도를 베를린 필에 빼긴 런던 심포니는 미국의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를 상임 지휘자로 임명해 다시
앙드레 프레빈 스타일의 악단으로 돌아간다. 1995년에 콜린 데이비스가 상임 지휘를 맡아 11년이란 장기 재임하고
영국적인 색채로 이 악단을 이끌었고, 2007년부터 창단 이후 최초의 러시아인 상임 지휘자로 발레리 게르기에프를
맞이 하여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폭넓은 레파투어로 폭을 넓혔고, 2017/2018년 시즌부터 자국 출신 지휘자
사이몬 레틀과 음악 감독 계약을 하고 악단의 리빌딩을 시도했지만, 고질적인 악단의 시스템과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정체성을 벗어난 과도한 행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6년 만인 2023년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다시 독일 오케스트라인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brso)에 작고한 얀손스 후임으로 자리를 옮긴다.
LSO는 클래식 전문 오케스트라 영역을 벗어난 잦은 외도로 교향악단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해
오케스트라 단원 외 많은 스텝이 필요하여 운영진만 94명으로 4관 편성조차 채우지 못한 79명의 단원보다 스텝이
더 많은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구조로 (Development, LSO Discovery, Finance, People, LSO Archive, Technology,
LSO St Luke’s, Public Relations, Marketing, LSO Live등 기존 운영진 28명 외 66명의 별도 인원) 조직되어 있다.
154명의 단원으로 오페라와 콘서트를 병행하고 있는 Sä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 도 16명의 운영진으로
경량화 시켜 모든 예산을 단원들의 처우와 객원 지휘자, 솔리스트에 투자하고 있는 현실인데 비해 LSO는 새로운
상업적 가치에만 눈을 돌려 단원들의 피로도는 세계 최고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가진 오케스트라다.
영국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LSO는 정체성이나 공연 내용, 단원 구성으로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 지켜본 래틀이 베를린 필을 그만둔 후 돌아와 목관 수석과 단원을 충원하는 등 리빌딩에 힘을 쏟았지만,
오케스트라의 시스템적, 구조적 문제가 너무 심각하여 6년 만에 손을 들고 음악감독을 사임한다. LSO의 가장 큰 현안이
세대교체를 위한 단원 확충이며 상업주의에서 탈피하는 일이었다. 강력한 리더쉽이 있는 레틀조차 이미 상업주의에
길들여진 클래식 음악 외 다른 이벤트성 일정과 이를 소화하기에 만든 과도한 스텝의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음악적
성과조차 없이 음악감독직을 마친다. 2023/24 시즌 부터 이태리계 영국인 안토니오 파파노가 감독직을 맡고 있다.
9. Jänner. 2024. Lübeck. franciscopaik.
단원 구성: 1.Vn. 2.Vn. Viola. Cello. K.Bass.
악장 3,포함 15명. 14명. 10명. 7명.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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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 Ob. Cla. Bn. Hr. Tp. Tb. Tu. Tim. Pe. Hf. 총인원.
2명. 3명. 3명. 4명. 4명. 1명. 3명. 1명. 2명. 3명. 1명. - 79명.
Flute
Gareth Davies Principal * 2000
Sharon Williams Principal Piccolo * 2001
Oboe
Juliana Koch Principal * 2018 (독일) ard 2nd.
Olivier Stankiewicz Principal *2015 Professor at the Royal College of Music
Rosie Jenkins * 2016 Professor at the Royal College of Music
Clarinet
Sérgio Pires Principal * 2024 (포르투칼) Hochschule for Musik in Basel
Chris Richards Principal *2010, Professor at the Royal Academy of Music
Chi-Yu Mo Principal E-flat *1998, Professor at the Royal Academy of Music Nicholas Rodwell
Bassoon
Rachel Gough Principal *1999 Royal Academy of Music Hannover Hochschule Klaus Thunemann.
Daniel Jemison Principal * 2013
Joost Bosdijk *2007 Professor at the Royal College of Music Hanns Eisler with Klaus Thunemann
Martin Field Principal Contrabassoon *2023 Royal Academy of Music (RAM)
Chefs principaux
Hans Richter (1904–1911) Edward Elgar (1911–1912)
Arthur Nikisch (1912–1914) Thomas Beecham (1915–1917)
Albert Coates (1919–1922) Willem Mengelberg (1930–1931)
Hamilton Harty (1932–1935) Josef Krips (1951–1954)
Pierre Monteux (1960–1964) Istvan Kertesz (1965–1968)
Andre Previn (1968–1979) Claudio Abbado (1979–1987)
Michael Tilson Thomas (1987–1995) Colin Davis (1995–2006)
Valeri Guerguiev (depuis 2007-2015) Simon Rettle (2017- 2023)
Antonio Pappano 2023 -
역사;
1904년에 창단되었는데, 아예 새로 결성된 것은 아니고 일종의 흑역사가 있었다. 런던에서 연주회 전문으로 활동하던
퀸즈 홀 관현악단이 모체였는데, 1903년 쯤부터 이 악단의 지휘자였던 헨리 우드가 단원들한테 다른 악단에서 활동
규제와 개인 활동의 제약에 50명 가량의 단원들이 단체로 퇴단해 새로운 악단을 따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런던 교향악단
이다. 어찌 보면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비슷한 케이스다. 다행히 산업혁명의 본산으로 당대 가장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런던은 당대의 최고 지휘자였던 한스 리히터가 창단과 동시에 수석 지휘자로 취임한 덕분에 화려
하게 재출발한다. 리히터는 1911년 시력 악화로 지휘 활동을 접을 때까지 재임하면서 악단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졌고,
1906년에는 프랑스로 창단 후 첫 해외 연주 여행을 갔다오기도 했다. 리히터의 후임으로는 작곡가로 유명한 에드워드
엘가가 부임했지만, 한 시즌 지휘하는데 그쳤고 세 번째로 당시 베를린 필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였던 거장 아르투르 니키슈가 제3대 수석 지휘자로 취임했다. 니키슈도 1912년에 악단을 이끌고 미국에
순회 공연을 가는 등 악단의 국내외 지명도를 한층 끌어 올렸는데, 이듬해에는 HMV(현 EMI)에 창단 후 첫 녹음을 취입
하기도 했다. 하지만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자동적으로 적성국 요인으로 분류되어 강판당했고,
1915년에 토머스 비첨이 급히 임명되어 1916년 까지 악단을 이끌었다.
1919년에는 앨버트 코츠가 제5대 수석 지휘자로 취임했고, 과거 추축국들이었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와 관계가 개선
되자 해당 국가들의 유명 지휘자를 객원으로 적극 초빙해 공연하기 시작했다. 코츠가 1922년에 사임한 뒤에는 한동안
수석 지휘자 없이 활동했지만, 활동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1932년 해밀턴 하티가 제6대 수석 지휘자로 부임한
직후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영국 경제도 어려워져, 악단 운영에도 큰 타격이 가해졌다.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량
감원이 행해졌고, 하티도 1935년에 직책에서 물러나면서 이후 거의 15년 가까이 수석 지휘자 없는 긴 침체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나마 공연이나 녹음 수요는 아직 있어서 이 수입으로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나마 종전 후인 1950년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요제프 크립스를 제7대 수석 지휘자로
영입해 재기를 시도했고, 크립스는 1954년 미국의 버펄로 필하모닉오케스트라로 이임할 때까지 재임했다. 크립스가
사임한 후 또 몇 년의 공백기를 거쳐 1960년에는 프랑스 출신의 노장 지휘자인 피에르 몽퇴가 제8대 수석 지휘자가
되면서 본격적인 재도약이 시작되었고, 이 때부터 2010년 현재까지는 거의 공백 상태가 없이 수석 지휘자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몽퇴의 후임으로는 헝가리 출신의 이슈트반 케르테즈가 부임했다. 케르테츠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지휘자로 DECCA가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젊은 신예였기 때문에 음악계에서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런던 심포니 측은 케르테츠를 영입하여 DECCA와 활발한 음반 녹음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안타깝게도 DECCA는 자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빈 필의 세션에 케르테츠를 주로 투입했기 때문에 런던 심포니와는
그다지 많은 녹음을 남기지 않았다. 케르테츠는 실력 있는 지휘자임은 분명했으나 나이가 너무 젊은 편이어서인지
단원들이 무시하는 경향도 있는 등악단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케르테츠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었다는 점을 큰 문제점으로 여긴 경영진은 후임으로 대중성과 쇼맨쉽을 겸비한
앙드레 프레빈을 수석지휘자로 영입했다. 프레빈은 헐리우드에서 영화음악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클래식 지휘자로는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런던 심포니를 맡기 전 프레빈의 지휘 경력은 휴스턴 심포니 상임지휘자로 1년 일한 것이
전부였다. 프레빈이 수석지휘자로 취임하여 두세 시즌이 지나자 경영진은 이번에는 프레빈의 음악성에 한계를 느꼈다.
마침내 경영진은 프레빈을 중도에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프레빈은 의외로 완강하게 저항했다. 프레빈은
계약서상에 명시된 자신의 임기 보장을 요구하며, 단원들을 끌어들여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경영진은 그를 경질하려는 것을 포기했고, 그는 계약서상의 임기를 모두 채웠다. 덕분에 프레빈은 런던 심포니에서도
제법 장수한 지휘자가 되었고, 임기 후에는 계관지휘자가 되었다. 그래도 프레빈은 런던 심포니 수석지휘자로 재직한
기간동안 거장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상임
지휘자로 가면서 일류 지휘자급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또한 이 동안 BBC의 프로그램에 런던 심포니가 초청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런던 심포니 경영진은 프레빈을 경질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대신 음악성 있는 거장
지휘자들을 객원지휘자로 초빙하는데 많은 노력과 자금을 투입했다. 일례로 런던 심포니는 칼 뵘을 객원지휘자로
초빙하기 위해 당시 다른 오케스트라들이 정상급 지휘자들에게 지불하던 개런티의 세 배 정도 되는 거액을 제시했다.
프레빈과 계약된 임기가 모두 끝나자 런던 심포니 경영진은 프레빈의 후임 지휘자로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수석
지휘자로 영입하였다. 그러나 아바도가 유명해짐에 따라 빈 필과 빈 국립가극장, 시카고 심포니, 라 스칼라 등 다른
악단과의 활동에 더 큰 신경을 쓰느라 런던 심포니와는 활동이 거의 뜸해지게 되었다. 미안함을 느낀 아바도는 자진
해서 사임을 하려했지만, 오히려 경영진은 이름만 걸어놔도 좋으니 계속 상임지휘자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요청에 더 미안해하면서 그만둘 줄 알았는데 아바도는 런던 심포니의 상임을 몇년간 더 유지했다. 그러나
1989년 아바도가 베를린 필에 낙점받아 옮기고, 아바도의 후임으로는 미국의 신예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명
되었고, 1995년에 콜린 데이비스가 영국 지휘자로서는 해밀턴 하티 이래로 통산 네 번째 수석 지휘자에 부임했다.
데이비스는 2006년 퇴임한 후에도 2013년 타계할 때까지 악단의 회장 직책을 맡으면서 객원으로 종종 지휘대에
섰고, 후임으로는 러시아 출신의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2007년에 부임해 2013년까지 악단을 맡았다. 게르기에프는
계약이 만료되는 2015년에 추가 갱신 없이 퇴임해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에,
악단에서는 후임 수석 지휘자를 물색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베를린 필에 있다가 2018년 퇴임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던 사이먼 래틀과 계약에 성공했고, 래틀은 2017/18년 시즌에 예술 감독 직책도 겸임해 취임했다.
조국을 위해 6년간 런던 심포니를 재건하려 했지만 래틀은 악단 리빌딩에 실패하고, 2023년 감독직을 반납한다.
이후 이태리 출신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가 감독직을 이어받아 80명도 안되는 단원을 세대교체에 힘쏟고 앙상블
재건에 주력하고 있다. 출처; 위키페디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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