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들은 심장에 산다
최해숙
파란시선 0130
2023년 8월 20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38쪽
ISBN 979-11-91897-60-9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책을 든 소녀가 가슴에서 자꾸 태어난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심장에 산다]는 최해숙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흰 십자가」, 「이상하고 신비한 네모」, 「언니들의 해변」 등 57편의 시가 실려 있다.
최해숙 시인은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으며, 2016년 [시와 경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심장에 산다]를 썼다.
“최해숙 시인의 시 세계를 좇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바다가 있는 빵가게가 떠오른다. 바다를 낀 골목과 거리에 부는 바람, 포구, 낡은 빌라, 가게를 지키며, 지역의 삶을 응시하며 한 문장 한 문장 기록하는 노트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인의 시편들엔 한결같이 다정한 시어와 따뜻한 시선,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인식 등이 녹아 있다. 담백하고 담담한 묘사에 뜻밖의 빛나는 문장들이 어우러져 내뿜는 시적 아우라가 느껴진다. 자신이 딛고 선 흙의 성질을 본떠 꽃의 색을 정하는 수국처럼 시인도 자신이 뿌리내린 지역의 색을 붙들고 새로운 꽃을 피웠다.
시 「이상하고 신비한 네모」에서 “사실 블랙홀은 네모 모양이 아닐까”라는 진술은 우리 삶의 전반이 사각 모양의 아파트, 사각 모양의 사무실에서 출발해서 우주 블랙홀까지 나아간 시적 진술의 확장을 보여 준다. 시 「운명아파트」에서 “같은 구조로 밥을 먹고 나란히 출근을 하고 나란히 주차를 하고/나란히 나란히 옆으로 나란히”에서도 사각에서 사각으로 움직이는 인류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사각”이라는 장소를 환기시키면서 의문을 갖는데, 이 의문이야말로 시인이 지속적으로 견지해 나가야 할 태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과 삶의 신산함 속에 화자는 어떻게 발 딛고 선 곳의 삶과 풍경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을까. 이러한 믿음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독자는 시인의 시 「물구나무선 가게가 말했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이 시에서 “국도에 빵집을 내려면 바람이 부는 방향과/속도를 알아야 해요”라고 진술했을 때 독자는 이 시인의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시 쓰기도 열 명 중에 여덟 명이 하지 말라고 말린 가게, 단 두 명만이 말리지 않은 가게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상 성윤석 시인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그녀의 시는 이상하게 슬프고 이상하게 아름답다. 창가 호리병의 긴 목에서 향기가 맴돈다. 그것은 어두워져서 한꺼번에 기억을 몰고 온다. 그 바다에는 슬픔이 많았고 한숨이 많았다. 기억은 나의 ‘곳’에 맡겨 두었거나 보관해 두었던 것. 하지만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더 세밀해지는 것. “이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데리고 살아야겠어.” “그것이 시가 될 줄 몰랐어요.” 최해숙은 발목을 보면서 말한다. 벽을 보면서 말한다.
최해숙의 첫 시집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심장에 산다]를 고스란히 읽으며 나도 고스란해진다. 그리고 고스란히 그녀의 예민함에 나도 어깨를 기댄다.
―손음(시인)
•― 시인의 말
전부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
소유하는 순간 달아나기 시작하는 것
가장 고요한 평온이면서 가장 불온한 불안
나마저 버리게 하는 잔혹한 천사
내가 물일 때 잉크처럼 내게로 와 번지는 것
벗어날 수 없는 사랑
•― 저자 소개
최해숙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2016년 [시와 경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심장에 산다]를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흰 십자가 – 11
연 씨를 물고 잠들다 – 13
물구나무선 가게가 말했지 – 14
노을 빌라 – 16
중독 – 18
구겨진 개울 – 20
산소마스크 – 22
코 – 24
이상하고 신비한 네모 – 26
운명아파트 – 28
물을 말하다 – 30
시계방 그 남자 – 32
어느 날 왼쪽이 – 34
심장호수 – 36
산 – 38
제2부
그 빵집 – 43
언니들의 해변 – 44
달개비 – 46
나 대신 수탉이 – 48
접시의 연대기 – 50
한 손 – 52
플로리스트 – 54
원정노동 – 56
심해의 독법 – 58
형상기억합금 – 60
카페 달 – 62
요가 – 64
끝없이 – 66
모두 온기가 있다 – 68
제3부
쓸쓸한 말들의 여행 – 73
우산을 찾아가세요 – 74
핸드드립 – 76
타로 – 78
석류 – 80
작명가 – 82
달팽이 – 84
후남이 – 86
울타리는 마당의 비밀을 알고 있다 – 88
낭만 치즈 – 90
여우가 사는 방 – 92
우물 – 94
자구 – 96
제4부
호미곶 손 – 101
검은 상자 – 102
마지막 한 잎 – 104
섬집 – 106
부족 – 108
메모리 – 110
스무 살 – 112
공룡이 사는 마을 – 114
아린 기억들은 시가 되어 – 116
별 데리고 나오는 초승달같이 – 118
달마중 – 120
차를 우리며 1—다우(茶友) – 122
차를 우리며 2—숙우 – 123
차를 우리며 3—실화 상봉수 – 124
차를 우리며 4—옥로 – 125
해설 성윤석 삶을 바라보는 다른 인식의 힘 – 126
•― 시집 속의 시 세 편
흰 십자가
타인을 만인이라 하자
어느 나라에선가는
자살한 사람의 무덤 위에 흰 십자가를 칼처럼
꽂아 놓고 국가에서 엄벌에 처한다고 한다
누가 처음 마음의 동굴을 파 놓았을까
제 무덤 같은 홀을
동굴에 갇혀
벽을 오르는 의지가 없다면 동굴은 무덤이 될 것이다
빛을 탐험하는 호기심이 없다면 살아도 죽은 것이다
마음이란
꽃 한 송이 꽂을 수 없는 호리병이었다가
노송을 껴안는 숲이었다가
누구일까 열 길 물속보다 깊은 한 길을
마음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그 둘레를 걸으며 심리라고 말한 사람은
물기 말라 가는 묘지에 남풍이 부는 날
혼자 동굴을 파느라 수고 많았다 흰 소복의
나비가 십자가를 맴돌다 간다 ■
이상하고 신비한 네모
사실 블랙홀은 네모 모양이 아닐까
낮에도 별이 반짝이고
연필과 공책이 달린 문
많은 사물들이 모르는데도 알지?
묻는다
여기는 신세계 나는 돌잡이 아까부터 그런 느낌
예쁜 공책에 좀 끌렸지만
나는 허기에 마음이 기우는 사람
반쪽 사과가 달린 문을 손끝으로 밀었다
사과나무 아래 참새들
바지런히 햇살을 나르고
방마다 램프가 켜진다
톡톡 액정을 쪼는 지문들 안부를 삽질한다
문장보다 큰 감동이 폭죽 터지는 요정들의 천국
밖에 눈이 내리면
유리에 기후변화를 보이지만
우리의 기분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스크, 거리 두기 없고 주방도 욕실도 없다
나가는 문은 하나, 방심하면 발이 꼬여 어이없이 도는 회전문
허기가 지면 벨이 울리고, 누가 밥을 두고 간다
아침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이 되는 이상한 나라
책 속에 압화를 키워 바퀴 달린 가방을 사고 싶었지만 어쩌다 눈동자에
바퀴를 달게 된
플러그가 태엽을 감으면 이국적인 계절이 풀려 나와 어딘가로 끌고 가는
신비한 날씨들
아무래도 영혼이 누울 곳도 네모 모양의 블랙홀이 아닐까 ■
언니들의 해변
물 빠진 해변에 언니들이 매달려 있네
불가사리처럼 붙어 있네
해변은 어미처럼 젖가슴을 열어 놓고
단발머리에게 파래 뜯기고 있네
가느란 손목을 포클레인처럼 하고
바다의 가슴을 파고 파네
볼록한 무덤이 자꾸 생겨나네
붉고 푸른 지렁이 몸통 저린 미끼들을
무덤에서 꺼내고 있네
작고 무른 손들이 꼬물대는 지렁이를 세고 있네
빤장게가 싱거운 걸음으로
이 행성의 자매들에게 묻고 가네
파도 파도 파도 같은 삶이 이어지고 있네
물이 들고 해변이 언니들을 뱉어 내네
언니들이 모래를 쓰고 무더기로 나오네
저물도록 나오지 못한 언니는
아직도 거기서 지렁이를 꺼내고 있네
뼈 없는 것들이 눈에서도 흐르네
흐르는 것들을 서로 닦아 주고 있네
우우 갯바람 부는 해변이 이쪽과 저쪽 저녁을
잇고 있네 ■